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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0 편
열두 사도를 세우다
. 중도자 위원회
. 활동시기 : 서기 27년 1월 12일
. 장소 : 갈릴리
140:0.1 서기 27년 1월 12일 일요일 정오 바로 전에, 예수는 하늘나라 복음을 대중에게 전하는 자로 세우려고 사도들을 불러 모았다. 열두 사도는 부름받기를 기대하며, 고기잡으로 멀리 나가지 않고 있었다.
예수는 먼저 안드레와 베드로를 소리쳐 불렀고, 다음에 야고보와 요한에게 손짓했다. 예수는 둘씩 열두 사도를 모으고 함께 가버나움 북쪽 고지로 향했다. 정식 임명을 준비하려고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오랫동안 기다리던 때가 다가왔다! 아버지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는 주를 대표하는 신성한 일에 일생을 바치고 집단으로 헌신하는, 일종의 엄숙한 예식에 참여하려고 주와 떨어져서 가는 중이었다.
1. 예비 교육
140:1.1 예수는 말했다. “형제들아, 하늘나라의 때가 왔다. 여러분 가운데 처음에 부름받았을 때, 내가 회당에서 이 나라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또한 너희 각자 아버지의 나라에 대하여 더 배웠다. 이제 이 하늘나라에 관하여 더 가르칠 것이다.
“내 아버지가 자녀들의 마음 속에 세우고자 하는 새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다. 그의 신성한 뜻을 행하기를 바라는 자의 마음 속에서 내 아버지는 이렇게 끝없이 다스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와서 우리와 함께 아버지 나라에 앉을 것이다.
“이 나라의 권력은 군대의 세력이나 재산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성한 영의 영광에 있으리니, 그 영이 하나님 아들들의 지성을 가르치고 마음을 다스리러 올 것이다. 너희가 이 나라를 선포하러 곧 떠날 것이며, 이 나라는 오랜동안 선한 사람들이 바라던 것이며, 온 땅의 희망, 모든 선지자가 받은 지혜로운 약속을 이루는 것이다.
“신과 친교하는 진취적 삶을 살면서 계속 올라가고자 하면 내 아버지 영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진실로 말하건대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나라로 들어가지 못하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가 들어갈 것이다.
“이 소식을 세상에 전하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을 얻고자 애쓰면, 다른 모든 것이 보장될 것이다. 하늘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선포하지 말라. 각 사람 안에 하늘나라의 하나님이 계신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섬기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하늘나라에서 시민으로 받아들이면,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그러한 진리를 선포하려고 왔다.
“궁극에 온 땅이 내 아버지를 찬미하는 노래로 가득하기까지 커지고 성장할 것이다. 너희에게 어떤 짐도 얹지는 않겠지만, 내가 지금 아버지를 대표하는 것 같이, 곧 너희를 떠날 때 세상에서 나를 대표하는 엄숙한 책임을 너희 혼에게 지우려고 한다.” 이렇게 말씀을 마치고 나서 그는 일어섰다.
2. 임명식
140:2.1 예수는 열두 사람에게, 그의 둘레에 동그라미를 지어 무릎을 꿇으라고 지시했다. 다음에 주는 각 사도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얹어, 축복하고 나서 두 손을 뻗어 기도했다.
“아버지여, 나를 대표하려고 이 열두 사람을 택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저희가 하늘나라를 위하여 수고할 때 나는 저희를 도우려고 땅에서 한동안 머무르려고 합니다. 다가오는 하늘나라의 모든 일을 이 사람들 손에 맡기오니 저희에게 지혜를 주소서. 저희를 아버지의 보호에 맡깁니다.”
예수가 기도를 마쳤을 때, 사도들은 고개를 숙인 채로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예수를 끌어안았지만 아무도 말이 없었다. 한 무리의 하늘 존재들이 엄숙하고 큰 고요함으로 덮인 거룩한 이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3. 임명 설교
140:3.1 다음에 예수는 말씀했다: “너희는 이제 사람들 사이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 어두운 세계의 무지한 사람들 가운데서 하늘나라의 깨우친 시민으로서 있다. 내가 이제 아버지를 대표하는 것 같이 너희는 세상에서 나를 대표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드러내려면 땅에서 사는 동안 내가 보이는 가르침과 관습을 지켜야 한다.
“영적으로 포로 된 자에게 해방을, 두려움에 빠져 있는 자에게 기쁨을 선포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좇아 병든 자를 치료하라고 여러분을 보낸다. 슬픔에 잠긴 자녀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하라.
"영이 낮아진, 겸손한 자는 행복하니, 하늘나라의 보물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의(義))에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는 행복하니, 그들은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온유한 자는 행복하니, 그들은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140:3.6 “마음이 순수한 자는 행복하니,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렇게 더 많은 영적인 위로와 약속의 말들을 내 자녀들에게 말하라.
““애통하는 자들은 행복하니, 그들은 위로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슬피 우는 자들은 행복하니, 그들은 기쁨의 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비로운 자들은 행복하니, 그들은 자비를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행복하니,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140:3.11 “의(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행복하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며,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반대하며 모든 악한 태도로 말을 할 때에,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주는 상이 크기 때문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보내지만, 너희는 맛을 내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사람들의 발에 짓밟힐 뿐, 아무 쓸모가 없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사람들이 촛불을 촛대 위에 두어 모든 사람에게 비춘다. 여러분의 빛이 사람들 앞에 아주 빛나서, 너희의 착한 일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인도하라.
“나를 대표하고 내 아버지 나라의 대사로서 너희를 세상으로 보낸다. 떠날 때 아버지를 믿으라. 너희는 그의 메신저들이다. 부당한 처사에 육체의 힘으로 저항하지 말고, 이웃이 오른 뺨을 치면, 다른 쪽도 돌리라. 법대로 처리하기보다 공평치 않은 처사를 기꺼이 받으라. 슬퍼하고 곤궁에 처한 자는 누구에게나 친절과 자비로 대하라.
“너희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행하며,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심술궂게 이용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140:3.16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착한 자 뿐 아니라 악한 자에게도 햇빛이 비치게 하시며, 마찬가지로 옳은 자와 그른 자에게 비를 내린다. 하늘 아버지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함을 구하라.
“너희 눈에 대들보가 있으면서 형제의 눈에서 티를 뽑아내려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자기 눈에서 대들보를 뽑고 나면, 눈이 더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뽑아버릴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움 없이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너희는 나의 사도, 내 아버지의 대사가 될 것이다. ‘소경이 소경을 이끌면 모두가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하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려면, 스스로 깨끗한 진리의 빛 가운데서 걸어야 한다. 어떤 하늘나라 일을 하더라도 의로운 판단과 날카로운 지혜로 하기를 훈계한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거짓 선지자들에 대하여 경고한다. 그들의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지니,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썩은 나무도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없다.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데 중요한 것은 동기이다. 내 아버지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신다.
“하늘나라 심판의 날에 많은 사람이 말할 것이다.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놀라운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를 모른다. 거짓 선생들아 나를 떠나라.’ 나를 대표하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자마다 하늘나라에 풍성히 들어갈 것이다.”
140:3.21 사도들은 이전에 예수가 이처럼 말씀하심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 그가 최고의 권한을 가진 자로서 그들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140:4.1 이른바 “산상 설교”는 예수의 복음이 아니다. 유익한 가르침을 많이 담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열두 사도에게 주는 주(主)의 개인적 위탁(委託)이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버려지고 사람들의 발에 짓밟힐 뿐, 아무 쓸모가 없다.”
예수의 시절에 소금은 값진 것이었다. 돈으로도 쓰였다. 소금은 다른 것들을 더욱 맛있게 만들며 이처럼 소모됨으로 일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사람들이 촛불을 켜서 촛대 위에 두고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춘다. 너희도 사람들 앞에 빛나서, 사람들이 그 착한 일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인도하라.
우리의 동료들이 향상된 삶을 살도록 새롭고 경건한 길로 인도될 수 있게 우리는 우리의 빛이 그렇게 빛날 것을 권고한다.
140:4.6 "이기심이 없는 것은 사람의 위대함을 가리키는 표시이다. 최고의 자아-실현은 예배와 봉사로 이루어진다. 행복하고 유능한 사람은 악한 짓이 두려워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 하는 것을 좋아해서 마음이 움직인다.
“너희는 사람을 알려면, 열매를 보라.” 성격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자라는―것은 도덕적 성품이다. 현대 종교의 큰 잘못은 부정적 사고이다. 아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히고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종교는 하나님이 아버지임을 나타내고, 사람들의 형제사랑이 강화될 때만 유효하다.
도덕적 성품은 수정될 수 있고, 성품은 개선될 수 있다. 튼튼한 성품 안에서는 여러 가지 감정의 반응이 통합되고 조정되며 통일된 성격이 만들어진다. 통일성의 부족은 도덕적 성품을 약화시키고 불행을 일으킨다.
가치 있는 목표가 없으면 인생은 목적이 없고 무익하며 많은 불행이 일어난다. 열두 사도를 세울 때 예수가 하신 말씀은 뛰어난 생활 철학이다. 예수는 사도들에게 체험으로 믿음을 연습하라고 훈계하였다. 단순히 머리로 찬성하는 태도, 쉽게 믿는 성향, 확립된 권한에 의존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교육은 좋은 방법을 배우는 기술이 되어야 한다. 행복은 환경과 거의 상관이 없다. 하지만 쾌적한 환경은 행복에 크게 이바지할 수도 있다.
140:4.11 필사자는 누구나 완성된 인간이 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한 것 같이 완전하기를 정말로 갈망한다. 결국 “우주는 참으로 아버지 같기” 때문에 그러한 달성이 가능하다.
5. 아버지 사랑과 형제 사랑
140:5.1 산상 설교로부터 마지막 만찬에서 하신 강론에 이르기까지,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형제 사랑보다 아버지 사랑을 나타내라고 가르쳤다. 형제 사랑이라면 네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예수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동료 필사자를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예수는 인류를 두 가지 애정으로 사랑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한다. 그는 사람의 창조자요, 우주에서 사람의 아버지이다. 사람의 아들로서 예수는 형제로서 필사자들을 사랑한다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불가능할 정도로 형제 사랑을 나타내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열두 사도에게 이렇게 훈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 아버지 사랑 개념을 드러내려고 애썼다.
단순한 형제 사랑의 한계와 대조적으로, 후일에 초월적인 아버지 사랑의 네 가지 중대한 강론을 소개하였다.
영이 낮아져 있는 사람, 의로움에 허덕이고, 참을성 있는 온유함과, 마음이 순수한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였다. 아버지 사랑은 형제 사랑을 훨씬 뛰어 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
140:5.6 믿음과 사랑은 도덕적 성격을 강화시키고 행복을 만든다. 두려움과 분노는 성품을 약화시키고 행복을 파괴한다. 이 순간적인 설교는 행복의 메모에서 시작되었다.
1. “영이 낮아져 있는 자―겸손한 자―는 행복하다.” 영이 낮아져 있는사람은 영적 재산을 얻는 목표―하나님―을 찾는다. 예수의 시절과 그 이후로, 행복은 재산의 소유에 있다는 관념과 흔히 연결되어 왔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에 한 사람은 마음이 높아져 있었고―자기 중심이었고―다른 사람은 “마음이 낮아져 있었다”―겸손했다. 마음이 낮아져 있는 사람은 영적 재산을 얻는 목표―하나님―을 찾는다. 진리를 찾는 그런 사람은 먼 앞날에 받을 보상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지금 보상을 받는다.
2. “의(義)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는 행복하다, 그들이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겸손한 자가 신성한 힘을 찾고 영적인 능력을 갈구한다. 그러나 영적 욕구를 강화하려고 일부러 금식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지속된 금식은 육체의 배고픔이나 영적 갈망을 없애는 경향이 있다.
체험적인 의(義)는 기쁨이지, 의무가 아니다. 예수의 의(義)는 역동적인 사랑―아버지와 형제의 사랑이다. 무엇을 하지 말라하는 부정적 유형이 아니다.
어린 지성을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성숙한 지성은 이같은 두번의 가르침에서 그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3. “온유한 자는 행복할 것이니, 그들이 땅을 물려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온유함은 인내와 관용을 포함하고, 질서 있고 친절한 우주를 믿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자극을 받는다. 예수는 유란시아에서 이상적인 온유한 사람이었고 방대한 우주를 물려받았다.
4. “마음이 순수한 자는 행복하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부모가 어린아이를 믿는 것, 아버지가 사랑하는 것 같이 동료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믿음을 언급하였다. 아버지의 사랑은 한 가지 목적을 가졌고, 반드시 사람 안에서 최선을 찾는다. 그것이 참 부모의 태도이다.
140:5.13. 하나님을―믿음으로―보는 것은 참된 영적 통찰력을 얻음을 의미한다. 영적 통찰력은 조절자가 잘 인도할 수 있게 하며 결국에는 하나님 의식을 키워준다. 너희가 아버지를 알 때,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보장이 확인되며, 육체를 입은 형제들을 하나하나 사랑할 뿐 아니라 또한 아버지 사랑으로 더욱 사랑할 수 있다.
이 훈계를 어린아이에게도 가르치기 쉽다. 어린아이들은 사람을 쉽게 믿으며, 부모는 아이들의 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을 다룰 때는 모든 기만을 피하고 의심을 자제하라. 그들의 영웅을 선택하고 그들의 삶을 선택하도록 현명하게 도와야 한다.
다음에 예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열두 사도에게 훈계하지 않았다. 그가 그들을 사랑한 것 같이 사도들에게 사람들을 사랑하라고―형제의 애정 뿐 아니라 아버지의 애정으로―사랑하라고 타일렀다. 그는 아버지 사랑의 네 가지 최고의 반응을 지적함으로 이를 보여주었다.
1. “애통하는 자는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슬퍼하는 척 하는 것을 언급한 것이 아니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감동하는 태도를 말한다. 인간의 필요를 헤아리는 친절한 태도는 노여움ㆍ미움ㆍ의심의 영향으로부터 혼을 보호한다.
2. “자비로운 자는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비는 절정에 이른 참된 우정―자애로움―을 가리킨다. 사랑이 있는 부모는 아이를 용서하는 것을 여러 번이라도, 조금도 어렵게 느끼지 않는다.
3.“화평케 하는 자는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평화는 성격을 통합한다. 사회의 평화는 두려움ㆍ욕심ㆍ분노를 막는다. 정치적 평화는 종족 사이의 적대 감정, 국가적 의심, 전쟁을 방지한다. 화평케 하는 것은 불신과 의심을 고치는 약이다.
아이들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활동하도록 쉽게 가르칠 수 있다. 그들은 팀 활동을 즐긴다; 함께 경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주는 또 다른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려 하면 목숨을 읽겠으나,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버리고자 하면 목숨을 찾을 수 있다.”
4. “의(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욕하고 박해하며, 대적하여 온갖 모습의 악한 것을 거짓되게 말할 때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140:5.21 평화가 있은 후에 흔히 박해가 따른다. 그러나 젊은이와 용감한 어른들은 결코 어려움이나 위험을 피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아버지의 사랑은 형제 사랑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을아낌없이 할 수 있다. 진보는 언제나 박해로부터 마지막에 얻은 수확이었다.
아이들은 용기를 보일 기회가 올 때 반드시 반응한다. 젊은이는 언제라도 기꺼이 “용감하게 도전한다.” 아이들은 모두 일찍부터 희생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산상 설교의 행복선언은 믿음과 사랑에 기초를 두었고 율법에―윤리와 의무에―두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아버지의 사랑은 악을 선으로―불의를 선행으로―갚기를 기뻐한다.
6. 임명식이 있던 날 저녁
140:6.1 일요일 저녁에 세베대의 집에 도착한 후 예수와 열두 사도는 조촐한 저녁을 들었다. 예수가 나간 후 열두 사도는 자기들끼리 이야기했다. 안드레가 예수를 찾고는 말했다: “주여, 내 형제들은 하늘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말씀하신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부탁하러 왔습니다.”
예수는 가르치기를, “너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하늘나라의 새 복음을 옛 것에 끼워 맞출 수 없다. 너희는 인자가 땅에서 이룰 사명에 관하여 잘못된 생각을 가졌다. 나는 율법을 어기려는 것이 아니라, 새 계명을 너희 마음 속 서판에 새기기 위한 것이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싶거든, 사랑ㆍ자비ㆍ진리로 이루어진 의로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진지한 소망을 가져야 한다.”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주여, 새로운 계명과 새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기를,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이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을지니라’ 하였으나, 마음 속에 미움을 품고 머리 속에 앙갚음하려고 궁리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을 위험이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의도를 보고 판단하신다.”
“‘간음하지 말라’ 율법 선생들이 말하나, 음란한 생각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마다 이미 마음에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내 아버지는 자녀들의 의도와 진정한 소망에 따라 자비롭게 판단하신다.
140:6.6 야고보 세베대가 물었다: “주여, 이혼에 관하여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모세가 지시한 대로 남자가 아내와 이혼하도록 두어야 합니까?” 이 질문을 듣자 예수는 말했다: “나는 율법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깨우치게 하려고 왔다. 하늘나라를 세우려고 왔다. 오직 정신을 위로하고 영을 해방하고 사람의 혼을 구원하려고 이 땅에 왔다. 이 이혼 문제에 관하여, 모세는 그러한 일을 승인했어도 아담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예수는 말씀을 이었다: “너희는 인간의 관점과 신의 관점, 육체의 길과 영의 길, 시간적 평가와 영원의 관점이 있음을 언제나 인식해야 합니다.” 비록 열두 사도는 그가 가르친 것을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어도 이 가르침은 참으로 도움이 되었다.
다음에 예수는 말했다: “너희는 나의 전령임을 다시 기억해야 하며, 내가 영적으로 내 삶을 살아온 것 같은 너희의 생애를 살아야 한다."
나다니엘이 물었다: “주여, 모세의 율법에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 고 하였는데,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예수의 대답은 이러했다: “받은 만큼 그대로 갚는 것을 규칙으로 만들지 말라. 사람을 다스리는 자는 그러한 율법을 가질지 몰라도 하늘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언제나 자비가 판단을 결정하고 사랑이 행동을 결정할 것이다. 사도직의 요구 조건이 힘들거든, 그보다 힘들지 않은 제자의 길로 돌아갈 수 있다.”
베드로가 말했다: “주여, 우리는 계속하여 당신과 함께하기 원합니다. 제자가 아니라 사도가 되고 싶습니다.”
140:6.11 이 말을 듣자 예수는 말했다: “그러면 기꺼이 책임을 지고 나를 따르라. 자선금 낼 때 오른 손이 무엇을 하는지 왼 손이 모르게 하라. 기도할 때, 말을 헛되이 되풀이하면서 뜻 없는 구절을 쓰지 말라. 아버지는 구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 줄 알고 있음을 기억하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슬픈 얼굴로 금식하지 말라. 자신을 위하여 땅에서 보물을 쌓지 말고, 사심 없이 봉사함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을 것이니, 보물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또한 있다.
“육체의 등불은 눈이다. 너그럽게 헤아리는 눈이 있으면 온 몸이 빛으로 가득찰 것이다. 그러나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두움에 휩싸일 것이다.
토마스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계속 가져야” 하는지 물었고, 주의 대답은 이러했다: “옳다. 형제들아, 바라건대 이해심 있는 한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야 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해서도 무슨 옷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면, 무엇이 필요하든지 여러분은 더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 하루의 어려움은 그날로 충분하다.”
그들이 밤새 질문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예수는 말했다: “형제들아, 내일 일을 준비하도록 잠자러 가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서 이미 잠이 달아났다. 베드로는 주에게 개인적 만남을 요청했다. 베드로가 무척 명랑해지고 크게 격려받고 돌아왔을 때, 야고보도 개인적 만남을 원했다. 이런 식으로 날이 샐 때까지, 사도들은 쌍둥이를 제외하고 하나씩 주와 함께 이야기하러 갔다.
7. 임명식 다음 주
140:7.1 몇 시간 동안 잠자고 난 뒤에, 열둘이 함께 늦은 아침을 먹으려고 모였을 때, 예수는 말했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갈 준비를 하자.” 토마스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주여 그 일을 시작하려고 우리가 준비되어야 함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이 큰 사업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만 더 이 근처에 있도록 허락 하시겠습니까?” 예수는 말했다: “요청한 대로 안식일 동안 여기에 있겠다.”
먼 도시로부터 몇 주 동안, 진리를 추구하는 작은 무리들이 예수를 보려고 벳세다로 왔다. 이제 주는 하늘나라에 관하여 가르치는 일을 열둘에게 넘겼다. 사도들은 모두 바빴다.
낮에는 가르치고 밤이 늦도록 사사로운 모임을 가지면서, 그들은 이틀 동안 일했다. 그들은 목요일에 돌아왔다.
140:7.4 연습하는 이 주간에, 예수는 두가지 사명을 사도들에게 되풀이했다:
1. 아버지를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
2. 사람들이 아들 의식을 갖도록―최고자의 자녀임을 믿음으로 깨닫도록―이끄는 것.
한 주 동안 이렇게 다양한 체험을 겪은 것은 열두 사도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 회의에서, 안식일이 끝난 그날 밤에 베드로와 야고보 말했다, “우리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늘나라를 치러 갑시다.” 이에 예수는 대답하였다. “너희가 열심인 만큼 지혜롭고, 용기가 무지를 보충하기 바란다.”
비록 가르침을 많이 알아듣지 못했어도, 사도들은 예수가 그들과 함께 지낸 기막히게 아름다운 삶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실패하지 않았다.
8. 목요일 오후 호수에서
140:8.1 예수는 사도들이 그의 가르침을 완전히 새겨듣지 못했음을 잘 알았다. 이들이 다윗의 왕좌를 회복하고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고 그 위에 새 영적 가르침을 붙이려고 끈질기게 고집하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는 베드로ㆍ야고보ㆍ요한과 함께 배를 타고 물가를 떠나갔다. 이것은 네 시간 동안 가르치는 회의였다. 시몬 베드로가 형 안드레에게 준 대로, 이 중대한 요점을 다시 정리하여 이 기록에 넣는 것이 유익할까 한다:
1.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 하늘 아버지가 넉넉히 돌보심을 믿는 것. 예수의 가르침은 수동적 운명론이 아니었다. 옛 히브리 속담인, “일하려 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를 인용했다. 그의 체험이 충분한 설명이라 지적하였다. 그의 가르침은 어느 시대나, 세계에서도 하나님과 가까이 사는 이상적 원칙을 담고 있다.
예수는 사도와 제자가 되는 요건의 차이를 분명히 밝혔다. 앞일에 대한 근심과 걱정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였다. 하나님의 뜻에 방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복종하기를 가르쳤다. 생활 환경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작용하는 신의 섭리라는 것을 분명히 설명하려고 애썼다.
전혀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예수의 습관을 사도들은 똑같이 하려고 했다.그러나 ‘악행을 수동적으로 묵인하는 것’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사회가 행악자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을 인정하고, 사회 질서 유지와 법을 집행하기 위하여 국가가 때때로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이날 예수는 분명히 밝혔다.
예수는 앙갚음하는 악습을 주의하라고 제자들에게 자주 경고하였다. 이 문제는 국가 정부, 한편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다. 그의 가르침은 개인에게 적용됨을 뚜렷이 말했으며,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40:8.6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라―인간이 형제라는 도덕적 주장을 기억하라.
악은 무익하다: 악한 수단으로 대항하여 싸우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믿음―신의 정의와 영원한 선이 궁극에 이긴다는 확신―을 가지라.
2. 정치적 태도. “시저의 것을 시저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리라” 그는 사생활에서 언제나 국가의 모든 법과 규칙을 마땅히 준수했다. 어떤 대중 교육에서도 그는 시민ㆍ사회ㆍ경제 분야에 관여하지 않았다. 오직 사람의 정신적 생활, 개인의 영적 생활에만 관심을 가진다고 세 사도에게 일러주었다.
따라서 예수는 정치적 개혁가가 아니었다. 그는 세상을 다시 조직하려고 오지 않았다. 최선으로 사는 길을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예수의 가르침을 어떤 정치 이론이나 경제 이론, 어떤 사회 체제나 산업 체제와 동일시하는 잘못을 결코 저지르지 말라.
3. 사회적 태도.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진지하였고, 그 사랑이 전 세계를 포함하기까지 이웃 개념을 확대했다. 예수는 대중이 아니라 오직 개인에 관심을 가졌다. 온갖 형태의 이기적 고립을 깨뜨리려고 수고했다. 순전한 동정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르쳤다. 네바돈의 미가엘은 자비에 지배를 받는 아들이다. 동정심이 바로 그의 성품이다.
140:8.12 주는 가난한 자와 불행한 자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의 기생충에게 이용당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았다. 사회학적 선언은 “판단을 받지 않도록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한 것이다.
사도의 기금을 조금도 자선금에 써서는 안 된다고 유다에게 문명히 지시했다. 모든 문제에서 “뱀 같이 지혜로우나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고 말하는 것이 예수의 버릇이었다.
가족은 이 세상의 제도요, 죽음 뒤에 살아남지 않는다. 아버지의 뜻에 어긋날 때 예수는 서슴지 않고 가족을 버렸다. 사람이 형제라는 새롭고 더 큰 정신―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예수의 시절에 이혼 관습은 엄하지 않았다. 초기에 예수를 따르던 많은 사람은 이혼에 관해 뚜렷한 의견을 가졌고 요한 마가를 제외하고 신약의 저자들은 결혼에 대하여 좀 더 엄격하고 진보된 관념을 지켰다.
4. 경제적 태도. 재산의 불평등한 분배의 부당함에 세 사람에게 자주 말씀했다. 사회 정의와 산업의 공평이 필요함을 인정했지만 이를 성취하기 위한 어떤 원칙은 내놓지 않았다.
140:8.16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공동체 형태의 생활을 채택하라고 친히 지시한 적이 없었고, 어떤 종류의 선언도 하지 않았다.
“사람의 행복은 물질 재산의 풍부함에 있지 않다.” 탐욕을 피하라고 자주 경고했다. 영적 가치의 우선이 영원히 필수라고 주장했다. 예수는 결코 경제 이론을 만들려고 의도하지 않았다.
그가 비난한 것은 재산이 아니라, 물질이 사람들을 굴복하게 하는 영향이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처음으로 사도들에게 말했다.
5. 개인적 종교. 아버지의 신성한 성품과 사랑의 성격을 드러낸 것은 그의 삶이었다. 열두 사도에게 준 가르침이나 군중에게 한 설교가 아니다.
예수는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가르치려 했다. 종교적인 틀, 영적 충동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자신을 낮추라고 충고했다. 그가 진정 원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겸손이었다. 그는 성실함―깨끗한 마음―을 높이 평가했다. 한편 용기는 그의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두려워 말라”가 표어일 정도로 용감한 정신의 종교이며, 예수의 개인 대표인 열두 명은 거칠고 튼튼하고 남성다운 어부였다.
140:8.21 무엇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피했다. 인류의 육체적 욕심은 종교적 책망이나 율법으로 억누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예수는 요한처럼 바리새인 조차 맹렬히 비난하지 않았다. 종교 지도자들이 전통에 노예처럼 매여 있는 것을 이해했다. “먼저 나무를 잘 자라게 하는 일”을 강조했다. 인간의 생애 전체가 소중함을 세 사도에게 강조했다.
요한이 받은 교훈은 ‘예수의 종교 핵심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함에 있어 그 동기는 자비로운 성격’임을 깨달았다.
베드로는 그들이 선포하려는 복음은 온 인류를 위하여 새로운 시작임을 깨달았다. 이 인상은 후에 바울에게 전했졌고, 바울은 그리스도가 “둘째 아담”이라는 교리를 지어냈다.
야고보는 자녀들이 이미 하늘나라의 완성된 시민이 된 것처럼 이 땅에서 살기를 예수께서 원한다는 황홀한 진리를 깨달았다.
140:8.26 예수는 각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지는 것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려고 애썼다. 베드로에게 “어린아이처럼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해방시키라.” 말씀하셨고, 참된 선함은 의식하지 않고 행하며,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이날 세 사도는 주의 종교가 영적인 자기 반성에 아무런 제한이 없음을 깨닫고 놀랐다. 목수의 아들은 결코 인품을 만들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인품의 성장을 가르쳤고,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외쳤다.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권리는 믿음, 즉 개인의 신념에 달려있다. 그 치루는 값은 사람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얻고자 하는 값비싼 진주와 같다.
예수의 가르침은 약자, 노예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종교이다. 결코 신조와 신학의 법칙으로 세워지지 않았다. 그의 일생과 가르침은 어느곳에서도 영적 안내와 도덕적 가르침인 이상적 유산으로 우주에 남겼졌다. 예수의 가르침은 모든 종교와 따로 구별된다.
예수는 종교가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추구할 일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나 열 두 사도에게는 종교에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통에 묶인 예루살렘의 종교 학당들을 비난하였다. 그는 생각이 자유롭고 마음이 넓었고, 박식하고 너그러웠다.
140:8.31 주는 당시대나, 후일 어느 시대에도 비종교적 문제에 어떤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영원한 실체들을 꿰뚫어보는 영적 통찰력을 개발하고 독창적으로 사는 주도권을 자극하고 싶어했다. 사랑―진리ㆍ아름다움ㆍ선―이 신의 이상이요 영원한 실체라고 찬미하였다.
주는 사람 속에서 새로운 영, 새로운 의지를 창조하려고 오셨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려 하는 의지이다.
9. 성직에 임명하는 날
140:9.1 예수는 다음 안식일에 사도들에게 몰두했고 사도들을 세웠던 산지로 돌아갔다. 이 안식일 오후에 사도들을 모으고, 세상에 그들만 두고 떠나야 하는 날에 대비하여 그들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손에 맡기었다. 새로운 가르침이 없었고 다만 이야기와 친교에 시간을 보냈다.
사도 임명 설교를 다시 살펴보았다. 성직 임명식에서 주의 명령은 이것이었다, “온 세계로 가서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라. 영적으로 포로된 자를 해방하고 억압받는 자를 위로하며, 고통받는 자를 돌아보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예수는 돈이나 여벌 옷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 “일꾼은 임금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이리들 한가운데 양처럼 여러분을 보낸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적들이 너희를 공회로 끌고 가서 징계할 것이다. 재판받을 때 무엇을 말할지 걱정하지 말라. 내 아버지의 영이 너희를 통해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서 그들은 세베대 집의 거처로 돌아갔다.
10. 성직 임명식이 있던 날 저녁
140:10.1 예수는 말했다: “요한은 회개하는 세례, 옛 생활 방식을 뉘우치라는 세례를 외쳤다. 너희는 하나님과 친교하는 세례를 선포해야 한다. 회개하라는 가르침이 필요한 자에게 회개를 외치고, 하늘나라로 들어가기를 추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즐거이 친교하는 곳으로 들어오라 청하라.”
열두 사도를 가르치는 큰 장애물은, 상당히 이상적이고 영적인 원칙, 종교적 진리의 원칙을 구체적인, 개인의 행동 규칙으로 다시 만드는 경향이었다. 그들은 천천히 그 가르침을 소화했다. 말씀으로 가르쳐서 얻을 수 없는 것은 그와 함께 살면서 차츰차츰 얻었다.
예수는 이 세상에서 필사자로 사는 모범을 보이고자 함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영적인 영감을 주는 높은 이상을 만들려고 지상의 삶을 살았다.
토마스가 예수께 물었다: “주여,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전에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거짓 선지자에게 속지도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는 잘못도 저지르지 말라 경고하였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당신의 가르침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했다: “너희는 어린아이요, 들어가고자 하는 곳은 너희의 아버지 나라이다. 너희가 나가서 전하려는 그 복음은 바로 이 영원한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의 실현, 믿음이 자라서 얻는 구원과 관련된다."
예수는 종족이나 나라가 아니라 개인에 중점을 두었다. 어떤 행동의 도덕성도 개인의 동기에 따라 좌우된다고 설명하였다. 예수의 도덕은 언제나 긍정적이었다. 무엇을 하지 말하는 오래 된 규칙은 고립된 가운데 지킬 수 있다. 예수는 도덕에 붙어 있는 모든 법칙과 예식을 벗기고 도덕을 영적으로 생각하고 참으로 올바르게 사는 훌륭한 수준으로 높이 올려 놓았다.
140:10.6 예수의 이 새 종교는 진정한 개인적 종교 체험을 겪으면서 날마다 자진하여 봉사함으로 영의 열매를 보여준다.
예수와 마태가 이야기를 마친 뒤에, 열심당원 시몬이 물었다. “그러나 주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예수는 대답했다: “옳다 시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것이 너희가 선포할 좋은 소식이다.”
안드레의 물음에 답하여, 주는 그의 가르침에 담긴 도덕은 그가 실천하는 종교와 따로 구별할 수 없다고 분명히 일러주었다. 사람의 성품으로부터 도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도덕을 가르쳤다.
요한이 예수에게 물었다: “주여, 하늘나라는 무엇입니까?” 예수는 대답했다. “하늘나라는 이 세 가지 요건으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하나님이 그 나라를 다스리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를 믿는 것이며, 셋째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인간 최고의 소망-하나님 같이 되려는 믿음이다.
그들은 이튿날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나려고 준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