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현지는 피향정을 처음에는 정자라고 하기에 매우 초라하다라고 기록되어있는데.
태인현지 어디에도 없는 최치원에 피향정 건립을 1918년 정읍군지에 ( 新羅 孤雲崔致遠所建 )짧게 기록하더니
1939년 정읍군지에는 조선시대 증축 자료를 고려시대 인물과 자료로 둔갑시켜 피향정이 최치원이 건립하였다라고 중간 과정을 만들어 왜곡시켜 현재 자랑스럽게 아주 자랑스러운 역사 문화재로 설명된다.
최치원 선생이 600년 뒤에 그곳 앞에 태인현 관청이 생길것을 알고 산비탈에 미리 연꽃 방죽을 만들고 정자를 만들었나요?
(1) 1918년에 처음으로 정읍군지
내용이 짧다.(新羅 孤雲崔致遠所建) : 신라 고운 최치원이 건립한 장소리다.
(2) 1936년 정읍군지에 왜곡되어지는 피향정 기록
태인면 태창리에 있으니 거금 1050여년전 신라 정강왕 시대에 최고운 선생이 泰山縣監으로 봉직기간에 창건하였으며 900여년전 고려 顯宗시대에 朴監務가 增築하였고 李僉樞 某가 繼修하였으며 踞金 300여년전인 祖朝에 현감柳根이 重修하였다.
그 構造는 33天을 應하여 立柱가 33이요. 高가 50尺 建坪이 29평의 雄健이다.
亭의 동서에 池沼가 있어 初秋에 蓮花 萬開하여 향기가 정자의 주위에 떠있음으로 此를 意味하여 피향정이라 稱하였으니 歷年으로나 景色으로나 湖南第一의 稱이있었다.
천여년간의 장구한 세월을 시인소객(詩人騒客)의 음영(吟詠)과 유할 戯) 관혁(貫革)으로써 緊張狀態를 呈하였으니 실로 一大娛樂場이였었다. 그 후 時勢의 變換을 따라 일시 적막(寂寞)을 느꼈더니 거금 21년 전부터 태인면사무소로 사용되었다 春風秋雨 幾千年에 緊華의 웃음과 寂寞의 눈물이 그 몇 번이던고 참으로 장구한 역사를 갖은 건물이다,
亭의 北便에 애련당(愛蓮堂이 있어 역시 구조가 정교화려(精巧華麗)더니 거금 50여년 전에 훼철(毁撤)되고 그 後跡에 점포(店舖가 버텨있으며 上池는 포토(舖土)하여 現市場이 되었다.
상기 내용 중 (고려 顯宗시대에 朴監務가 增築하였고)
박감무는 박숭고를 말하는데 박숭고는 생졸년대는 1615~1671년이며 조선 현종(1641~1674)을
고려시대 현종(922~1031)임금으로 판단하여 최치원 이후 고려시대 중건으로 과정을 설명하고,
1615년에 태어나신 朴監務(박숭고)를 고려인으로 연대를 올려서 피향정 연혁 과정 뻥튀기가 너무 심하다.
첫댓글 지역사 연구가 일천하던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탄압을 이겨내고 정읍군지를 만드는 과정에 오류가 담긴 기록이 생성된 듯 합니다. 최치원 소건이라고 할 수 없지요, 동감입니다. 박숭고는 조선시대의 현감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