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 공감5시
제목: 인제 정자리 기령골
1. 오늘은 기령골에 대해서 소개해 주신다고요. 기령골, 이름이 좀 기이하고 영험한데요. 어디에 있는 골짜기인가요?
기령골은 인제군 남면 정자리에 있는 마을입니다. 정자리 본 마을에서도 골짜기로 한참을 들어가면 농토가 넓게 펼쳐진 마을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 어떻게 이런 마을이 있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아주 매력적인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이 기령골인데요. 그 뜻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길영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길영동(吉寧洞)이라 하기도 하고요, 골이 길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지금은 마을사람 대부분이 채소농사를 합니다.
2. 넓은 농토가 있고 채소농사를 지으면 마을사람들도 많겠어요?
이곳은 좀 특이한 곳입니다. 제가 가서 물어보니 ‘낮농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낮농사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낮에는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마을로 들어오고 저녁이면 집이 있는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자신들이 그렇게 붙였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마을에 학교가 없어서 아이들 교육 때문에 주거지를 옮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삶의 터전인 농토에서 낮에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현재 이곳에서 정착해 살고 있는 집은 한 집인데요. 다른 분들은 임시 주거지를 만들어 놓고, 밥도 해 먹고 일하다가 쉴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그 때문에 낮에 가면 사람들이 많고 밤에 가면 마을이 비다시피 합니다.
3. 그럼 원래는 큰 마을이었나요?
제보자의 기억으로 많을 땐 23호나 되었다고 합니다. 시골의 한 반에 23호면 꽤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는 대부분 가정에 7명에서 열 몇 명까지 살 때니 약 200여 명 남짓 살았다고 볼 수 있지요. 그랬는데 1970년 중반 화전정리와 학교 문제 등으로 한 집 두 집 떠난 것입니다.
4. 마을에 가면 옛 이야기도 들을 것 아니에요. 어떤 것이 있나요?
기령골에서는 겨울이 되면 아이들이 나무로 스키를 만들어 타기도 하고, 어른들은 토끼사냥을 많이 하였답니다.
나무스키는 물푸레나무로 통상 만들었습니다. 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 나무를 잘라 스키처럼 나무를 다듬습니다. 그리고 앞부분을 불에 달구거나 여물을 끓일 때 넣고 오랫동안 불린 후 큰 나무 틈새에 넣고 휘어서 타원형으로 만듭니다. 발을 올려놓는 부분은 구멍을 뚫어 노끈으로 매고요. 긴 작대기 하나를 들고 방향을 틀고 브레이크 역할을 하면서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로 타고 내려옵니다. 기령골에서는 주로 기령고개(머그네미고개, 먹구네미고개)에 올라가서 마을을 지나 마을입구까지 이르는 곳에서 스키를 탔답니다. 스키는 겨울에 아이들이 노는 가장 역동적인 놀이였다고 옛날을 회상하더라고요.
토끼사냥은 주로 동네어른들이나 젊은이들이 많이 했답니다. 산에서 토끼를 몰아 잡아서 술을 먹으면서 하루를 놀았답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농촌에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끼리끼리 모여서 토끼사냥을 하였는데요. 다들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작대기를 하나씩 들고 토끼가 숨어있을 만한 곳을 찾아 소리를 지르면서 작대기를 풀숲에 내리치면 숨어있던 토끼가 나와 도망을 갑니다. 그러면 소리를 치면서 힘껏 몰아서 토끼를 잡는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살쾡이와 도둑고양이 등의 개체수가 많이 늘어나서 토끼의 새끼를 잡아먹어서 산토끼가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5. 다른 마을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이 마을에는 소지명으로 먹구네미고개, 수리봉, 마당바위, 뾰족봉, 지당골 등이 있습니다.
6. 마을 소지명에는 그 마다 얽힌 이야기가 있겠네요. 먼저 먹구네미고개부터?
먹구네미고개는 길영고개의 다름 이름인데요. 아까 얘기했듯이 워낙 고개가 길어서 중간에 가다가 뭔가 먹어야 허기를 면하고 넘을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부릅니다. 이 고개를 넘으면 인제군 기린면 서리라는 곳이 나옵니다. 혼례행차가 있어 이곳으로 가마가 넘을 때면 가마꾼들 고생이 많았다고 합니다. 신부는 가마에서 내리지 않는다는 풍습 때문에 아무리 길이 험해도 가마꾼들이 신부를 태운 가마를 메고 산을 넘었답니다. 신랑은 걸어가다가 집 가까이 가면 가마를 타고요.
6. 수리봉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수리봉은 마을 앞에 있는 높은 산 이름입니다. 이 봉우리에 수리가 날아들어서 불러진 이름인데요. 겨울이면 수리봉에 독수리가 뜬답니다. 수리가 앉는 바위는 수리바위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은 많은 주검이 있는 곳이라 합니다. 수리봉을 중심으로 기령골 등어리가 38선입니다. 남북이 대치하던 곳이지요. 그 때문에 6.25한국전쟁 때 전투가 많았답니다. 인민군과 중공군도 바로 이 고개로 넘어왔다고 하더라고요.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1970년대에 이곳에 나무를 하러 가면 해골이 이곳저곳에 가득했답니다. 얼마나 해골이 많은지, 다니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하더라고요.
7. 마당바위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마당바위는 기령골 가운데 있는 커다란 바위입니다. 지금도 밭 가운데 있는데요. 바위가 마당처럼 넓어서 마당바위라 합니다. 길이는 15m, 넓이는 10m정도의 크기입니다. 예전에 정자리에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이곳에 소풍을 와서 바위 위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며 놀기도 하였답니다. 그 당시 학생 120명이 마당바위에 올라갔다고 하니 바위의 크기를 알만 하지요. 큰 바위에 올라가서 올망졸망 아이들이 노래하는 모습이 재미있게 떠오르지요.
8. 그럼 뾰족봉은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마을에 뾰족봉이 세 개가 있는데요. 작은 산이 우뚝 솟아 있어서 뾰족봉이라 합니다. 그런데 가운데 있는 뾰족봉에는 이름 모를 무덤 세 기가 있습니다. 무덤 앞에는 비석과 상석과 문인석이 있으나 오래돼서 글자가 지워져 정확히 읽을 수 없습니다.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역적이 돼서 집안이 모두 몰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찾아오는 후손이 없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데, 그렇게 오래된 무덤인데도 봉분이 그대로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누구의 무덤인지 몹시 알고 싶어 합니다. 비석은 높이가 약 60cm정도 되고, 문인석은 크기가 약 1m남짓이고, 두 개인데 앞은 사람 얼굴 모양을 새겼고, 뒤는 밋밋한 모양입니다. 이 역시 오래 돼서 낡고 많이 닳았다. 참 재미있는 사실은 이 지역의 옛 무덤 문인석과 무인석은 모두 30cm에서 60cm로 크기가 아담하다는 겁니다.
9. 지당골은 어떤가요?
지당골은 마을의 산지당이 있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이곳에는 산신과 서낭신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제사일은 음력 3월3일과 9월9일입니다. 예전에는 4월 8일에도 제사를 지냈답니다. 제당은 귀틀로 만들었는데, 제당 옆에는 작은 계곡물이 흘러 마리를 손질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살 때는 제물을 집집이 해 와서 제사를 하고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며 놀았답니다. 우리나라 고대사회의 축제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신을 강림시켜 원시종합예술인 춤과 노래와 장기를 보이고 술을 마시고 난장을 연 유습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난 탓에 마을 공동으로 떡을 하고 술을 받고 마리를 잡아 제사를 하고 바로 일터로 나갑니다. 노래하고 춤추며 난장을 하던 모습은 사라진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