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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덕성이 경쟁력
어떤 한국분이 캐나다에 처음이민을 와서 이런 불만을 토론했다. "캐나다는
참으로 답답하고 융통성이 없는 나라야.... 한국을 봐... 얼마나 빨리 일이 진행이 되나..
그리고 않되는 일이 어디에 있어... 적당히 공무원에게 "급행료나 뇌물" 을 쥐어주면
급한 일은 급한 일 되로 신속히 처리되는데 여긴 그런 훌륭한 한국적인 "유도리" 가
전혀 없는 나라야.... 이넘의 나라는 도데체...."
- 캐나다에서 무슨 일을 처리할려면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민원처리는
우편으로 신청하며 접수후 기본 3 주가 걸려 성질이 급한 한국사람들이 일을 빨리
진행시켜 볼 요량으로 공무원을 접대라도 하고자 하여도 이유없이는 만나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마냥 기다려야하고 괜히 업무처리가 늦어지는데 대해 이들 공무원을
욕하기 시작한다. "답답하고 무능한 넘들.... 하루만에 다 처리될 일을....."
-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거나 장사를 하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보신
분들이면 어김없이 겪어 보았을 뇌물공여, 상납, 촌지 혹은 접대강요등의 경험등이
있을 것이며 이것은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지나왔지만 캐나다에 발을 딪는 순간
이런데 대한 고민을 잊으셔도 좋다.
- 물론 거래처 담당자에게 선물을 주거나 혹은 일부에서는 물론 부정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갑" 에게 "을" 이 굴욕적이며 강요된 뇌물이나 접대를 행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위치에 있어도 바랄 필요도 없다. 나의 경우에도 1 년에
한두번 10 불정도의 "쵸코릿" 이나 "Tim Horton 의 Tim bit" 을 사가지고 가면 매우
고마워 한다.
- 따라서 양념들하고 비지니스하면 재미가 없는 것이 동양적인 접대문화가 없고
일이 끝나면 내일의 약속 정하고 헤어진다던지 반대로 한국에 출장온 양넘들을
룸살롱으로 데리고 다니며 접대하는 한국적 관행이 이들에게는 실례가 될 수도 있다.
양넘들은 이런 일과후의 접대문화에 대해서는 매우 익숙치 않으며 일은 일과중에
끝내고 이후에는 자신들만의 시간을 가질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근무후에
회사돈으로 뇌물성 짙은 "접대" 라는 새로운 일과를 시작하는 한국인들이 이들에게는
매우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선물과 뇌물의 차이는...
(한국인의 선물) 한국인의 경우 선물을 주면 개봉하지 않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집에가서 혼자 열어보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대부분 선물속에 뇌물이 들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인데 캐나다의 경우에는 선물을 받는 즉시 사람들 앞에서 개봉을 하고
감사의 뜻을 표하게 되는데 이것의 의미는 "선물만"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 교통경찰에게 뇌물을 주다가 현장에서 뇌물공여로 구속되는 경우가 가끔
신문에 보도되기도 하는데 따라서 왠지 이민을 오는 순간 누구에게 뇌물공여이나
접대를 하겠다는 생각자체를 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매우 상대방에게 실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물품구매자나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한국과 같이 사회적으로
뇌물제공 분위기나 상납분위기가 성숙되어 있어 뇌물을 받는데 "Risk" 가 거의 없다면
문제가 달라지지만 여기에는 그러한 분위기가 없기 때문에 "뇌물" 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높은 수준의 "Risk" 를 감수하여야 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뇌물제안에는 응하지
않게 된다. 감시하는 넘이 너무 많고 같이 먹어야 탈이 없는데 동지를 구하기가
그리 슆지도 않으며 걸리면 단호한 법적처분이 뒤따르기 때문에 대충 덮어주는
한국의 관행과는 매우 다르다.
Test) 선생님과 소방공무원, 그리고 경찰관이 음식점에서 술을 같이 먹었을때
계산은 누가하나요?
정 답) 한 국 : 음식점 주인
캐나다 : 각자 Dutch pay.
(농담이 아니라 친구끼리 술을 마셔도 선생님, 공무원, 목사님친구들이 돈을 내는
것을 보지를 못했다. 자기가 먹자고 해도 당연히 남이 사는 것으로 되어있고 이런
버릇이 친구와 술을 마셔도 똑같이 나온다. 그러면서 꼭 비싼 것만 시킨다.
왜인지는 다 알것이고....)
(일한 만큼 돌려받는 사회-캐나다) 한국의 뉴스와 신문은 연일 정치권과 관료,
재벌, 공무원.....등의 전국민적인 부패스캔들로 항상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캐나다의
뉴스매체에서 이런 기사자체를 보기는 매우 힘들다. 우리국민 모두는 (자신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이런 부패의 사슬에 한축을 담당하고 있고
"공돈" 에 대한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운전 연습할때도 "성의" 를 표시해야지만 부드럽게 잘 가르쳐 주고 중소기업에게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한 접대를 강요하고 인가권이 있는 넘이 부임하면 우선 찿아뵙고
인사하고 "성의" 를 표시해야지만 뒷탈이 없고, 알아서 명절에 선물권 보내야하고....
사회최고위층 부터 최하위층까지 이러한 중독성있는 "눈먼 돈" 의 유혹에 빠져 있다.
- 캐나다는 "일한 만큼 돌려받는 사회" 라는 의미는 이런 "눈먼 돈" 이 생길 여지가
거의 없다. 한국의 관행처럼 고액의 "접대" 를 많이 받아야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인식도 없다. 그냥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번만큼 "정확하게" 자신의 수입이 잡히고
이것은 상당히 "투명" 하여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금액임으로 이부족분을 메우기
위하여는 더 열심히 일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애꾿은 사람을 괴롭힐 필요가 없다.
(캐나다의 선물 범위) 캐나다에서는 연말에 선생님이나 다른 거래처담당자에게
개인적으로 선물은 20 불이내가 가장 적당하다고 한다. 따라서 20 불이 넘는
선물이나 향응제공은 상대방을 매우 난처하게 할 수가 있고 공무원의 경우 일정금액
이상은 담당부서에 보고하고 돌려주거나 다른 조치를 받게되어 있다. 따라서 일전에
한국의 국회의원이 미국을 방문해서 수백달러상당의 선물을 전달하려다 "미국회
윤리위원회" 로 부터 재제를 당한 적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이런 주고 받는 선물의
금액에 신경을 쓰야한다.
1-1. 부패로 향하는 캐나다사회
2006 년 장기 집권한 자유당 연방정부는 보수당에게 정권을 내어주는 수난을
당하였고 전통적인 이민자들이 많아 자유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온타리오주에서도
2005 년 보수당에게 정권을 내어주었다 (올해 10 월의 선거에서 다시 자유당 집권)
- 그 주된 이유는 장기집권에 따른 자유당의 부패스캔들이 많아진데 대해 유권자들의
심판이었다 한다.
ex1) 2004 년, 주디 스그로 전 자유당 소속의 연방이민장관이 자신의 선거캠페인을
도운 루마니아 출신 스트립댄서에게 특혜를 준 것과 브렘튼에서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인도출신의 불법체류자에게 선거켐페인을 돕는 대가로 이미 출국령을 받았음에도 계속
국내에 머물수 있게 해주겠다는 혐의를 받았다. 결국 무혐의로 판정이 났지만
이민성장관이 이런 불미한 스캔들에 연루 된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하여 자진사의를
표하는 형식에서 사퇴를 하였다.
ex2) 2004 년, 온타리오 주정부의 재부성장관이 접대비의 과도사용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1년간 그가 사용한 비용은 10 만불이 넘어 일부는 자신의 사무실 운영경비로
전용되었고 휴가시 부인과 같이 비행기티켓 구입비용 등 사적용도의 사용은 물론
손님초대 저녁식사에 1인당 100 불의 비용을 지출하여 도데체 어떤 넘하고 무슨
식사를 했는지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그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시민단체로
부터 사임의 압력을 버티다가 결국은 불미스런 퇴진을 하고 말았다.
사실 위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한국적인 부패스켄들과는 비교가 않되는 아주
가벼운 규모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접대에 대한 개념이 없는 캐나다에서
1인당 100불이상의 식사비용지출이나 아주 적은 규모이라도 댓가성이 있는 뇌물성
공여를 받는데 대해서는 아직도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감시하는 넘들이
너무 많다.
- 최근 GTA 학교에서는 한국-중국등의 자녀의 교육열이 지나친 학부모들이
선생님들에 대한 무차별적 고가의 선물공여는 많은 선생님들을 당황하게 하였으나
이러한 지속적인 선물공세는 이들 선생님들로 하여금 이제는 100 불이상의 선물을
꺼리낌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부작용을 낳고있다. 본인이 판단하기에는 자녀들의
기를 살려주고 주목을 받는 방법은 이런 뇌물성 선물공세보다 거의 매분기 실시하는
"Donation" 에 상당한 금액의 기부를 하거나 학교행사시 부모의
"Volunteer" 가 더 효율적 일 것 같다.
1-2.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
한 70 대의 노인이 있었다. 그는 매일저럼 아침에 일어나 가게에 들러 커피한잔을
마시고 일상을 시작하는 여느 평범한 노인이었다. 그런 그가 매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세상을 다 산 듯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그는 토론토지구 경찰국장을 지낸
사람이고 그의 아버지 또한 경찰국장을 지낸 2 대가 경찰에 투신하여 봉사와 청렴의
명예를 자랑스럽게 지켜왔고 그의 두아들도 자신과 아버지처럼 훌륭한 경찰이 되어
주기를 바랬지만 그의 두아들은 친구로 부터 뇌물을 받고 뒤를 보아주다가 감찰기관에
체포되어 순식간에 모든 가문의 명예와 영광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 정도 끝발이면 그냥 덮어 주어도 될듯 했는데....)
- 캐나다의 경찰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높다. 그리고 경찰자신들도 그 신뢰도와
권위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자체 감찰부를 통해 가끔이지만 이런
비리행위가 적발이 되면 신문에 대서특필이 될 정도로 아직까지는 캐나다 경찰은
깨끗하다.
- 한국의 경우 각 사정기관마다 감찰부가 있으나 이들의 역활은 내부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일소한다는 의미보다는 내부고발자 방지 및 내부비리의 외부유출방지,
비리의 봉합 및 뒷처리 등의 "조직보호" 에 더욱 충실한 역활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감찰기관을 통한 내부정화는 불가능하고 이들을 통하여 내부부패가 일소된 적도
없다. 따라서 이미 신뢰와 권위를 상실한지 오래이다. 스스로의 권위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경찰이 시위대에 개패듯 맞는다. 다 자업자득이지만
캐나다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경찰이 즉각 "발포" 할 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
에서도 "폭력은 절대불가" 이기 때문이다. "말" 로 해결해야 한다.
(국제투명성기구 (TI, Transparency International) 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 (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 의 부패인식지수 nternational) 가 발표한 부패인식
지수 (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 는 공무원들과 정치인들 사이에 부패가
어느 정도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인식된 정도에 따라 각 국가별로 이를 순위를 매긴 것.

- 국제투명성기구는 2007년 부패인식지수 (CPI) 발표를 통해 한국이 10점 만점에
5.1로 조사대상 180개국 가운데 43위를 기록하였다고 밝혔다. 지난해의 평가인
5.1점에 163개국 가운데 42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결과이다. 이 지수는
우리나라의 공공부문 부패 수준에 대해 가장 폭넓게 인용되는 국제적 평가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올해의 결과는 자못 실망스럽고 또한 우려스럽다. 빠른 속도의 부패문제
극복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망스럽고, 개선의 추이가
둔화되고 정체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 캐나다와 미국은 "정부조달품 입찰" 에 뇌물이 통용되지 않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나라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수준이 높고 선진화 된 나라일 수록 부패인식
지수 (CPI) 가 높고 빈곤하고 후진국일 수록 낮다. 일본의 경우 우리의 인식에는
정치인들의 부패로 인해 엄청난 비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일본의 관료들은
상상이상으로 청렴하며 이것이 지금의 일본을 만든 가장 큰 원동력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 1 위 : 덴마크, 핀란드, 뉴 질랜드
- 4 위 : 싱가폴, 스웨덴
- 9 위 : 캐나다
- 17 위 : 일본
- 20 위 : 미국
- 43 위 : 한국
따라서 위의 분과 같이 한국에서 뇌물이나 상납 그리고 접대의 관행에 젖에 주변과의
관계를 무시한채 자신의 이익만을 쫒아 뇌물, 독직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한다면
그사회는 상호구성원과의 갈등심화와 원칙의 상실로 사회는 방향성을 상실하고
뒤죽박죽이 될 수 밖에 없다. "룰과 법" 을 지키는 것이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그리고 가장 편하게 가는 길 임을 말해준다.
(한국사회의 변) 일전에 시오노 나나미 (鹽野 七味) 의 "로마인 이야기" 의 말을
빌리자면 당시 로마는 "로마는 키는 부쩍 커버렸는데 몸속의 내장은 전혀 자라지
않은 매우 부조화한 위험한 상태" 였다고 한다. 한국이 바로 이상태에 있는 듯 하다.
따라서 "개혁" 의 요구는 많지만 제대로 개혁은 진행되지 않는 경제적으로는 세계 10 대
경제대국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농업경제적인 왕조체제" 에 머물러 있어 사회
구성원이 느끼는 갈등이나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나 많은 한마디로 "소용돌이" 같은
엄청난 혼란의 사회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부정
부패없는 깨끗한 사회" 건설이 아닌가 한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참으로 어렵다.
- 이렇게 급속한 경제성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정신적 성장으로 인하여 그 둘의
격차가 크면 클 수록 그 사회는 엄청난 "아노미 현상" 을 겪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격차가 너무나 커져버린 한국이나 중국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신적-사회적인
심한 갈등과 혼란은 피할 수 없고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성장통" 이며 통과의례로
본다. 특히 한국보다 중국이 향후 겪어야 할 문제는 하나의 메가톤급 핵무기처럼
그 파괴력이 엄청날 것이다.
캐나다에 오면 룰과 법률을 지독히 잘 지키게 된다. 그 이유는 지키지 않는 넘들이
잘 안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식당을 하면 소방시설 미비와 위생법규 무시등의
자발적인 위법행태와 가끔씩 개인적으로 찿아오는 경찰서-소방서-위생공무원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주고 상호 공생의 관계를 유지하지만 항상 불시에 여러명이 찿아
와서 기습적으로 점검하고 사라지는 이 곳의 공무원들의 행태를 보면 뇌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음으로 걸리면 바로 법적조치가 뒤따르는 관계로 스스로 철저히
조심하고 합법적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 따라서 정해진대로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몇 푼 아낄려고 잔머리
굴리는 사회보다 살아보면 진짜 편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2. 질서와 자율의 나라
어느 조사연구서를 보니까 캐나다-미국의 각 골목마다 설치된 "Stop" 사인판
하나가 연간 천문학적인 금액의 사회적 손실을 방지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한국에
있을때 거리에 설치된 교통표지판 자체를 그리 준수하지 않는 풍토의 운전습관을
가진 한국사람들은 처음 캐나다에 오게 되면 길 어귀마다 설치된 이 "Stop sign" 에
혀를 내두르게 되며 처음에는 적당히 눈치보다가 어느순간 철저히 "Stop sign" 을
준수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놀란다.

캐나다에서는 지겨우리 만큼 이 "stop sign" 을 만난다. 길과 길이 만나는 곳에는
다 있다. 무조건 일시정지 할 것.
- 첫째, 아무도 "stop sign" 을 무시하고 주행하는 운전자를 볼 수 없는 관계로
이 사인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져 준수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당연히 지키는 것으로 체득되며 둘째, 내가 위반을 하는 순간 나는 "단속" 을 당하고
그러면 벌금에 벌점이 그리고 다음해 보험갱신시 보험료인상을 감수해야 한다는
메카니즘이 머리속에 돌면서 무조건 "Stop sign" 을 지키게 된다. 즉, 1) 모두가
지키는데 나만 예외가 될 수가 없다는 시민적 인식과 2) 위반하면 반드시 걸린다는
"공포심" 이 철저한 법률의 준수와 이에 따른 사고방지를 통한 사회적 손실의 감소를
가져다 준다는 평범하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논리이다.
- 즉, "Stop sign" 앞에서 완전히 정차하느냐 아니냐는 아주 간단한 문제이지만
정차할 수 밖에 없는 시민적 의식과 사회적 분위기는 "선진국-후진국" 혹은
"교통지옥-양보사회" 의 극단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이다. 후미진 도로의
"Stop Sign" 은 아무도 감시하고 있지 않는 곳이다. 이 곳에서 일시정차를 한다는
것은 "자율과 질서" 의 양면을 표현하는 말이고 우직하리 만큼 "stop" 하는 곳이
캐나다이다.
(대정전 사태) 지난 2003년 8월 미국의 북동부와 캐나다를 강타한 사상 초유의
대정전사태는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이라 자부하던 미국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정전으로 인한 피해액만 무려 60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6조원에 달할 정도로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몰고 왔다.
- 이날 아무런 사태도 파악하지 못한 나는 차를 몰고 일하러 나왔고 (차량용 radio
에서 계속 방송을 내보내고 온타리오 주에 "State of Emergency" 가 선포된 관계로
집에 머물러 있어야 했지만 현지 radio 를 잘 않듣거나 들어도 내용을 이해 못한
관계로 사태파악을 못했다) 완전히 멈춰버린 신호등과 문을 닫은 주유소..... 그때
까지도 나는 일시적인 정전으로 곧 전기가 들어 오겠지라고 생각했다.
- 교통경찰이 없는 6 차선의 교차로에서는 모든 운전자들은 "원 바이 원" 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먼저 가겠다고 꼬리를 물다가 교차로에서
서로 차량이 엉키는 불미스런 사태는 한건도 목격하지 못했고 이런 위기상황에서
저렇게 능숙하게 대처해 내는 캐나다시민의 선진교통시민의식과 이를 가능케한
그들의 교육에 다시한번 감탄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이들 운전자중에는 나와 같은 많은 이민자들이 있겠지만 "캐나다라는 하나의
교통시스템에 흡수" 되에 "원 바이 원" 순서를 지켜나가는 그들을 보면서 하나의
그들을 하나로 묶어 규칙을 준수케하는 훌륭한 전통이나 시스템의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느꼈다. 이것은 "사회구성원간의 약속이며 지킬려는 "의지" 일 것이다.
그리고 지키지 않았을 때의 "쪽팔림" 과 "반드시 단속된다" 라는 두려움은
질서를 잘 지키게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Collector 와 Express) 캐나다의 주요 도시고속도로에는 collector 가 있다.
이는 express 에서 Local 로 빠져나가는 차량과 Local 에서 Express 로 들어 올려는
차량이 합류하는 곳으로 어느 지점에서 2 차선으로 줄어들면서 우측은 local 로
빠져나가고 좌측은 Express 진입로인데 좌측도로는 긴행렬로 막혀있었고 우측은
빠져나가는 차량이 없어 비어 있었다.

캐나다의 대동맥 401 Highway 인데 중간의 상-하행차선이 Express 이고
양측의 바깥차선들이 Collector 이다.
- 이 경우 많은 운전자들이 우측도로를 타고 들어야 Express 입구에서 깜빡이를
넣고 집입을 시도하다가 차량이 엉켜버리고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많지만 캐나다
에서는 "미련스러울 만큼" 좌측차선을 준수한다.
- 물론 이곳에도 차량이 많아지고 복잡하다 보면 가끔 얌체운전자가 있기 마련
이지만 "아마 도로표지를 잘 이해 못했거니..." 하고 대부분 양보해 준다. (요즈음은
이런 얌체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 비해) 무지하리 만큼 교통법규를 잘 준수하는
이곳에서는 "경적"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고 빨리 갈려고 잔머리 굴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운전이 그리 피곤 하지가 않다.
(고베 대지진-일본) 1995 년 겨울에 있었던 고배대지진시 일본에 있었다. 그때
일본에 대해 놀랐던 것은 지진이 발생한 파괴지역에 긴급으로 300 인분 (?) 의 식사가
공수되어 왔다. 오니기리 (삼각김밥 300 개) 와 다꾸앙 (단무지 300 쪽) 을 식탁위에
두고 배분자 없이 알아서 1 인당 1 개씩만 가져가게 했는데 정확히 300 명이 가져가고
단 1 개의 오차도 없었다고 한다.
- 한국적 사고에서는 엄마가 아빠것을 가져다 주고 누나가 동생것을 가져 오기도
하지만 일본인들은 각자 줄을 서서 자신의 것만 가져왔다. 그리고 이게 가능할려면
300 번째 사람이 나에게도 순서가 반드시 돌아 온다는 "믿음" 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 하다. 즉, 이웃과 300 개를 공수하고 나누어 주는 "관료" 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필수라는 것이다. 이런 신뢰와 믿음이 없다면 충분한 양의 음식이 있다해도
서로 믿지 못하고 서로 많이 차지할려는 "이전투구" 의 양상을 보이는 "사회" 가 된다.
2-1. 캐나다의 교육방식
이곳의 교육방식은 한마디로 "질서안의 자유" 라고 할 수 있다. 즉, 최대한의
자유를 즐기되 일정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유치원생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교육하는 것이 "주변과의 관계" 이며 이것은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 라고한다.
- 캐나다의 교육자체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남을 우선 배려하는 가운데
하나의 공생관계 및 훌륭한 Team-work 을 만들어가는데 촟점이 모아져 있다. 첫째도
둘째도 "Team-work" 이며 잘 훈련된 "Team-work" 은 서로에게 많은 이익과 위로
그리고 질서를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따라서 한국식의 떼를 쓰며 귀하게 자란
"독불장군" 은 캐나다에 오면 처음에는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Team-work 과
질서를 헤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느나라보다도 단호한 것이 이 곳이며 어른-아이
구별이 없다. 그러나 아이들을 통솔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역시 "폭력 (?)" 이더라.
- 둘째의 유치원에 가서 수업을 참관하면 선생님의 말한마디에 그렇게 일사불란
하게 움직이다. 불을 끄면 하던일을 멈추고 선생님앞으로 모인다 던지 박수를 치면
정리를 시작한다던지 마치 종을 울리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의 무조건 반사처럼
아주 잘 훈련되고 일사분란했다. "당근과 째칙" 의 교육방식이 매우 주효한듯 하다.
1) 새로운 아이가 들어오면 그곳의 선생님들은 그 아이의 안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부모의 정보를 확보하며 아이를 픽업할 수 있는 사람을 지정한다. 누나나
사촌이라고 해서 무조건 데려갈수 있는건 아니며 사전에 확인을 거친 사람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하다.
2) 그 아이가 놀이방에 왔을 때 선생님들은 그 아이를 강제로 절대 주변의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하지 않는다. 현관문은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열 수 없는
높이에 있기때문에 밖으로 나가거나 할 수 있는 위험은 일단 없다. 그 상태에서 아이가
무엇을 하건 내버려 둔다.
- 몇일이 경과한 후 아이가 자발적으로 그 분위기에 익숙해 지면 아이 스스로
어울려 놀 수 있도록 옆에서 관리만 해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강제로 아이를 어울리게 하지 않아도스스로 다른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된다는 것이다.
3) 철저한 질서의식이다. 밥이나 간식을 먹을때가 되면 모든 아이들은 줄을 서야
한다. 물론 한국도 마찮가지겠지만 이런 경우도 잇습니다. 사과가 30개가 있고
아이들이 15명이 있다. 두개씩 돌아가겠지만 그래도 두개씩 주지 않는다. 일단 하나씩
나눠준 후 그걸 받은 아이들 중 하나를 더 먹고 싶은경우는 다시 제일 뒤로 가서 줄을
선다. 비로서 자기 차례가 왔을때 하나를 더 받을 수 있는 것이다.
4) 처벌이다. 앞에서 말한 이런 질서를 깨뜨리는 아이들은 바로 벌을 받게 된다.
벌은 다른게 아니고 벽보고 가만히 있기 혹은 복도에 홀로 있는 의자에 혼자있기
익다. 한참 뛰어놀 아이들에게 그거 만큼 가혹한(?) 처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가 그 벌을 받은 후 자연스럽게 질서의식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질서와 자율이 가능한 것은 1) 서로가 법률을 준수 할 것이라는 상호믿음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2) 지속적인 사전 교육 3) 그렇게 하면 더욱 안전하게 빠르게
편하게 살 수 있고 "믿음의 사회적 공감" 이 필요하다. 4) 어겼을 때의 받드시
불이익 (부끄러움, 처벌) 을 당한다는 "사회적 확인" 도 필요하다. (한국인들에게는
반드시 부이익을 당한다는 의식이 희박하여 너무도 슆게 부정한 방법을 택하는 듯
하다)
- 누구의 지시와 강제가 있어서 깃발을 따라다니는 처럼 통솔이 아닌 스스로 판단
하고 행동해도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러한 질서-자유의 생활이 편법을 사용해서
라도 남들보다 먼저갈려는 사회보다는 훨씬 밝고 명랑하며 건강한 사회임에 틀림없다.
- 캐나다는 국민들의 공감대에 관용과 질서 그리고 약자 보호의 정신이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공무원들도 법질서를 지키기에 앞서 법 취지에 입각하여 왜 어길
수밖에 없었는가를 묻고 그것이 타당하면 이내 처벌을 멈추거나 유예한다.
- 영-미국가들은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곳에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사회질서의 중심이었다. 캐나다의 사회적 보호의 순서는 "아이, 노인, 여자, 동물,
남자" 순서라는 그 안에 분명히 약자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실제로 사회적 안전망이 제도적으로 그 순서로 발전되어 있다는 것이다.
2-2. 나의 푸념
나의 나이 또래의 초-중-고등학교의 생활을 돌이켜 보면 1)일방적으로 수업에
임하여 질문에 대답할 의무는 있었지만 자신이 모르는 것을 질문할 권리는 없었고
(따라서 몰라도 거의 질문이 없고 장성하여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여 질문시간에도
매우 조용하게 종료하거나 핵심을 피해가는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질문만 하게
되고) 2) 일방적인 지시에 순응할 의무는 있었지만 학교나 선생들에게 문제점을
제기하거나 무었을 요구할 권리는 없었다. (비단 학교 뿐만 아니라 아버지-아들의
관계등 전반적인 사회분위기)
- 따라서 "상명하복" 의 일방적인 관계에서 만약 학교측에 무었을 요구하거나
까다로운 질문을 했을 경우는 학교와 선생에 대한 중대한 권위도전행위로 간주되어
이유없이 많은 불이익 (ex. 심한 구타) 을 당하였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는 토론
형식의 상호교류적인 수업보다는 일방적인 선생들의 강의와 지시에 의존했고 좋다
나쁘다고 평가권리조차 없었다.

영화 말죽거리잔혹사에서 처럼 "교련선생" 하면 이유없이 엄청나게 무자비하게
학생들을 구타하던 이미지가 아직도 남아있다. 남자 386 세대의 고등학교하면
생각나는 것중에 하나가 선생들로 부터의 "구타" 가 아닐까 한다.
- 이러한 사회분위기와 이에 따른 교육의 결과 권위주의의 구질서가 붕괴되면서
민주화로 이행되는 이시기에 "가진자-없는자", "노-사" 의 관계는 대화와 이해라는
선순환적관계보다는 "지킬려는자와 빼앗을려는 자" 라는 극한적인 갈등과 대립관계가
악순환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즉, 대화를 진지하게 시도하기보다는 자신의
요구사항만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바로 "투쟁" 관계로 전환되는 "ZERO-SUM" 의
정글법칙이 한국사회를 지배라고 있어 각 계층간 갈등관계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는 "대화" 를 할 줄 모르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만 강요하는 한국적인 "흑백
논리" 의 2 분적 대화방식의 가장 큰 병폐로 본다.
- 대화를 할 수 있는 대화의 기술과 여유가 없고 상대방에 대한 원초적인 증오감
으로 인한 남에 대한 배려의식이 없고 명랑사회는 우리가 같이 만들어 간다는
"Team-Work" 정신의 부재와 학교에서는 권위에 복종을 사회에서는 권위에 대한
투쟁만이 교육된 나와 같은 현재의 386 세대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반공" 이나 "때려잡자 김일성" 과 같은 "증오" 와 충효사상과 같은 "복종" 만을 배워
왔으며 교과서에서는 당시 한국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민주주의" 에 대해
배워 이상향을 꿈꾸었던 것이 또한 386 이 아닌가 한다.
- 따라서 민주화세대로 자부는 하지만 반면에 계층간의 "증오심" 이나 "서열의식" 이
어느 세대에 뒤지지 않고 더불어 같이 보다는 "혼자" 잘 될려는 의식이 강해 기러기를
각오하면서 너만 잘되라는 심정으로 아이들을 "조기유학" 도 보내고.... 이런 혼란한
사고로 인해 노무현정권의 386 은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을 보였고 누구보다 그들이
증오했던 권력과 잇권에 애착이 강해 도덕과 신사고로 무장된 것 같았던 386 실험은
결국 "실패" 로 끝났다. 한마디로 혼란스럽다는 말이다.
3. 직업의 소명의식
캐나다에서 살다보면 한가지 잊고 사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나의 직업에 대한
주변의 시선" 이다. 사실 한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기의 한국이민자들의 직업을
살펴보면 누구하나 자랑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구멍가게, 세탁소, 동네 빵가게,
수리공, 청소업, 생산직사원.............
- 그러나 한번도 나는 나와 다른사람의 직업에 대하여 "귀천의식" 을 가지거나 느껴
본적이 없다. 단지 "저넘은 얼마나 벌까?......" 에 대한 대단한 호기심이 있지만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 대하여 "그런 허접한 직업을......" 이라고 무시하는 듯한 언사나 태도를
느껴본 적도 없다. 단지 그들도 나와 같이 "차도 한대 더 샀네,,,,저넘은 도데체 얼마나
벌까?...." 라는 대단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으리라....
- 따라서 나는 가끔 아이들을 주말에는 데리고 청소하는데 데리고 간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놀게하고 우리는 우리의 직업인 "청소" 를 하는 것이고 아이들도
우리도 이것은 하나의 소중한 직업으로 생각하지 한국적인 견지에서 부끄러워 하거나
하는 의식은 없다. 여기에서 금융기관을 찿아가면 몇년간의 "소득증명" 이 현재의
자신의 직업보다 더욱 중요 할 수도 있다. (물론 좋은 회사의 좋은 position 은
여기서도 특별우대를 받는다) 단지 내가 정직하게 얼마를 버느냐가 중요하지
내가 어떤 직업을 가져야 "사회적으로 대접" 받는다는 의식은 불분명하며 나도
잊어버렸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가장 신경쓰이는 문제를 한가지 해결하고
나니까 어쨋던 신경않쓰고 속편해서 좋다.
(첫째의 항변) 아이들이 자라면서 현지의 친구를 사귀게 되고 그려면 가끔은
sleepover (같이 잠자기) 를 한다거나 생일파티에 가는 경우가 잦아지는데
한국부모라면 3 가지는 꼭 묻는다. 1) 백인이니? (백인하고만 놀아라) 2) 부모의
직업이 무었이니? (돈 많은 넘하고 놀아야 하나라도 덕이 된다) 3) 그집은 크니?
(아파트평수는 모든 수준의 척도이다)
- 첫째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왜 물어보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말인데
이곳의 중학교 생활기록부란에는 1) 부모의 직업란이 없다 2) 부모의 연봉기재란이
없다. 3) 자가인지 렌트인지 묻는 기재란이 없다. 그리고 아이들도 자기친구 부모의
직업이 무었인지 모르고 한국아이들 처럼 그렇게 관심이 없다. 그냥 친구는 친구일
뿐이다.

모든 직업은 신에 의해서 주어진 신성한 것임으로 귀천을 따져서는 않된다는
칼뱅의 "소명의식" 과 인간은 날때부터 천하고 귀한 것이 정해져 있다는 유교적
신분의식은 현재의 동-서양의 차이를 낳게했다.
- 아직도 한국에서는 "가정생활조사서" 의 형식으로 부모-형제-친척의 생활수준,
개인적인 아주 깊숙한 면까지 조사를 하고 한동네라도 "평수" 가 다른 아파트아이들
끼리는 서로 놀지도 않으며 부모의 직업과 이에 따른 수입이 학교생활에 크나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학교에서 조차 아이들이
자기자신의 하나의 독립된 개체가 아닌 부모의 그늘하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면 스스로
삶을 개척하기 보다는 부모의 사고를 그대로 물려 받아 부모를 의지하는 긴나긴
유년기를 보낼 수 밖에 없음이 사실은 안타깝다.
3-1. 문과-이공계의 차별이 없는나라
사실 살아가다 보면 "문과" 는 그리 많은 사람들을 필요치 않는다. 세상은 2:8 법칙이
엄연히 세상을 다스리는데 소수의 "기획-입안자-관리자-철학자-경영자" 이외에는
다수의 몸을 움직이는 "공돌이" 들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 하지만 천년의 유교주의적 사고에서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우아하게 앉아서
정사를 감독하는 "관리자형" 의 권력가를 선망하다 보니 몸을 움직이는 직업은
매우 천한 직업으로 평가되었고 그 직업이 갖는 중요성이나 경제성보다는 "입" 으로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는 "권력" 을 선호했다. 따라서 동양의 최대덕목은 권력을
통해 권세가가 되는 것인 "입신양명" 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 따라서 내 나이 또래의 공업고등학교나 공대가 그래도 천년의 역사를 통해 가장
대우받은 시대였고 경제개발의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한국역사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시기" 였다. 다시 문민정권으로 돌아오면서 유교적인 "문민우위의식" 의
부활로 이공계 졸업생들이야말로 "수출위주" 의 우리나라 경제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가장 대우받고 보상 받아야 할 전문직업군이었지만 그에 걸맞는 사회적 인식과 대우가
없이 지금까지 버티어 왔던 우리나라에, 마침내 올 것이 온 것이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소위 "이공계 기피/부족" 문제라고 생각한다.
- 즉, 문과우대/이공계 기피는 역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입" 으로 슆게 돈을 벌어
볼 양으로 "고시촌" 형성과 "연간 6,000 명의 목사 배출" 및 "공무원" 이 최고의 직업으로
인식되어 사회의 "변동성" 이나 "다양성" 그리고 "할동성" 을 저해하고 있다.
문과대학 출신은 사회의 방향을 이끌어 주는 몇 넘만 있으면 되고 실제로 그런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공돌이" 이지만 한국사회의 "문과우대" 주의는 쓸데없이 많은 "입" 으로
먹고사는 노동을 하지 않는 계층의 양산과 더불어 "공돌이" 푸대접과 돈만되는 직업으로
(의사 등) 인력의 이동으로 "Dynamic Korea" 의 가장 문제점으로 해석된다.
- 이는 황금만능주의의 일그러지고 왜곡된 우리사회의 가치관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한번 잘못 세워진 전통은 슆게 고쳐지지 않고 수백년을 거쳐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살아서 박동치고 있다.
(캐나다의 Engineer - 어느분의 글에서 퍼옴) 우리나라 이공계문제의
핵심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이공계졸업자 혹은 "Engineer"라는 것이 확고한
전문직 (Professional)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현재 우리사회
가치체계에서는 아직도 이공계 출신은 "Nobody"로 대접받으며, 오직,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 공인회계사, 등등 일부 소위 "사"자가 붙는 직업들만이 "Somebody"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사이 대중매체에 많이 오르내리는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들이 주고받으며 다루는 수억대 돈의 단위를 듣고 볼 때 그와의
비교에서 오는 Engineer들에 대한 물질적 보상의 상대적 빈곤감 또한 우리의 이공계
기피에 일조한다고 본다.
- 캐나다나 미국에서 당신의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Engineer"라고 답하면
대부분 이해를 하며 대부분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에서는 Engineer라는 의미가 아직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Engineer라는 의미를 흔히들 "기사"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으나, 택시/버스운전기사도
기사요, 기계수리기사도 기사, 전자제품 A/S요원도 기사요... 손재주와 관련이 있다는
것에는 모두 기사를 갖다 붙일 정도로, Engineer에 대한 인식이, 구체적이고 전문적
이지못하다. 즉, 우리사회에서의Engineer란 Somebody가 아닌 그저 손재주나 특정의
기술지식이 있는 Nobody로 인식되고 있다.

직업의 귀천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직업의 중요도나 역활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
-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Engineer에 해당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직업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할 때는, 부득이 어느대학공대 무슨과출신으로 어느 특정의 회사
무슨 부서에 근무한다고 구구하게 말해야만 대부분 물은 사람에게 만족할 만한 대답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와 달리, 의사나 변호사 등등의 경우에는 의사 변호사라고만
해도 누구나 다 아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이공계출신, 특히
공과계출신의 직업은 아직 하나의 독립된 전문직업으로 인식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 문제의 해결은 당연히 Engineering을 하나의 전문적인 직업으로 인정
받게 하는 방향으로 시작되고 진행되어야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돈은 상경계 혹은
다른쪽 공부한 내가 다 벌을 테니까, 골치 많이 아프고 돈도 좀 덜 벌며 대우도 좀 덜
받더라도, 당신은 나라를 위하여 이공계쪽으로 공부하라"고 하는 식의 애국심에 호소
하는 방식은 일종의 파렴치이며 물론 효과가 있을 수 없다.
- 미국/캐나다의 경우 일반적으로,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최소한 2년이상의
실무경험이 있는 사람이 Professional Engineer 자격시험을 따로 보아 합격하여
그 협회에 Membership을 취득한 사람들만이 "Engineer, 혹은 Professional Engineer
(P.Eng. 혹은 P.E.)"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입법화 되어있다. 때로,
우리나라에서 공과계통의, 기사자격증은 물론, 석사/박사학위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민가서 이러한 사정을 잘 모르고 이력서에 "Engineer"라고 써 넣었다가 해당 주의
Engineer 협회에 적발되어 경고를 받고 벌금까지 무는 경우가 있다. Professional
Engineer 자격시험과목과 내용에는: 전문직업윤리 (Professional Ethics), 환경문제
(Environment), 계약법 (Contract Law)등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기사자격증/기술사자격증"과 대비된다. 이러한 기술자격증
시험에서 단순히 기술적인 지식의 양만을 검증하고, 그에 걸맞는 전문가적 윤리의식의
유무를 전혀 검증하지 않는다면, 이는 손재주만을 검증하는 "--쟁이"시험 그 이상일 수
없을 것이다.
- Canada의 Professional Engineer Association에서 모든 Member Engineer
들이 전문인으로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지침으로 되어있는 Code of Ethics
(윤리강령)의 내용을 아래에 소개한다. 이는 한 Engineer가 전문가로서의 자기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자기관리는 어떻케 해야하며, 후배 Engineer들의 교육과
Training에는 어떻케 도와줘야하며, 공공에 대하여는 어떻케 책임있게 책무를 수행
해야하며, 자기의 고용주와 협력/하청업체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어떻케 행동해야하며,
다른 Engineer를 대함에 있어서는 어떻케 행동해야하는 가의 매우 구체적인 윤리강령
들의 모음이다 (바꿔 말하면,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Engineer란, 각기 특정 기술
분야에서 배우고 경험한 지식에 추가하여, 아래와 같은 윤리강령으로 무장되어있는
전문인이라는 사회적인 인식과 공감대가 있으므로 그에 걸맞게 사회적으로도 인정해
준다.
4. 탈이념의 사회
P.S : Garage Sale
봄, 여름의 이사철에는 어김 없이 동네마다 "Garage Sale" 이 시작되고 교회에서나
일부단체에서는 여러목적의 "Fundrasing" 을 목적으로 "Yard Sale" 을 개최하기도
한다.
- 주로 개인이 쓰다가 이사를 하면서 버리고 갈 쓸만한 (?) 물건을 싼 값에 처분
하거나 쓰지 않는 물건들을 찿아내어 한곳에 모아놓고 파는 것이다.
- 주로 백인들이 많이 사는 옛동네에서 좋은 물건이 많이 나온다. 이는 신규
이민자들은 일단 버릴 물건이 없고 또한 우선 "돈" 생각이 많이 나기 때문에 비싸게
팔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아침일찍 전가족들이 각자 흩어져서 괜찮은 물건을 구입하고
일부 손을봐서 다시 "중고물품" 가게에 비싼 값에 파는 "새로운 가족사업" 도 탄생
했다고 한다.
- 처음 집을 샀을 때, 매주 Garage Sale 을 다녔고 쓸만한 물건도 많이 구했다.
이것도 다녀보면 "중독성" 이 있다. 아주 재미가 있다 (주로 토요일 새벽에 함)

Garage Sale 은 자신의 차고앞에 판을 벌린 것이고 Yard Sale 은 교회의 앞마당
이나 잔디밭에 판을 벌린 것이다.
캐나다의 이미지는 "부자나라" 로 엄청나게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도 되지만 캐나다에 도착해 보면 허름한 T-Shirt 에 청바지를 입은 사람들을 접하곤
저의 실망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아 (껴쓰고)-나 (눠쓰고)-바 (꾸어쓰고)-
다 (시쓰고)" 정신에 혀를 내두른다.
- Garage Sale (Yard Sale) : 자신에게 필요없는 물품을 매각하여 돈도
벌고 구매자는 싼 값에 구매하여 자신이 필요한 물품을 사용하는 행위. 하나의 봄-
가을의 축제처럼 즐긴다. "아-나-바-다" 의 대표적인 예
- 물건주워 오기 : 이건 상상이 않가는 이야기였지만 나도 길을 가다가 누가 버린
물건이 있거나 버릴려는 물건이 있으면 주어온다. 그리고 손을 봐서 유용하게 쓰기도
한다. 일전에 필요없는 물건을 정리해서 집앞 잔디밭에 버려두었더니 1시간만에 모두
없어졌다. 캐나다에서는 누구도 남 눈치 볼것 없이 버려진 물건을 주어와서 재활용
한다. 우리집에도 이런 물품이 몇점있다. 이렇게 주어와서 사용하면 "공짜" 로
괜찮은 물건을 얻었음으로 "기쁨은 두배"
- 쓸모없는 물건 Donation 하기 : 구세군의 옷가지함이 동네에 설치되어 있고
몇군데의 "자선단체" 에서 이런 옷가지-장난감-기타용품등 품목을 가리지 않고
Donation 을 받는다. 물건을 버릴 때는 필요없다고 생각되면 이런 곳에 "기부"하면
된다.
- Good Will 등 : Good Will 을 비롯해 몇군데에서는 이런 쓸모없는 물건을
"Donation" 받아서 손을 본 후 재판매하고 있으며 가격은 엄청싸다. 이렇게 버려진
물품을 재활용하여 판매하고 그 수익금은 "자선단체로 기부 된다"
이렇게 물품하나 제대로 버릴 것이 없다. 캐나다는 막연히 화려할 것이다라는
상상을 가지고 오면 실망한다. 한국만큼 화려하고 외적 화려함을 치장하기 위한
소비욕이 강하며 재미있게 사는 나라도 없슴으로 "화려함" 을 동경하여 캐나다에
이민오면 반드시 "실망한다"
(25 불짜리 옷) 캐나다에서는 대충 20~50 불사이의 옷을 "걸치고" 다닌다.
100 불이 넘는 옷은 매우 고급으로 취급됨으로 잘 사지 않게되고 특히 양복을 입지
않는 이곳의 특징상 "남성용품" 점은 Moor 라는 Brand 가 있는데 "글쎄...장사가
되나 몰라...항상 파리만 날리는 것 같고...되니깐 열겠지....." 나도 이민와서 6 년동안
앙복 딱 5 번인가 입어봤다. 성당에서 나와 집사람 그리고 아이들의 세례식 있을때만...

시부야 (?谷)는 조용하고 깔끔한 Office 거리이고 신쥬쿠 (新宿) 는 돈이 없는
젊은이들이 타락을 하고싶어 모여드는 B 급거리이며 긴자 (座線)는 돈 많은 노땅들이
젊은 아가씨를 찿아 모여드는 고급술집이 많은 차분한 분위기의 거리로써 이런
이미지를 사진상에는 못느끼지만 현지에서 보면 확연히 느껴진다. 그래서 크게
고급적이지는 않으나 그렇게 값싸지도 않는 깨끗한 이미지의 기업의 접대나
셀러리맨들이 회삿돈으로 회식할 때 주로 찿는 곳이 아카사카 (赤坂) 이다.
아~~ 나도 젊고 좋은 시절이 있었는데.......
(일본의 긴자거리) 1990년대 중반 "Tokyo Motor Show" 에 여직원들이 와서
시내관광을 시켜준적이 있는데 저의기 실망했다. 고개를 꺄우둥 하면서 긴자를
둘러본 여직원들이 "시부야" 를 가지고 했다. 시부야는 일본 NHK 방송국이 있는
아주 깨끗한 이미지의 지역인데 역시 고개를 꺄우뚱 했다. 그리고는 "서울 명동이나
압구정보다 더 화려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일본인데...." 그래서 나는 그녀들을
"신쥬쿠" 로 데리고 갔다. "그렇죠... 일본에도 이런데가 있죠...." 그러나 서울 명동
보다는 못해 보이는 "신쥬쿠" 에 그녀들은 매우 실망한 모습이었다. 왜야하면 모든
기준을 "화려함" 에 두다보니 서울 같이 화려한 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국인 찿아내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쇼핑센터에서 한국사람 구별하기는
매우 슆다. 사실 일본사람들을 보아도 아이나 엄마가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중국인" 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구별이 않가지만 한국사람들은 유독 눈에 드러난다.
- 스키장에서 가장 화려하고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장비를 갖춘 사람들
(모든 운동에서 전문가용 수준의 장비와 복장을 갖춘 사람들)
- 운동, 쇼핑 구별없이 가장 화장이 찐하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고 몸매 좋은
아줌마들
- 가장 도발적으로 최신의 유행의 옷을 입은 아이들-아가씨들-아줌마들
- 선글라스부터 구두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들
- 여튼가 가장 비싸 보이는 옷에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치장한 사람들
- 공원에 산책을 가도 짙은 화장에 최고급 옷을 입고 나오는 사람들
(주의 : 위의 사항은 이민 2 년차가 되기 이전이거나 한국을 자주다니는 유학생이나
기러기 엄마-아빠 그리고 한국의 관광객에 한함. 이민 2 년차에 접어 들면 중국-일본
아줌마와 구별이 않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