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쌈지 도서관에서 '작가와의 만남'시간이 마련되었다는 전갈이 왔다.책을 읽지 않은 상황이라 잠시 망설이다 이내 참석하겠다고 답했다.
진행자들의 노고로움을 조금이라도 들기 위함이었으며 잠깐 먼저 가 책을 대충이라도 살펴 볼 정도의 성의면 될 듯 해 선뜻 대답을 한 것이었다
책은 문학 장르가 아닌 현직 기자들의 취재 형식의 르뽀였다 일간지 문화부 기자들이 기획한 생생한 현장 체험 일지라고 봐야 할 책이었다
책을 훑고 있을 즈음 작가가 들어섰고 빔 설치하는 사이 참석자들이 속속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작가이자 강연자는 우리 세대 아들뻘 되는 정도의 앳된 기자였으니 실내 분위기가 사뭇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양한 이력을 지닌 노회한 강연자다운 뻔한 이미지가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았다
강연 내용도 일체의 수식 어구를 배제한 채 담담하면서도 간간히 실수담을 위트 있게 곁들여 좌중의 웃음을 잦아 내기도 해 시종일관 우리들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주된 내용은 낙후되고 노후된 산복도로 인근 주택 주민들을 대상으로 6개월 간 빨래방을 무료 운영하면서 그들의 일상과 함께 하면서 벗이 되어 주는 봉사자들의 삶의 체험기였다
'저기 또 하나의 역사가 걸어오고 있다'
누군가 책에서 한 사람의 이력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책장 속 빼곡한 기록만이 역사가 아니다 일생을 살아온 사람 하나 하나가 세월이 물결을 이루고 물살이 겹겹이 이룩되어 하나의 걸어다니는 역사가 되었다 한겹 한 겹 펼칠 때마다 애환이 더러는 환희가 점철돼 고유의 무늬를 만들었다 마치 그만의 바코드처럼.
그래서 나이 들면 그들의 인생의 돌이켜 '소설책 10권'은 너끈히 된다고 말한다.
한 때나마 그들의 여정에 함께 했던 기자들의 기획력도 대단했지만 듣고 있던 나로선 다소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만약 저 기자들 속에 내가 있었다면'하는 아쉬움이 진해서 그리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분들의 이력 속에는 아련하게 묻어 있을 구전들을 들어 봤으면 더없이 좋지 않았을까'
기록으로 남겨진 구전이 아닌 골골마다 고을마다 전해져 내려오던 옛 이야기들을 이 세대가 다 하고 나면 그조차 영영 묻혀버리고 소멸되고 말 것이다
문자 이전의 시대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구전이 문학의 모태였었다 신화가 민담이 전설이 그랬다 기록은 보존의 가치는 있으나 시대성을 담고 더 부풀어지고 다듬어지는 기능은 없다
어느 곳에선가 흘러 내려온 전설을 귀에 담고 뇌수에 새겨 우리에게 전해 줄 것이 있었을 것인데 우린 대부분 놓치고 만다
이 세대가 지나면 그 역사도 이력과 같이 묻히고 그가 품었던 전설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우리 문화의 무형 자산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
산복 마을 빨래방 인근의 어른들을 화면으로 지켜 보면서 그들의 언어로 뱉는 옛 이야기 채록이 더해졌으면 얼마나 좋았겠는지를 상상하며 마무리 강연을 들었다.
😊우리도서관에서 금요일 성인 및 어린이들에게 세계사 강의를 해 주시는 정봉애 선생님의 '산복빨래방' 강연 후기 입니다~ 다정하고 진솔한 글이라 혼자 보기 아까워 선생님께 동의를 구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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