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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잠언서 강해(19) /
“징계가 가져다주는 복(福)과 화(禍)”
+ 본 문 : 잠 언 12장 1절 - 12절 (구약 p.921)
1.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2.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3. 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4.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5.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6.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7.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8.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9.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10.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11.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12. 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아멘!
+ 서로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
+ 찬양하겠습니다. /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서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함께 봉독한 말씀과 뜻이 통하는 말씀들이 잠언서에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잠언 3:11-12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아멘!
잠언 5:11-14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약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큰 악에 빠지게 되었노라 하게 될까 염려하노라.“ 아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그 종말이,
비참하게 된 사람이 후회막심해서 울부짖을 것을 경고한 무서운 말씀입니다.
잠언 9:7-8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리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아멘!
잠언 10:17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잠언 13: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언 15:5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잠언 15:12 “거만한 자는 견책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
잠언 19:18 “네가 내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고 죽일 마음은 두지 말라!“
소망 있는 아들을 징계해야 바로 되지, 소망 없는 자식은 징계하면 오히려 빗나갑니다.
잠언 23:13-1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 찌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아멘!
지금까지 봉독한 말씀을 보면 ‘징계’ ‘경계’ ‘훈계’ ‘견책’ 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특별히 “징계”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무사르’ 인데, 그 뜻은 과실을 범한 자에 대한,
처리이지 형벌은 아닙니다. 그저 쉽게 말하면, 사랑하는 아이가 잘못된 길로 나갈 때,
부모가 훈계하고, 때로는 책망하고, 어떤 때는 채찍으로 매를 드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어떤 때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한 분이나, 그런 고통 속에서,
살아가시는 분에게 ‘힘드시죠? 주님께서 힘주십니다. 힘내세요.’ 하고 위로합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오히려 ‘예, 이번에 하나님께 되게 맞았습니다.' 하고 웃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어린 아들이 아버지한테 불려 들어가서 굉장히,
심한 꾸지람을 받고 얼굴이 벌개서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매맞은 자리를 툭툭 털면서,
“아버지한테 혼났어! 다신 안 그럴테야.‘ 하는 천진스러운 모습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징계란 성경이 말씀하는 것처럼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너무너무 아픈 일입니다.
눈물이 나는 힘든 일입니다. 손해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받느냐 하는데에 따라서 징계가 축복이 될 수 있고,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옛날 시인들 가운데도 어려움을 당할 때,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시편 73편에,
도무지 인간의 이성으로는, 자신이 당한 고난의 이유를 알 수 없어 고민합니다.
세상에서 악한 사람은 오히려 건강하고, 살이 찌고, 고난도 없고, 재앙도 없고,
그들이 소원했던 것보다 더 얻고, 그래서 교만하고, 죽을 때도 편안하게 죽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신앙을 따라 바르게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일로,
심한 고통을 당하며, 힘든 징책을 당하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하면서 이 의문을 도저히 풀 수가 없었습니다.
시편 73편 16절, 17절에 보면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 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그러면서 21절부터 28절 말씀에서 “내 마음이 산란하여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아멘!
이 시인은 고통 속에서 낙심할 뻔하였으나,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오히려 어려움이 극심한 속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주님의 능력이 오른팔이,
자신을 강하게 붙들고 계심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입니까?
어린이들도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아버지를 신뢰하면, 아버지가 매를 때리면,
때릴수록 도망가지 아니하고, 아버지께로 가까이 가면서 아버지 품에 매달리면서,
“아버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아버지! 제발 용서해 주세요.”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도 품에 안기는 사랑하는 아들을, 더 이상 때릴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혹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지 말고, 어려움이 클수록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주님 품에 꼭 안겨야 합니다.
그러기에 시편 32편 9절에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하나님 품에 안겨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에, 우리가 당하는 고통스러운 고난은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 됩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고난을 믿음으로 잘 이겨낸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119:67절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리고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은, 정말 힘든 고난 가운데서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욥기 5:17-20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란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란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 -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에가드(Egard)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사탄의 만짐과 사랑보다 오히려 낫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게 하시려고,
징계하시지만, 사탄은 우리를 망하게 하고, 죽게 하려고 만지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징계 그 자체가 우리에게 괴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살리기 위해, 우리에게 축복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무대입니다.(히 12:5-13)
그러므로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에, 그 고통을 원망하고,
그 고통을 피하려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의심해야 합니다.
징계의 동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는 소원과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한 깊은 배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고통을 당했을 때에, 믿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품에 꼬옥 안김으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8장 5절 이하의 말씀에서 보면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좀더 넓은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들에게는 고통이 있습니다.
물론 누구나 고통당하며 살아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이 원치 않는 고통이지만, 이 세상에 고통이 있는 것은 현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고통이나 환란을 당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든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믿지 않는 불의한 사람들처럼 여러 가지,
고통스럽고 너무 힘든 일들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쓰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고통 가운데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에는,
불신자들과 똑같이 질병이나, 사고나, 실패나, 슬픔의 고난을 당하며 삽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 고난을 통해서 더 나은 삶, 더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꼭 같은 용광로에 나무가 들어가면 타버리지만, 금광석이 들어가면 금이 아닌 부분은,
다 타버리고, 순금만 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금광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당한 경험을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불쌍한 계집종의 병을 고쳐준 죄로,
억울하게 관청에 잡혀가서 아주 많이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힘을 당하고,
착고에 채워져서 부자유한 가운데 지내는, 죄수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기가 막히고,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분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만하면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고통스러운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과 실라는 그런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리고, 얽메었던 착고가 풀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바울과 실라가 높은 테너 음으로 찬송을 불렀더니,
하나님께서는 지진을 통해서, 낮은 베이스 음으로 화답하였다고 해석하였습니다.
하여간 이런 가운데서 자결하려던 간수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빌립보교회가 더욱 든든히 서가는 부흥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비록 고통을 받았지만, 그 고통을 축복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귀한 신앙의 자세입니까?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옥중생활 중에서도,
감옥 밖에서 자유롭게 평안히 사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한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옥중에서도 바울은 이와 같은 기쁨이 있었고, 그 기쁨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과 실라의 체험만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을 가진 성도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불신자들이나, 우리들이 같은 고난을 당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자포자기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타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과 고난을 이용해서, 더 높은 성숙한 신앙인으로 도약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기는 능력을 주십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로마서 8:35, 37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거뜬히,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우리의 영혼을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게 하고,
위엣 것을 바라보게 하며, 신령한 위엣 것 - 하나님의 것을 소유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같은 슬픔, 같은 병, 같은 고난, 같은 실패를 통해서 새로운 꿈과 용기를 얻고,
새로운 능력을 얻어서 실패를 승리로 바꾸고, 탄식을 찬송으로 변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고통스러운 환난이 당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시편 50편 15절에 보면 우리에게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07편 4절부터 7절에서는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서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으로의 삶에, 어려움 당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러나 혹시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해도 낙심하거나,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오히려 담대하여 믿음으로 그 모든 어려운 일들을 잘 이겨, 오히려 그 고난 후에,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