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면세점 王 척 피니(Chuck Feeney)
척 피니(Chuck Feeney)는 흔히 “미국 면세점 왕”,
또는 “억만장자였지만 스스로 거의 전 재산을 나누어 준 사람”으로
알려진 매우 특별한 인물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 기부한 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있을 때 가진 것을 나누자(Giving While Living)”라는 철학을
실제 삶으로 보여준 이야기입니다.
1.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샌드위치 장사’로 시작
척 피니는 1931년 미국 뉴저지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대공황 시절을 어린 시절로 보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돈을 버는 데 상당히 적극적이었습니다.
눈을 치워주고 돈을 받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집집마다 팔기도 했습니다.
코넬대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생들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그를 “샌드위치 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의 사업가적 재능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입니다.
“사람들이 배가 고프다 → 학교 주변에는 늦은 시간 먹을 것이 부족하다 →
그러면 내가 만들어 팔면 된다.”
이렇게 아주 작은 장사에서 시작했습니다.
2. ‘면세점 王’이 되다
그가 진짜 큰돈을 벌게 된 것은 면세점 사업이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 로버트 밀러(Robert Miller)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고,
1960년 Duty Free Shoppers(DFS)를 공동 창업했습니다.
당시 해외에 나가는 미국 군인과 여행객들이
면세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사업은 유럽에서 홍콩 등으로 빠르게 확대됐고,
나중에는 세계적인 면세점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DFS는 결국 세계 최대 규모의 고급 면세상품 판매업체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그 결과 피니는 엄청난 부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그의 인생이 일반적인 억만장자와 완전히 달라집니다.
3. 50대에 “내 돈을 거의 다 주겠다”고 결심하다.
1984년, 피니는 당시 자신이 가지고 있던 DFS 지분 대부분을
자신이 만든 자선재단에 넘겼습니다.
당시 가치가 5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재산이었습니다.
그 결과 개인 재산은 500만 달러 이하로 줄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을 비밀로 했다는 것입니다.
재단 이름에도 자신의 이름을 넣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 돈이 누구의 돈인지조차 몰랐습니다.
초기 약 15년 동안 재단의 기부는 익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4. 그런데 정작 본인은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피니가 더욱 유명해진 이유가 이것입니다.
엄청난 부자였지만 화려한 저택이나 자동차, 사치품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한동안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비행기는 일반석을 이용하고,
값싼 시계를 차고 임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물건을 쇼핑백에 넣어 들고 다니는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돈을 벌었지만 돈을 소유하는 것 자체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않았던 것입니다.
5. 그의 유명한 철학 — “살아 있을 때 베풀자”
피니가 남긴 가장 유명한 개념이 Giving While Living
“살아 있는 동안 나누자”입니다.
보통 부자는 죽은 뒤 유산이나 재단을 통해 기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니는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죽은 뒤에 돈을 주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내가 직접 좋은 일에 쓰고
그 결과를 보자.”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돈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아일랜드, 베트남,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미국 등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대학·병원·보건사업·아동과 청소년·노인·인권 분야 등에
큰 규모의 지원을 했습니다.
6. 얼마나 많이 기부했을까요?
그가 만든 Atlantic Philanthropies는 약 37년 동안 전 세계에
80억 달러 이상의 지원금을 제공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단순 환산하면 현재 환율에 따라 다르지만
10조 원이 훨씬 넘는 규모입니다.
그리고 이 재단은 피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계속 운영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돈을 모두 사회에 사용한다는 원칙에 따라 활동했습니다.
2016년에 마지막 기부 약정을 하고, 2020년에 재단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이것이 상당히 독특합니다.
“내가 죽은 뒤에도 영원히 운영되는 거대한 재단을 만들겠다.”가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을 때 필요한 곳에 최대한 쓰고 끝내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7. 특히 코넬대학교에 엄청난 도움을 주었습니다
피니가 졸업한 코넬대학교는 그의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1982년부터 약 10억 달러에 가까운 지원을 받았고,
그래서 코넬대학교에서는 그를 **“제3의 창립자(Third Founder)”**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초기에는 건물 이름이나 기념비에
그의 이름이 붙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8.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도 그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척 피니의 방식은 나중에 다른 거액 기부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등이 그의 자선 활동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피니를 자신의 자선활동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피니는 한때 언론에서 재미있게 “자선 사업가들의 자선사업가”
같은 사람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9. 마지막에는 정말 거의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척 피니는 2023년 10월 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9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평생에 걸쳐 기부한 금액은 80억 달러 이상으로 집계됩니다.
그의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돈을 벌 때는 기업가였지만, 돈을 쓸 때는 평생을 바친 사회사업가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 나누는 것이 훨씬 즐겁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돈을 거의 다 나누어 주고 난 뒤에도
그 철학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래서 척 피니의 이야기는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보다
“내가 가진 것을 언제, 어떻게 사용했느냐”**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척 피니가 실제로 어떤 대학·병원·나라에 얼마를 기부했는지,
그리고 그 돈으로 무엇이 바뀌었는지ㅣ구체적인 사례>
1. 모교 코넬대학에 거의 1조 원 이상
피니는 자신이 다닌 코넬대학교에 약 10억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당시 환율로 단순 계산해도 1조 원을 훨씬 넘는 규모입니다.
그중 특히 놀라운 것이 2011년 3억5천만 달러였습니다.
뉴욕시 루스벨트 아일랜드에 세워진 Cornell Tech 설립과 캠퍼스 조성에 쓰였습니다.
이것은 피니 재단이 코넬에 한 단일 기부 중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부가 처음 이루어졌을 때는 피니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2.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다
코넬대학에서 피니가 처음으로 한 큰 기부는 1982년 700만 달러였습니다.
'Cornell Tradi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는데,
단순히 성적만 좋은 학생이 아니라 공부하면서 일하고,
지역사회 봉사에도 참여하는 학생들을 지원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장기간 약 6,000명의 학생을 지원했습니다.
자신도 젊었을 때 돈이 넉넉하지 않아 G.I. Bill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녔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지원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 아일랜드에 1조 원이 넘는 돈을 지원
이 부분은 특히 흥미롭습니다.
피니는 자신의 조상이 아일랜드계였고,
아일랜드의 대학과 교육 발전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1987년부터 2015년까지 아일랜드에 약 12억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특히 아일랜드의 여러 대학에 연구시설과 교육시설을 세우는 데
큰돈을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피니는 그냥 돈만 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1달러를 줄 테니, 정부와 다른 기관에서도 돈을 마련하라.”는
식의 매칭 방식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부금보다 훨씬 많은 추가 투자를 끌어내는 효과를 노렸습니다.
4. 베트남에서는 병원과 학교를 도왔습니다.
피니의 관심은 미국과 아일랜드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에서는 학교와 병원 건립 및 보건의료 발전에 상당한 지원을 했습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거액의 돈을 단순히 나누어 주기보다는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병원·학교·의료시설을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5.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인권, 보건의료, 사회 변화와 관련된
여러 사업을 지원했습니다.
아틀랜틱 재단의 주요 지원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바로 **health equity(건강 형평성)**와 인권이었습니다.
즉, 단순한 자선보다는 사회적으로 불리한 사람들이 교육과 의료의 기회를 갖도록 만드는 것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6. 북아일랜드 평화에도 돈을 썼습니다.
이것도 척 피니를 특별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1990년대 북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계와 개신교계 사이의 오랜 갈등과
폭력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피니는 이 지역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사업에도 자신의 돈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교육과 사회적 교류를 통해 서로 다른 공동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업들을 지원했습니다.
7. 그의 기부가 더욱 놀라운 이유
그가 80억 달러를 기부했다는 사실 자체도 대단하지만,
더 특이한 것은 기부 방법입니다.
보통 거액을 기부하면 “○○재단, ○○회관, ○○기념관”처럼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피니는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코넬대학조차 상당 기간 동안 그 돈의 실제 기부자가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부가 널리 알려진 것도 훨씬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가 익명을 원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큰돈을 기부했다는 사실이
다른 기부자들의 참여를 오히려 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8.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2020년, 피니가 89세였을 때입니다.
그가 만든 Atlantic Philanthropies가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왜냐하면 줄 돈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살아 있는 동안 내 재산을 모두 사회에 돌려주겠다.”라는 목표를
실제로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재단은 37년 동안 80억 달러 이상을 지원했고,
2020년에 모든 자산을 소진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피니 자신은 2023년 9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피니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그가 젊었을 때부터 돈을 벌 줄 알았던 사람이라는 점도 재미있지만,
더 놀라운 것은 “돈을 언제까지 가지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서 노후에 편하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합니다.
피니는 오히려
“내가 죽은 뒤에 남겨두지 말고, 내가 살아 있을 때 필요한 사람들에게 쓰자.”
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을 딱 네 글자로 표현하면
생전기부(生前寄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철학을 영어로 **“Giving While Living”**이라고 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워런 버핏과의 일화입니다.
피니는 자신의 마지막 수표가 정말 마지막 기부가 되기를 원해서,
농담처럼 **“마지막 수표가 은행에서 부도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마지막 수표는 부도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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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프란시스 척 피니(Charles Francis Chuck Feeney)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사업가이자 박애주의자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개인 재단 중 하나 인
아트란타 박애재단 (The Atlantic Philanthropies)의 설립자이다.
척 피니는 1931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경건한 기독교 신자다.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