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한 상가에 자리잡은 최노인의 낡은 기와집 정면에 유리문이 달리고 마루를 사이에 두고 방이 둘 있고 좌편으로 기역형으로 굽어서 부엌과 장독대 유리문 저쪽은 가게우편으로 대문을 끼고 헛간과 방하나의 딴 채가 서너평이 못 넘는 좁은 뜰을 에워싸고 웅크리고 앉았다 해묵은 지붕에는 푸른 이끼며 잡초까지 자라나서 오랜 풍상을 겪어내려온 이 집의 역사를 말해 주는듯하다. 배경으로 면목이 일신해져 가는 매끈한 고층 건물의 행렬이 엿보이고 좌우편에도 역시 삼 사층이나 되어 보이는 최신식 건물이 들어서서 이 낡은 기와집을 거의 폐가처럼 멸시하고 있다. 좌편건물은 아직도 건축공사가 진척중에 있는지 통나무로 얽어맨 작업 보조대에 기적대기가 걸려서 건물은 반쯤 가려진 채로다 이처럼 대척적인 주변의 장
[페이지] 003
애로 말미암아 이 낡은 집 안팎에는 온종일 햇볕이 안드는 탓인지 한층어둡고 습하며 음산한 공기가 찬바람처럼 풍겨 나온다 때는 초여름 어느 일요일 오전 막이 오르면 질주하는 전차며 자동차의 소음이 잇따라 들여온다 뜰가에서 경운이가 함석통에 담겨진 빨래를 빨고 있고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는 어머니의 초라한 모습이 보인다. 좌편 담아래에 마련된 조그만 화단 앞엔 아까부터 최노인이 쭈그리고 앉아서 화초며 푸성귀들을 손보고 있다. 입에 물린 파이프에서 이따금 뱉어지는 담배 연기가 한가롭다. 잠시후 경애가 물지개를 지고 좁은 대문을 간신이 빠져나와 경운 앞에다 부려 놓는다.
[경재] 어유 오늘은 왠 사람이 그리도 많아--- 공동수도엔 난장판인걸!(하며 항아리에다 물을 붓는다.)
[경운] (여전히 빨래를 하며) 비가 개니까 집집마다 빨래하느라고 그렇겠지---
[페이지] 004
[경재] 아버지 우리도 다음앤 제발 물 흔한 집으로 옮깁시다. 물만 길다가 내년 봄엔 낙제하게 생겼는걸요! 하루 이틀 아니구---
[최노인] (돌아보지도 않고) 그래---
[경운] 애도 속없는 소리 잘 하긴 경애 언니 닮았나봐! 누가 이따위 구석에서 살고 싶어 살고 있니?
[경재] 살기 싫으면 딴대로 옮기면 될걸 왜 이런 게딱지 굴 속에서 산다는 거요?
[최노인] (눈을 크게 부릅뜨며) 무슨 소리냐? 이 집이 어때서?
[경재] 아버지나 좋아하시지우리 식구중에서 이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최노인] 싫은 놈은 언제건 나가라지!절간이 미우면 중이 나가는 법이야.
[경재] (남을 물통을 비우며) 중도 없는 절을 뭣에 쓰게요? 도깨비나 날걸---
[페이지] 005
[최노인] (약간 핏대를 올리며) 도깨비가 나건 노다지가 나건 제집 지니고 산다는 걸 다행으로 알아 이놈아!
[경재] (못마땅한 낮으로) 다행으로 알 건덕지가 있어야죠.
[최노인] (휙 돌아서며) 뭐 뭐야?
[경운] (재빨리 공기를 수습하려 들며) 경재야 한 번만 더 길어와! 물이 끊어지면 어떡혈랴구---
[경재] 또야? 나 시간 약속이 있는데---
[경운] (흘겨보며) 너 그러면 나와 약속한 일 국물도 없다!
[경재] (짜증을 내며) 정직이 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기로 했는걸--- 9시40분까지 가야 돼요.
[어머니] (설겆이 통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바쁘면 어서 가려무나 설겆이가 끝나면 내가 길을 테니---
[어머니] (웃으며) 그럼 물항아리를 더 사놔야되겠구나--- (하며 수채 구멍에다 물을 버린다)
[경재] (손을 씻으며) 항아리 값은 우리의 재무장관인 작은 누나가 치르구 핫하--- (하며 아래방으로 퇴장)
[경운] 깍쨍이(빨래를 짜며) 어머니가 어떻게 물을 길으신다구 그러세요 아직도 허리를 쓰시기 거북하시다면서--- (방 안에서 휘파람 소리가 흘러온다.)
[어머니] 괜찮어---
[최노인] 참 고약은 다 붙쳤어?
[어머니] 예(허리를 가볍게 치며) 이제 훨신 부드러워졌어요.
[최노인] 뭐니뭐니 해도 그 강약방의 처방이 제일이야! 내청이라면 친형제 일보다 더 알심 있게 약을 써 주거든!
[어머니] 하기야 이 동내에서 옛부터 사귀어온집은 인제 그 강약방하구 우리집뿐인걸요.
[페이지] 007
[최노인] 그래 우리가(과거를 회상하며) 이 집에서 산지가 꼭 사십칠년이고 그 강약방이 40년이 되니까 그러고 보면 나도 무던히 오래 살았어--- 이 종로 바닥에서 자라서 장가 들어 자식 낳고 길러서 이제는 환갑을 맞게 되었으니
[어머니] (마루 끝에 앉으며) 정말--- 근오십년동안에 이웃얼굴이 바뀌고 저렇게 집이 들어서는 걸 보면 세상 변해가는 모양이 환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당신에게 시집왔을 때만 하더라도 어디 우리 이웃에 우리집 담을 넘어서는 집이 있었던가요?
[최노인] 사실이야! 빌어먹을것!(좌우의 높은 집들을 쏘아보며) 무슨 집들이 저 따위가 있어! 게다가 저것들 등살에 우린 일년 열두달 햇볕 구경이라곤 못하게 되었지! 당신도 알겠지만 옛날에 우리집이 어디 이랬소?
[경운] (웃으며) 아버지두--- 세상이 밤낮으로 변해가는 시대인데요---
[최노인] 변하는 것도 좋구 둔갑하는 것도 상관하지 않지만 글쎄 염치들
[페이지] 008
이 있어야지 염치가!
[경운] 왜요?
[최노인] 제깟놈들이 돈을 벌었으면 벌었지 온 장안 사람들에게 내보라는 듯이 저 따위로 층층이 쌓아 올릴 줄만 알고 이웃이 어떻게 피해를 입고 있다는 걸 모르니 말이다!
[경운] 피해라뇨?
[최노인] (화단쪽을 가리키며) 저기 저기 심어놓은 화초며 고추모가 도무지 자라질 않는단 말이야! 아까도 들여다 보니까 고추모에서 꽃이 핀지는 벌서 오래전인데 열매가 열리지 않잖아! 이상하다 하고 생각을 해 봤더니 저 멋없는 것이 좌우로 탁 들어막아서 햇볕을 가렸으니 어디 자라날 재간이 있어야지! 이러다간 땅에서 풀도 안나는 세상이 될게다 말세야 말세 (이때 경재 제복을 차려 입고 책을 들고 나와서 신을 신다가 아버지의 얘기를 듣고는 깔깔 대고 웃는다.)
[페이지] 009
[경재] 원아버지두---
[최노인] 이놈아 뭐가 우스워?
[경재] 지금 세상에 남의 집 고추밭을 넘어다보며 집을 짓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최노인] 옛날엔 그렇지 않았어!
[경재] 옛날 일이 오늘에 와서 무슨 소용 있어요? 오늘은 오늘이지. (웅변 연사의 흉을 내며) 역사는 강처럼 쉴새없이 흐르고 인생은 뜬구름처럼 변화무상하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이 역사적인 사실을 똑바로 볼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소 한도로 아셔야 할것입니다! 에헴!
[경운] 호---
[최노인] 아니 저 자식이 아침부터 조밥을 먹었어! 웬 잔소리냐 잔소리가?
[경재] (옷을 털고 일어서며) 잔소리가 아니예요 이건 웅변대회 때
[페이지] 010
써먹은 원고의 한구절이에요! 하--- (경운에게 가서 손을 벌이며) 누나 약속 이행을 해야지!
[경운] 아쉰 소리 하는 편이 더 권리가 당당하구나?
[경재] 노동의 댓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 행사죠?
[경운] 하지만 고용주가 돈이 없다고 잡아때면 찍소리 못하더라?
[경재] 누가?
[경운] 우리 인쇄소에서도 두달치나 밀린 월급을 엊그제야 받았지만---
[경재] 그래도 우리 누나는 그런 악질 기업주는 아니신데 뭐--- (하며 언사를 떤다.)
[경운] 흠 위험한 비행기! (물 젖은 손을 뿌리며 지갑에서 돈을 꺼내준다) 일찍 돌아와! 골목마다 깡패들이 득실거린다던데---
[경재] 내가 도리어 깡패들의 덕을 봐야할 형편인걸! 없는 놈은 그런 걱정 없어!
[어머니] 말두 말아라 끼니 먹을 것은 없어도 도둑 맞을 것은 있단다.
[페이지] 011
조심해라!
[경재] 염여 마세요 다녀 오겠읍니다(나가려다 말고) 아버지!
[최노인] 왜?
[경재] 절 보기 싫으면 중이 나가죠?
[최노인] 그래--- 왜 그건 또 묻는 거야?
[경재] (좌우 고층건물을 가리키며) 저게 뵈기 싫으니 우리가 떠나야죠!
[최노인] 뭐 뭐라구?
[경재] 시외로 가면 후생주택이 얼마든지 있대요 집 값도 싸고 무엇보다도 터전이 넓어서 화초며채소는 얼마든지 심어 낼 수가 있을거에요 공기 좋고 조용하고 집집마다 맑은 우물이 있고 아주 멋지게 살 수 있대요
[어머니] 참 창용이네도 지금 들어 있는 집을 팔고 그 후생주택으로 옮긴답데다.
[최노인] 그렇게 가고 싶걸랑 따라가 살구려! 난 이집에서 났으니 이
[페이지] 012
집에서 죽을 테니까 !
[경재] (일부러 과장된 표정으로 ) 고집 폭발이다! 다녀오겠읍니다.!(하며 급히 뛰어나간다. 이때 대문 안에 아침 목욕에서 돌아 오는 경애 등장 그의 손엔 목욕용 세수 대야며 화장품이 들렸고 얼굴엔 코울드 크리임이 범벅되어 반지르르 기름이 흐른다. 머리는 핀칼을 감은 채로다.)
[경재] 미쓰 코리아가 돌아오시네!
[경애] 까불어?
[경재] 도대체 누나는 언제 영화에 출연 하는거요?
[경애] 가까운 장래(하며 마루에 앉는다.)
[경재] 혜성처럼 나타난 뉴 페이스 최경애 양인가?
[경애] 한국의 킴 노박이다!
[경재] 하나님 맙수사! 최 호박이 안되었으면---
[경애] 아니 이녀석이!(하며 때리려 하자 소리를 지르며 퇴장)
[페이지] 013
[최노인] 경재란 놈은 어디 가던 제 밥벌이는 할거야(하며 만족한 웃음을 띠운다)
[어머니] 좀 경한 편이죠(경애에게) 웬 목욕이 그렇게 오래 걸리니?
[최노인] 그래도 밤낮 익모초 씹는 쌍판보다는 낫지! 이집에 오는 누구처럼---
(어머니와 경운은 뜻 품은 시선을 서로 던진다 경애 손톱에 손질을 하고 있다)
[최노인] 경수녀석은 어제 밤에도 안들어 왔었지?
[어머니] (변명하듯) 어디 친구네집에서나 잤겠죠---
[최노인] (성을내며) 제집과 남의집 분간도 못하는 놈이 어디 있어?(하며 담배를 다시 피워 문다)
[어머니] 내버려 두시구려 어디 그애에게 그런 재미도 없어서야 되겠우?
[최노인] 재미? 지금 우리 형편이 재미를 보기 위해서 살아갈 팔자야
[어머니] 그렇지만 마음대로 안되니까---
[최노인] 당신은 좀 잠자코 있어!(하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경운은 빨래줄에다 빨래를 널며 눈치만 보고 경애는 재빨리 건너방으로
[페이지] 014
들어간다.)
[최노인] 사람이란 염치가 있어야 하는 법이야! 제놈이 군대에 갔다 왔으면 왔지 놀고 먹으라는 법은 없어! 한 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내일 모래 30 고개를 바라보는 녀석이 취직이 안된다 핑계치고 비슬비슬 놀고만 있으면돼? 첫째로 경운이 미안해도 그럴수는 없지!
[경운] 아이 아버지두--- 오빠인들 속조차 없겠어요?아무리 일자리를 구할려고 해도 안써주는 걸--- 사회가 나쁘지 오빠야 무슨 잘못이에요?
[어머니] 사실이에요---
[최노인] 뭐가 사실이야? 나이 어린 누이가 그 굴속 같은 인쇄공장에서 온종일 쭈구리고 앉아서 활자 줍는 노동으로 벌어드린 쥐꼬리만한 월급에만 의지하는 것이 사실이란 말이야?
나도 가게가 전 한 월급에만 의지하는 것이 사실이란 말이야 ? 나도 가게가 전 과 같이 세가 난다면 이런 소리도 않지 허지만 골목안 뚱개까
[페이지] 015
지 신식만을 찾는 세상이라 사모관대나 원삼 쪽도리 따위는 이제 소곱장난 감으로 아니 장사가 돼야지! 지난 봄철만 하더라도 꼭 네벌 장만한다면 또 모르지만
[어머니] 허지만 이웃들이 집터를 높이 돋구어서 집들이 지으니까 우리집이 낮아서 물줄기가 일로모여드는거지 누가 일부러---
[최노인] 아니 이이가 --- 그래 우리가 잘못이란 말이요?
[어머니] (고소를 뱉으며) 누가 잘하고 못하고 있어요--- 우리집 터를 옆집보다 더 높이 든지 하지 않은 다음에야 ---
[최노인] 돈, 돈이 있어? 돈이 어디 있어? 장사가 안되어 가게 문을
[페이지] 019
닫고 세금도 못내는 판국인데 그래 내돈들여서 집터를 돋아 올리라구?
[어머니] 누가 그렇게 하자구나 했길래 이리 성화시우?
[최노인] 그럼 워야?
[어머니] 낸들 알겠수 여편내 얘기라면 문풍지 소리로나 아는 당신인데---
[최노인] (넋두리 외듯이) 나원--- 일이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비틀어지다니 정말 집을 옮기든지 해야지--- 자식 놈이라고 벌어대기를 하는가 장사가 제대로 되는가--- 나 원--- 게다가 가게문을 닫은 지가 두달이나 되었는데 무슨 놈의 세금은 세금이야! 설상가상으로 저빌어먹을 낮도깨비때 문에 화초밭이 망처지는 것은 고사하고 집기둥까지 썩게 되었으니--- 에잇 참!
[어머니]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노인의 눈치를 봐가며) 여보 영감---
[페이지] 020
[최노인] 뭐요?
[어머니] 내 생각 같아서는--- (사이)
[최노인] 무엇이 어쨌어?
[어머니] 다른집으로 갈아잡는 게 상책일 것 갔으오만---
[최노인] (말없이 눈만 부릅뜬다.)
[어머니] 애들하고는 여러번 의논도 했어요
[최노인] 아까 경재 얘기 말이요?
[어머니] 예
[최노인] 내가 싫다면 안되는 일이야---
[어머니] 그러니까 여태 말을 못 꺼냈죠
[최노인] 이건 내 집이라는 걸 알아야 돼
[어머니] 사람이 살기 위해서 집이 있지 사람 죽고 집만 있으면 뭘해요 올세---
[최노인]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곤 이집뿐이야
[페이지] 021
[어머니] 누가 그걸 모르나요 허지만 이집을 영영 없애 버리자는 것도 아니고 좀 작은 집으로 같자는 거죠
[최노인] 이집은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주신 집이야
[어머니] 그렇다고 자식들이 제 구실을 못하고 기도 못 펴는 꼴을 보고 만 있겠어요?
[최노인] 뭐라고?
[어머니] 경수만 하더라도 빈 손으로 취직을 하자는 것이 틀린 채산이죠 요즘 세상에 공안들이고 되는 일이 있답데까?
[최노인] 그래 경수 취직 자금을 얻기 위해서 집을 팔자는 거야?
[어머니] 그것뿐 아니죠 경애도 시집보내야겠고 내년이면 경재가 대학에 가야하고--- 앞으로 돈으로 메꾸어야 할 일이 어디 한두가지에요?
[최노인] (긴 한숨을 내쉰다)
[어머니] 나도 무엇이 좋아서 50년 동안 살아온 집을 팔자고 하겠수---
[페이지] 022
허지만 참대 같은 자식들을 위해선---
[최노인] (말없이 일어서 화초밭으로 가서 물그러미 내려다 보고만 있다.)
[어머니] 우리야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요 젊은 애들이 불쌍하지---
(하며 눈시울을 누른다.) (경운이가 어느새 나와 마루에 서 있다 최노인은 좌우의 건물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서서히 대문 쪽으로 나간다.)
[어머니] 어디 가시우?
[최노인] 내좀 다녀 오겠오---
[어머니] 그럼 지금 얘기는---
[최노인] (쏘아붙이며) 생각을 해봐야지--- (하며 퇴장)
[어머니] 어휴 저 고집 때문에 이 고생이지
[경운] 어머니 너무 염려마세요. 어떻게 되겠죠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어요
[어머니] (눈물을 지으며) 굶는게 두려웁겠니? 사는 일이 두렵지.
[페이지] 023
(이때 화려하게 양장을 한 경애가 방에서 나온다.)
[경운] (감탄을 하며) 언니 그렇게 차려놓고 보니까 진짜배우 같아요
[경애] 언제는 가짜였니?
[경운] 김치국 먼저 마시내요 호---
[경애] 요 계집애가--- (하며 구두를 신는다)
[어머니] 일찍좀 들어오너라
[경애] 일이 끈나야죠 참 어머니 오늘 일이 해결만 되면 염려없으셔--- 이보다 더 좋은 집도 자가용도 그리고 오빠 취직 도 만사 오케로 척척박사일 테니까요
[어머니] 잔소리 말고 시집이나가! 그까짓것 영화배우를 평생 할테냐?
[경배] 어마나 남의 인격을 무시해도 유분수이시지 나는 지금 나의 일생을 결정 짖는 가장 중대한 인생의 위기에 서 있는거에요!
[경운] 아이--- 언니두 그런 말을 어머니께서 알아 들으셔야죠!
[페이지] 024
[경애] (명랑하게 웃으며) 나의 유일한 협력자요 후원인은 경운이 너뿐이구나! 그럼다녀올께요!
[경운] 꼭 합격해야 되요!
[경애] 하나님께 기도나 올려 줘 호--- --- (하며 가볍게 춤을 추듯이 퇴장)
[경운] 천성인걸요 뭐!좋지 않아요!
[어머니] 좋긴 뭐가좋아!
[경운] 명랑하고 솔직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직선으로 행동할수 있는 언니의 성격이 좋지 뭐에요 난 언니의 성격을 구분지 일만이라도 닮았으면 해요
[어머니] 그러면 이어미는 진즉 늙어 죽었을 게다
[경운] 어머니두---
[어머니] 네가 있기에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고 미더운지 모른다--- (한숨) 참 너에게 너무 고생을 시켜서---
[경운] 어머니 그런 말씀하시면 싫어요 내가 취직을 하고 싶어서 했지
[페이지] 025
딴 생각은 없으니까요
[어머니] 왜? 너는 대학엘 가겠다고 했지 않았니?
[경운] 누구나 한 번씩 해보는 소리죠 언니도 못간 대학엘내가 어떻게 갈수 있으며 또 집안 형편이 어디 그렇게 넉넉했어요
[어머니] 정말 네가 여학교에 들어가던 때만해도 괜찮았지
[경운] 지금이라도 오빠가 취직만되고 언니가 좋건 ?건 배우로 뽑히기만 한다면 남부럽지 않게 살수 있을 거에요
[어머니] 그걸 어떻게 믿을 수가 있니? 네아버지께서 집을 팔겠다고 하시기전에---
[경운] (사이) 이집을 판다면 얼마나 받을 수가 있을까---
[어머니] 복덕방 애기로는 250만환은 받을 거라고 하더라만---
[경운] 250만환이요?
[어머니] 그래
[경운] 그리고 보니 우리도 아주 가난뱅이는 아니군요?(하며 앳되게
[페이지] 026
웃는다.
[어머니] 집만 있으면 뭘하니? 칼은 써야 드는 법인걸---
[경운] 그럼 250만 환으로 후생주택에 들고 남은 200만환으로 굴리면 되겠는데요
[어머니] 글세 내 얘기가 그 얘긴데도 네아버지가 그 모양이니 일은 다 틀렸잖니?
[경운] 글세 제 육감이 랄까?
[어머니] 육감?
[경운] 아까도 어머니께서 말씀하실때 저 화초밭앞에서 게시는 모양이 어떻게 했으면 좋을꼬 하시며 망설이시는 눈치 같았어요
[어머니] (쓴 웃음을 지으며) 너는 지레짐작도 잘 하는구나--- 그러나 네아버지께서 그렇게만 하신다면 너를 고생 안시키고도 살수있
[페이지] 027
을 텐데!
[경운] 저더러 인쇄소를 그만두라고요?
[어머니] 그럼 뭣이 좋아서 그런 곳에다 너를 가두어 둔단 말이냐?
[경운] 원 어머니두---
[어머니] 아니다 나는 늘 마음속으로 너에게 대해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남들은 별의별 사치를하고 다녀도 그주먹만한 변또를 싸들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인쇄공장에 틀어박혀서 일하는일을 생각하면 내가 꼭 무슨죄를 지은 것 같기도 했단다(차츰 울먹거리는 음성으로 변해지자 동요하는 심정을 억제하려고 경운은 불쑥 일어선다)
[경운] (토라진소리로) 남에게 동정을 받고 싶어서 취직한 못난이가 아니에요--- 어머니는 공연히 그러셔!
[어머니] 오냐 내가 잘못했다--- 다만 네가 벌어대는 돈만믿고 사는게 미안해서 그랬을 뿐이지---
[페이지] 028
[경운]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생활하는데 무슨 미안이에요 글세 어머니도 그런 말씀 마세요!
[어머니] 오냐 이젠 안하지!(이때 경수가 힘없이 등장 발걸음이 약간 휘청거리는게 아마 술에 취한듯하다 어머니와 경운은 각각 반가움과 동정으로 맞아 들인다.)
[경수] (혼잣소리로) 밤낮 기다리라지! 육시혈! 죽을 때까지 제깟놈 말만 기다리고 살란 말인가?
[어머니] 그렇지만 기다리라면 진득이 기다려 볼 수 밖에 없지---
[경운] 요지음 취직이 그렇게 쉽게 되나요.
[경수] 그래 네 말대로야! 누구나 하는소리가 그렇지! 친구고 선배고 겉으로는 아주 염려한다는 표정으로 하는 소리가 매양 그렇지! 제길---
[페이지] 030
[경운] (금시 울음이 터지러는 표정으로) 오빠 전 결코 그런뜻으로 말한게 아니예요 전---
[경수] (헛튼 웃음을 지으며) 그래 너만은 내 귀여운 동생은 아니지! 도대체 실업자도 많지만 자기 직업에 대해서 너무 떨고 매어달리는 사람이 더 많은가 봐요.
[어머니] 그게 무슨 얘기니?
[경수] 옛날엔 싫으면 직업을 바꾼다든가 이 자리에서 저자리로 옮겨가는 이동이 많았지만 요지음은 그런사람이 없단 말에요.
[어머니] 그래---
[경수] 한번 직장을 붙들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매어달리니 일자리가 빌 턱이 있겠어요. 못난 자식들!
[어머니] 난 또 무슨 얘기라구 흐---
[경수] 그렇게들 직업에 대해서 지나치게 인색하고 공포증까지 품으며 살고 있으니 어디 우리 같은 놈이 첩신이나 하게 되겠어요.
[페이지] 031
[경운] 정말 그래요. 그렇지 않고서는 살 도리가 없으니까요.
[경수] 싱거운 친구들! 싫으면서도 싫다는 얘기하나 못하고 울면서 겨자 먹기로 직업에 매달려 사니 생전가야 우리 몫이 나긴 글렀다. 이말씀이죠!
[어머니] 그렇지만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람은 좀 달리봐쉬야지---
[경수] (냉소를 뱉으며) 그걸 안다면 세상이 이꼴이겠어요. 모두가 자기에게 필요할때만 형님이요 아저씨지 볼짱 다 보면 지나가는 똥 개 취급이라니까요--- 핫하 요컨대는 취직에도 먹자관이지! 밑천만 넣고는 어림도 없어! 그러니까 또 취직만 되면 그 본전에다 복리까지 가산해서 주워 잡수시기가 일쑤 아니에요. 그러나 내겐 그 돈도 없어! 돈!
[어머니] 아무리 세상이 막되엇기로 그래 인정도 의리도 없단 말이냐?
[경수] 인정이요 에미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애비를 죽이는 판국에 인정이요? 흥?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완서방이 받아 먹는
[페이지] 032
격이죠! 내가 죽어야지! 죽는 것이 가장 편한 길이야!(하며 마루바닥에 드러눕는다. 어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경운] 오빠 방에 들어가서 쉬세요.
[경수] 경운아 너는 이 오빠가 밉지?
[경운] (일부러 명랑하게) 오빠가 취하셨나봐!
[경수] 내가 취하였다고? 천만에---
[경운] 주정하는 사람이 자신을 가리켜서 취했다고 하는법이 없다나요?
[경수] (크게 웃으며) 네가 벌서 그런 소리를 하게 되었다니--- 이제 시집을 가야겠구나.
[경운] 오빠가 결혼하기 전엔 시집 안 갈테야!
[경수] 숫제 남북통일이 되기전이라고 하는 편이 더 눈물 겨울걸 핫하---
[경운] (성을 내며) 몰라요. 오빠는 남의 속도 모르고--- 자기만 제
[페이지] 033
일 잘났다는 말씀이신가?
[경수] (벌떡 일어나 앉으며) 뭣이 너 지금 뭐라고 그랬지?(하며 대든다.)
[경운] 오빠는 너무 이기적이란 말에요!
[경수] 내가 이기적이라고?
[경운] 오빠의 심정을 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요. 허지만 그런 동정이나 양해만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어요? 세상에 부패나 못된 꼴을 한탄하고 비난한다고 우리 생활에 보탬이 되나요?
[어머니] 얘 경운아! 너는 오빠를---
[경운] 오빠를 존경했어요! 누구보다도 믿었어요. 허지만 지금은 의심하고있어요
[경수] 나를 의심한다구?
[경운] 오빠! 오빠는 대학 중도에 군문에 들어갔고 이제 제대가 되었
[페이지] 034
으니까 사회생활에 대해서는 아직 경험이 없으시겠지만 이래 뵈도 뭇 남성 여성사이에 끼여 삼년동안 사회 맛을 봐 온 사회인이에요.
[경수] 아니 그래 네가 오빠에게 설교할 작정이냐?
[경운] 설교가 아니라 의견이지요 오빠가 제대한 이후 우리 집안은 더 형편이 없고 또 오빠 때문에 집안식구가 얼마나들 괴로워한지 아세요?
[어머니] 경운아---
[경운] 어머니는 잠자코 계세요 아까도 오빠 얘기는 돈이 없어서 취직을 못한다고 하시지만 그런 말씀 어머니앞에서는 삼가셔야 되요 우리 집에 오빠 취직을 위해 쓸 돈이 있으면서 안 냈겠어요?
[경수] 아니 내가 언제 돈을 달랬니?
[경운] 직접 말을 안했지만 그 얘기 때문에 마음을 아파해야 하는 사
[페이지] 035
람이 계시다는 걸 아셔야죠!
[어머니] (울음 섞인 소리로) 경운아!
[경운] (차츰 풀 죽은 소리로) 오빠 우린 이 집을 팔게 될는지도 몰라요.
[경수] 그게 나와 무슨 상관 있어!
[경운]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오빠는 매사를 그렇게 비뚫어진 생각으로 처리하시자는게 저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경수] 뭐라고? 아니 계집애가 못할 소리가 없구나.
[경운] 저를 때리겠어요? 때리세요 그러나 그것으로 오빠는 만족하지도 못하실걸요.
[경수] 너는 너는 나를 미워하고 있었구나?
[경운] 두려웠지요. 요즘 세상에서 가장 말썽을 부리는 문제의 하나가 제대군인이니까요. 오빠가 돌아오셨을 때 저는 우리 오빠만은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은근히 바랬고 또 한편으로 두려워 했어요.
[페이지] 036
길을 가거나 전차안에서나 제대군인을 보면 저의 마음은 어둡고 쓸쓸해졌어요. 오빠! 아시겠어요? 네
[경수] (혼잣소리로) 내가 그렇게 미웠던 것을---
[경운] 사회가 나쁘고 주위가 무관한 것만을 탓하고 자신의 몸가짐을 아무렇게나 펼치고 다니는 것은 약한 것이라고 봐요! 오빠! 저를 건방진 년이라고 여기시겠죠? 그렇지만 우리는 무슨짓을 해서라도 살아야만 하는 거예요!
[경수] 나더러 도둑질을 하란 말이야?
[경운] 할 일 없으시면 집에 계세요 다른 제대군인처럼 술 마시고 행패하고 집안사람을 울리지 마세요 어머니는 오빠 때문에 밤 잠도 안 주무신 줄이나 아세요? 어젯밤에도 새벽두시까지 안주무시고---
[어머니] 구만두지 못하겠니? 경운아!(그녀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경수는 멍하니 땅을 내려
[페이지] 037
다 보고만 있다)
[경운] 오빠가 취직을 안하신다고 당장에 굶지는 않으니까요. 제가 아직은 벌수있어요!
[어머니] (애원하듯이) 그래 오늘부터는 밖에 나가지말고 집에 있거라.어쩌면 이 집이 팔리게 되면 조용한 시외로나 옮기자. 넓은터전에다 채소로 가꾸고 닭이며 돼지를 치며 살자구나! 경수야! 세상이 아무리 막되었기로 제 속을 남에게까지 빤히 펴 보이며 살 필요는 없잖니 응?
[경수] (조용히) 어머니.
[어머니] 응? 왜?
[경수] 경운아(사이) 지금 얘기 잘 알겠다. 그런 얘기는 알고도 남음이 있어! 허지만(차츰 흥분해지며) 뵈기 싫은걸 어떡허지? 가만히 앉아 있을수 없는 걸 어떻게 해!
[경운] 그런다고 어느누가 눈썹 하나 까닥거려요? 오빠 참는 것 뿐예요.
[페이지] 038
[경수] 참아? 기다려? 나중에 보자? 힘을 써 보자? (거의 광증을 일으키며) 그게 나를 병신 취급하는 수작들이야! 나를 농락 하는 건방진 짓이야! 부모도 형제도 나를 적당히 놀리고 있는 거야!
[어머니] 경수야! 왜 이러니? 경수야!
[경수] 어머니 나 술을 먹었어요 그렇지만 먹고싶어서가 아니에요 어머니나 경운 말대로 참기 위해서 그놈들말대로 기다리기 위해서요! 그러나 참을 수도 기다릴수도 없는데 어떻게 해요! 어머니! 나는 불쌍한 놈이예요(하며 어머니 무릎아래 업드려 운다.격동하는 심정을 동요를참으며 어머니는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경운은 돌아앉아 울고 있다. 옆집 공사장에서는 망치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이때 최노인 등장 복덕방 노인이 따라온다 세 사람 제각기 자리를 잡는다.)
[페이지] 039
[최노인] 자 들어오세요
[복덕방] (집을 둘러보며) 예--- 아주 고가군요 예---
[최노인] 우리 선친께서 내가 장가들던 해에 지어주신 집이죠.(기둥을 가리키며) 요즘 이런 재목이 있읍데까 재목만은 귀물인걸요. (아래 채를 가리키며) 저기 방과 헛간이 있구--- 저기가 가게고---
[복덕방] 예--- (기웃거리며) 뒤안으로 돌아가 볼까요?
[최노인] (약간 당황하며) 뒤엔 머 별거 없어요. 그저 나무 벼늘이 있구 (복덕방이 앞장을 서서 들어간다. 최노인 뒤를 따른다.)
[경운] 어머니 내 말이 맞았죠?
[어머니] 그러기에 말이다--- 그런데 뒤안을 안봐야 할텐데--- 그걸 보면 집값이 여간 깎일거 아냐(이때 최노인 복덕방 다시 등장)
[복덕방] 많이 손을 봐야겠는걸요
[최노인] (약간 당황하며) 손 본댔자 그곳에다 고랑을 파고 수챗구멍을
[페이지] 040
내면 되는 거구--- (화초밭을 가리키며) 여기 이렇게 화초가 있구요--- 집은 괜찮아요. 그리고 무엇보담도 가게가 있어요--- 뿐만 아니라 번지수가 오죽 좋습니까?
[복덕방] 번지수야 좋지요만 어디 번지수에서 사나요 집안에서 살지---
[최노인] 그래 아까 말대로 그렇게 되겠읍니까?
[복덕방] (마루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글쎄--- 석장은 어렵겠는데요--- 집이 헐고 저렇게 큰집들 사이에 들어 앉아서--- 이건 마치 사람속에 앉은뱅이가 들어선격이라서 헛허---
[최노인] 그래 얼마면 되단 말이요?
[복덕방] 잘해야 이백오십만환---
[어머니] (경수에게) 거봐라--- 내말이 맞았지!
[최노인] 뭐가 맞았어?
[어머니] 아니에요. 아무것도---
[경수] 아버지!
[페이지] 041
[최노인] (퉁명스럽게) 왜?
[경수] 집을 내노시게요?
[최노인] 너는 잠자고 있어! 네가 간섭할 게 아니니까.
[경수] 제 생각 같아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보는데요.
[초노인] 뭐이?
[경수] 담장에 굶어죽는 것도 아니고 형편을 봐서 두었다 하시죠. 더구나 집 매매란 사정이 급해 보이면 가격을 형편 없이 놓는법 이니까요.
[복덕방] 아니 그럼 250만환이 형편 없는 값이란말여요---
[경수] 4백만환도 시원치 않은걸요.
[복덕방] 뭐 뭐요? 저젊은 양반이 정신 있는 사람인가?
[경수] 여보 영감님! 여기 종로 한복판입니다 게다가 가게와 살림집이 붙었는데 그래 겨우 250
환이라구요? 그런 당치도 않은 거짓말은 공동묘지에서나 하시오
[페이지] 042
[복덕방] 뭐 뭐요? 공동묘지에서라고? 예끼 버릇 없는놈 같으니라구!
[경수] 아니 이 영감님이---
[복덕방] 그래 이놈아 너는 애비도 애미도 없는 놈이기에 나이 먹은 늙은이 더러 공동묘지에 가라구? 이 천하에.
[최노인] 여보 김첨지. 젊은 애들이 말버릇이 나빠서 그런걸 가지고 탓달게 뭐요?
[복덕방] 그래 내가 집 거간이나 놓고 다니니까 뭐 사고 무친한 외도토린줄 아느냐? 이놈아!나도 장성같은 아들에다 딸이 6남매여!
[경수] 아니 제가 뭐라고 했길래---
[어머니] 넌 잠자코 있어! 용서하시우. 요즘 젊은 놈들이란 아무 생각없이 말을 하니까요---
게다가 술을 마셨다우.
[복덕방] 음 이놈이 한낮부터 술 처먹고 어른에게 행패구나! 이놈아! 내가 그렇게 만만하니?
[최노인] 김첨지! 글쎄 진정하시라니까--- 내가 대신 이렇게 사죄하겠소 원!
[페이지] 043
[복덕방] 그리고 250만환이 터무니없는 값이라구? 이놈아 누군 돈이 바람 맞는 대추 알이라던? 응? 그것도 잘 생각해서야!음! 이런 분한 일이 있나!
[최노인] 글쎄 참으시고 이리 앉으세요.
[복덕방] 난 그만 가보겠소이다. 이런 일도 기분문제니까요! 다른 사람 골라서 공동묘지 보내구려!애잇.(하며 퇴장)
[경수] 제길 무슨 놈의 영감이 저래?
[어머니] 네가 잘못이지 뭐니
[경수] 집을 팔지 말라고 했는데--- (이때 최 노인 쌔근거리면서 등장하자 이 말을 듣고는 성을 더낸다)
[최노인] 이놈아! 누가 집을 판다고 햇어?응?
[페이지] 044
[경수] 아니 그럼 이집을 파시는게아니면 뭐하러 복덕방은---
[최노인] 저런 쓸개빠진 녀석 봤나! 아니 내가 뭣 때문에 이 집을팔아?음 옳아 네놈 취직 자본을 대기 위해서?응?
[어머니] 아니 그럼 250만환이란 무슨 얘깁니까?
[최노인] 네따윗 놈을 위해서 하나 남은 집마저 팔아야만 속이 시원하겠니? 전세로 6개월만 내놓겠다는 거야.
[경수] 예 전세라구요?(어머니와 경운은 서로 얼굴을 바라본다.)
[최노인] 왜 아주 안파는게 양에 안차지 이눔아!이 애비가 집도 절도없는 거지가 되어서 죽는 꼴을 그렇게도 보?으냐?
[경수] (당황하며) 아버지 아니예요!저는---
[최노인] 아니면 껍질이냐?
[어머니] 여보 그럼 집을 전세로 줘서 뭣하시게요?
[최노인] 글쎄 아까 어떤 친구 얘기가 요즘 그 실내에서 하는 뭐드라 샤풀이뿔이라든가---
[경운] 샤뽈뽀오드 말씀이에요?
[최노인] 그래 샤뽈뽀오드 말이다! 그건 차리는데 돈도 안들고 수입이
[페이지] 045
괜찮다고하면서 5가에 적당한 집이 있다기에 그걸 해볼가 하고이 집을 보였지. 그래 얘기가 거의 익어가는 판인데 글쎄 다되어 간 음식에 코빠치기로 저 녀석이---
[어머니] 아니 그럼 전세로 250만환이란 말인가요?
[최노인] 그렇지! 저 가게만 해도 100만환은 받을 수 있어!
[어머니] 그런걸 가지고 나는 괜히
[최노인] 뭐가 괜히야?
[경운] 아버지께서 이 집을 파실 줄만 알았어요.
[최노인] 흥! 너희들은 모두 한속이 되어서 어째든지 내일을 안되게 하고 이 집을 나려 버릴 궁리들만 하고 있구나! 이 천하에 못된 것들!(하면 불쑥 일어선다)
[어머니] 그럴 리가 있겠어요! 다만---
[최노인] 듣기 싫어!(화초밭으로 나오며) 이 집안에서는 되는거라곤 하나도 없어! 흔한 햇볕도 안드는 집에 뭐이 된단 말이야! 뭐
[최노인] 내가 정성을 안들인게 뭐가 있어--- 나는 모든 일에 정성을 들었지만 안되지 않아! 하나도 씨도 말야!(경수 말없이 아래 방으로 뛰어가더니 잠시후 하얀 붕대에 싼 물건을 품에 넣으며 대문쪽으로 굽히 퇴장)
[어머니] 경수야!(경운은 잎술을 깨물고 섰다)
[막] 2막
무대
1전막과 같음. 전막부터 약구시간 후 초저녁때.거리에는 아직도 석양의 마지막 숨길이 남아 있는 시간인데도 이 집안은 벌써 전등불이 그리워질 만큼 어둡다.
[페이지] 047
옆집 다방에서는 재즈 음악이 한층 흥겨웁게 들려온다. 막이 오르면 화단앞에서 최노인관 경재가 화초며 고추모를 이리 저리 옮기기도 하고 다시 심어 주기도 한다. 최노인의 얼굴에는 모든 잡념일랑 버리고 화초에만 전념을 기울이려는 열성이 서려 있어 서글프게 보일정도이다. 좌편마루에는 어머니와 경운이가 마주 앉아서 물빨래를 손보고 있다. 마루 한구석에 저녁상이 놓여 있다. 어머니는 이따금 밥상 위에 날아드는 파리를 날리면서 화단에서 일하는 두 사람 쪽을 돌아다본다.
(경재가 짓밟힌 화초를 쳐들고 그뿌리가 상했나 안했나를 살핀다.)
[경재] (한 포기의 화초를 아버지에게 주며) 이것도 뿌리는 안 상했으니 심으세요.
[최노인] (풀포기를 받으며) 이게 살아날 수 있을까? 하며 이리 저리 살핀다.)
[페이지] 048
[경재] 괜찮다니까요--- 우선 심고 보는거죠!
[어머니] (최노인을 향하여) 이제 그만들 하고 저녁이나 먹읍시다! 경재가 시장하겠수---
[경재] 아버지---
[최노인] (일을 하면서) 배고프면 너먼저 먹어라. 난 마자 끌내고 할테니---
[경재] (불평스러운어조로) 괜시리 화단을 엉망으로 만드셔 놓고 이 고생이에요?내 참---
[최노인] 하기 싫으면 그만두래도!
[경재] 그럼 제얘기가 틀렸단 말이에요? 이화단이 어떤 화단이라고 이렇게--- 숫제 다 뽑아 버리시지---
[최노인] (정색을 지으며) 아니 이 녀석이--- 내가 가꾸어논 화단을 망가치건 살리건 내 마음이야!
[경재] 그렇게만도 볼수 없지오!
[페이지] 049
[최노인] 뭐라고?
[경재] 물론우리식구 중에서 이화단을 만드는데 누구보담도 정성을 들인 건 아버지였지요---
그렇지만---
[최노인]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는데 무슨 참견이냐? 이놈아---
[경재] (차근차근히) 아버지 혼자만을 위해서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애당초부터 아버지 혼자서만 보시고 즐기기 위해서라면 이 좁은 뜰에다 이렇게 고생하시면서 가꾸시지는 안했을게 아니에요?
[최노인] 아니 네 놈이 늙은 애비에게 훈계를 할 셈이냐? (하며 손에 들었던 호미를 내던진다. 그 소리에 어머니와 정운이가 깜짝 놀라며 돌아본다.)
[경재] (여전히 빙글거리는 표정으로) 훈계가 아니라 의견이죠--- (호미를 주우며) 아버지께서 화가 나섰기에 그러셨겠지만 형의 처지도 생각해 주셔야죠--- (경수 이야기가 나오자 아버지는 획돌아 앉으며 일을 계속한다.)
[페이지] 050
[경재] 사실 형은 불쌍해요. 군대가기 전엔 얼마나 명랑한 성격이 었어요.(약간 시무룩해지며) 아버진 형이 놀고 먹는 꼴이 뵈기싫다지만 놀고싶어서 놀게 되었나요?
[최노인] (비꼬는 어조로) 전쟁 때문에 망한 사람이 저하나뿐이라던? 서울장안에서 제놈뿐이야! 흥--- 그게다 핑계하는거야! 할랴고 덤비면 뭣인들 못해? 연탄집 준식이도 세탁소에 팔용이도 다 전쟁에 갔다 왔는데도 돈벌이만 잘하더라!
[경재] 그 사람들이야 국민학교도 안 나 왔으니까 무엇이건 벗어 붙이고 할수 있지만 형은---
[어머니] 그만저만 지껄이고 밥이나 먹어라--- (경재는 마루에 올라 아버지와 마주않는다.)
[경운] (쟁반에 국그릇을 들고 나오며) 어머니도 올라가세요---
[어머니] 난 좀 있다가 먹겠다---
[경재] 어머닌 저게 틀렸다니까--- 식사란 가족이 함께 먹어야 찬 없는 밥이라도 달게 먹을수 있어요---
[최노인] 넌 모르는게 없어 탈이더라--- 사내자식이 무슨 쥐둥아리를 그렇게 놀리냐? 쯧쯧---
[경재] (뒤통수를 긁으며) 그래도 할 얘기는 해야죠--- (네 사람이 상을 둘러앉아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머니
[페이지] 055
는 숟갈을 들다말고 우두커니 앉아있다.)
[경운] (딱한뜻) 어머니---
[최노인] 왜 또이래? 응
[어머니] (중얼거리듯) 언제나 온 집안 식구가 한자리에 앉아서 밥먹는 날이 있을는지! (하며 숟갈을 놓고는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는다.)
[경재] 이렇게 바쁜 세상에 어떻게 온 식구가 꼭같은 자리에서 밥을 먹어요? 제각기 적당한때에 먹는거지! 어서 드세요---
[어머니] 하루 이틀 아니고--- 이렇게--- 어디서 밥을 먹는지--- 죽을 먹는지--- 세상에 복도 없는 자식이--- (하며 흐느끼기 시작한다. 최노인은 잠시 어머니를 노려보더니 숟갈을 놓고는 돌아앉는다. 그리고 담배를 피운다)
[경운] (험악한 용기를 예감하며) 어머니--- 괜시리 눈물 바람이셔! 참 형이 어디가면 밥 굶을까봐 그러세요? 염려마세요!
[어머니] 아침에 그렇게 뛰쳐나갔으니 또어디서 술만 처마시고 며칠이고 딩
[페이지] 056
굴테지--- 어유--- 하나님도 너무하셔--- 경수에게 복을 안 내리시면 누가 복을 받는다고--- 어유--- (하며 운다.)
[경운] 어제 오늘 시작한 일이에요? 게다가 기다려보라는데 있다니가 그러는 동안에 무슨 통지가 오겠죠.
[경재] (여전히 밥을 먹으며)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어머니] 지성도 한도가 있지 벌써 몇 달이냐?이러다간 아주 페인이 되든지 부랑당이 될거야---
[경운] 어머닌 왜 그렇게 불행해지는 경우만 생각하세요?
[경재] 쥐구멍에도 햇별 드는 날이 있다잖아요?
[어머니] 그렇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안놓인다--- 요즘에 와서는 꿈자리가 사나운데다가--- 아침에 네 오빠가 나가던 때 눈을 봤지? 게다가 방에서 가지고 나간 것 또 뭐였는지---
[경재] 방에서 뭘 가지고 나갔어요?
[어머니] 뭣인지 하얗게 붕대로 감은 것을 가지고 쏜살같이 나가잖겠니?
[페이지] 057
[경재] (젓가락을 떨구며) 하얀 붕대로?
[경운] 경재야 너는 아니?
[경재] (호잣소리로) 그거야! 틀림없어---
[어머니] 그거라니?
[경재] 어머니! 누가 ! 왜 말리지 않았어요? 네?
[경운] 아니 그게 뭔대?
[경재] 권총일거에요!
[어머니] 뭣이?
[최노인] (안색이 굳어지며) 권총?
[경재] 형이 가지고 있는 것을 봤아요---
[경운] 그럼왜너는 여태 알리지 않았었니?
[경재] 형이--- 불쌍했어요! 아니 형이 권총을 가지고 싶은 심정엔 저도 공감이 갔으니까요!
[최노인] 경재야! 자세히 얘기좀 해라!
[페이지] 058
(경제는 안절부절하며 좀체로 말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경운] 경재야!언제 봤지? 그 권총---
[경재] 두달전인가 봐요--- 잠결에 바시락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눈을 떠보니까 형이 일어나 앉아서 두얼 만지고 있지 않겠어요? 그래 뭘하고 있느냐고 물으니까 형은 몹시 당황하면서 무엇을 트렁크 속에 감추는 것 같았어요.
[최노인] 그래 네가 봤었니?
[경재] 그 날은 그대로 잠을 잤어요 며칠후 공부를 하다가 문득 그 트렁크가 눈에 띄더 군요 저는 남의 물건을 뒤지는 것 나쁜 일인줄은 알면서도 열어 봤어요--- 그랫더니 트렁크 맨밑바닥에 권총이 붕대에 감긴채로 숨겨있었어요.
[최노인] 뭣이?
[어머니] (와들와들떨며) 뭣 때문에 그런 것을 감추었을까? 응?
[페이지] 059
[경재] 그것 못 봤어. 다만 손에 쥐어보니까 목적한 게 진짜 권총인것만은 사실이야!
[어머니] 어유 저걸 어쩌나?
[경재] 그날밤 형은 술에 취해 들어왔어요. 저는 형에게 그런 걸 왜가지고 있느냐고 캐물었죠. 형은 처음엔 화를 벌컥 내면서 저를 때리려고까지 하더니 나중에는 깔깔대고 웃지 않겠어요?
[최노인] 웃어!
[경재] 예--- 형얘기로는 그 권총을 볼 때마다 살아나갈 힘이 생긴다는 거예요. 전쟁터에서 총을 겨눌 때는 적을 쏘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고 만다는 그런 절박한 상태에서 불평도 불만도 없는 심경으로 돌아간다는 거에요.
[경운] 그러니까 그 권총을 가지고 있으므로써 반성하고 자신을 채찍질 한다는 뜻이구나? 맞었어! 형은 하루에 몇번이고 죽고 싶은 생각이 나지만 그 권
[페이지] 060
총을 보면 악착 같이 살고싶은 용기가 난다고요--- 최노인은 길게 한숨을 내쉰다. (어머니는 아직도 떨며 울먹거리고 있다.)
[경재]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형과 같은 환경에 놓이면 누구나 다그렇게 될 수 있다고 느껴졌지요. 형은 저더러 그 얘기는 비밀로 해달기에---
[경운] 그렇지만 왜 하필이면 그 걸 가지고 나갔을까!
[경재] 저도 그게 불안해요(사이) 그걸 팔려고 가지고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아니야 형은 권총으로 자살을---
[어머니] 뭣이?
[최노인] 망할자식! 자살이라니---
[경재] 그렇지 않고서야 뭣 때문에 가져 갔겠어요?
[경운] 아버지! 경재말이 옳을지도 몰라요 그걸 팔 생각이 있었다면 진
[페이지] 061
작 돈과 바꾸었을 게 아니에요?
[어머니] 영감이 그 애에게 너무하셨어요! 그렇게 심히 꾸지람 듣기란 그 애로선 생전 처음 당한 일이었을 텐데---
[최노인] 아니 이제와선 내 탓이야?
[어머니] 복덕방 이야기만 듣고서 지레짐작을 한 것은 경수 잘못이기도 했지만 그 애는 그애대로 부모에게 대해 미안해서 하는 소리를 가지고---
[경운] 어머니! 어떻든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오빠를 찾아봐야겠어요---
[최노인] 어떻게 찾는단 말이냐?
[경재] 형이 잘가는 목노집에 들려보면 대강 눈치를 알수 있죠! 제가 가 보겠어요!(경재가 뜰로 내리서자 경운이도 따라 일어선다.)
[경운] 그럼 나는 오빠 친구네 집을 몇군데 돌아 보겠어--- (하며 방으로 들어간다 무대는 전보다 어두워졌고 배경으로 도시
[페이지] 062
의 불빛이 또렷하게 나타난다 경재가 대문 가까이 갔을 때 대문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경재] (긴장하며) 누구세요? 형님이요? (모두 긴장하여 보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경재가 대문을 열어 내다 본다 그러나 밖에 사람은 들어서지 않는다.)
[경재] (잠시 살피더니) 큰 누나 아니야? 왜 들어오지 않고 서 있어요? 어서 들어와요!
[어머니] 누구냐?
(이때 비로소 경애가 서서히 들어선다. 아침에 나갈 때와는 달리 풀이 죽은 모습으로 땅만 내려다 보면서 뒷마루에 가서 앉는다. 심상치 않은 태도에 경재는 말 없이 바라본다.)
[경운] (옷을 가라입고 나오며) 언니 왔어요?(경애를 발견하자 언니 어떻게 ?수?
[페이지] 063
(경애는 허공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차츰 표정이 이지러지며 마침내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흑흑 흐느껴울기 시작한다. 정운과 경재는 서로 얼굴을 처다만 보며 말을 걸기를 망설인다.)
[경운] (가까이가서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언니--- 왜 이러세요?
[경애] (히스테리칼하게) 제발 나혼자 있게 내버려두라니까?
(뜻밖의 태도에 경운은 멍하니 서있다)
[경재] (돌아보며) 아니 웬 요란이야? 지금 집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줄 이나 알고 그래요?
[경애] 너희들까지도 나를 놀리기냐? 왜들 나만 보고 서있어?
[어머니] 경애야---
[경애] (중얼거리듯) 도적놈들! 이세상에 믿을 거라곤 없어! 모두가--- 협잡군들이야!
[경재] (재빠르게 눈치를 차리며) 흥 이제사 알았어요?
[경애] 뭣이?
[페이지] 064
[경재] 그러기에 훔치는 도둑보다 도둑 맞는 사람을 탓하는 세상이죠!!
(경운에게) 그럼 나 먼제 다녀 올께요. (하며 대문 밖으로 뛰어 나간다.)
[경운] (동정의 눈초리로) 언니 그럼 역시 안됐수?
[경애] 떳떳이 시험이라도 보고 안되었다면 덜분하겠어--- 그런데---
[경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예?
[경애] 처음부터 이상스런 예감이 들긴 했었지만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줄은--- 아--- (하며 다시 흐느낀다)
[경운] 언니 자세히 좀 말해봐요!
[경애] 글쎄 그 영화사라는 게 가짜였구나---
[경운] 예? 가짜라뇨?
[경애] 신인 여배우를 모집한다고 선전만 하구 수속금만 몽땅 긁어먹구선 자취를 감추었으니 어떡하면 좋으니 응?
[페이지] 065
[경운] 그럼 심사위원은요?
[경애] 그녀석도 한속이었어--- 30명이나 되는 사람이 그걸 모르고 매일같이 문턱이 닳도록 따라다닌 결과가 이것뿐이라니 분하지 않아?
[경애] 만환이란다---
[어머니] 그러기에 내가 뭐라든--- 진즉 마음 잡아 시집이라도 갔으면---
[경운] 어머니도--- 일 잘 되기를 바라고 하는 일이 었지 누가 이렇게 될줄 알았나요?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까짓것 돈 만환 없어졌다고 어떨라구요? 자 어서 방으로 들어가세요.
[경애] (새삼 슬퍼지며) 누가 돈이 아깝다고 했니? 그까짓 돈이 문제가 아니라니까!(하며 허둥지둥 방으로 들어간다 세사람은 경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다 잠시후 방바닥에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울음소리가 터져나온다.)
[페이지] 066
(경문은 긴 한숨을 뱉으며 서서히 대문쪽으로 나간다)
[최노인] 말세야--- 말세---
[어머니] (영감의 말을 가로막으며) 그만좀 덮어 두세요--- 그애속인들 오죽하겠수? 원---
[최노인]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기로 하늘이 땅되고 낮이 밤되라는법은 아닐 텐데--- 자식을 믿는 부모가 등신이지! 이제 무슨꼴이람 어서 죽는게 상팔자지! 에잇---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 뜰로 내려온다 어머니는 시름 없이 상을 들고 마루 구 석에다 놓는다 이때 대문밖에 인기척이나며 우체부가 들어선다.
[우체부] 이댁에 최 경수란 사람 있읍니까?
[최노인] 예--- 있기는 있는데--- 왜요?
[우체부] 속달 우편입니다--- (하며 펼지를 내민다.)
[최노인] 속달이요?(편지를 받아 눈 가까이 대보며) 이거 눈이 어두워서 보여야지--- 어디서왔소?
[페이지] 067
우체부(대문밖으로 나가려다 돌아서며) 영등포에서 왔어요--- 안녕히 계셔요 (우체부가 대문 박으로 나가자 최노인은 편지를 들로 마루로 와 않는다.
[최노인] 영등포---
[어머니] 혹시 취직이 되었다는 소식 아닐까요?
[최노인] 응?
[어머니] 아침에 경수말이 영등포 어느 공장에서 도 기다리라고 했다던데---
[최노인] 글쌔--- 내 안경이 어디 있던가--- 이때 경재가 밖에서 들어온다.)
[어머니] 경재야?
[경재] 목노집엔 안들렸다는데---
[어머니] 애 너 편지 좀 읽어보라---
[경재] 편지라뇨?
[어머니] 네형앞으로 온 편지라는데--- -
[페이지] 068
[경재] 그걸 왜 봐요 남의 편지를 함부로 뜯는게 아니에요---
[최노인] 읽으라면 읽어봐 저녀석은 말끝마다 아는척이지(하며 편지를 내민다.)
[경재] 편지를받아 뒷면을 보며 ) 광일제약주식회사? 영등포에 있는 회사군요---
[어머니] 어서 읽어 봐라(사이)
[경재] (편지를 읽다 말고 아버지 되었어요!
[최노인] 뭐가?
[경재] 형님 취직 말이에요---
[어머니] 정말이냐?
[경재] (편지를 읽으며) 귀하를 본사 업무과에서 채용하고자 하오니 오는 30일까지 출사하여 주시기 바라나이다--- 어때요?
[최노인] (얼굴에 빙긋이 미소가 떠오르며) 그럼 틀림 없군!
[어머니] 제약회사라 약만드는 히사지?
[페이지] 069
[경재] 예 이제 어머니 약은 염려 없겠네요? 핫하---
[어머니] 슥 이렇게 고마울 때가 또 어디 있겠니--- 그러기에 무슨일건 꾹 참으면 되는 거래도---
[최노인] 참아서 되었나운이 터져서 된게지---
[어머니] 정말 큰애 취직만 되어도 우리집의 큰 고질은 나은 셈이죠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며)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기뻐하겠수 취직이 난되어 밤낫 서리맞은 호박잎처럼 비신거리더니 이젠 살았어요---
[최노인] 어지만 이렇게 일자리 구하기가 고되서야--- 쯧쯧--- 좌우간 우리도 어떻게 서둘러서 다시 가게를 열도록 해야겠어---
[어머니] 이집은 어떻게 하기겠어요?
[최노인] 어떻게 하다니?
[어머니] 전세를 내놓으시겠다면 서요?
[페이지] 070
[최노인] 그건달리 생각해 봐야겠는걸---
[어머니] 달리 생각하다뇨?
[최노인] (뜰을 이리저리 거닐며) 당신 말대로 작은 집으로 갈아잡아야 되겠소
[경재] 에 아버지 그럼 후생주택으로 들어가는거죠 네 되겠죠
[최노인] 이녀석아 이손을 놔
[경재] 그렇게 자신의 주견을 고집하다가는 전체의 의사를 위해서는 양보하시는 아량이 있으시니 말이죠
[최노인] 또 연설이다 헛허---
[경재] 핫하---
[어머니] 그럼 내일부터라도 집을 알아봐야 겠네요
[페이지] 071
[최노인] 그렇게 해요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구멍가게라도 차립시다
[경재] 그리고 형님 양복이라도 한벌 맞추어야죠
[어머니] 네 말이 옳아 의복이 날개라는 말도 있지 않아요 아무리 속에 듣게 많아도 차림새가 허수룩하면 얕잡아 보는 세상이니까?
[경재] (행복감에 잠기며) 그러고 보니 세상은 살고 볼일이예요 이렇게 한가지씩 일이 처리되어 가니 재미 있잖아요
[최노인] 네 형이 취직했으니 이젠 다리 뻗고 자겠다.
[어머니] 이제 경애 시집보내고 경재 대학에 들어가면 바랄게 뭐 있수 경운이는 없으니---
[경재] 참 큰누나는 어디 갔어요?
[최노인] 철없는 것 짐안에서 용이 나는지 불이 나는지도 모르고 잠안자 어서 깨어라 경재야
[어머니] 내버려두세요 그애 마음도 생각해 줘요 그렇게 몸앓아 다
[페이지] 072
니다가 그런꼴을 당했으니 오죽하겠어요 울고불고 하느니 보다는 낫지 내일부터는 개운한 얼굴로 일어나게 내버려뒤요 그렇게 한 번 경을 치고나가야 마음도 여물어지는법이니까요---
(이때 대문밖에 웅성거리는 소리난다 세사람은 동시에 그쪽을 돌아본다.)
[어머니] 또 무슨 일이났나?
[최노인] 경재야 나가 보아라---
[경재] 예--- (하며 대문쪽으로 가려할 때 다음 말소리가 들리다.)
[형사] (소리만) 빨리 들어가지 못해--- 아니 이 자식이--- 왜 안들어가 응(하면 잠시 비비적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대문이 열리며 경수가 들어선다. 그의 손엔 수갑이 채워졌다 경수는 가족들을 보가 재빠르게 얼굴을 돌리며 선다.(형사는 밖에서 몰려드는 사람을 몰아낸다.) 그만 들어가지 못해 왜 이렇게 졸졸 따라다녀 어서!
[페이지] 073
(형사의 호령에 왁자지껄하며 사람들이 몰려가는 소리난다 형사는 대문을 닫고 들어선다.
( 최노인 어머니 경재는 감전된 사람처럼 형사와 경수를 바라보고 있다 무서운 침묵이 흐른다.
[형사] (형식적인 인사를 던지며) 영감님이 이집의---
[최노인] (일부러태연하게) 예 이 사람이 주인 인데요--- 어디서오셨는지---
[형사] (신분증을 내보이며) 저 수사계에 있읍니다 잠깐 조사할 일이 있어서 요 --- 경수를 가리키며) 아드님이신가요?
[최노인] 예--- 재 큰애입니다.--- 무슨잘못이라도 저질렀나요?
[형사] (그말에는 대담도 안하고) 방이 어딥니까? 좀들어가 볼까요?
[경재] (아래방을 가리키며) 여기에요
[형사] 응--- (들어가려다 말고 경수에게) 도망치면 재미없어 알았지?(가족들에게 ) 가족에게도 책임이 있읍니다(하고는 방으로
[페이지] 074
들어간다)
[어머니] (와들와들떨면서) 경수야 --- 이게 ---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응--- (경수는 등처럼 서있을뿐이다.)
[최노인] (경수 곁으로 나가서며) 누구하고 싸웠니?응? 이게 무슨 창피냐?
[어머니] 경수에게로 바싹붙으며 속시원히 말좀해라 그렇지않아도 경재와 경운이가 너를 찾아다녔는데 --- 어디서 무엇을 했기에 이런--- (하며 수갑을 내려다본다 그러나 경수는 여전히 말이 없다
[경재] 형님 권총은 뭣하러 가지고 나갔어요 (권총말이 나오자 경수에 얼굴에 한줄기 긴장이 스쳐간다.)
[경재] 죽는다고 만사가 해결되나요 바보 같이 죽기는 왜 죽어요 자살미수라고 신문에 나면 무슨 창피에요?
[최노인] (그이상 참을 수없다는 듯이 노기를 폭발시키며) 왜 말못해?
[페이지] 075
아가리는 언제 쓰라는 아가리야! 이 천하에 못돼먹은 자식!(하며 경수의 뺨을 친다. 그래도 경수는 입술을 깨물뿐 반응이 없다.)
[어머니] 여보! 때리기는 왜 때려요! (애결하듯) 경수야 제발 말좀해라. 이 에미 가슴이 터지고 말겠다! 응? 경수야? (이때 형사가 방에서 나온다.)
[최노인] (형사에게 다가서며) 저--- 선생님 저 녀석이 무슨 죄를 지었나요?
[형사] 아직 모르시는군요? 글쎄 어쩌자고 아들을 그런 못된 짓을 하게 내버려 둔단말이오!
[최노인] 무슨 짓을---
[형사] 그보다 아들이 권총을 숨겨 두었다는 것을 몰랐던가요?
[최노인] (경재를 바라보더니) 권총이라니? 전혀 모 모르는 일입니다---
[페이지] 076
[형사] 몰랐어? 집안에서 그렇게 감독이 불충분하니까 밖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게--- 영감님 아들은 (잠시 사이를 두고 식구들을 훑어보더니) 백주에 강도질을 했어요!
[최노인] 예 ?
[어머니] 가 강도요?
[경재] 형님!
(경수는 두어 발 비틀거리더니 벽에 얼굴을 기대며 돌아선다)
[형사] 종로에 있는 귀금속에 들어가서 권총으로 협박 끝에 싯가 3백 만환에 해당하는 귀금속을
[경수] 아버지! 마지막으로 말씀올리게 있어요. 제가 아버님 어머님께 곱게 보이려다가 그만 이꼴이 되었군요 더 때문에 이 집을 팔수도 없지만 그렇게 되는걸 우두커니 방관할수도 없는 저였어요. 저는 오늘 아침에 집을 나갈때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아무도 모르게 죽을 작정이었어요---
[경재] 형님은 천치 바보야! 비겁해!
[경수] 네 말대로 나는 철저하게 비겁했었지! 그러나 나하나 때문에 집안이 헝클어지고 그늘진 것을 모르는척 할 순 없었단다---
[페이지] 078
나만 없어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일이었으니까--- (사이) 그러나 번화한 거리에 나섰을 땐 내마음은 차츰 변해졌어! 그러다가 보석상 앞을 지나치던 순간의 나는 벌써 엉뚱한 것을 공상했었다 경재야! 이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순간만은 매력있는 일이었다.(이왕 죽을 바엔--- ) 이런 생각이 나를 마구 몰아댔다---
[최노인] 내가--- 내가 미쳤지 저런놈을 자식이라고 믿고 기다리던 내가--- (하며 소리 죽여 운다.)
[경수] 어머니--- 정말 어머니는 불쌍해요. 나는 어머니 때문에 진작 죽고 싶어도 못죽었지만 오늘 죽으려고 한것도 실은 어머니 때문이 었어요 어머니---
[어머니] 경수야!(하며 경수의 가슴팍을 파헤치듯 멈부림 친다.)
[경수] 어머니 우시지 마세요 저는 이미 눈물도 말라 버렸어요. 제가 없더라도 경재가 제몫까지 효성을 바칠 것에요---
[페이지] 079
[어머니] 아--- 하나님도 변덕스럽지 하루만앞서 소식을 주셨어도 아들 하나 살릴텐데--- 죽은다음에 의사를 보내면 무슨소용이람! 아이구---
[경수] 무슨 얘기에요?
[경재] (마루 끝에 놓인 편지를 보이며) 취직통지서가 왔었어요--- 영등포에서---
[경수] (고랑이 채인 손으로 편지를 받아보며) 고마운 친구야--- 그래도 그친구만은 신의를 지켜주었군--- (발작적으로 웃으며) 나에게 주는 송별 꽃다발 치고는 최고군! 핫하--- (하며 대문쪽으로 걸어간다 땅에 떨어진 편지를 경재가 줍는다 이때 대문이 열리며 경운이가 마치 유령처럼 들어온다 뺨에는 눈물자국이 남았다. 경운과 마주친 경수는 화석처럼 서서 경운을 응시한다.
[경수] (속삭이듯 그러나 떨리는 목소리로) 경운아! 용서해라---
[경은] 왜 남의 이름을 불러요? 나는 아무관계 없는 사람이에요?(
[페이지] 080
하며 외면을 한다.)
[경수] (입술가에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알겠다--- 그렇지! 관계 있을 리가 없지--- (뒤를 돌아보며) 어머니--- 경재야--- 아버님을--- (하며 획돌아서 나간다. 형사가 대문밖으로 나가자 밖이 어수선해지면서 군중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난다.)
[형사] (소리만) 비켜. 저리 가라니까!뭘 보겠다는 거야! 저리가!(이 말과 함께 군중들의 웅성대는 소리도 멀어지며 골목안은 전처럼 조용해진다 차도에서 들리는 기적소리와 이웃 다방에서 울려오는 애상적인 경음악의 부조화음이 유난히도 자극적이다.)
[어머니] (대문을 쓸어 안을 듯이) 경수야! 경수! (경운은 말 없이 마루로 올라 방으로 들어간다.
최노인은 마루 끝에 앉아 있고 경재는 땅만 내려다보고 있다. 침묵이 흐른다 경운의 방에 불이 켜지며 발이 걸린 미닫이문 너머로 경운의 모습이 아련히 보인다.)
[페이지] 081
[경운] (무엇을 발견했는지 놀라 비명을 지르며) 앗! 경재야! 경재야!
[경재] 누나! 왜 그래?
[경운] 언니가--- (누워있는 경애를 흔들며) 언니! 언니! 정신차려!
[최노인] 무슨 일이냐?
(경재를 급히 방으로 뛰어간다. 그러나 경운의 통곡소리가 터지자 어머니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며 방가까이 온다 경재가 한 장의 종이를 들고 나온다.)
[경재] 큰 누나가 자살을 했어요---
[최노인] 경애가?
[어머니] 아니 자살을 하다니---
[경운] 죽기는 왜 죽어! 못난이!하며 방에서 뛰쳐나온다. 그의 손에는 빈 약갑이 들렸다.) 수면제를 먹었어요---
[어머니] 뭐라고?
(최노인은 유서를 읽고 있다 그의 손은 가늘게 떨린다.)
[페이지] 082
(경애의 목소리)
'아버님! 그리고 어머님--- 저는 속았어요. 마음도 몸도 남에게 속았으니 이상 살수 없어요--- 나이론 면사포를 사드리겠다는 것도 허사가 되었어요---
[최노인] (유서를 읽다말고) 아니 이게 무슨 꼴이람! 이렇게 한꺼번에 집안이--- 아니 이게---
(최노인은 벌덕 일어서며 안절부절한다 어느새 어머니는 방에들어가서 경애의 시체를 안고 운다)
[경운] 아버지 진정하세요--- 네---
[최노인] 이런 팔자도 있담!허--- 풀포기만 시들게하는줄 알았더니 사람까지--- 아니 이게 정말이야? 경애야!(하며 발광하는 사람 처럼 방으로 뛰어들려고 하자 경운이와 경재가 아버지를 안아 말린다.)
[경재] 아버지 들어가지 마세요!
[페이지] 083
[최노인] 놔라! 이놈들아! 놔! 그년의 죽어 넘어진 꼴을 봐야겠다!
[경운] 아버지 이러시지 마세요. 언니의 마지막 길을 조용히 떠나게해 주세요---
[최노인] 사람 목숨이 그렇게 값없는 것인줄 알았더냐? 너희들 사남매를 길러낼 때 나는 죽음이란 생각도 못했는데 너희놈들은--- 아--- 이게 내가 얻은 전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