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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행복결심(3) 예수님처럼 베푸는 삶을 삽시다!”
+ 본 문 : 창 세 기 50장 15절 - 21절 (구약성경 81쪽)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아멘!
서로 인사 / “잘 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오늘 설교는 예수님처럼 베푸는 삶, 예수님 닮은 삶을 살자는 내용입니다.
눈이 많이 오면, 모든 나무들이 눈꽃을 피어 온 세상이 완전 하얀 눈 꽃밭이 됩니다.
길이 빙판이라 좀 불편하지만, 우리 지역은 따뜻해 금방 녹아, 그 정도 불편은 참아야죠.
대신 온 세상 하얀 눈꽃을 보잖아요. 아름다운 눈꽃을 볼 수 있음은 4계절의 축복입니다.
하얀 눈꽃 하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SNS에 좋은 글과 함께 올라온 동영상인데,
노란 민들레꽃이 지면, 둥그런 하얀 민들레 씨앗들이 또 하나의 꽃처럼 피어납니다.
그리고 그 하얀 민들레 씨앗들이 바람에 날아가, 어딘가 또 다른 생명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 민들레 씨앗들을 보면서, 저는 노아 홍수 때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과 짐승, 식물들은 비가 내리자 야단났습니다.
동네에서 살던 사람들과 산에서 살던 산 짐승들은, 물이 차오르자 산 위로 도망갑니다.
문제는 식물들입니다. 그렇잖아요. 식물들은 잠시 도망갈래야 도망갈 수도 없잖아요?
그 식물들 중 민들레의 고통은 더했답니다. 몸집도 작아 장대비를 온 몸에 멍이 들도록,
맞으며 숨이 막히는데도 뿌리가 땅에 찰싹 달라붙어서, 옴짝 달싹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폭우를 견디다 못한 민들레는, 서럽게 울면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제가 비록 장미처럼 아름답지도 못하고, 백합처럼 향기도 없지만, 한 번만,
살려주시면 사람들에게 꿈을 전하겠습니다." 이런 민들레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찬 바람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바람에 실려 멀리 멀리,
날아간 민들레의 깃털 달린 하얀 씨앗는 노아의 방주에 살짝 내려앉았고,
드디어 홍수가 멈춘 어느 날, 민들레는 방주의 지붕위에 노란 싹을 틔어냈답니다.
여러분! 바로 이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 입니다.
왜 민들레의 꽃말이 감사하는 마음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자기 몸은 비록 땅바닥에,
찰싹 붙어 있지만, 그 꽃씨는 흩어 나눔으로 또 다른 곳에서 꽃을 피우고,
그렇게 노랗고 예쁘게 피어나는 민들레꽃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고,
아름답고 행복한 마음을 주기 때문에 민들레의 꽃말이 "감사하는 마음" 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민들레의 하얀 씨앗이 40km까지 멀리 하늘을 날아갑니다.
그렇게 날아가 어디에나 뿌리를 내리는 그 생명력, 그 어떤 식물도 누리지 못하는,
놀라운 민들레꽃의 특성은, 절망 속에서도 생존의 법칙을 우리에게 알게 해줍니다.
그래서 민들레꽃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과 함께 생명력, 생존의 법칙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민들레꽃의 하얀 씨앗들처럼 감사한 마음으로 흩어 나눔으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는 내려놓음의 삶, 온전히 내려놓는 삶이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는 내려놓음과 온전히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로 베푸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내 중심의 이기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최고의 삶을 누리고 번영하기를,
바라시며, 우리를 위해 많은 축복을 주십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가 베푸는 삶을 살면,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누리고 살아가는 삶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렇게 사는 걸,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도 없고, 오직 자신에게만,
무엇이 필요한지, 자신의 유익만이 관심사입니다. 심지어 가족까지도 외면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자기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면 행복할 것 같은데, 사실은 더 불행합니다.
옛날에 어떤 부자가 늙어 임종을 맞자, 살만큼 살았지만 죽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자기가 고생하며 벌어 놓은 많은 돈을 그냥 두고 죽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치 않아, 유명한 지혜자를 모시고 위로의 말씀을 듣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모셔 온 지혜자는 아무 말도 않고, 그냥 그 부자 곁에 앉아 있기만 하였습니다.
부자는 답답한 마음에 헛기침을 하면서,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기를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지혜자가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뱉습니다. “자네는 죽지 않네.” 부자가 화를 내며,
“아니 농담을 하십니까?” 지혜자가 말합니다. “자네는 산 적이 없는데 어떻게 죽겠나?
평생을 살아오면서 자기의 욕심만 채우며 살아온 삶을 어찌 삶이라 부를 수 있겠나?”
그렇습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누리고 살아가는 삶은 산 것이 아닌 죽은 인생입니다.
어느 유치원에서 손님이 오시기로 해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인사법을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오늘 선물을 받으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인사법을 배운 후, 손님들이 오시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다 나누어 준 후에, 선생님께서 한 아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손님들에게 선물을 받으면,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그러자 첫 번째 아이가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너무너무 잘했어요."
그리고 두 번째 아이에게도 "선물을 받고 나서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지요?"
두 번째 아이 역시 공손하게 인사를 하면서 또박또박 말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세 번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선물을 받고 뭐라고 인사해야 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세 번째 아이는 선생님의 질문을 받고도, 눈만 껌벅거리고 말없이 서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힌트를 줍니다. "자, 잘 생각해 보세요. ‘다’ 자로 끝나는 인사에요."
그러자 그 아이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뭐 이런 걸 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말 대신에 “뭐 이런 걸 다” 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그때부터 우리는 주기를 좋아하기보다는 대접받기를 좋아하고,
칭찬하기보다는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낮아지기보다는 높아지기를 더 좋아하는,
나 자신의 타락이 시작되는 때라고 하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참 기쁨과 행복을 맛보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께의 축복과 은혜를 경험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자신을 먼저 잊으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까를 계산 말고, 먼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뭘 해줄까를 고민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나를 대접해주고, 존경해주고,
섬겨주기를 원하지 말고, 내가 먼저 대접하고, 내가 먼저 존경하고, 내가 먼저,
많이 베풀어 주고, 내가 먼저 섬겨 주는 긍휼사역을 많이 하며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지으실 때, 자기만을 아는 이기주의적인 존재로 살도록,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조건 은혜와 사랑을 베풀고 계시듯이,
우리도 그렇게 베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풀며 사는 법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먼저 받는 법이 아니라, 내가 먼저 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섬기는 마음으로 나누고 베풀 때에,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베풀어 주시며,
내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줄 때, 하나님께서도 나의 필요도 채워 주십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도울 때, 하나님이 내 꿈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는 중심이 되는 핵심 단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경에 “믿는다.(believe)” 또는 “믿는 사람(believing)” 이라는,
단어가 275회 사용되었습니다. “기도하다.(pray)” 또는 “기도하는 사람(prayer)” 이라는,
단어는 371회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다(give)” 또는 “주는 것(giving)” 이라는,
단어는 놀랍게도 2,162회나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강조하는 말씀은 “주는 것 - 곧 베푸는 삶” 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고의 것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십니다.
교회 안에서 신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가지려고 하는 사람과 주는 사람입니다.
계속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무엇이든지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는,
이기적인 교회입니다. 직분받기 위해서 일하고,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이기적인 성도입니다. 그러나 서로 주고 베풀려고 하고,
베풀기 위해서 애쓰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충만한 교회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힘들수록, 내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관심을 옮겨야 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일이 무엇이든지, 혹 내가 저지른 실수와 실패 때문에 온,
어려움이라도 잊어버리십시오. 정말 기쁘고 행복한 삶으로 180도 바꾸어버리려면,
모든 걸 잊고 내 관심의 초점을 바꾸면 됩니다. 우리 곁에는 몸이 많이 아프고,
마음과 영혼이 많이 아프고, 삶이 아프고, 가정이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바로 그렇게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나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나보다 더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로, 내 눈을 돌리고, 내 마음을 돌리고, 그들의 짐을 덜어주고,
그들에게 힘과 소망을 불어넣어 주므로, 그들의 삶을 바꾸는 일에 힘써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힘들고 어려운 내 인생도 바뀌고, 아팠던 내 아픔도 다 치유됩니다.
내 몸과 마음과 영혼에 기쁨이 샘솟게 됩니다. 내 모든 삶이 행복해집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데도, 여전히 속으로 “내 코도 석잔데!” 하시는 분 계십니다.
여러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겐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힘든 사람에게 환하게 웃어 줄 수 있는 웃음도 있고,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줄 수 있고, 약하고 병든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고, 꼭 안아 주고,
섬겨 주며, 기도해 줄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정말로 힘들어하는,
사람의 아파하는 소리, 푸념 섞인 소리를 들어만 주는 것도 베푸는 삶입니다.
이처럼 돈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널려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역들도 생각해 보면, 모두 다 베푸는 삶들입니다.
이렇게 예배를 위해 성가대로, 찬양단으로 주님을 찬양하므로, 은혜 받도록 돕는 일들,
안내 헌금위원, 예배기도자, 성경봉독자, 차량안내자들, 모두 다 성도들로 은혜 받도록,
베푸는 일입니다. 주방에서 수고 많이 하시는 분들, 교회 재정을 담당하시는 분들도,
사역을 통해 베푸는 일들입니다. 당회, 남선교회, 여전도회, 교회학교 교사들도,
셀 목장의 목자, 부목자, 목원들도, 다 그 사역을 통해서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중보기도자들도 영적 사역으로 나누고, 섬기고, 베푸는 일을 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도하는 일도,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는 분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여러분 모두 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영혼들을 세우기 위해 돌보며,
위로하며, 격려하며, 베푸는 정말로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거니와 매해, 교회 안의 사역들로 베푸는 삶이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렇게 베푸는 삶을 살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58장 7절, 8절,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고 나누고, 섬기고 베풀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병든 몸의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라!” 아멘!
나누고 섬기고 베풀면 병든 내 몸이 급속히 치유되고, 내 마음의 상처도,
저절로 나아 기쁨을 되찾고, 하나님께서 죄 많은 나를 의롭게 하시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친히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의 영광이 내 영광이 되고,
나로 복의 근원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다는 엄청난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언가를 베푼 만큼, 하나님께서 풍성히,
갚아주십니다. 그래서 베푸는 삶은 복을 받는 영적 원칙입니다. 우리가 웃음을 주면,
남도 웃음으로 응답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아낌없이 베풀면, 내가 어려울 때,
그 누군가를 통해서 반드시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얼마나 베푸는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내가 받기를 원하는 은혜와 사랑, 축복도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삶을 점검해 보십시오. 나는 다른 사람을 선으로 대하는 복 받는 삶을 살았는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고 이해심 넓은 복 받는 삶을 살고 있는지?
얼마나 사랑의 언행을 보였는지? 다른 사람들을 특별한 하나님의 작품으로 여기며,
존경하는 삶을 살았는지를 반드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베푸는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도 결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영국 국회의원이 선거 유세를 위해 에딘버러 역에 내려 마차로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차바퀴가 진흙탕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그때 한 소년이,
도와주어 바퀴를 뺄 수 있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너무 감사해서 그 소년에게 사례를,
하려고 하자, 그 소년은 정중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국회의원이,
“너는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어 살고 싶니?” 라고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그 소년은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고, 그 국회의원의 도움으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세계적인 정치인 윈스턴 처칠이 모로코 회의에 참석했다가,
패혈증에 걸려 죽을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때 마침 페니실린이 발명되어 살아날 수,
있었는데, 페니실린을 발명한 사람은 국회의원을 도와주었던 ‘알렉산더 플레밍’ 이었고,
그 소년 플레밍이 의학 공부를 하도록 도와준 국회의원은 윈스턴 처칠의 아버지인,
‘랜돌프 처칠’ 이었습니다. 사랑을 베풀면 언제나 사랑은 더 크게 돌아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악을 악으로 상대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누군가가 내게 무례하게 굴고,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일로,
내가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에, 누군가 나를 비난했다고 똑같이 비난하고,
누군가 내 험담을 했다고 똑같이 KO 펀치 날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시원할 것 같죠?
아닙니다. 지나놓고 보면, 상처는 상처대로 남고, 내 삶만 더 비참해집니다.
그러므로 악을 오히려 선으로 이겨야 합니다. 오히려 넓은 마음으로 무조건 용서를,
해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악을 이기도록 힘주십니다.
결코 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당장은 상처 때문에 아프고, 다 잃은 것 같고,
내가 진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그것이 아님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고,
정당한 보상까지 해주셨고, 승리자로 세워 주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악을 악으로 갚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누구보다도 이런 베푸는 삶을 살았던 사람을 들라면,
요셉을 떠올리게 됩니다. 요셉의 형들은 채색 옷을 입은 동생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깊은 웅덩이에 빠뜨린 후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요셉의 형들은 마지막,
남은 양심 때문이었는지, 죽이지는 않고 애굽의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남의 집 종살이를 하는 노예생활에서 주인의 신임을 얻어 그런대로 살만 하니까,
이번에는 주인집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죄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그렇게 13년 동안 온갖 고난을 다 겪은 후에, 비로소 애굽의 2인자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대로 7년 풍년과 7년 흉년이 이루어졌고, 그 일을 책임지고,
일하는 어느 날, 요셉의 형들이 식량을 구하려고 애굽에 왔습니다. 그들은 처음엔,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제가 요셉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 때, 요셉의 형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요셉이 자신이 겪었던 13년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감옥에 보낼 수도 있었고,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은혜를 베풀고, 필요한 음식과 양식도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내가 받은 고난과 아픔을 다 잊고, 오히려 용서의 은혜를 베푼 요셉!
어찌 축복을 받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더라!”-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처럼 자비와 긍휼을 베풀고, 용서의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정말을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장은,
손해를 보고, 패자가 되더라도 주의 이름으로 선을 베푸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선을 베푸는 우리의 선한 마음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일거수일투족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선을 베푸는 자에게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주시고, 에벤에셀의 도움도 주십니다.
여러분! 베푸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이기 때문에 반드시 축복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없이 베풀어 주시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기까지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내 생명을 주기까지 주님처럼 베풀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내려놓음의 삶은 반드시,
베푸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베푸는 삶을 살아갈 때에, 반드시,
축복으로 되돌려 받게 됩니다.(눅 6:38, 시편 112:5-6) 그래서 주는 삶, 베푸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베푸는 삶이 복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최용우 씨의 짧은 동화입니다. 어떤 마을에 왕소금보다도 더 짠 구두쇠,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너무 풍족하여 부족함이 전혀 없는데,
도무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법을 몰랐습니다. 그 구두쇠 할머니의 옆집에는,
반찬장사를 하는 가난한 할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반찬이 맛이 없어 손님도 별로 없는데,
그 반찬가게 할머니 집에 가면, 빈손으로 돌아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베푸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칭찬했습니다.
어느 날 구두쇠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구두쇠 할머니를,
동네 공동묘지 한 구석에 묻었고, 그후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도,
할머니의 무덤을 찾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두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반찬가게 할머니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돕지 않는 것입니다. 마을교회의 목사님이,
반찬가게 할머니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할머니, 잘 지내셨어요?
요즘 어려운 사람 돕기를 중단하셨다면서요?” 그러자 반찬가게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실은 오래 전에 구두쇠 할멈이 나를 찾아와 돈을 주면서, 자기 대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했습니다. 난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그 할멈이 하도,
간곡하게 부탁을 하는 바람에, 그러마 했지요. 그 뒤로도 계속 돈을 주어 나는 덕분에,
내 돈 한 푼 안 쓰고 좋은 할미가 되었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참 이상한 게 사람들은,
나한테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는지 물어보지 않았어요. 생각해 보세요. 반찬도 잘,
안 팔리는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내놓을 수 있겠어요? 그 구두쇠 할미는,
자기가 죽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해서 제가 말을 안 한 것 뿐입니다.”
목사님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반찬가게 할머니에게 들은 말을 전했습니다.
“할머니는 사람들이 뒤에서 구두쇠라고 흉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예수님 말씀대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실천하시다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감동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분명히 할머니는 지금 천국에서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 계실 것입니다.”
잠언 22장 9절입니다. “베푸는 자는 복을 받으리니,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시편 112편 5절, 6절 말씀입니다. / “베풀며 잘 돕는 자는 선한 것으로 돌려받으며,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아멘!
잠언 19장 17절 말씀입니다. /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 아멘!
베푸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 꾸이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그 선행을 갚아 주십니다.
그래서 베푸는 삶은 하늘나라에 투자하는 것이요.(딤전 6:19)
그리고 베푸는 삶은 행복을 가져오는 삶입니다.(대상29;10-17)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바로 베풀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더 행복하고 기쁘게 살려면 베푸십시오. 내려놓음의 삶은 행복을 가져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풀고 나누는 삶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저와 여러분의 세대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자자손손 대대로 영원히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우리들의 내려놓음의 삶을 기뻐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