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인터뷰’는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화계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1993년에 쓴 글입니다. 첫 번째인 강우석 감독 편에 이어 한국 영화계 1세대 매니저 방정식씨에 관한 글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인터뷰365 김다인] 지금은 충무로가 예전 같지 않아 영화인들보다는 넥타이 맨 샐러리맨들이 더 많아 눈에 띄지만 그래도 아직 곳곳에 영화사들이 있고 골뱅이 집에는 삼삼오오 영화인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만약 극동빌딩 주변에서 백발에 눈매가 아주 날카로운 신사양반을 마주치게 된다면 ‘방부장님’이라 부르며 인사를 건네도 무방할 것이다.
나이보다 먼저 세어버린 백발을 위로 넘긴다면 홍콩영화에 등장하는 무림의 고수-선한 쪽보다는 악한 쪽이 제격이다- 역에 딱 어울릴 것 같은 특이한 용모이다.
‘방부장’은 이름이 많다. 본명은 방영수, 이 이름은 이제 본인에게도 낯설다. 영화계에 들어와 한 감독이 지어준 예명이 정식, 그래서 성과 조합시켜 놓으면 수학의 1차, 2차 ‘방정식’을 연상시키게 한다. 흔히 사람들이 부를 때 쓰는 방부장은 그가 제작부장을 했던 것에 연유한다.
하지만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애칭인 ‘방돌이’다. 배우이자 탤런트인 이덕화가 하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해서 붙여준 별명인데 아주 그럴싸해서 스스로를 소개할 때도 써먹고 있다.
방정식씨가 하고 있는 일은 배우 매니저, 배우 스케줄 관리하고 작품선택에 도움을 주고 궁극적으로 배우의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를 책임지는 일이다.
현재 방정식씨가 매니저 일을 봐주고 있는 배우는 이덕화, 이영하, 이혜영 등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이씨 성을 지닌 중견급 배우들이다.
방정식씨는 또 지금은 은퇴해서 가정주부로 있는 정윤희씨 매니저를 6년 동안 하기도 했다.
몇 년 전, 피카디리극장 앞에 배우들 손도장 남기는 행사에 정윤희씨가 모처럼 모습을 나타냈을 때 그 뒤에서 함께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던 이가 바로 방정식씨이다.
방정식씨 꿈은 야멸찼다.
‘타도! 신성일!’ - 이것이 그의 영화계 입성 출사표였다.
“그땐 신성일씨가 영화계 스타 중 스타였잖아요. 나라고 못할 것 있나 싶었죠. 그런데 그게 아무나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나뿐 아니고 여러사람들이 제2의 신성일이 되려고 서울로 올라왔죠, 다들 실패하고 말았지만.”
60년대 중반의 얘기다. 청춘스타 신성일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을때 부여 출생 청년이 가졌던 꿈은 신성일을 넘어서는 스타가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이 ‘형질 변경’을 하여 연출부 조수로, 제작부 조수로, 제작부장으로, 그리고 배우 매니저로 바뀌었다.
“영화계는 한번 발을 디디면 떠나는 일이 좀처럼 어려워요. 신성일씨 타도를 못했으면 딴 길로 가야 할 텐데 그럭저럭 계속 영화판에 남게 됐어요. 나중에 신성일씨한테 내 꿈이 뭐였다는 걸 얘기했더니 파안대소 하더라구요.”
배우가 되려다 배우 매니저가 되어 있는 방정식씨의 지금 희망은 외국 영화계처럼 캐스팅 디렉터 제도가 정착되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보고 적역의 배우를 선정하고 섭외하는 일까지를 전문적으로 하는 캐스팅 디렉터가 있다면 배우 층도 두터워지고 인기배우 몇몇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재 영화계 형편도 좋아질 것 같다.
80년대 한국영화 절정기에서 90년대 불황기를 관통하여 살고 있는 방정식씨 얘기는 끝가는 데 모르고 이어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