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남파고택(南坡古宅)은 조선시대 후기(1884년)에 남파(南坡) 박재규가 건립하여 후대에 이르면서 1910년대와 1930년대에 개축한 건물로 전라남도에 있는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크기를 가진 개인주택이며 관아건물 형태를 모방하고 있는 건물로서 남도 지방 상류주택의 구조가 비교적 잘 나타나고 있다. 초당은 박경중의 6대조가 지은 것으로 “광서십년갑신구월(光緖十年甲申九月)……”으로 기록된 상량문이 있어 고종 21년(1884)에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채는 4대조가 1910년대 초에 지은 건물이다. 상량(上梁)에는 “조선개국오백사십삼년갑술십이월이십일일신축시상량(朝鮮開國五百四十三年甲戌十二月二十一日辛丑時上梁)”이라고 되어 있어 1934년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안채 건립후 계속 집안에 불운이 겹쳐(집터의 기가 너무 세기 때문) 상량만을 교체한 것이라고 한다. 아래채는 정사년(丁巳年)(1917)에 건립되었으며, 바깥사랑채는 1930년대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헛간채는 안사랑채를 헐은 재목으로 1957년 지은 것이다. 특히 집안에 보존하고 있는 각종 민구류, 공예품(특히 각 지방별 종이류) 등이 시대별로 잘 갖추어져 있어서 호남 나주지방의 생활문화 연구에 큰 자료가 된다. 따라서 “나주 남파고택(羅州 南坡古宅)”은 호남지방의 대표적 양반집으로서 상당한 규모와 격식을 갖추고 있으며 집안의 내력과 함께 시대적 특징이 잘 간직된 19세기 후반의 전남지방 반가로서 민속학적․건축학적 가치 등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
첫댓글 선베님들은 학교 다니실 때 안채에 들어가 보셨나요?지금 함 보세요.
우리는 들어가봤는데 후배님들은 못 들어가봤던갑네...
들어가서 뭐했는지도 기억나는데... ^&^
대청마루 한켠에 가지런히 쌓여있던 독립신문이 희미한기억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