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네 살(94)의 노인과 여든아홉 살(89)의 노마님이 살면서
마나님은 노인의 나이 94에서 9자를 지우고 자기 나이에서 8자를 뺐다.
그랬더니 네 살 어린애와 9살 어린이가 사는 집이 되었다.
아홉 살이면 저도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나이다.
네 살은 더더욱 사람의 손이 절대적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4살과 9살 둘이 살아가는 날들은 누구의 눈에도 힘들어 보인다.
도와줄 누군가가 꼭 있어야 하는데 하면서...
그러나 네 살, 아홉 살에게는 도움이에게 지불 되는 비용이 버겁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재산이 조금 남아 있기는 하나, 앞날을 생각하면 절약하며 살아야한다.
4살짜리가 다섯 살이 되고 여섯 살이 되는 것을 생각 안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홉 살 박이 계집애는 제가 감당하려고 작심을 한다.
다행인 것은 네 살 어린애가 떼를 쓰지도 않고 고약을 부리지도 않고
잘 먹고 잘 잔다. 다만 걸핏하면 밖으로 나가 길을 잃어, 삼지사방으로 찾으러 다녀야 함으로
곁에서 지켜야 하고, 다리를 다친 후로는 또 넘어질까 옆에 붙어 있어야 하니
9살 나이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9살은 동무들하고 놀고 싶은 나이다. 영화도 보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꽃필 때 단풍들 때 꽃놀이, 단풍구경도 가도 싶다. 그래도 꾹꾹 참는다.
등이 붙어서 태어난 샴쌍동이처럼 아이와 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고 지칠 때는 하늘로 가신 엄마 아버지를 부른다.
엄마아~ 아부지이~
그러면 엄마의 대답이 들린다.
--울 딸 착하지? 우리가 네 살 아들을 보살피고 싶지만, 정말 그러고 싶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멀어 갈 수가 없구나. 울 착한 딸이 엄마대신 아버지대신
가엾은 그 아이를 돌봐 다오. 우리가 네게 힘을 줄께. 견딜힘을 줄께--
그랬구나. 그랬던 거였구나! 꼴깍 숨 넘어 갈듯하다 가도, 다시 힘이 솟아났던 것이.....
엄마가 하늘에서 힘을 주셨던 거로구나.
“알았어요. 그럴께요. 그렇게 할께요” 말을 하는데 이번에는 아버지의 소리가 들린다.
--딸아, 그래도 지금이 제일 할만한 때가 아니겠니?
둘 다 밥 잘 먹지, 소화잘 시키지. 잠 잘 자지. 어느 날 그것을 하나씩 둘씩 잃어갈 때를 생각해 보렴.
지금이 얼마나 좋은 가? 얼마나 감사한가? 현재 지금이 조금 어렵더라도 누구나
‘지금’ ‘현재’에 올인 해야 되는 거란다. 아버지가 늘 했던 말, 카르페 디엠을 생각하렴.--
“알았어요. 아부지. 그럴께요. 그렇게 할께요”
아홉 살 계집애는 엄마에게 했던 말을 똑 같이 아버지에게 하면서
잠자고 있는 네 살 박이 사내아이의 손을 잡았다.
카르페 디엠!!
첫댓글 9살 4살짜리가 펼쳐 보이는 동화의 나라 하루하루가 행복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