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내 추억이 깃든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가을 여행을 갔다가 남망산 공원을 오르는 길에서 야바위꾼에게 걸려서 가진 돈 다 털리고 밥은 걸식을 하며 잠은 시내 중심가 로터리 행사장에 있는 장의자에서 노숙을 하면서 가을밤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추워서 한 잠도 못자고 떨면서 밤을 지새우다가 어스름한 신새벽 파출소를 발견하고는 다리야 날 살려라 하면서 숨이 차도록 뛰어서 해저터널까지 갔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 한 통영을 고희를 훨씬 지나서 다시 찾게 되니 감회가 새로워서 가슴이 설레기도 하였다.
추억을 간직한 통영은 여러 번 여행을 하였지만 이 번에는 또 새로운 의미가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인문열차를 시작하는 첫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용산역에서 출발하여 시원하게 달리는 KTX열차는 막혔던 가슴을 확 뚫어주는 것 같았다. 가는 도중에 인문학 사랑방이라는 순서에서 책을 소개하는 행사를 하였는데 나는 최일도 목사가 쓴 ‘밥짓는 시인 펴주는 사랑’ 이라는 책을 소개하여 이광세 선생님과 함께 운좋게 선정이 되어 박경리의 ‘가을에 온 여인‘이라는 제목의 소설책을 선물로 받았다.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
작자는 수녀를 사랑하여 수년간 쫓아 다닌 끝에 집념의 사랑을 성취한 분으로 청량리 588이라는 환락가를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는 사랑이 없어서 황폐해지는 세상을 원망과 비판보다는 나눔과 섬김의 참사랑을 실천한 시인이요, 목사님이다. 다일공동체를 만들어 노숙자들에게 급식으로 봉사를 하고 각계의 후원으로 병원까지 지어 어려운 자들에게 의료봉사까지 실천한 이야기를 엮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바로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이라는 책이다. 이책을 통해서 나는 아직 우리 사회가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으며 작은 마음이 모여서 큰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아운 이야기를 통해서 살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많은 분들께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습니다
열차는 남쪽을 향해서 거침없는 질주를 하여 마산역에 도착하여 광장 앞에 서 있는 크고 둥근 화강암의 노산 이은상 씨의 시비에서 잠시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바로 통영으로 출발을 하여 바닷가 식당에서 생선구이로 푸짐한 식사를 하는 중에 교수님이 생선 이름을 물어보아서 내가 아는 대로 설명을 하고 서대와 박대에 대해서 서대는 남해안에서 나며 검은 색에 살이 깊으나 박대는 서해안에서 잡히며 약간 붉고 말 그대로 살이 얇다는 설명에 모두 공감을 해주었다.
세병관은 다 아시다시피 삼도 수군을 통제하던 곳인데 ‘김약국의 딸들’과 ‘토지’의 저자인 박경리 선생이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하던 곳이라고 하여 잠시 둘러보고 ‘김약국의 딸들’ 배경이 되었던 서문고개를 따라가니 박경리가 살았던 생가 터 벽에 작은 팻말 하나만이 옛 집이라는 흔적이 있을 뿐 지금은 자취를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을 느꼈다. 서문고개를 넘어서 시인 백석이 찾았다는 정당골로 내려가니 우물과 주변에 백석 시인의 ‘통영2’라는 시가 적힌 시비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백석은 멋쟁이요 테스라는 소설을 번역한 시인으로 월북을 하여 만년에 힘든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광고 문구가 머리를 스치면서 잠시 시인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꼈다. 골목길을 따라 서피랑의 벽화를 보면서 옹기종기 지붕을 맞대고 살아가는 까꾸막 동네의 삶을 눈으로 담고 정상의 서포루에서 리아스식 해변과 한국의 나폴리라고 하는 항구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굽어보니 그 동안 막혔던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 내리는 것 같았다.
통영대교를 지나서 미륵산 뒤쪽 호젓한 시골 산자락에 자리를 잡은 박경리의 기념관을 둘러보고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선생의 무덤으로 가는 길은 숨이 찰 정도였다.
박경리의 문학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소외문제와 낭만적 사랑에서 생명사상으로 흐름이 그 기조를 형성하고 있고 26년에 걸쳐 완성한 대하소설 ‘토지’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세계는 민족적 삶의 총체성을 보여주며 ‘김약국의 딸’들에서는 운명이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힘으로 그리고 있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넓고 아늑한 콘도, 한국의 나폴리라고 하는 통영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개운한 기분으로 새날을 맞으니 푸른 바다와 동해의 일출은 한 편의 그림이요 장관이었다.
둘째 날은 동피랑과 수산시장부터 시작하였다. 수산시장의 꼬리치며 물을 팅기는 활어들이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넣어주는 듯하여서 기분이 좋은 바람에 입구에서 거금을 주고 그 중에서 제일 큰 서대 다섯 마리를 사가지고 와서 오랜만에 서대 맛을 보니 옛 기억과 고향생각이 절로 났다.
청마 문학관은 최근 새로 짓는 유리벽에 거대한 현대식 건물과는 달리 박공지붕에 단정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고 문학관 옆 언덕 위에 조성한 생가는 본래 그대로는 아니지만 소박하고 정감이 들었다.
행복이라는 시에
‘사랑하는 것은 사랑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럴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하략-
이영도 작가를 사랑하여 쓴 편지는 한 때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던 유명한 시다. 나도 잠시 시를 감상하니 행복이 밀려오는 착각에 빠져 한참을 감상을 하며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통영의 일정을 마치고 거제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교수님이 백석의 이야기를 하는 중에 백석의 자연관이 남다르고 그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로 쓰 것을 말씀하다가 어제 식당에서 서대와 박대를 설명하는 분이 계셨는데 여기 계시냐고 하여 내가 손을 들었더니 자기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저런 분이 바로 백석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하여 듣는 사람으로서는 기분이 괜찮았다.
거제도에서는 포로수용소를 찾아가서 제법 긴 시간 동안 6,25 당시를 회상하며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특히 이승만의 포로 석방 때 한 부류는 남쪽에 남고 한 부류는 북을 선택하였으며 또 다른 한 부류는 이념 대림을 하는 남도, 북도 싫다며 제3국을 선택한 이야기를 소재로 쓴 작품이 최인훈의 ‘광장’ 이라는 작품이요, 제3국을 선택한 분들 중 한 사람은 인도에 남아서 농부로 사는 모습을 수년 전에 방송에서 본 적이 있고, 많은 분들이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지금도 살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서울 출신으로 피난을 가지 않고 있다가 그 유명한 임화와 함께 인민군에 끌려 북으로 갔다가 북한군과 함께 남침을 했으며 ‘풀‘이라는 시로 유명한 김수영도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있다가 석방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당시의 복잡한 상황과 이념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온소몽돌해변에서 시소설이라는 세 글자로 3행시 발표를 하였는데 또 다시 이광세 씨와 내가 선정이 되었지만 어제와 중복으로 선물은 못 받았으나 기분은 아주 좋았다.
시 : 시에 그려진 백석의 자연은
소 : 소설보다 진솔한 사연을 담아
설 : 설(舌)로써 다할 수 없는 걸작이 되다.
날씨도 포근하고 화창한 봄 날,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려 짙은 향기가 발길을 붙잡고 산들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2018년 KTX를 타고 달린 인문학 여행은 참으로 값지고 즐거운 여행이었고 다만 한 해 두 번 밖에는 기회를 안 준다고 하여 아쉽기는 하지만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국립중앙도서관과 깊고 자상하게 해박한 설명을 해주신 방민호 교수님 그리고 진행요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