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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비평-생각나누기」
김연수 「일기예보의 기법」에 대한 탐구
현비 11기 이수민
1. 들어가기
무협지에 보면 항상 스승과 제자가 나온다. 스승의 가르침을 제자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거기에 매진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가끔 변형된 이야기라면 싸가지 없는 제자가 “이딴 걸 왜 해야 해요?”라는 말로 대들기도 하고 맞기도 하면서 배운다. 먼 훗날에 필시 진리를 알 터이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처음 걸음을 떼기란 그렇게 어렵다.
나도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분명 이유는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무엇을 얻기 위해서? 끊임없는 질문을 해본다. 비평과 창작은 상극인가? 동일한 길인가? 소설을 읽으면서 그 기교와 마음을 새기며 시작하라는 뜻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마치 심해에 빠져 허우적대는 느낌이며 떠다니는 미역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모르더라도 발버둥 쳐야 하는 것을 안다. 끊임없는 자기 다짐도 해주고 욕도 섞어가며 전진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빛을 보기 위한 어둠 속의 대기시간이니까. 물론 이 글이 허둥대다가 심해 깊숙한 곳에 빠져죽은 글이라는 것도 안다. 허나 그것마저 하나의 ‘움직임’이기에 지금부터 그 헛발질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2. 김연수 「일기예보의 기법」
2.1 줄거리와 짜임새
김연수의 「일기예보의 기법」은 2010년 문학동네 겨울 호에 실린 단편소설이다. 일단 줄거리를 보기로 한다.
1. 간호사인 엄마와 물리 교사인 아빠는 ‘달’을 좋아하였다. 두 분이서 데이트를 하면 카페나 제과점이 아닌 밤 산책을 즐겨했다. 거기에는 ‘사랑’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2. 우리 가족은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달구경을 갔다. 여동생 ‘미경’이가 말을 텄을 때 남자들만 먹는 귀밝이술을 달라고 때를 썼다. 미경이가 그 술을 먹자 그 술이 목청터지기술이었던지 목소리가 너무 커졌다고 한다.
3.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다. 나와 어린 여동생 ‘미경’과 어머니를 남겨둔 채. 아버지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고, 특히나 미경에게는 최초의 우주견 ‘라이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빠가 없는 삶에 우리 가족은 어두워졌다.
4.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퇴직금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자 어느 동네의 병원에 간호사로 취직했다. 그 때 ‘닥터 강’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닥터 강’은 미혼이었는데, 알고 보니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숙맥이었다. 닥터 강과 엄마는 외로움을 공유했는지 친해졌다.
5. 그 때 어린 미경이의 꿈에서는 ‘닥터 강’이 ‘늑대’로 나왔다. 사나운 송곳니를 입 밖으로 내는 장면이 미경이의 꿈에 계속해서 나타는 것이다. 어린 미경은 유별났고 내가 보기에는 사차원인 아이였다. 그리고 ‘닥터 강’을 정말로 늑대로 보았다.
6. 정월대보름날 닥터 강이 우리 집에 왔다. 여동생과 나는 닥터 강이 우리 집에 왔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러나 닥터 강은 우리를 볼 때마다 예쁘다는 듯 돈을 줬기에 적대감은 들지 않았다. 미경에게는 낮에는 괜찮았지만, 밤에는 늑대로 보았을 뿐.
7. 그런데 같이 밥을 먹던 중에 미경이 닥터 강에게 소리를 쳤다. ‘당신은 늑대라고. 우리 집에서 꺼지라고.’ 난동을 피운 것이다. 닥터 강은 무안해졌고 엄마는 미경을 방으로 데리고 가 달랬다.
8. 밥상에 남은 닥터 강과 나는 이야기를 했다. 닥터 강은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은 반드시 인생이 잘 안 풀린다.’고 했다. 그래서 되도록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닥터 강의 저주’인 것이다.
9. 닥터 강은 나에게 ‘나는 너희 엄마를 사랑한다. 그리고 너희 엄마는 너희를 사랑한다. 인생은 되게 그런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미경을 방에 놔두고 닥터 강, 엄마 그리고 내가 달을 보러 갔다. 그 후로 닥터 강은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10. 미경은 유별난 아이였기에 항상 하늘을 보았고 우주에 떠난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우주에는 가지 못했고, 대신에 천문학과를 졸업한 후 기상대에 취직을 했다.
11. 미경은 되는 일이 없었다. 닥터 강의 저주에 걸린 듯.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었던 형식이 결혼을 한다고 하자 초조해졌다. 그리고 그 사람을 보냈는데도 계속 생각이 나자 정말로 형식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형식은 결혼했고, 미경은 그날 기절을 하였다. 미경도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남편에 대한 사랑이 아닌 연민임을 알고 이혼을 했다.
(필자<이수민>의 추측으로는 그날 닥터 강은 엄마에 대해 미운 감정을 가질 수도 있었으나 미경의 돌발행동에 미경을 미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미경이 ‘닥터 강의 저주’에 걸렸을지도)
12. 미경은 기상대에서 근무하던 도중에 또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기상대에 새로 취직한 세진인 것이다. 세진은 자신이 ‘안개’ 때문에 기상대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공채시험을 준비하던 도중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방황했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 거리를 걷는데 안개가 보였고, 그 안개 속에서 포근함을 느꼈다. 그리고 불안함과 슬픔이 사라져서 결국 시험에 합격했다고 했다. 미경은 그런 세진의 안개 이야기에 빠졌고 사랑을 느꼈다.
13. 세진이 거주자 우선 배치 원칙에 의해 미경과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미경과 세진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세진이 미경에게 기상청에 오게 된 이유를 물었다. 이에 미경은 어릴 때 아버지에게 우주견 라이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개의 죽음이 너무나 슬펐고 자신도 우주여행을 떠나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세진이 잠들었는데, 미경은 그 얼굴을 보고 못 참고 그만...
그리고 며칠 뒤 기상예보를 정하는 일이 있었다. 세진은 ‘첫 눈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경은 그 말이 자신을 위한 말인 줄 알았으나 착각이었다. 세진은 자신이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졌고, 세진의 여자 친구는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못해 시간을 두고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보자는 말을 했다. 세진은 ‘언제까지?’라고 말했고 여자 친구는 ‘첫 눈이 올 때까지’라고 말했다. 순진한 세진은 그 말을 믿고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미경은 기상을 측정했다. 미묘한 차이로 비가 오는 지 눈이 오는 지가 판가름이 났다. 전국의 대부분의 기상청 담당자들은 비가 내린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미경만은 ‘첫 눈 예상’이라고 했다. 순전히 세진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첫눈은 보기 좋게 오지 않았다. 세진은 가을비를 맞으며 거리를 걸었고 미경은 전화를 통해 온갖 욕을 먹었다.
14. 정월대보름이 되자 생전 안 오던 미경이 엄마에게 왔다. 소원을 빌 것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와 나의 두 딸 그리고 미경과 엄마를 데리고 달구경을 갔다. 미경이 예보한 것과는 달리 달도 없었고 구름만 잔뜩 있었다. 각자 소원을 빌고 나는 내려가자고 했다. 그 때 눈이 내렸다. 누군가는 간절히 기다리기도 했을 법한.
이 소설의 이야기구조는 복잡하게 되어있다. 위의 글은 필자가 소설의 서술구조를 시간의 순서대로 재배치한 것이다. 실제로는 <5 11 2 3 10 1 12 4 6 5‘ 7 8 9 13 14>의 복잡한 구조를 띈다.
그러나 복잡한 구조 속에서도 ‘짜임새’가 있었다. 서술자인 ‘나’가 여동생의 ‘미경’의 이야기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소설은 흘러간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일을 꺼내면서도 현재의 진행사건을 진행해 나가는 힘은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소설을 몇 번 읽다보면 소설이 아닌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었다. 소설이 허구적인 이야기이지만 완벽한 짜임새로 인하여 진실성에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2.2. 인물들에 대한 탐구
완벽한 짜임새를 이루는 것은 물론 이야기를 잘 구성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짜임새를 이룩하는 데에 한 몫을 한 것은 인물 개개인의 개성과 인물과 인물간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몇몇 인물에 대한 탐구와 궁금한 점을 펼쳐보려고 한다.
미경 : 이 소설의 이끄는 핵심인물이다. 성격이 적극성을 뛰면서도 사차원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서술자(오빠)가 은은하고 다정한 성품에 비해 남자들만 먹었던 귀밝이술을 말이 트자마자 달라고 한 것은 ‘적극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물어보고 행동하는 점에서 적극성을 띈다고 볼 수 있다.
사차원적인 면모는 소설을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소설 전체에 드러난다. 꿈에 닥터 강이 늑대로 나타났다고 해서 진짜로 늑대로 보았다는 점. 옛 애인이 결혼한다는 데 그제야 사랑을 알고 기절했다는 점. 우주를 좋아해서 목이 터져라 우주여행이 꿈이라고 한 점. 우주견 라이카의 슬픈 이야기를 듣고 밤하늘을 계속 보다가 기상청에 왔다는 점에서 충분히 사차원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경은 소설 속에서 닥터 강의 저주(평생 일이 잘 안 풀린다.)를 받았다고 믿으면서도 열심히 산다. 기상청에서는 올해의 최우수 동네예보관이라는 타이틀을 땄으며, 새로 들어온 세진에게도 정확하고 똑바르게 예보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미경은 사차원적이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하는 스타일인 것이다.
그러나 미경이 안 되는 것이 있으니 ‘사랑’이다. 형식과의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결혼을 했지만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이혼했다. 새로운 사랑인 ‘세진’의 행복을 위해 여태껏 자신이 정확히 예보했던 것과는 달리 ‘첫 눈 예상’이라고 했지만 그 날 비가 내렸다. 아마도 닥터 강의 저주는 인생을 사는 것에 대한 저주가 아닌 ‘사랑에 대한 저주’에 가깝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가 궁금한 것은 ‘미경의 꿈에 왜 닥터 강이 늑대로 나왔을까?’라는 점이다. 그것은 미래를 위한 암시일까? 닥터 강은 엄 마와 결국 잘 안 되거나 정말로 위험한 인물이기 때문에 미경에 꿈에 나타났을까? 이 주장은 너무나 신빙성이 떨어진다. 닥터 강은 소설 속에서 내내 외로운 남자와 순진한 남자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 럼 미경의 꿈에 왜 닥터 강이 늑대로 나왔을까? 이에 필자는 조심스럽게 소설을 시작하려는 ‘장치’라고 보고 있다. 애초에 미경의 꿈에서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소설 속에서는 미경이 왜 그런 꿈을 꿨는지에 대해 서술자는 ‘개꿈’이라고 단정해버린다.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 없기에 필자는 이 소설의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한 ‘장치’라고 결론 내렸다. ‘닥터 강의 저주’로 인한 미경과 어머니의 힘든 인생을 엮으려는 장치라고 본 것이다.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엄마 : 소설 속 아빠는 39세에 죽는다. 지금 시대로 치면 빨리 죽은 것이다. 남편이 죽어서도 계속해서 엄마는 매년 달을 본다. 그것은 남편과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달을 좋아하던 남편과 데이트한 추억과 아이들과 함께 달을 보던 기억, 매년 정월 대보름마다 달을 보러 간 것이 추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달을 보면서 남편을 그리워한다.
엄마는 아빠의 퇴직금으로 생활을 할 수 없자 동네 강 외과에 간호사로 취직한다. 그 때에 닥터 강과 친분을 맺고 친해진다. 외롭고 연애를 해 본적 없고 결혼 하지 않은 닥터 강과 남편을 잃은 어머니 사이에서 공감이 일어나고 같이 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월대보름날 닥터 강을 집에 불러들이고 같이 밥을 먹는다. 그런데 사차원적인 미경이 닥터 강이 늑대라고 난장판을 피우자 방으로 데리고 가서 달랜다. 닥터 강은 그 이후로 나타나질 않는다.
여기서 필자가 궁금한 것은 왜 엄마가 닥터 강을 잡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닥터 강의 입에서 명확하게 밝혀진다. “나는 너희 엄마를 사랑하는데, 너희 엄마는 너희를 사랑한단다.” “대개 그런 것이다.”라는 구절이다. 닥터 강이 엄마를 좋아하지만 엄마는 남자보다는 자식들을 위하는 마음이 컸던 것이다.
그럼에도 외로운 것은 외로운 것이다. 연인이 없는 인생이란 참으로 고달프고 슬픈 것이다. 왜 엄마는 닥터 강을 잡지 않았을까? 정말로 자식들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닥터 강의 행동과 남편의 행동이 달라서였을까? 소설 속 닥터 강은 외로움을 많이 타며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된다. 자신의 저주 ( 나한테는 정말 이상한 힘이 있다. 누굴 싫어하면 그 사람, 평생 되는 일이 없다. 그래서 되도록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로 인하여 사람과의 교류가 없었고 그래서 연애를 한 번도 못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아빠는 엄마에 대해 적극적이었다. 삼촌의 선으로 만나 아빠는 수업이 끝나고 매일 기차를 타고 엄마가 사는 동네로 갔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엄마가 어두운 것을 싫어한다고 하자 바로 빨간 플라스틱 랜턴을 사들고 밤 산책을 한 것에서도 아빠의 적극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남편에 대한 추억과 닥터 강의 행동에서 엄마는 닥터 강을 멀리하고 아이들을 택했을까? 소설 속에는 엄마가 닥터 강에게 호감은 있었다고 본다. 집까지 데려왔으니까.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앞섰고, 미경이가 설치는 바람에 그냥 닥터 강을 놓아주었을지도 모른다.
닥터 강 : 이 소설에서 가장 암울한 캐릭터다. 일단 조용한 성격에 연애를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는 적에서 필자는 깊은 공감을 느낀다. 올해는 꼭 여자 친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닥터 강’을 탐구해보려고 한다.
닥터 강은 본인이 말했듯 이상한 힘이 있었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의 인생은 반드시 잘 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사람을 만나면 박장대소를 하고도 남을 일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이 저주가 힘이 있게 다가온다. 저주를 받은 미경과 엄마의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경에 대해 싫어하는 감정을 가졌다는 것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잘 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사차원 소녀’가 나타나 자신을 늑대로 하고 꺼지라고 한다면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싫어하는 감정을 가질 것이다. 미경이 그 꿈을 꾸었고 그렇게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닥터 강은 그 감정을 풀었을 것이다. 이는 소설의 서술자도 언급하였다. 그러나 닥터 강은 그 사실을 몰랐고 미경을 싫어하게 되었다. 미경의 인생이 꼬인 것도 그 때문이라.
그런데 엄마에 대해 싫어하는 감정을 가졌다는 것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까? 엄마가 닥터 강에게 직접적으로 ‘퇴짜’를 놓았다는 사실은 소설에 밝혀져 있지 않다. 그리고 엄마가 닥터 강이 오지 않는 이후로 인생이 꼬인 적은 없었다. 정말로 좋아했던 것일까? 퇴짜를 맞거나 사랑에 실패하면 상대를 싫어할 법도 한데. 닥터 강은 정말로 ‘닥터 강의 저주’만 남겨 논 채로 소설 속에서 사라진다.
3. ‘일기예보의 기법’ 제목과 배경에 대한 탐구
이 소설의 제목은 ‘일기예보의 기법’이다. A의 B. A를 하기 위한 B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법이라는 의미는 ‘기교와 방법’이라는 뜻이다. 기교는 기술이나 솜씨가 아주 교묘함 또는 그런 기술이나 솜씨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일기예보의 기법’이라는 제목은 일기예보를 하는 방법이나 기술, 솜씨를 뜻한다.
이 소설에서 일기예보를 하는 사람은 ‘미경’뿐이다. 미경은 기상청에 근무하는 예보관인 것이다. 미경의 일기예보는 정확하다. 2009 올해의 최우수 동네예보관에 뽑혔다는 것과 새로운 신참 세진에게 예측하는 법을 FM으로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미경은 두 번 예보를 틀린다. 하나는 세진을 위한 예보였다. 그 날 날씨는 비와 눈 중에 하나였다. 대부분 예보관들은 미묘한 차이지만 비로 예측하였다. 그러나 미경은 ‘첫 눈 예상’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첫 눈이 와야지 세진이 세진의 여자 친구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날은 비가 왔고 세진은 가을비를 맞았고 미경은 온갖 욕을 들어먹었다는 결말이 난다. 그토록 정확한 미경이 왜 ‘감정적인’ 것으로 일기예보를 하였을까? 이 소설은 우리에게 정확한 사실만이 예측을 가능하게 하며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인 예측은 쓸데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까?
두 번째 틀린 예보를 보면 엄마에게 전하는 예보였다. 엄마는 미경이 바빠서 연락도 없고 고향에 안 내려오자 예보를 핑계 삼아 전화한다. 딸이 예보관인지라 딸 덕을 보겠다고 정월대보름의 날씨를 물어보는 한편 집에 내려오라는 것이다. 미경은 엄마에게 그 날 바람이 강하게 부니 구름이 걷힐 것이라는 예보를 했다. 그러나 그 날 구름이 많이 끼고 달도 없던 밤이었다. 과연 이 소설에서 말하는 일기예보의 기법이란 무엇인가?
내가 손바닥을 펼쳤다. “금방 구름이 걷히고 달이 뜰 거라더니 이거 눈 내리는 거 봐라. 소원 다 빌었으면 다들 빨리 내려가자.” 랜턴 불빛으로 내려가는 산길 쪽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랜턴 불빛 속으로 무수히 많은 검은 점들이, 그러니까 누군가는 간절히 기다리기도 했을 법한 눈이, 그런 눈이, 소리도 없이 고요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에 보면 눈이 내린다. 미경이 예측한 그 날 일기예보는 틀렸다. 구름이 걷히고 달도 뜨질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이 내렸다. 예전에 감정적으로 세진을 위한 예보가 엉뚱하게도 정월대보름날 내리는 것이다. 이 의미는 무엇일까?
반대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일단 미경의 감정적인 예보들이 다 맞아떨어진다면 소설은 재미가 뚝 떨어지고 긴장감이 없어질 것이다. 세진을 위해 일기예보를 첫 눈으로 했는데, 그게 맞아서 잘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날 것이다. 또한 감정적인 예보를 하였는데 그것이 맞았다고 하면 소설의 진실성에도 부합되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예보관들이 날씨를 다 맞추리라는 법도 없다. 몇 년 전 지리산에 일어난 집중호우도 기상청에서 예측 못 하여 인명사고가 일어난 걸 보더라도 다 맞출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축척된 수치와 관측하는 자료로 날씨를 예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일기예보의 기법이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예측은 틀릴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마음이 하늘을 감동시키면 눈이라도 내리게 해준다는 의미’일까?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미경 (기상예보관, 우주)
엄마 ( 달 )
아빠 ( 달 )
서술자 : 나 ( 달 )
닥터 강 (늑대, 어둠)
형식 ( 태양 )
세진 ( 안개 )
따지고 보면 이 소설의 인물들에게는 자연적 배경이 잘 깔려 있다. 엄마는 정월대보름에 태어났다. 아빠는 달을 좋아한다. 서술자인 ‘나’는 달밑에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먹고 태어났으므로 달처럼 온순하다. 닥터 강은 미경의 꿈에서 늑대로 나타난다. 형식은 미경이 아니어도 이 세상에는 뜨겁게 사랑할 만한 여자가 많다는 듯…7월 하순의 토요일에 결혼 날짜로 선택했다. 세진은 안개를 보면서 위안을 받았다. 등의 배경이 깔려 있는 것이다. 주인공인 미경은 우주를 좋아한다. 개를 좋아한다. 등의 배경이 깔려 있다. 이들의 의미가 뭘까? 왜 소설가는 인물들을 설명할 때 자연적 배경을 깔았을까?
주인공인 미경을 우주의 중심으로 본다면 그 주위 사람들은 미경의 주변부 사람들이다. 미경에게 가족은 달과 같이 환하게 비춰주는 존재이며 가족이 아닌 ‘닥터 강’은 미경에게 낯선 존재이다. 형식은 태양과 같이 자신과 뜨겁게 사랑했지만 떠났고, 안개를 좋아하는 세진을 미경은 만났다. 그렇다면 ‘일기예보의 기법’이란 작가가 미경을 중심에 두고 미경의 세계관을 ‘일기예보의 기법’처럼 그린 것이 그 의미가 아닐까?
4. 나가기
이 소설을 정확히 4번 읽었다. 처음에는 ‘이게 뭔 말이야?’라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로 읽으니 내가 놓쳤던 부분이 보이고, 세 번째로 읽으니 왜 인물들이 그렇게 행동했는지 소설 속에서 찾게 되었다. 네 번째로 읽으니 좀 지겨웠고 줄거리가 머릿속에 생생히 떠올라 읽기를 그만두었다. 앞으로는 최소 10번은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완벽한 짜임새, 인물과 인물간의 사건, 그리고 많은 상징들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이처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좋은 소설이 아닐까? 소설 읽다가 왜 그럴까 궁금한 점을 소설 속에서 찾아보니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답이 없는 경우는 끊임없는 고민을 해야 했다. 그것이 소설 읽기의 즐거움인가? 아직 즐겁지는 못하다.
아직도 많은 의문이 남아있다. 제일 큰 의문은 ‘숨겨진 이야기’이다. 현대 소설에서 분명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터인데, 나는 발견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작가가 의도한 바는 무엇일까? 무엇을 독자에게 전해주려는 것일까? 나의 머리가 나쁜 탓으로, 10번을 안 읽은 탓으로 나는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결국 헛발질을 한 셈이다.
이 소설에 대한 논의는 계속해서 ‘리플’을 달고 연구하고 이어 나가는 것으로 하고 다음에는 박민규의 ‘코작’을 읽겠다.
첫댓글 꼼꼼하게 읽은 느낌이 드네. 이 소설을 안 읽어도 내용 파악이 되는데~~~ㅋㅋ
ㅠ_ㅠ 중심에 못 다가간 것 같아요.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거지....하다보면 다가서는 거고,
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