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아일랜드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 오랜 기간 갈등과 반목을 겪은 숙적의 관계다. 몇 백 년 동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온 아일랜드는 여러 면에서 우리와 통하는 바가 많다. 우리 민족의 한과 흥의 정서가 비슷하고, 가족과 이웃에 대해 정이 깊고, 낯선 이들에게도 쉽게 다가와 관심을 보이고 친절을 베푼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두 나라 사이의 오랜 투쟁과 갈등의 역사를 보여주는 설화인데, 영국과 아일랜드는 물론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여러 나라에 퍼져 널리 유행했고, 세부 내용이 조금씩 다른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그 줄거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트리스탄은 콘월의 왕 마크의 조카로, 용맹하고 뛰어난 무사이다. 트리스탄은 콘월에 조공을 요구하러 온 아일랜드의 기사 모홀트(Morholt)와 일대일로 맞싸워서 그를 죽이지만 자신 또한 부상을 입는다. 독이 밴 칼에 맞아 부상을 입은 탓에 콘월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했고, 이에 트리스탄은 아일랜드의 치료사인 이졸데에게 신분을 숨기고 찾아가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그녀는 바로 자기가 죽인 모홀트의 사촌동생이자 약혼녀였다. 이졸데는 이 때 자기를 찾아온 트리스탄이 약혼자를 죽인 원수라는 걸 알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갈등을 겪는다. 그렇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증오를 넘어서서 연민과 동정을 느끼고 그를 치료해 준다.
이후 트리스탄은 무사히 귀국하고, 삼촌 마크 왕은 아일랜드와의 전쟁 승리를 담보할 정략 결혼 대상을 찾는데, 하필 이졸데가 선택된다. 그리고 트리스탄이 신부를 데리러 갈 사신이 되어 아일랜드로 가게 된다. 트리스탄이 이졸데를 배에 싣고 콘월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지 마크왕에게 주려고 했던 사랑의 묘약을 둘이 함께 마셔버리고, 둘은 그대로 사랑에 빠져버린다.
콘월에서 마크왕과 이졸데는 결혼하는데, 왕과 결혼한 후에도 이미 사랑의 노예가 되어 버린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은밀한 만남을 계속한다. 결국 둘의 관계가 발각되면서 왕궁이 뒤집어진다. 여기서부터 작품에 따라 많은 분기가 생기는데 대체로 이졸데는 마크왕 곁에 남고 트리스탄은 콘월을 떠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콘월에서 쫓겨난 트리스탄은 방랑 기사가 되어 여기저기 떠돌다가 브르타뉴(프랑스 북부지역)에서 호엘(Hoel, Howel)왕을 도와 침략자들을 물리치며, 그 보답으로 트리스탄은 그의 딸이자 자기의 연인과 동명이인인 흰 손의 이졸데(Isolde, the White Hand)와 결혼하고, 그의 오빠인 카에딘(Kahedin)과 의형제를 맺는다.
트리스탄은 홀로 어떤 지방을 여행하다가 무뢰배 기사들과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이들을 격퇴했지만 이 과정에서 트리스탄은 또 독이 밴 칼을 맞고 치명상을 입는다. 이 독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자신의 옛 연인이자 최고의 치료사인 이졸데를 데려오는 것이다. 트리스탄은 이졸데를 데려오기 위해 급히 사절을 콘월로 보내면서, 돌아올 때 이졸데를 데려왔다면 흰 돛을 달고 데려오지 못했다면 검은 돛을 달고 오라는 부탁도 해둔다.
사절을 기다리던 트리스탄은 상처가 계속 악화되면서 죽어 가는데, 죽기 직전에 극적으로 흰 돛을 단 배가 해변에 나타난다. 하지만 질투심에 사로잡힌 아내 흰 손의 이졸데는 배가 검은 돛을 달고 있다고 트리스탄에게 거짓말을 하고, 낙담한 트리스탄은 그대로 죽는다. 이윽고 이졸데가 나타나 이미 죽어 있는 연인을 발견하고 절망하면서 독약을 마시고 그의 시체 위에 쓰러져서 죽는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밀월 관계가 발각된 후 마크왕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죽이려고 하지만 두 사람은 극적으로 도망쳐서 숨어 지낸다. 이후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세상사를 잊고 나름 즐겁게 지내는데, 질투에 사로잡힌 마크왕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은신처를 알아낸 후 기습해서 트리스탄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결국 트리스탄이 죽자 이졸데도 따라 죽는다.
이 극적이고 비장한 설화는 많은 작가들에게 인기 있는 제재가 되어 다양한 문학 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 바그너의 오페라로도 만들어져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