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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상촌 김자수 기념사업회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추사 고택의 주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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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풍취해대(松風吹解帶) 산월조탄금(山月照彈琴) 솔바람 불어오니 허리띠를 풀게 되고 산위에 달빛이 비치니 거문고를 타게 되네.
구곡수통다조외(句曲水通茶竈外) 경정산견석란서(敬亭山見石欄西) 구곡수는 차를 끓이는 부엌 밖을 흐르고 경정산은 돌난간 서쪽에 보인다. 구곡수, 경정산은 중국에 있다. 진짜 가서 이 풍경을 보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중국의 것을 많이 아는 것이 곧 식견이었던 시절의 지식취미들이다. 가보지 않고도 책을 통해 훤히 알았던 '풍경'들이리라. 차를 달이는 부엌과 돌난간이 등장하여 건물의 멋스런 구조를 알게 된다. 부엌 근처에 있는 주련이다. 원문거사첩심허(遠聞居士帖心許) 노견이서유안명(老見異書猶眼明) 멀리 벗의 소식을 들으면서 서첩(書帖)에 마음이 가고 늙어 새로운 책들을 보니 오히려 눈이 밝아지네. 유애도서겸고기(唯愛圖書兼古器) 차장문자입보리(且將文字入菩提) 오직 사랑하는 것은 그림과 글씨 그리고 옛 그릇 또 불경으로 보리(깨달음)에 든다. 범물개유가취(凡物皆有可取) 어인하소불용(於人何所不容) 모든 사물에 다 취할 바가 있고 사람에 대해 용서 못할 일이 어디 있으리. 세상의 모든 것들에서 다 의미를 간취할 수 있고 다 섭렵 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한때 배격하던 청나라의 지식산업을 받아들이려는 북학파들의 마음을 느끼게 하고, 뒷 구절은 유교적인 인(仁)에 근거한 그릇을 엿보게 한다. 봄의 따뜻한 기운으로 세상을 품듯 넉넉한 인품이 그립다. 서이과삼천권(書已過三千卷) 화가수오백년(畵可壽五白年) 책은 이미 삼천 권을 넘었고 그림은 오백년을 살아남을 수 있네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 고요히 앉아있는 자리에 차가 반쯤 끓어 비로소 첫 향기를 내고 오묘하게 움직이는 때에 물이 흐르며 꽃이 핀다.
차호명월성삼우(且呼明月成三友) 호공매화주일산(好共梅花住一山) 또 명월을 부르니 벗이 셋이 되었구나, 함께 매화를 사랑하며 같은 산에서 머무네 조선 정조때 규장각의 초계문신이었던 심상규(沈象奎, 1766-1838)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정약용과 함께 벼슬길에 들어서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두루 지냈다. 추사 집안은 노론벽파였고, 심상규는 노론시파였다. 제주도에서 9년여에 걸친 유배형을 살고 온 추사는 얼마 후 다시 북청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제주에서 풀려난 것이 1848년이고 북청으로 가는 것이 1851년이다. 그 3년 사이에 완당은 제자 하나를 만난다. 그가 동암(桐庵) 심희순(熙淳, 1819-?)이다. 추사보다 23세가 아래인 사람이다. 추사의 인상적인 예서 대련 ‘차호명월성삼우 호공매화주일산(且呼明月成三友 好共梅花住一山, 또 명월을 부르니 벗이 셋이 되었구나, 함께 매화를 사랑하며 같은 산에서 머무네’ 는 바로 심희순에게 써준 것이다. 시의(詩意)도 참 아름답고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북청 시절 추사는 심희순과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다. “북으로 온 이후에 어느 곳인들 혼을 녹이지 않으리요마는 유독 영감께 유달리 간절하다오. 요즘 같은 말세에 영감을 만나 늘그막을 즐기며 차츰 흐뭇하고 윤택함을 얻어 적막하고 고고한 몸이 평생을 저버리지 않게 되었는데, 신명에게 거슬림을 쌓은 탓으로 유리되고 낭패되어, 영감과 작별하고 또 천리변방의 요새 밖에 오게 되었으니 어쩌잔 말이오.”
추사의 마음이 허허로움 속에 절절하게 묻어난다. 1851년이면 추사 나이 66세요, 동암 나이 43세다. 이 무렵 동암은 삼사의 요직을 지내고 있었다. 동암 심희순은 심상규의 손자이다. 춘조대우만래급(春潮帶雨晩來急) 야도무인주자횡(野渡無人舟自橫) 늦은 봄날 소낙비가 조수처럼 내리고 조각배는 홀로 떠돌며 들판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고 단운귀조모천장(斷蕓歸鳥暮天長) 심동유라암죽방(深洞幽羅暗竹房)
새가 구름을 뚫고 저무는 넓은 하늘에서 돌아오는데 깊은 마을 대나무 방은 골짜기로부터 조용하다.
중중첩첩상요대(重重疊疊上瑤坮) 기도호동소부개(機度呼童掃不開) 흙과 모래에 밀려 겹겹이 흔들리며 이루었고 치우기에 바빠 목동이 여러 차례 불러도 문 열줄 모른다. 백무정중반시태(百畝庭中半是苔) 도화정진채화개(桃花淨盡菜花開) 넓은 뜰은 반이나 이끼가 차고 도화는 조용히 지고 채소 꽃이 만발했네. 강피태양수습거(剛被太陽收拾去) 극교명월송장래(隙敎明月送將來)
강렬하게 비춰주던 태양은 간곳이 없고 구름 사이에 밝은 달은 장차 보이려 한다.
야인이주윤간담(野人易舟輪肝膽) 준주상봉일소온(樽酒相逢一笑溫)
농부가 배를 타니 간담이 도는데 한동이 술로 서로 맞으니 웃음소리가 따스하다. (한무청리내금자)閒撫靑李來禽字 (완재천지석벽도)宛在天池石壁圖
청리내금첩의 글자들을 한가로이 매만지고 있노라니 진짜 천지석벽도로다 청리내금첩은 당시에 글씨 교본처럼 들고다니던 서첩이리라. 천지석벽도는 추사가 좋아하던 대치(大痴) 황공망의 그림이다. 한무(閒撫). 한가로이 매만지는 일. 공부는 한무이며, 혼자서도 잘 노는 일이다. 淺碧新瓷烹玉茗(천벽신자팽옥명) 硬黃佳帖寫銀鉤(경화가첩사은구)
파르스름한 새 차주전자에 차를 끓이고 퇴색한 공책에 시를 베껴 쓰네. 우린 스스로에게 틈만 나면 완물상지(玩物喪志)를 경고하지만, 그래도 애물(愛物)이 생기는 걸 어쩌겠는가. 드러난 것보다 내면이 중요하고 껍질이 아닌 본질에 의미를 두고자 하지만, 매사를 그렇게 툭 까놓으면 재미는 없다. 때로 무해한 허영도 필요하고 객기도 필요하다. 차를 마시는 일을 좋아하는 것, 혹은 글씨 공부를 하고 시를 베껴 써보는 것. 나무랄 데 없이 고결한 취향이며 내공을 쌓는 일이지만, 그런 일들도 사소한 물건들이 멋과 기분을 돋우는 게 사실이다. 저 무렵의 옛 사람들은 무욕을 강조하면서도, 다구(茶具)와 공책에는 욕심을 냈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