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치매 치료제 나온다… 50대는 혜택”
알츠하이머병과 싸우는 서울대 의대 묵인희 교수
서울대 의대 연구실에 선 묵인희 교수. |
묵인희 서울대 의대 대학원 의과학과 학과장의 연구실은 서울대 의대 내 사도세자의 사당 터 옆에 있다. 가을비를 맞고 있던 비운의 조선 세자 유적 옆에는,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한국인의 알츠하이머병의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묵 교수의 연구실과 실험실이 있다. 의과학관 2층 206호 연구실로 지난 10월 15일 찾아간 묵인희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연구의 국내 최고 권위자다.
사람은 기억이 자기 정체성, 즉 자아를 이룬다. 그 중심에 뇌가 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기억을 잃으면 인간은 허물어진다. 팔다리가 없어도 살 수 있으나, 뇌의 기억이 사라지면 살 수 없다. 사람이 아닌 좀비가 된다. 50대 중반인 나도 노년기를 생각하면 치매가 두렵다.
묵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 다국적 기업 로슈에 2010년 2억9000만달러에 기술이전한 걸로 유명하다. 묵 교수는 2011년에는 생화학분자생물학회가 수여하는 마크로젠 여성과학자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 1월 초 한국연구재단에 의해 뇌 과학 분야 제1호 R&D플래너(연구개발 기획전문가)로 선정돼 한국의 뇌 과학 육성을 위해 정부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연구 지원을 할지 자문한다.
연구실에서 만난 묵 교수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이야기부터 꺼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5월 알츠하이머병 연구에 더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구체적인 연구 투자의 방향까지 이야기하는 걸 보고 부러웠다. 그는 재선에 성공한 뒤 올 초에는 ‘뇌지도 구축 계획(Brain Initiative)’을 직접 발표했다.” 뇌지도는 뇌 연결 상태에 대한 종합적 설계도다. 20년 전 미국 정부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투자했는데, 당시 1달러의 투자는 오늘날 184달러의 효과를 거둔 걸로 평가된다고 했다. 묵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의 뇌지도 구축사업 투자는 게놈 프로젝트보다 더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투자 대비해 몇백 배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뇌 연구 투자에 유럽연합이 자극받았다. 오바마의 발표 이후 FP7(Framework Program) 안에 인간 뇌 프로젝트를 포함시켜, 올해부터 10년간 10억유로(약 1조6000억원)를 지원한다.
묵 교수에 따르면 뇌 과학 연구의 주요 분야는 △뇌신경 생물학 △뇌질환 △뇌인지 △뇌공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묵 교수는 이 중 뇌질환 분야의 알츠하이머병 전문가이다. 치매 관련 기초 연구는 △노인성 치매의 대표적 질병인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메커니즘 연구와 △이를 환자에 적응시키려고 하는 치료제 개발 및 조기진단 방법 개발로 진행된다.
한국의 뇌 과학 연구도 활발하다. 묵 교수는 자신의 책상 위 컴퓨터 화면에 자료를 하나 띄워 보여줬다. ‘2002~2007년 발표 논문으로 본 뇌 분야 부상국가 및 감소국가’란 제목의 도표다. 도표에 따르면 ‘선도국가’는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이며, ‘부상국가’는 중국, 한국, 브라질, 터키, 인도이다. ‘부상국가’는 연평균 발표논문 수의 증가율이 10% 이상이다.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2003년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기술개발 사업단’이 출범하였고, 연 100억원씩 10년간 뇌 과학 연구에 투자했다. 서울대 김경진 자연과학대 교수가 단장이었다. 정부의 지원 이후 뇌 과학의 저변이 확대됐다.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사업은 뇌 과학 연구에만 1000억원이 들어간 대단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 본 사업이 끝났다. 후속 연구 지원이 없어 뇌 과학 연구자들 모두 너무 아쉬워하고 있다.” 프런티어 연구개발사업은 2003년부터 BT, IT, NT, ET 등 각 기술 분야에서 선진국과 경쟁이 가능한 국가전략 기술을 10년간 집중 개발하여 세계 정상급 기술력 확보를 위해 추진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과학기술인으로서 어느 대통령보다도 과학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클 것으로 생각한다. 정보통신, 에너지, 나노 기술 못지않게 뇌 과학 연구의 중요성과 국가 성장동력으로서의 가능성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묵 교수는 한국 알츠하이머병 연구의 향후 방향에 대해 “미국은 뇌지도 연구에 조 단위 예산을 투입한다. 우리는 돈과 연구 인력에서 미국에 크게 뒤진다. 겨우 첫발을 뗀 상태이다. 미국과 똑같이 해서는 승산이 없다. 기술 차별화, 특화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전국 지도를 그린다면 우리는 관광 지도를 만들어 보자는 게 묵 교수의 생각이다. 한국은 ‘길목’을 잡을 수 있는 걸 연구해 보자는 것. 묵 교수가 말하는 ‘관광 지도’는 예를 들면 △발달 뇌지도 △한국인 치매 예측 뇌지도 △감각 뇌지도의 구축이다. 발달 뇌지도는 유아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뇌가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그리는 작업이다. 지난 10월 1일 국회 이한성 의원실이 주최한 ‘뇌 과학 발전 세미나’에서 발달 뇌지도의 중요성이 얘기됐다. 이 세미나에서 고려대 선웅 교수가 발달 뇌지도에 대해 발표했다. 묵인희 교수는 치매 뇌지도,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는 ‘포스트 뇌지도 시대의 우리의 대응전략’에 대해 발표했다. 묵 교수는 “현재 발달 뇌지도 제작의 중요성을 열심히 설명하고 정책당국자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매 예측 뇌지도 구축 작업은 활발하다. 미래부가 나서, 치매 예측 뇌지도 구축을 진행키로 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경쟁에 부쳤다. 50억원씩 5년간 250억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서울대 의대팀과 성균관대 의대팀이 최종 경합 중이며, 10월 말~11월 초에 심사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의대 연구인력 수백명이 달려드는 큰 프로젝트다. 묵 교수는 과학자 세계의 연구비 확보를 위한 “경쟁이 대단히 치열하다”고 말했다.
미래부가 추진하는 치매 예측 뇌지도 작성 프로젝트는 △한국 노인(65세 이상)의 표준 뇌지도 구축 △알츠하이머병 환자 뇌지도 구축 △혈액 내 알츠하이머병 유발 단백질 표지자와 유전인자 표지자를 발견하는 것이 목표다. 표준 뇌지도와 알츠하이머병 뇌지도 구축은 자기공명영상(MRI)장치와 양전자단층촬영(PET) 등 뇌 영상을 갖고 진행한다. MRI로는 뇌의 구조를 보고, 아밀로이드 PET로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이 뇌 안에 있는지 없는지를 조사한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면 대뇌피질이 얇아지고 해마가 쭈그러든다. MRI로는 대뇌피질의 두께와 해마의 위축 정도를 조사한다. “나이가 들면 얇아지는 대뇌피질 부위가 있는데, 치매에 걸리면 더 빨리 얇아진다. 어느 부위가 얇아진다는 건 알았지만, 얼마나 얇아지는지를 정량적으로 조사하게 된다.” MRI와 PET로 뇌 영상을 촬영하면, 컴퓨터 공학 관련 과학자들이 관련 영상 분석을 위한 프로그램을 짜서 분석 방법을 개발한다. 그 다음은 혈액검사를 통해 알츠하이머병 환자에 특이하게 나타나는 단백질 표지자와 유전인자 표지자를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통합적인 알츠하이머병 진단 예측을 위한 솔루션을 개발한다.
묵 교수에 따르면 혈액 속에서 알츠하이머병의 특이 표지자들을 찾아내면 뇌 영상 촬영 방식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 환자의 검진 비용 부담이 줄어든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치매의 7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의 조기 진단과 예측에 큰 진전이 이뤄지는 건 물론이다. 이 성과를 근거로 5년 후 시범 사업 서비스가 시작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는 알츠하이머병 중기 이후 환자들이 주로 병원에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온다. 조기 진단을 할 수 있다면 치료 시기를 앞당겨 병의 진전을 늦출 수 있으므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치매 예측 뇌지도를 구축하고 나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이 그 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진단 예측의 정확도도 올려야 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2025년까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을 주문한 바 있다. 묵 교수는 “우리 세대는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50대 중반인 나에게 말했다. 취재 중 가장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 2025년이면 13년 후이다. 반색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 개발 중인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여러 건 있다. 그중 가장 빨리 진행이 되는 것이 치료용 백신이다. 항체를 만들어 주사를 놓는 것이다.
” 2025년이면 알츠하이머병이 극복되는 것일까? 묵 교수는 “그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개발될 백신 치료제는 고가이고 아직까지의 임상실험 결과를 보면 증상이 심한 환자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알츠하이머병은 병의 원인이 다양해서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병 정복을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대박’을 꿈꾸며 연구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알츠하이머병 관련 약품은 증상 완화제일 뿐 본격적인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묵 교수가 지난 2010년 로슈에 기술이전한 알츠하이머병 치료 신약 후보 물질은 RAGE저해제. 현재 로슈가 먹는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동물 실험을 진행하는 단계다. 먹는 약이 백신보다 훨씬 낫다. 백신은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하지만, 먹는 약은 처방에 따라 집에서 복용하면 된다.
묵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극복을 위해 세 가지 방향에서 연구하고 있다. 첫째는 치료제의 새로운 타깃을 찾아내는 일이다. 알츠하이머병 공략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발견하는 것으로, 그가 찾아낸 RAGE저해제(2009년 개발)가 그 같은 접근법의 결과다. 지난해에는 HDAC6(종근당과 함께 상품화를 목표로 공동연구 진행), 2006년에는 ERK1/2란 새 타깃을 찾은 바 있다. 두 번째 연구 방향은 알츠하이머병 조기 진단을 위한 생체 표지자 발굴이다. 혈액검사로 비교적 간단하게 검사를 할 수 있는 것으로, 기업과 함께 진단 키트를 만들어 임상시험을 거쳐 상용화를 위해 식약처의 승인 신청을 한 바 있다. 세 번째 연구 방향은 알츠하이머병 원인의 메커니즘 연구다. 묵 교수는 당(糖)대사와 알츠하이머병와과의 연관 관계 논문, 신경세포 사멸의 기전 연구 논문을 예로 들었다.
국내에 알츠하이머병 기초연구자는 손꼽을 정도로 소수이다.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국내 연구자는 진입을 꺼린다. 묵 교수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96년 말 귀국한 뒤 계속해서 알츠하이머병 연구를 해왔다. “기초연구의 전문가가 암, 당뇨병과 같은 타 질환과 비교해 볼 때 그 숫자가 상당히 적은 편이다.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사는 많으나 기초연구자는 없다.” 그는 서울대 자연대 동물학과(1982학번)를 졸업하고, 1991년 미국 애리조나대학교 세포생물학 및 해부학과에서 신경과학을 전공, 시냅스 형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알츠하이머병 연구와 인연을 맺은 건 아주대 교수로 귀국하기 직전, 1년 반 동안 박사후과정을 밟았던 UC샌디에이고에서였다.
“알츠하이머병 연구는 실험대상 동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난점도 있다. 쥐가 사람과 유사한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을 나타내려면 늙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리의 시스템은 어떤가. 연구 성과를 바로바로 내도록 요구한다. 알츠하이머병 동물모델 쥐를 실험에 쓰려면 생후 적어도 6개월~1년은 되어야 한다.”
젊은 연구자들에겐 실험용 쥐 값도 만만치 않다. “쥐값이 말도 못하게 비싸다. 서울대 의대는 동물사육실에서 키운다. 나는 실험용 쥐를 500마리 확보하고 있다. 사육비를 동물사육실에 내야 한다. 미국에서 이걸 사오려면 마리당 300만~400만원은 될 것이다.”
묵 교수의 연구팀은 연구실과 같은 층에 있는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있었다. 이날은 서울대 개교기념일이고, 서울대병원 개원일이라서 쉬는 날이었다. 남들은 놀고 있으나 20·30대 연구원 십여 명이 책상 앞에 딱 붙어 있었다. 묵 교수가 이끄는 ‘알츠하이머병 연구실’은 연구교수 3명, 박사후과정 2명,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까지 해서 모두 20명이라고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알츠하이머병 연구 주제는 40개. 개인당 두 개씩 한다고 보면 된다.
“여러가지 행정업무로 시간을 많이 할애하다 보니 논문을 올해는 많이 쓰지 못했다. 일주일에 많은 시간을 다양한 회의에 참석하며 보낸다. 실험실에 있는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봐줘야 연구가 진행이 빨리 되고, 논문도 쓸 수 있는데….”
묵 교수가 알츠하이머병 연구를 해오는 동안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논문을 발표할 때, 학생들 학위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를 열고 Pub Med 웹사이트에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고 검색해 보더니, 98편을 썼다고 했다. 해외 저널에 실린 논문들이다.
묵 교수는 대표적인 뇌신경과학 전문 해외 저널인 ‘Journal of Neuro Science(신경과학저널)’, 네이처의 자매지 ‘Cell Death & Differentiation(세포 사멸·분화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해 왔다. 알츠하이머병 전문 저널로는 ‘Journal of Alzheimer Disease(알츠하이머병 저널)’가 있으며 묵 교수는 이 잡지의 에디터를 2010년부터 맡고 있다. 저널의 에디터는 연구자가 이 잡지에 보내는 논문을 리뷰할 사람을 정하고 리뷰가 오면 저널에 게재할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묵 교수는 “‘Journal of Alzheimer Disease’의 에디터로 일하는 걸 명예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묵 교수는 “이제 연구에 ‘올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두 자녀가 모두 대학에 갔기 때문에 아이 키우는 데 더이상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제는 자유롭다.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지독히 연구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까지의 성과만도 대단해 보이는데, 연구는 지금부터라고 말하니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녹음기를 끄던 나는 “요즘 사람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치매 초기가 아니냐”고 물었다. 묵 교수는 “노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상적인 일이다. 나의 부모님도 같은 질문을 내게 해오신다. 아니라고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나는 묵 교수 말을 듣고 안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한국 고령화사회의 건강을 책임질 의학자는 매우 겸손했고, 그의 제자들은 눈빛이 반짝반짝했다.
오늘도 다녀가신 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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