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2 - 부산에서 페리로 히타카츠항에 상륙해 호텔에 가방을 맡기고 점심을 먹다!
2024년 1월 25일 부산역에 도착해 대합실로 들어가 구름다리 통로를 걸어 부산국제여객 터미널 로
가서 딸 부부와 손주 셋을 만나니 일행은 작년 규슈를 여행했을 때 처럼 우리 부부 등 7명 입니다.
배로 히타카츠(比田勝) 에 상륙해 호텔에 가방을 보관하고는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 을 구경
하고 나기사노유(渚の湯) 에서 온천을 한후 돌아와 1박 하고는 다음날 렌터카로 남쪽으로
달려서 에보시타케 전망대 에 올라 쓰시마 북섬과 남섬 사이에 바다인 아소만을 내려다 봅니다.
그러고는 렌터카에 올라 와타즈미신사를 지나 만제키 운 하를 다리로 건너 가네다성터 에 오른후 면세점
다이렉스 미쓰시마 에 들른후 남섬의 이즈하라(嚴原) 에서 가네이시성 과 최익현 순국비가 있는
슈젠지 절을 보고 1박 후 다음날 히타카츠로 와서 아지로의 연흔을 보고는 귀국 페리를 탈 생각입니다.
9시 10분에 출발한 페리는 대한해협을 건너 20분 연착한 1시간 50분만인 11시에 대마도(對馬 쓰시마) 북섬
동쪽에 위치한 하타카쓰(比田勝) 항으로 입항하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은 데다가 멀미약 까지 먹었으니
롤링과 피칭 이 조금은 있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온 셈인데, 배에서 내려서는 줄을 서서 입국 수속을 합니다.
항공편이라면 패스트트랙 이라고 일본에 빠른 입국수속을 원한다면 Visit Japan Web 에 접속해서
관련 내용을 입력한후 QR 코드를 휴대폰에 받아가면 좋으며 귀찮다면 꼭 하지 않아도
되니 조금 시간이 더 걸리는 정도 인데, 하지만 선박은 저것도 필요가 없으며 2023년
4월 29일 이후 입국시는 백신접종 증명서 또는 출국전 검사증명서의 제시가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쓰시마(對馬 대마도) 는 나가사키현에 속한 섬으로 제주도 크기의 38% 이고 거제도의 1.8배 정도로....
일본에서는 본토 4개 섬을 제외하면 4번째로 큰 섬 이지만 대부분이 해발고도 400m 이상인
산지라 평지가 적기 때문에 농지로 활용할 수 있는 토지는 많지 않은지라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입니다.
역사에 해적의 근거지 였고 한일간 교역 거점 을 맡았던 지역으로 가용 면적이 작아 인구가 적은 탓에 지역적
특색이 옅고 자원도 없으니 일본 내에서 존재감도 별로 없는 촌동네 로....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위치는
커녕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 가 많으며, 가까운 규슈나 야마구치현 사람이라면 섬 이름 정도는 아는 수준 입니다.
한국의 섬과 비교하자면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고, 산지가 대부분 이라 가용할 수 있는 토지가 적다는 점,
그리고 일본 인구가 한국의 2.5배 정도 되는 것을 감안하면, 울릉도 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울릉도와 차이점이 있다면 울릉도는 독도와 함께 대한민국 내에서 인지도가 높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쓰시마섬은 일본 국민들에게 그다지 알려진 섬은 아니라는
점이며, 일본은 본토도 섬이라 그냥 수많은 섬 중에 하나 라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쓰시마(對馬) 는 원래 하나의 큰 섬 이었으나 1672년 에도 시대 때 오후나코시 운하, 1900년 메이지 시대 때
만제키 운하 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며 3개의 섬으로 나뉘어졌으니, 쓰시마는 아소 만과 만제키 운하로
섬이 양분되는 지형이기 때문에, 크게 북쪽을 가미지마(上島 상도), 남쪽을 시모지마(下島 하도) 로 부릅니다.
마을은 해안 지대를 둘러가며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으니 이즈하라, 미쓰시마, 도요타마, 미네,
가미아가타, 가미쓰시마 등 6개의 정(町)이 있었는데 2004년에 통합해 쓰시마시 로 개편되었습니다.
섬의 지형이 아주 복잡하기 때문에 좁은 시가지가 분산 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한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가는 곳은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직항편이 있었던 남쪽의 이즈하라(嚴原) 와
북쪽 가미쓰시마의 히타카츠(比田勝) 이며 그외 유인도 5곳을 포함해 부속도서 100여곳이 있습니다.
규슈 본토의 사가현 카라츠시(唐津) 하도 곶 에서 북서쪽으로 82㎞ 떨어져 있으며, 남동쪽에
위치한 이키섬(壱岐島) 까지의 거리는 47.5㎞ 이고, 한반도와의 거리는 49.5㎞ 이니
섬 크기는 남북으로 82㎞, 동서로 18㎞이며 인구는 2017년 기준으로 35,000명
이고 농경지는 전면적의 3.3%이며, 섬 전체 면적의 대부분인 80~90% 가 산지(山地) 입니다.
나가사키현에 속하지만 거리상으로는 나가사키시 보다는 후쿠오카시와 더 가깝고 교통 등을 감안하면 실제
생활권도 후쿠오카시 에 더 가까운 편인데, 이는 히라도번 관할이었던 이키 섬이 나가사키현에 들어
가면서 딸려온 것이며 현청이 있는 '시' 단위가 아니라 '현' 전체 단위로 본다면 나가사키 현에서 더
가까우니 방송도 나가사키 방송 이 나오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면 나가사키의 최저 시급 을 적용받습니다.
예로부터 산지가 많고 농지가 좁아 농업 보다는 어업이나 중개무역, 혹은 해적질 이 발달했고, 광업
또한 발달해서 은과 아연 이 생산되었으나 지금은 전부 폐광되었으며 현재는 관광업이
번성해 주로 한국인 관광객 을 받으며 그외 소수지만 일본 본토, 중국 등에서도 관광객이 방문합니다.
섬의 중부 지방에 쓰시마 공항 이 있으며 여기서 후쿠오카 공항과 나가사키 공항 으로 가는 항공편도 있으니,
오리엔탈 에어 브릿지 항공에서 운행하는 나가사키행 항공편과 전일본공수의 후쿠오카 노선이 있습니다.
야생 동물로는 꽃사슴, 삵, 수달, 산달, 꿩, 재두루미, 족제비, 쓰시마살무사, 쓰시마붉은
개구리 등이 서식하며, 섬의 전체 면적상 88% 정도가 조엽수림 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대마(対馬)' 를 '쓰시마(つしま)' 라고 읽는 것은 통상적인 일본어 한자 독음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표기로.... 지명(地名) 특유의 불규칙 독법 이며, 고사기에서는
津島(진도) 라고 적기도 했는데, 이건 津(つ) + 島(しま) 라 현대 훈독과 맞는 표기입니다.
상대(上代) 일본어에서의 발음은 つ 가 파찰음화 되기 이전인 '두[tu]시마' 였으며 '대마' 라는
지명은 3세기 중반의 삼국지 에서 부터 문증되므로, 이런 특이한 독음법은 한자 對(대, 쓰시)
의 상고 한어 발음인 / *tu:bs/ 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즉 당시 한자음 '둡스' 가
일본어의 음운 체계에서 '두시' 로 받아들여졌고, 이 독법이 현재의 '쓰시' 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한자 對(대) 를 "짝" 의 뜻으로 해석해 쓰시마가 한국어 '두 섬' 또는 '쌍 섬' 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낭설에 불과하니..... つ 의 발음 은 고사기가 저술된 시점에 쓰인 상대 일본어에서 '두' 였기 때문입니다.
현대 한국어 '둘' 은 계림유사에서 '도발(途孛)', 조선관역어에서 '두부얼(覩卜二)' 로 나타나기 때문에 본래
'*두ᄫᅳᆯ' 이었으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전자의 가설 역시 신빙성이 떨어지며 또한 쓰시마섬은 원래
좁은 지협으로 이어진 하나의 섬이었으며, 지금처럼 두 섬으로 나누어진건 근대에 운하를 팠기 때문입니다.
일본어로 '섬' 을 '시마' 로 읽기에 '쓰시마' 를 보고 이를 직역하여 섬 이름이 '쓰'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사기의 '津島' 는 표기를 감안하면 원래 "나루 섬" 라는 뜻이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대마도를 이루는 한자는 '쓰' '시마' 가 아닌 '쓰시(対)' 와 '마(馬)' 로 분리되어
있기에 그러한 어원 의식은 사라졌으며 섬 자체로 부를 때는 '쓰시마지마' , '쓰시마토우' 로 읽습니다.
고대에 한국이나 일본 모두 문자를 만들지 못했으니 고조선,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나라가 서고도 초창기는
글자가 없는지라 문서는 없고 말로만 통치 했는데..... 현지인들이 자기가 사는 섬을 “쓰시마” 라고 부르다가
훗날 한자가 들어오니 어느시기에 누구는 津島(진도) 로 또 다른시기에 누구는 對馬(대마) 로 옮긴 것 같습니다?
이런 예는 한국도 마찬가지이니 가야는 가야(加耶·伽耶·伽倻)· 가라(加羅)· 가량(加良)· 가락(駕洛)·
구야(狗邪· 拘邪)·임나(任那), 한(韓) 등 10가지나 되며, 신라는 신로(新盧) · 시라(斯羅) ·
서나(徐那) · 서라벌(徐羅我) · 서야(徐耶:徐耶我) · 서라(徐羅) · 서벌(徐我) 과 계림(鷄林) 입니다.
또 백제 의자왕때 충신으로 대신인 성충과 흥수는 성이 없이 이름뿐 이고, 신라 대야성을 공격해
빼앗은 백제 장수 윤충 에 신라 장수 검일, 모척, 죽죽, 용석이며 황산벌의 계백 등도
성이 없이 이름뿐이었으니.... 그러니까 우리 민족은 원래 성(性)이 없었으니,
성(性)은 이민족 중국인들의 풍습 으로 주몽(朱蒙) 이나 비류, 온조도 처음엔 이름뿐 이었습니다!
주몽은 해모수의 아들이니 해(解)씨 (삼국사기, 동사강목) 인데, 고구려 건국 후에는
고(高) 씨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통감, 중국 사서) 이니 훗날 붙여진 것 입니다.
이름은 추모 (鄒牟 삼국사기, 광개토왕릉비, 모두루) 나 주몽 (朱蒙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통감,
중국 사서) 으로 불렸으며 또 삼국사기에는 중모(中牟)와 중해(衆解), 상해 (象解), 삼국유사에
추몽(鄒蒙), 일본서기에 중모(仲牟), 일본의 신찬성씨록에 주배(朱背)와 도모(都慕) 로 기록됐습니다.
이름이란 하나면 됐지 왜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십수가지 이름으로 젹혔느냐 하면..... 이 모든 것이 우리 민족
이 “문자를 만들지 못해 글자가 없었으니”, 오랫동안 말로만 불리다가 먼 훗날 적국이자 원수인 되놈들,
이민족의 문자인 한자(漢字) 가 들어오면서.... 각자 다른 시기에 따로 옮기다 보니 저렇게 구구각색 입니다.
주몽은 고(高)씨 라는데.... 이것도 틀린게 아버지가 해모수(解慕漱) 이면 해(解)씨 가 되어야지 왜 고씨
입니까? 그는 성이나 이름도 없었으니 자라면서 활을 잘쏜다고 해서 보통명사인 주몽(朱蒙 추모)
이라 불리니 그게 고유명사가 된 것 으로..... 부여를 탈출할 때 함께 떠난 부하 오이, 마려, 협보며
또 모둔곡(毛屯谷) 에서 합류한 묵거 (默居) 와 재사(再思) 에 마의(麻衣) 무골(武骨) 도 이름뿐 입니다.
압록강 너머 만주땅 졸본(卒本) 부여에 도착해 현지 왕인 연타발(延陁勃) 의 딸 소서노(召西奴) 와 결혼해
낳은 아들 비류(沸流) 와 온조는 해씨나 고씨가 아니고 부여씨 라는 것도 의문인데.... 또는 소서노는
남편 우태(優台) 가 있었으니 비류 또는 비류와 온조가 모두 그 자식이라는데 우태 또한 성(性) 이 없습니다.
몇년전 백두산과 용정이며 연길을 보러 가는 중에 심양에서 집안에 도착해 광개토대왕비와 무덤에 장군총
을 보고 집안 박물관 에 들러니 高句麗(고구려)를 下句麗(하구려) 로 표시해 놓아 무척 놀랐었는
데.... 외척으로 한(漢) 나라를 이은 신(新) 나라 왕망 이 흉노를 치면서 고구려왕에게 병사 동원 을 명합니다.
고구려는 세력이 약하다 보니 백성들을 중국군에 보내니 중국은 고구려병사를 흉노와의 전쟁에서 화살받이 로
내몰자.... 결국 죽을게 분명해 지니 이들이 도망을 치자 격노한 왕망은 고구려 라는 나라 이름을 하구려
(下句麗) 로 바꾸고 고구려왕의 책봉을 취소하고‘ 고구려왕’ 이 아니라 “하구려후” 라 부른 때문인가 합니다?
이후 중국에서 유씨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왕망의 신(新)나라 를 무느뜨리고 최종 승자인 유수가 후한(동한)
의 황제가 된 이후에는 고구려와 조공책봉 관계를 복원 하고는 하구려에서 고구려 로, 하구려후에서
고구려왕 으로 고쳐 불렀는데... 그럼 주몽이 졸본 부여땅에 왔을 때 현지 나라 이름이 구려(句麗) 인 것을
주몽이 나라를 세우며 형용사로 높을 고(高)자 를 붙여 고구려라 하고 이후 고(高) 씨 성을 썼는 모양입니다?
서양 고지도에서 제주도가 'I. Fungma' 로 표기되곤 했던 것이 쓰시마와 유관 하다는 시각도 있으니,
중국 지도에서 쓰시마의 한자 표기 '대마(對馬)' 를 자형이 비슷한 '봉마(封馬)' 로 잘못 썼는데,
이것이 이후 비슷한 음가인 '봉마(鳳馬)' 로 표기되었고 서양 선교사는 이를 보고 ‘鳳馬' 의
중국식 발음에 기반하여, 대마도와 가까운 제주도에 'I. Fungma' 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인 관광객 대상 산업이 크기 때문에 일본 치고는 한국어가 간판에 적혀있는 건물이 많은 편인데.....
다만 불매운동과 코로나로 한국인 관광객이 끊긴 2019 ~ 2020 이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지만
이번에 보니 대마도 호텔 히타카츠, 맥주 한잔 등 한글 이름도 많고 또 Chinguya(친구야),
Tokiseki(토키세키) 등 변형된 이름에 맛있는 요리 오카베 나 해물짬뽕 스페셜등 한국어 표시도 많습니다.
2016년 경주 지진 이래로, 한반도 남부에 굵직한 지진이 일어날 때 마다 쓰시마(대마도)섬
에서는 비상 이 걸리기도 한다는데...... 실제로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 때
쓰시마에서 JMA 진도 2~ 3 을 기록한 적이 있으니 한반도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겠습니다.
배에서 내려 도로를 건너 우리가 예약한 호텔로 들어가는데.... 이름이 영어로 적혀 있으니 hotel
DAEMADO hitakatsu 인데.... 고유명사로 일본식 표현인 Tsushima 라고 하지 않고
한국식 표현 daemado 라고 한 것을 보면 주인이 한국인이거나 재일교포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은 매뉴얼 사회 인지라 종업원이 아무리 친절한다손 치더래도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지라 오후 4시에 방을 내준다기에 배낭과 가방을 맡기고 나오는데...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도 방이 있으면 주는데 비해 융통성 은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좀더 걸어서 이자카야 야에 (居酒屋 八重 YAE) 라는 식당으로 들어가니 6개 방 중에
5개는 찼으니..... 다행히 방 하나가 비어 있어 들어가는데,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손님이 마음대로 원하는 자리에 앉는게 아니라 종업원이 안내할때 까지 기다리는게 원칙입니다.
일행 7명은 우동과 튀김우동이며 돈카쓰와 규동과 카츠동 등 자기 입맛대로 시키고
나마비루 2잔 을 시켜서 아침 부터 배를 타면서 힘들게 온 탓에 피로를 풉니다.
배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일어나 이자카야 야에를 나와서는 버스 시간이 맞지않아 45분을 걸어서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 으로 찾아 가는데.... 나기사노유(渚の湯)에서 온천 까지 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