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오늘 시편 묵상을 마칩니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세 편의 주제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입니다.
1. 만물이 찬양합니다
어제 아내와 거리를 거닐며
달걀 모양의 아주 작은 꽃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놀라웠습니다.
섬세한 색깔과 모양,
그리고 질서.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작은 꽃에도
그런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피조물도 그렇습니다.
그 작은 꽃은
색깔로,
향기로,
질서로,
계절을 따라 피고 지는 삶으로
조용히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아라!"
해와 달도 말합니다.
"우리는 단 하루도 늦거나 빠르지 않습니다.
정하신 궤도를 묵묵히 걸으며
빛으로 창조주를 찬양합니다."
산도 말합니다.
"나는 수천 년을 서 있습니다.
맡겨진 자리를 지키는 충성으로
창조주를 드러냅니다."
어린아이는 말합니다.
"나는 먼저 믿고,
먼저 웃고,
먼저 사랑합니다.
하나님 나라도 이런 마음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시편에 등장하는
수많은 피조물은
저마다의 존재 방식으로
창조주의 지혜와 사랑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저도 함께 외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새 노래로 찬양합니다
새 노래는
단지 새로운 곡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새 노래는
'새로운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새롭게 된 나'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변하는 것은
나의 눈이고,
나의 마음이며,
나의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새 노래는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발견한 사람이
드리는 새로운 삶의 노래입니다.
이제는 세상과 우주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바라봅니다.
새롭게 된 마음은
새로운 삶을 낳고,
그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새로운 찬양이 됩니다.
3. 삶으로 드리는 찬양
찬양은 형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양하게 창조하셨고,
세상을 움직이는 방식도 다양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찬양도 다양합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연주하는 사람은 연주로,
춤추는 사람은 몸짓으로,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침으로,
글 쓰는 사람은 글로,
섬기는 사람은 섬김으로,
정의를 세우는 사람은 정의를 세우는 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드러내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전사의 칼마저도
찬양의 맥락 안에서 말합니다.
칼 자체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공의를 바로 세우고,
억압받는 이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감당하는 삶도
찬양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경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너무 쉽게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자신의 분노를 하나님의 공의로,
자신의 폭력을 거룩한 전쟁으로
포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입니다.
그 본질을 잃지 않는 한,
우리의 삶 전체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시편을 통해
울음도 배웠고,
회개도 배웠고,
기다림도 배웠고,
사랑도 배웠고,
찬양도 배웠습니다.
이제는
입술만이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만물을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새롭게 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늘의 선택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시편의 마지막 명령을
제 삶의 첫 번째 선택으로 삼겠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카페 게시글
성경통독
26.6.29. (시편 148~150장) 하나님을 찬양하라!.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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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6.2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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