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8월 28일
유니버시아드 대회 기간 중 남북 참가자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을 두고 <한겨레21>이 원고 청탁을 해서 글을 써서 보냈는데
8월 31일치 <한겨레21>에 게재되었습니다.
어느덧 20년 전 일이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우리나라의 특수성은
예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지금 읽어도 현재성이 있는 듯해서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유니버시아드대회 폐막식이 진행 중인 지금, 대구 시내의 하늘은 폭죽 소리로 요란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데다 마침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서 폭죽 불빛을 보지 못한 시민 중에는 우레가 치나 싶어 밤하늘을 쳐다보기도 합니다.
언뜻, 밤하늘은 여기서부터 저 먼 백두산 천지까지 쉼 없이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천리의 허리는 휴전선으로 동강 나 있지만 은하수로 이어진 국토의 하늘만은 매듭 하나 없이 곱게 펼쳐져 있을 테니까요. 옛 한시 중에는 은하로 가로막혀 길을 건너지 못하는 새가 님이 보고 싶어 구슬피 운다는 노래도 있지만, 우리를 가로막는 것이야 인공의 휴전선이지 천연의 은하수일 리는 없으니까요.
〈단풍〉이란 시를 아세요?
“개마고원에 단풍 물들면
노고단에도 함께 물든다.
분계선 철조망
녹슬거나 말거나
삼천리 강산에 가을 물든다.”
그렇지요. 류근삼 시인의 절창이 잘 말해주듯이 분계선 철조망이야 녹슬든 말든 천연의 단풍은 그런 것에 개의하지 않지요.
사실 이틀 전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린 남북공동문화예술행사 뒤 인터불고 호텔에서 남북 청년들끼리 만나 정겨운 말도 주고받고 함께 밥도 먹고 놀기도 하는 자리에 가서 〈단풍〉이 실린 《개불란》을 북의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었어요. 대회 장소인 대구의 민족시인이 낸 통일시집이면 주는 이든 받는 이든 ‘우리’ 모두에게 멋진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잘한다, 잘한다, 우리 선수! 잘한다!” 하고 목놓아 응원할 때 그 ‘우리’는 남과 북 어느 쪽도 아닌 우리 ‘모두’였으니까요.
응원소리가 여전히 귓전을 맴돕니다. 남이든 북이든 한쪽에서 “우리는” 하고 선창을 하면 다른 쪽에서 “하나다” 하고 이었지요. “우리 민족끼리” 하면 “조국통일”을 외쳤지요. 여자축구 결승전이 황홀하게 끝난 뒤 “다음에 또 만나요” 하고 모두들 고함을 지르면 듣는 쪽에서는 정겹게 손을 흔들어주었지요. …그때 경상도 말투로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나요? “언제 만난단 말이고?”
내 귀를 뚫고 들어온 그 바늘 같은 소리…. 그 소리는 인터불고호텔에서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아요?” 하고 묻자 “장군님이 보고 싶습네다” 하고 돌아왔다는 그 답변을 생각나게 했지요. …압니다. 국외에 나간 교사가 교장 선생님이 보고 싶다면, 국민이 대통령이 보고 싶다면 …그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지만 부모님도 보고 싶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천 주민들이 북쪽 선수와 응원단을 환영하느라 남북 정상회담 사진이 들어간 현수막을 내걸었지요. 그런데 북에서는 (8월 28일) ‘장군님’ 사진을 (장승과 주유소 철제 기둥 사이에, 그것도) 비에 맞게 걸어놓았다며 내려버렸지요. 물론 남쪽에서도 경기장 앞에서 북을 비방하는 가두방송을 한 예가 있었지요.
이러한 ‘사건’들은 개마고원에 단풍 물들면 노고단에도 ‘함께’ 물든다는 것이 시적 진실이기는 해도 과학적 진실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주는 듯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서로 알지 못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도 많음을 가르쳐주는 것이지요. “옆에 젊고 잘생긴 남자가 앉는 게 좋으냐, 나이 많고 못생긴 남자가 앉는 게 좋으냐”라는 질문에 “같은 동폰데 다 좋습네다”라고 답변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 흐뭇함만으로 서로를 확실하게 껴안기 어렵겠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대화를 나누고, 더 정성으로 애를 쏟아야겠다 싶습니다.
머잖아 단풍이 들겠지요. 분계선 철조망 녹슬거나 말거나 노고단과 개마고원에 ‘함께’ 단풍이 드는 그 날도 오겠지요. 그때까지 우리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기 위해 더욱 애써보자고요. ‘우리는 하나’니까요.
2003년 8월 31일 밤 대구에서
정만진
* 지나간 이야기를 하자면
이 글이 <한겨레21>에 발표된 이래
류근삼 선배님의 <단풍>이 매우 유명한 시로 발돋움했다는 사실이지요.
하늘에 계시는 류 선배님, 오늘 다시 <단풍>을 읽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