채식주의자 흡혈귀 딩동
글: 임정진
그림: 박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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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 가족에게 새로운 식구가 태어났어요. 딩딩과 동동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망냇동생이었지요. 아주 작은 여동생이에요.
“오, 이렇게 천사같은 아기라니!”
아빠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어요.
“아이쿠, 말조심하세요. 이 애는 흡혈귀라고요. 천사가 뭐람?”
엄마가 눈을 찡그리며 말했어요.
“아차차, 나도 모르게 그만. 흠흠!”
아빠가 헛기침을 하며 머리를 긁적였어요. 흡혈귀는 무시무시해야 돼요. 오싹오싹하고 말이죠. 천사처럼 사랑스러우면, 흡혈귀 같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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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동생 이름을 골라봤어요! 듣기만 해도 오싹오싹해지는 이름으로요. 딩딩딩 어때요? 쇠스랑 소리처럼!”
“아빠! 흡혈귀와 어울리는 건 동동동이라고 생각해요. 딱정벌레 모습처럼!”
오빠인 딩딩과 동동이 길고 두꺼운 두루마리를 가져왔어요. 여동생 이름 후보들이 잔뜩 적혀 있네요.
“딩~! 동~!”
막내가 오빠들의 말을 따라하려다가 한 글자씩 말하고 말았네요. 그런데 그 이름이 마음에 드는 거 있죠. 그래서 막내 여동생 이름은 딩동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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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은 좀 이상했어요. 엄마와 아빠, 오빠 딩딩과 동동과는 좀 달랐거든요.
“아빠, 딩동이 어디 아픈 걸까요?”
“흡혈귀인데 송곳니가 없다니! 엄마,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닐까요?”
딩딩과 동동은 막냇동생이 걱정되었어요. 그때마다 엄마 아빠는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아직 아기라서 그래. 송곳니는 더 크면 생길 수도 있지.”
“너희들 송곳니나 깨끗하게 닦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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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딩동은 오빠들과 산책을 했어요. 그러다 길가에 핀 꽃을 발견하고 방실방실 웃었지요. 그리고 꽃술을 톡 따서 꿀을 쪽쪽 빨아먹는 게 아니겠어요.
“으악, 안 돼. 당장 뱉어!”
“먹지 마. 배탈 난단 말이야!”
오빠인 딩딩과 동동은 깜짝 놀라 소리쳤어요.
“맛있어. 오빠들도 먹어봐.”
정말이지, 걱정되는 여동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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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희 막내가 딸기 우유만 먹고요. 혈액 식당에 외식을 하러 가면 문 앞에서 기절해요.”
결국 가족들은 딩동을 데리고 병원에 갔어요. 엄마 아빠가 의사 선생님에게 딩동에 대해 설명했지요.
“우리 애 어디 크게 잘못된 걸까요?”
의사 선생님 앞에서 엄마는 엉엉 울었어요.
“엄마, 울지 마요. 난 괜찮아요.”
딩동은 엄마를 끌어안고 달랬지요.
“에휴~ 애가 엄마를 위로하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아빠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어요. 의사 선생님은 딩동을 요모조모 살피며 진찰했지요. 그리고 흡혈귀 의사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정말이지,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였어요.
“이 아이는 정말 특별하네요. 딩동이는 200년에 한 번씩 태어나는 채식주의 흡혈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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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을 위해서는 채소를 사러 가야 하지만. 맙소사! 흡혈귀가 채소를 사러 가다니 다들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엄마는 생각만 해도 부끄러워서 얼굴이 노래졌어요. 하지만 딩동을 위해서는 시장에 가서 채소를 사야 했지요. 딩동은 채소만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우리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도 끼고 갑시다.”
아빠가 모자와 선글라스를 꺼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어요.
“자 딩동, 이걸 먹어보렴.”
송당송당 썰린 주홍색 순무가 접시에 담겨 있어요. 딩동은 오도독 오도독 열심히 먹었지요.
“맛있어요! 근데, 엄마. 턱이 아파요.”
딩동의 턱이 빨갛게 부었네요.
“어머나, 우리 집안은 뭘 씹어본 적이 없어서 턱이 약하단다.”
엄마가 한숨을 쉬었어요.
아빠는 상추 한 포기를 사 왔어요.
“딩동아, 이건 네 마음에 들 거야.”
딩동은 초록색 상추를 아삭아삭 먹었지요.
“맛있어요! 하지만 아빠. 배가 아파요.”
딩동은 도도도 화장실로 뛰어갔어요.
“이런, 우리 집안은 뭘 씹어본 적이 없어서 장이 약하단다.”
아빠도 한숨을 쉬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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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의 생일이 다가왔어요. 딩딩과 동동은 도서관에서 채소 과일 도감을 빌려왔어요. 그리고 여동생을 위한 야채들을 고르기 시작했지요.
“딱딱한 건 안 돼. 맛없는 것도 안 되고.”
“하얀색도 초록색도 검은색도 안 돼. 무조건 빨간색이지. 그래야 기분 좋아지니까.”
딩딩과 동동은 살그머니 시장에 갔어요. 그리고 여동생을 위해 즙이 많은 붉은 채소와 과일을 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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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딩동의 생일이 되었어요. 하지만 딩동은 생일에도 배가 고팠지요. 엄마와 아빠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닮은 망토를 선물했어요.
“와~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 정말 예뻐요!”
딩동은 환하게 웃으며 망토를 둘렀어요. 아주 잘 어울렸지요.
‘딩동이 채식주의자가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잘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우리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야.’
엄마 아빠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때 딩딩과 동동이 여동생의 생일상을 들고 나타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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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합니다. 우리 딩동이를 위한 통통하게 잘 익은 토마토와 딸기!”
“사랑하는 우리 딩동이~ 축하해! 이건 빨간 속이 잘 보이게 자른 수박과 석류야.”
오빠들이 준비한 식탁은 온통 빨간색 야채와 과일로 가득했어요. 딩동의 얼굴에 행복이 떠올랐지요.
“우리 같이 먹어요!”
딩동은 주머니에서 밀짚 한 움큼을 꺼냈어요.
“아니, 아니. 우리는 됐어.”
“미안해. 널 사랑하지만, 밀짚을 먹을 수는 없어.”
“그게 아니라, 이 밀짚을 빨대로 사용하자고요. 피 주스 마시는 것처럼요.”
딩동을 시작으로 흡혈귀 가족은 밀짚을 과일과 야채에 콕콕 꽂아 즙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오오, 이거 좋은데!”
“색도 빨갛고 말이죠.”
“소화도 잘 되네?”
“맛도 괜찮은걸!”
“배도 안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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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 가족은 다른 붉은색 채소나 과일도 맛보고 싶어졌어요. 딱딱한 것들도 말이죠.
“그러려면 뭔가 기구가 필요한데. 딱딱한 붉은 채소의 즙을 내기 위한 기구 말이지.”
그때 딩딩과 동동이 TV 홈쇼핑을 보고 소리쳤어요.
“엄마, 저거예요!”
“주서기!”
바로 과일이나 야채의 즙을 짜는 기구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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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서들 오세요. 딸기는 물론 딱딱한 비트, 억센 붉은 양배추도, 커다란 홍당무도 문제 없어요!”
딩동네 가족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어요. <가지가지 붉은 주스 전문점>을 열었지요. 강력한 주서기도 마련했고요.
“진짜 괜찮을까요? 우리 흡혈귀들이 피 주스 없이 살 수 있나요?”
첫 손님이 와서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고지혈증 있는 피가 좋으셔요? 콜레스테롤이 잔뜩 든 피가 건강에 좋겠어요?”
“우웨액~ 세상에, 듣기만 해도 속이 뒤집히는군요.”
“우리도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한 피를 스스로 만들면 돼요.”
딩동의 설명에 드라큘라 백작이 머뭇거리며 물었어요.
“그래도, 풀인데...... 그것만 먹고 기운이 날까요?”
“코끼리랑 소랑 하마를 보세요. 풀만 먹고도 기운이 세잖아요.”
“아하. 그럼 한 잔 주세요!”
🐘 🦛 🐂
무시무시하던 흡혈귀들의 송곳니는 앞으로 보기 어려울 거예요. 점점 작아지고 있거든요.
딩동네 가족의 <가지가지 붉은 주스 전문점> 덕분이죠.
무럭무럭 자란 딩동은 <가지가지 붉은 디저트 전문점>을 열었답니다.
“맛있는 딸기 젤리와 수박 화채. 그리고 홍당무 아이스크림과 비트 요거트가 있어요. 어떤 걸로 주문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