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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자신의 능력으로벼슬길을 달려나갔지만, 그의 등뒤에는 세인의 따가운 눈총이 항상 따라 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정도전의 외가와 관련된 신분에 얽힌 문제 때문이었다.
정도전의 출신을 공식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공양왕때부터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공양왕 3년 9월 성헌(省憲)의 관리들은 정도전을 탄핵하면서 "정도전의 가풍(家風)이 부정(不正)하고, 파계(派系)가 밝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그의 처벌을 주장하였다.
이듬해 4월에도 간관(諫官) 김진양·이확·이래·이감·권홍·유기 등이 연합 상소를 올려 정도전 등을 탄핵하면서 "정도전은 천지(賤地)에서 몸을 일으켜, 높은 벼슬에 올랐다"고 공격하였다.
이때 그들은 정도전뿐만 아니라, 조준·남은·윤소종·남재·조박 등 이성계 일파를 한꺼번에 공격했는데, 유독 정도전에 대해서만 집안을 문제삼았다.
여기서 정도전의 가풍(家風)이나 파계(派系)가 천하고 분명하지 않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대체로 외가 쪽을 겨냥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와조에 들어와서도 정도전의 외가 쪽에 대해서는 계속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먼저 《태조실록》의 정도전 졸기(卒記)를 보기로 한다.
정도전의 자(字)는 종지(宗之)요 호는 삼봉이다. ……그의 외할아버지인 우연(禹延)의 장인 김전(金 )은 일찍이 중이 되었다. 김전은 수이(樹伊)라는 종의 아내와 몰래 사귀어 딸 하나를 낳았는데, 이 여자가 도전의 외할머니이다.
우현보(禹玄寶)의 자손은 김전과 인척으로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도전이 처음에 벼슬길에 오를 때 대간에서 고신(告身, 신분증)을 지연시키자, 정도전은 우현보의 자손이 소문을 퍼뜨려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원한을 품었다.
그러다가 뜻을 이루게 되자 우현보 집안을 무함(誣陷)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우씨의 죄를 만들어 황거정(黃居正) 등으로 하여금 세 아들을 죽이게 하였다.
이 기록에 따르면, 정도전의 외할아버지는 우연(禹延 혹은 禹淵)이라는 사람이고, 외할머니는 김전(金 )이라는 승려가 자신의 종의 아내와 관계를 맺어 낳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단양 출신의 유학자인 우현보의 세 아들이 세상에 퍼뜨리고 정도전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를 때 고신을 선뜻 내주지 않았으므로 정도전이 원한을 품고 있다가 개국 뒤에 우현보의 세 아들에게 보복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현보의 세 아들은 홍수(洪壽)·홍득(洪得)·홍명(洪命)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들은 고려말에 모두 관리의 고신을 취급하는 대간의 직책을 맡고 있던 인물이었다.
정도전이 벼슬길에 나아갈 당시에 이들은 나이가 어려 직접 정도전의 고신을 취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간들에게 소문을 퍼뜨릴 수 있는 나이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태조실록》원년 8월 임신조에는 정도전의 출생에 대한 기사가 한층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을 다음에 옮겨본다.
우현보의 족인(族人)에 김전(金 )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중이 되었는데, 자기의 종[奴]인 수이의 아내와 몰래 정을 통하여 딸 하나를 낳았다.
김전의 족인들은 모두 수이의 딸이라고 말하였으나, 김전은 홀로 자기의 딸이라고 주장하면서 은밀히 그 딸을 사랑하였다.
뒤에 김전은 환속하여 수이를 내쫓고 수이의 처를 빼앗아 자기의 아내로 삼았다.
그리고 그 딸을 사인(士人) 우연(禹延)에게 시집보내고, 노비와 전택(田宅)을 모두 주었다.
우연은 딸 하나를 낳아서 공생(貢生) 정운경(鄭云敬)에게 시집보냈다.
운경은 벼슬을 하여 관직이 형부상서에까지 올랐으며, 아들 셋을 두었다. 정도전이 바로 그 맏아들이다.
정도전은 처음에 벼슬길에 오를 때 우현보의 아들들이 모두 정도전을 경멸하였고, 정도전의 벼슬이 승진할 때마다 대성(臺省, 사헌부)에서 고신에 서경(署經, 사인)을 하지 않았다.
정도전은 우현보의 자제들이 그렇게 하였다고 생각하고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공양왕이 등극하여 우홍수의 아들 우성범이 왕의 사위가 되자 정도전은 우성범 등이 세를 타고 자신의 근원을 밝힐까 두려워 우현보 집안을 모함하는 일을 꾀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위에 인용한 《태조실록》의 두 기록은 믿을 만한 것인가.
위의 실록기사는 정도전을 역적으로 몰아 죽인 태종시대에 편찬된 것이므로 혹시 정도전을 헐뜯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정도전이 밉다고 해도 수백 명이 편찬하는 실록에서 거짓말을 조작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문종대에 편찬된 《고려사》 정도전전에도 실록의 기사와 똑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한편 정도전 자신은 자기 외가의 신분을 어떻게 썼을까.
정도전이 쓴 아버지 정운경의 행장(行狀)에는 "부인 우씨(禹氏)는 ……영주의 사족(士族)인 산원(散員) 우연(禹淵)의 딸이다"라고 하여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산원 우연이라고 밝히고 있다.
외할머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 기록을 앞의 실록기사와 비교해보면 외할아버지의 한자 이름이 우연(禹延)이 아닌 우연(禹淵)으로 되어 있어서 서로 다르지만 발음은 서로 같다.
실록의 가사가 터무니없이 조작된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정도전의 출생을 전해주는 기록에는 또 《차문절공유사》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두문동 72현의 하나인 차원부(車原 )에 얽힌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그 속에 정도전의 족보를 기록한 것이 보인다.
이 기록에 따르면, 정도전의 외할아버지인 산원 우연(禹淵)은 중랑장 차공윤(車公胤)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실록에는 우연이 김전의 딸과 혼인한 것으로 되어 있고, 《차문절공유사》에는 우연이 차씨와 혼인한 것으로 되어 있어서 내용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우연이 두 아내를 가졌다고 해석하면 의문은 간단히 풀린다.
아마도 차씨는 첫째 부인이고, 김씨는 둘째 부인인 것으로 보인다.
차원부는 조선개국을 반대한 인물인 까닭에 정도전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지 않았고,
따라서 정도전의 출생과 관련한 약점을 세상에 폭로하기 위해서 그의 출생에 관한 기록을 족보에 남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충청북도 단양지방에는 예로부터 정도전의 출생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정운경이 젊었을 때 어느 관상가(觀相家)를 만났는데, 관상가는 정운경이 10년 뒤에 결혼하면 재상이 될 아이를 얻을 수 있다고 예언하였다.
이 말을 믿은 정운경은 10년간 금강산에 들어가 수양하고 고향인 봉화로 돌아오던 길에 단양 삼봉에 이르러 어느 초가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정운경은 이곳에서 우씨 여자를 만나 정을 나누게 되었고, 그렇게 낳은 아이가 곧 정도전이라는 것이다.
그는 과연 관상가의 예언대로 훗날 재상이 되었다.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三峰)이라고 한 것도 단양 삼봉을 가리키는 것이고, 도전(道傳)이라는 이름은 길에서 얻었다는 뜻이다.
단양지방에 내려오는 위 전설은 아마도 정도전에게 보복을 당한 단양우씨(丹陽禹氏) 집안이나 후세인들이 사실을 과장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에는 진실과 거짓이 함께 섞여 있다.
정운경이 금강산을 갔다는 이야기는 사실에 맞는 것 같다.
그는 젊은 시절에 가정 이곡(稼亭 李穀)과 더불어 동방[관동지방]을 여행했다는 기록이 정도전이 쓴 <정운경행장>에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도전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상당 부분 진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정운경은 나이 38세에 맏아들 정도전을 얻었다.
이 사실은 10년 뒤에 결혼하면 재상이 될 아이를 얻는다는 관상가의 예언과 상당히 일치한다.
또한 정도전의 어머니가 우씨라는 사실도 기록과 일치한다.
그렇지만, 정도전의 이름이나 호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느껴진다.
도전이라는 이름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도를 전한다는 유교적인 뜻이 담긴 것이고, 삼봉(三峰)이라는 호는 단양의 삼봉에서 차명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옛집인 개경 부근의 삼각산(三角山)에서 차명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정도전의 출생을 장황하게 소개하는 것은 한 집안의 내력을 흥미 위주로 캐보려는 뜻이 있어서도 아니요, 정도전의 집안을 흠집내기 위함도 아니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본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혈통문제가 조성왕조의 개국을 전후한 시기에는 얼마나 심각한 정치·사회 문제였던가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더욱이 이 문제는 정도전이라는 한 인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도전과 더불어 혁명의 불길을 지폈던 개국공신의 상당수가 비슷한 환경에 있었고, 또 비슷한 박해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에서...
출처 : 나의 八高祖 http://blog.daum.net/jeonryu/5056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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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자료 잘 읽었습니다.잘 알겠습니다.
호호라님!!!
반갑습니다, 내용이 너무 길어서 잘라서 게시하려했으나
이야기의 흐름을 끊을것같아서 모두 게시하였습니다~~~~이해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