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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읍중17회 원문보기 글쓴이: 샘골김형문
제3장 치우천황의 등극(登極)-치우천황② | |
역사서에 나타난 ‘치우’의 표기 ① 『史記』에 蚩尤=치우 [CHI +OO]=CHIOO 저자 사마천은 어리석을‘치(蚩)’자에, 원망할 ‘우(尤)’자를 사용하여 적장을 바보라고 비하하면서도, 치우천황의 중국 침략을 원망하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② 『桓檀古記』에 慈烏支= 자오지, 자오츠유 [CH + UOO ]=CHUOO 자오지의 ‘지(支)’는 우리말 ‘치’로 ‘ㅊ+유+치’이다. 자오지로 발음할 경우, ‘치우’가 배달한국의 국방장관을 의미하는 벼슬이므로 군의 최고사령관인 군신(軍神)천황의 뜻이 있다. 치우천황의 한자 표기로 가장 적합한 표현이다. ③ 『三聖紀』에 治雨, 治尤=치우 [CHI + OO]=CHIOO 당시 중국인들의 골칫거리였던 ‘홍수(雨)를 잘 다스렸다(治)’는 존경의 뜻을 담고 있다. ④ 『路史』에 赤油=치유 [CHI + YOU]=CHIYOU 산동지방에서는 치우의 무덤에서 붉은 기운이 하늘로 오 | ||||||||
른다고 하는데, ‘기름 먹는 붉은 괴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다시 복원하려면 한자의 뜻풀이를 중단하고 한자 본래의 발음을 찾아내어 우리의 옛 발음과 맞추어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놀랍게도 그토록 풀리지 않던 우리 역사 본래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구려’의 ‘아홉 구(九)’ 자를 ‘가우’로 읽는데 홍콩[香港]의 구룡(九龍)반도를 지금도 ‘가우릉’으로 부르는 것이 증거가 되며, ‘려(黎)’자는 ‘ㄹ-허’로 발음되어 우리말의 ‘땅’이나 ‘자리’를 뜻하는 ‘리’가 된다. 결국 ‘구려(九黎)’의 올바른 읽기는 ‘가우리’로서, 이는 ‘중원의 땅’을 의미하는 우리 고유의 국명(國名)임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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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부(內務部)와 교육부(敎育部)를 합친 격인데 녹도문(鹿圖文)의 개천(開天) 1149년(B . C 2749년) 치우천황은 배달한국의 천도(天都) 신시(神市)에서 치우씨(蚩尤氏)라는 명문 귀족가문의 적장자(嫡長子)로 태어났다. 치우씨(蚩尤氏) 가문의 적장자(嫡長子)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제국(帝國)의 주병관(主兵官)을 승계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치우씨의 본명이나 부모의 성명을 남긴 기록은 없다. “신시씨(神市氏, 桓雄氏)가 통치할 무렵 곳곳에 초목이 무성한 가운데 사람들이 사나운 짐승들과 그 삶의 터전을 차지하려고 경쟁하였다. 치우씨가 이를 보고 긴 창과 큰 도끼 등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급하니 이에 위협을 느낀 맹수들이 곧 숲속으로 도망하였다. 이로부터 인간과 짐승들의 생활공간이 구별되어 서로가 안전하게 되었다.” 이상의 기록은 치우가 짐승들을 놀라게 하고 겁을 주는 모종의 기구를 만들었다는 것이지만, 긴 창이나 도끼를 반드시 사냥 도구로만 볼 필요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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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치우는 병부의 장교로서 아직 정복하지 않았거나 제국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변방의 토족들을 정벌하는 전쟁에 스스로 참여하며 전쟁기술을 습득한다. 특히 흑수(黑水) 상하의 토족들은 독립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여 항상 골칫거리였다. 그들은 성격이 매우 거칠고 용맹하여 그동안 배우고 익힌 전통적인 전투방식이 실전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산해경의 대황북경에 이르기를 흑수의 북쪽사람들은 묘민이다(山海經大荒北經 黑水之北有人苗民也).” 『산해경』은 또 이곳이 ‘숙신고지(肅愼故地)’라 하여 쥬신[朝鮮, 肅愼]1)의 옛 땅이라 하였다. 묘민들이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이유를 깨달은 젊은 치우는 많은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묘족을 승복, 소개(疏槪)시킬 수 있는 묘안을 가지고 적의 수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
“어차피 묘족들이 말에서 내려 기마족의 습속을 버리고 새로운 영농 중심의 생활방식을 선택하였다면, 묘족이 먼저 항복의 예를 갖추어 천황의 백성 자격을 획득해야 할 것이다. 묘족(苗族) 토벌전쟁(討伐戰爭)은 젊은 치우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자칫 잘못했더라면 엄청난 피를 부를 뻔했던 전쟁에서 최소한의 희생만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쟁은 희생 없이 승리를 얻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무한의 새로운 수단이 가능했으며 그것이 비록 정면승부가 아니더라도 적의 보급로 차단이나 고도의 심리전 등으로 적을 불안정 상태로 빠트리는 것 같은 방법이 때로는 전장에서 창검으로 적을 무찌르는 것 이상의 효율적인 전술이 될 수 있음도 터득했다. 이후 치우 군단(軍團)은 5종(五種)의 군(軍)으로 재편되었고, 별군(別軍)으로 호군(虎軍)과 견군(犬軍)이 조직되어 별도로 훈련되었다. 치우천황의 별군을 이용한 이 작전은 훗날 서정(西征) 때 헌원(軒轅)으로 하여금 치우를 반인반수(半人半獸)로 인식하게 할 만큼 화하족(華夏族)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이무렵 치우는 적어도 십여 차례에 달하는 크고 작은 전쟁을 수행하며 전쟁의 각종 개념을 터득하게 된다. 치우의 군단은 갑옷에 투구를 착용했고, 기마군단(騎馬軍團)엔 작고 강력한 단궁(檀弓)을 말안장에 장착했다. 5종의 군단은 엄격하게 조련(調練)되었고 살상력이 높은 신무기(新武器)로 무장하여 정병(精兵)군단으로 거듭 태어나니 그 위세가 천하를 떨게 하였다. 능득개천(能得開天) : 하늘의 뜻을 능히 받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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