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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지혜를 가진 자의 기쁨
설교본문 : 잠언 8:22~36, 빌립보서 1:12~21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15년 9월 6일
우리는 지난 월요일(8월 31일)까지 전제 제 3부로 되어 있는 잠언의 제 1부인 9장까지 큐티했습니다. 잠언 1부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명철이 그 주제입니다. 그리고 1부를 마감하는 8장과 9장에서 지혜를 현숙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를 파멸로 인도하는 세상의 모든 유혹을 음녀로 표현한 것처럼 지혜를 우리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된 세계로 인도하는 현숙한 여인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잠언 제 1부에서 증거한 지혜와 명철에 대하여 정리하고, 그 지혜를 가진 자의 예화로 빌립보서에 나온 바울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1 부 : 지혜와 명철
1. 창조 이전부터 있었던 지혜
잠언 8:22~26을 보면 지혜가 여호와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부터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과 바다와 하늘을 만드시기 이전에 이미 지혜가 태어났습니다. 24절과 25절에서 ‘이미 났다’고 한 것은 여인의 양수가 터져서 태어났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그때 지혜가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혜가 태어났다는 것은 그때 지혜가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드실 것인지, 그 세상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를 계획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원리와, 그 창조된 세계를 운영하실 운영의 원리를 정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실 계획을 세우신 것을 지혜가 태어났다는 식으로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잠언에서 우리를 파멸로 인도하는 악의 세력을 의인화하여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가진‘음녀’로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할 하나님의 지혜를 현숙한 미를 가진 여자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지혜가 태어났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 주의할 점 : 이 부분의 이단의 거짓 교설에 조심하십시오.
요한복음 1장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했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요한이 말한 말씀은 성삼위 하나님 중에서 말씀의 역할을 하신 예수님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일부 이단에서 요한이 말한 말씀과 잠언 8장의 지혜를 같은 것으로 보고, 본문 잠언 8:24~25에서 태초에 지혜가 태어났다고 했으니 예수님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므로, 예수님을 섬겨서는 안 되고 성부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짓 이단이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잠언 8장에서는 악을 음녀로 표현한 것처럼 지혜를 현숙한 여인으로 의인화했을 뿐입니다. 24~25절에서 지혜가 태어났다고 한 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계획을 세우셨다는 것을 마치 사람이 태어난 것처럼 의인법을 사용한 것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음녀가 실제 존재하는 여자가 아닌 것처럼, 지혜 역시 실제 살아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하나님과 함께 창조의 작업에 참여한 지혜(잠 8:27~31)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지혜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만드실 때에도, 땅과 바다의 경계를 정하실 때에도, 하늘에 구름이 떠 있도록 하시고, 바다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그 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30절의 ‘창조자가 되어’는 지혜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을 뜻합니다만, 위 1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지혜가 사람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세상을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세상을 만들었다는 뜻이고, 그 창조의 원리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지혜라는 것입니다.
3. 지혜를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지혜의 원리대로 세상을 만드셨고, 이 지혜의 원리대로 지금도 세상을 운영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지혜를 갖고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생명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간절함으로 지혜를 받으려 애쓰는 자들은 그 지혜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혜를 따라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질서대로 살아가는 것을 뜻하고, 지혜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혜를 멀리하는 자는 스스로 지옥을 택하여 사는 것임을 기억하여 말씀을 거부하지 말고, 오히려 말씀을 신부처럼, 사랑하는 애인처럼 사랑하는 자가 되기 바랍니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9장10절)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성경 말씀에서 지혜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은, 어떤 말씀을 보든지 간에 그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잘 믿으라든지, 회개하라든지, 사명에 더욱 충성하라든지, 혹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망이 있든지를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찾아내기만 할 뿐입니다. 그 말씀을 찾은 후에 조금 부지런한 자는 그것을 노트에 적고 주께 그 문제를 두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쌓여서 명철이 됩니다. 마치 콩나물에 물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도 그 물을 먹고 콩나물이 자라듯이 우리가 말씀에서 지혜를 찾는다고 할지라도 곧 잊어버리고 마는데, 그래도 그것이 쌓여서 우리 안에 명철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사리를 분별하는 분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제 2 부 : 지혜의 기쁨을 가진 바울
1. 기뻐할 수 없는 환경에 있었던 바울
빌립보서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경에서 제일 큰 도시입니다. 상업이 발달하여 크게 부유한 도시입니다. 특히 금광이 유명한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가 부유한 도시라는 것이 빌립보 교회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평민과 노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금광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리니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대부분은 가난과 노역에 시달리는 고달픈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고된 노역의 고달픔에 시달리고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기뻐하라’는 주제의 편지를 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기뻐하라는 편지를 쓰는 바울의 처지야말로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때 다음과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1) 비겁한 예루살렘 교회
바울이 기뻐할 수 없는 첫째 이유는 바울의 옥살이가 예루살렘 교회의 비겁한 행동으로 인하여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였습니다. 야고보는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이고, 이방인에게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 사이에 큰 분노가 있다면서 그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7일간의 정결예식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그 길고 긴 옥살이를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을 위해 그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바울 혼자 다 감당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억울한 옥살이
바울의 억울한 옥살이는 야고보의 조언에 따라 행한 정결예식이 다 끝나갈 무렵 이방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알아보고는 바울이 이방인을 예루살렘 성전 안에까지 데리고 들어왔다고 거짓으로 고발하여 이를 지켜보던 유대인들을 잔뜩 흥분시켜서 시작된 일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예루살렘 성 안에까지만 데리고 들어왔지 성전 안으로는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확인도 해 보지 않고 단지 바울이 밉다는 이유로 바울을 고발하여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3) 이유 없이 계속되는 옥살이
거짓된 고발로 옥에 갇혔고 그 심문 과정조차도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후에는 그에게 죄가 없는 줄 모두가 다 알게 되었지만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생각하느라 바울을 풀어주지 않습니다. 가이사랴의 총독 벨릭스는 바울에게 돈을 받을까 싶은 생각에 별 이유 없이 바울을 감금하여둡니다. 그렇게 해서 죄 없는 바울이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옥살이를 합니다.
4) 로마에서도 지루한 옥살이는 계속되고
로마로 압송된 후에는 빌립보 교인들이 보내준 돈으로 로마 황제의 궁궐 근처에 있는 소위 셋방에서 감금된 채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아무런 이유 없이 재판도 받지 않은 채 18개월 동안 감금되었습니다. 로마에서 미결수가 재판도 하지 않고 18개월이나 지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길어야 6개월 안에 재판이 끝나 기결수가 되어 감옥에 가든지 무죄 방면이 되든지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유 없이 18개월이나 미결수 상태로 있습니다.
17절은 이때 바울이 이유 없이 오래 감금된 것이 바울을 경쟁상대로 여긴 시기와 다툼으로 하는 자들이 바울을 괴롭게 했다고 하여, 이 일이 바울의 경쟁자들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자신을 복음의 도구로만 여기는 바울
바울이 이런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그가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갇혀있지 않으면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예루살렘의 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두 명의 총독들과 아그립바 왕,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과 그들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그가 죄인이 되어 그들 앞에 심문을 받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심문을 하는 과정에서 바울에게 자신을 위한 변론의 기회를 주었고, 바울은 변론의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2) 로마 황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서의 2년의 투옥 기간이 지나고 로마에 압송되어서도 거의 2년 가까운 감금 생활은 계속 되었습니다. 로마에서는 소위 ‘셋방’이라 불리는 곳에 감금되었는데, 감금된 죄인은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은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었기에 셋방이라 불리웠습니다. 그가 그 곳에서 감금되어 있는 동안 로마의 궁에 있던 약 6000여 명의 상주인구 중 1/3이나 되는 사람들이 바울에게 복음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갇혀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3) 오직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기뻐하는 바울
바울은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이 바울의 갇힌 일을 이용하여 분쟁과 투기의 방법으로 자기의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세력들을 향하여도, 그 일을 인하여도 증거 되는 것은 복음이니 그를 인하여 기뻐하고 또 기뻐하리라고 말합니다.
●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바울
자신을 오직 복음의 도구로만 여기는 바울, 자유할 때나 옥에 갇혀 있을 때가 그의 오직 한 가지 소원은 그의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언제 어떤 상황이 닥쳐오든 항상 이런 정신으로 살아갔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돌로 맞아 거반 죽게 된 상황에서도 그는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자신이 돌을 맞았던 그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3 이런 상황에서 바울이 기뻐할 수 있었던 원인
1) 삶의 목표와 관심이 다르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복음을 증거하는 데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고, 자신을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는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자들로 인하여 더욱 고통스럽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으로 인하여 복음이 전해지니 오직 그것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기뻐합니다.
2) 기쁨의 주제가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손에 무엇인가 주어져야만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담긴다고 할지라도 죽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또 내가 갖지 못한 새로운 것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 새로운 물건이 나에게 주는 기쁨은 고작 한 달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 물건으로 인한 기쁨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또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이렇게 끝없이 새로운 것만 찾다가 멸망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를 영원토록 기쁨의 세계로 인도하는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전하는 사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비록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그 일로 영원한 기쁨을 전하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으니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무엇보다도 바울은 지혜를 가진 자였으므로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예수님으로부터 특별 개인 지도를 받을 때 소위 3층천이라 불리는 천국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직접 하나님 나라를 눈으로 보고 경험한 자였기 때문에 그가 복음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즐겁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이렇게 땅의 것이 아니라 저 영원한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 묵상 : 내가 바울처럼 주를 위해 살아갈 수만 있다면
만일 우리가 주를 위해 살아가려는 간절한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얼마나 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놀라운 은사들이 내가 이 세상 것을 더 얻으려고 마음을 쓰는 동안에 내 안에 그저 쌓여만 있습니다. 바울처럼 주를 위해 일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가 된다면 당신도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됩니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를 위해 일하려는 간절함이 없는 것입니다.
4 바울의 소망
1) 바울의 믿음 : 성령께서 자신을 자유하게 하실 것이다
바울은 비록 자신을 경쟁관계로 아는 시기와 질투로 행하는 자들이 바울을 더욱 괴롭게 한다고 할지라도 빌립보 교인들이 기도하고 있고, 성령께서도 자신을 돕고 있으니 조만간 감옥에서 풀려날 것이라고 말합니다(19절).
2) 바울의 소망 :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
그러나 바울이 이제 곧 감옥에서 나가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가 진짜 바라는 것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가 옥에 갇혀 있단 자유를 얻어 밖으로 나가든 상관없이 오직 자신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는 것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영역이 넓혀지는 것과, 이 땅에 주를 찬송하는 자들이 더욱 많아지는 것을 뜻합니다. 주의 이름을 높이는 자가 많아지는 것이 곧 주께서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주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는 일이라면 자기가 옥에 갇히는 일이라도 감사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 묵상 : 이런 사람들을 통해 복음은 증거됩니다.
바울같이 자신의 몸이 복음 증거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소원으로 삼고,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을 가장 기뻐할만한 일로 여기는 자들로 인하여 지금도 복음은 증거 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로 전도하고, 어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오래 섬김으로 복음을 증거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일로, 또 어떤 이들은 직장과 같이 자신이 속한 곳에서 변함없이 성실하게 일함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이 중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일이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시작하십시오. 당신도 그 일로 인하여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의 원리가 바로
지혜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지혜대로 사는 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생명의 복을
받는 것임을 믿어서
주께서 주신 그 지혜대로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께서 정하신 지혜를
우리에게 주어
지혜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어떤 환경에서도 기뻐하고
또 기뻐하게 하옵소서.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 자신을
복음의 도구로 여기고,
또 그렇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악한 시대에
생명을 구하는 능력을 가진
참되고 신령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