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이웃들과 삽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어린 아이들이 많은 단지다. 겨우 500여 세대 되는 아파트에 유아차로 한 명은 태우고 다른 아이는 걷게 하는 집들이 많이 보였다. 출생률 낮다는 말이 무색하고로.
엘리베이터 탈 때마다 어린이 이웃들을 만난다.
4층의 두 아이는 말하지 않아도 형제임이 분명한 얼굴로 매번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순간이 어색해 어느 날은 가방에 있던 사탕을 건넸다. 아이 엄마한테 허락을 받았다. 동생 되는 아이는 특히나 웃는 모습이 귀엽다. 마치 봉산 하회탈처럼 선하디 선한 눈매로, 굉장히 긴 속눈썹에 짙은 눈썹을 동그랗게 말아가며 웃는다. 누구든 녹여버릴 미소였다. 다른 어느 날, 아직 말도 잘 못하는 아이임에도 내가 사탕 준 사람인 걸 기억했나보다. 제 엄마를 쿡쿡 찔러 손을 내밀란다. 어리둥절. 역시 엄마는 바로 알아듣는다. 내가 사탕을 줬던 사람이니 또 사탕을 달라 이거다. 귀염사. 재차 사과했다. 내 손에 오늘은 사탕이 없음을 계속 말했다. 그 모든 사람을 녹여버릴 미소를 오늘은 보여주지 않는다.
“아주머니는 어디 사는 누구세요?”
엘리베이터에서 호구조사 당했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갔다가 당한 봉변이다. 어른만 당황했다. 동승한 또 다른 어린이와 함께 맑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바라본다.
“어. 나는 9층 사는 아..줌마야…”
사실 이건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니었다.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속사포로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자기는 5살이며 이 동에 사는 건 아니고 14층 친구를 보러 가는 중이며, 이 누나는 6살이고… 동승한 할머님과 나만 당황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9층에 닿았다. 나는 내려야 하는데 아이의 말이 끝날 기미가 없다. 내리려고 비질비질 뒷걸음질하니 아주 따라 내릴 기세다. 웃음을 물고 손인사를 나눴다. 다음에 또 보…자고.
끙끙대며 자전거를 태운다. 열림 버튼을 누르며 기다렸다. 잠시 어색.
“물티슈 있어요?”
“응?”
나한테 물티슈 맡겨 놓은 줄 알았다. 바구니가 있는 자전거를 끌고 나가려는데, 바구니에 뭐가 묻었단다. 그걸 좀 닦게 물티슈를 달라는 거다. 난 이 어린이 오늘 처음 봤다.
“응. 미안해. 지금 물티슈가 없네.”
“아 네. 그럼 됐어요.”
왜 갑자기 미안하단 소리가 나왔는지. 아이는 1층에서 슈룩 내려버리고. 앞으론 가방에 물티슈를 넣어가지고 다녀야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선 늘 어르신들을 만났다. 인사 잘 한다고 칭찬 많이 받던 보기 드문 젊은이(?)였는데. 여기 오니 사탕과 물티슈를 상비해야 하는 어른 아줌마가 되어 어린이 이웃들과 날마다 마주친다. 이 귀엽기도, 어이없기도 한 이웃들이라니!
냉소와 환멸, 헛웃음만 맴도는 요즘이다. 정세(政勢) 복잡함을 뒤로 치우더라도 개인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여 앉아 책을 읽는 것도, 조용히 앉아 글을 쓰고 다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인생사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경구 삼아, 기어이 기어이 즐겁고 기쁜 생각으로 어둡고 답답한 현실을 밀어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어린이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맘에, 글에 담는다. 아파트로부터의 사색이라 하기엔 가벼운 아파트 단상이랄까.
첫댓글 물티슈와 사탕을 들고 다니려 하신다니..애들은 본능적으로 착한 사람을 알아보는데, 샘이 그런 분이셨군요! ^^
제목으로 아파트로부터의 사색. 어떤가요?ㅎ
예전엔 쌀쌀맞은 '이모'였다면 요샌 아이들한테 친절한 '아줌마'가 되려고 노력중입니다 ㅎㅎ
사색이라 하기엔 워낙 가벼운 에피소드라서 제목으로 넣기에 민망하더라고요;;;;;;
사탕이 없다고 웃어주지 않는아이. 아무렇지도 않게 물티슈를 달라고 하고 아이. 사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 얼라 와이리 버릇이 없노.' 하면서 속으로 혀를 끌끌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요즘 매우 냉소적인터라..) 아이들을 어이없어하면서도 귀엽게 보는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 저도 맘이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의 솔직하고 순수함에 웃음이 납니다. ^^
'비양육자의 여유' 정도랄까요.ㅎㅎ 친구도 그러더라고요. 안 치여서 친절할 수 있는 거라고요. 완전 동의하면서... 나름 감사한 마음으로 친절해 보렵니다. 선생님 마음에 여유와 평화를 빕니다. _()_ 답글 감사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