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의 중덕지는 약 5만평 규모의 연못이다. 대부분 연꽃이 연못 위를 덮고 있으나 물달개비, 벗풀, 사마귀풀, 서울방동사니, 통발, 검정말, 붕어마름 등이 함께 자라고 있다.
연꽃잎이 온통 물 위를 덮고 있다. 높고 푸른 가을하늘을 배경삼아 커다란 연꽃잎은 움직임 없이 물 위에 자리잡고 있다. 경북 상주의 중덕지. 약 5만평 규모의 중덕지는 그리 크지도 넓지도 않은 연못이다. 거의 대부분 연꽃잎이 물 위를 덮고 있어 연못인지 논·밭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수심도 깊지가 않다. 지금은 연꽃을 보지 못한다. 꽃피는 시기가 지났으니 화려한 꽃을 볼 수는 없다. 연꽃은 더러운 물에서 피어나지만 항상 깨끗한 마음을 간직하는 꽃이다. 주무숙은 애련설에서 '내가 오직 연꽃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소통하고 겉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중덕지의 연꽃은 낚시꾼들이 더렵혀 놓은 물 위에서도 왕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환경을 이기고 오랜 세월을 버텨낸 나름대로의 삶이라고나 할까. 연꽃은 그렇고 또 그렇게 해서 살아가고 있다. 논·밭가에 접한 연못 주위를 둘러보면 중덕지의 수생식물들은 자신만의 생활환경 속에서 생육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수생식물들은 물이라는 단일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뿌리, 잎, 줄기, 꽃 등의 형태가 몹시 변형되어 있었다. 예컨대 갈대와 달뿌리풀, 줄, 연꽃 등의 정수식물은 땅속줄기가 발달해 지중을 뻗쳐 들어감으로써 식물체의 고정과 번식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연꽃의 경우는 식물체의 각 부분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기도가 땅속줄기에 발달되어 있다. 이밖에도 정수식물이 아닌 수생식물은 식물체의 표면에서 직접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므로 뿌리의 발달이 나쁘며, 중덕지의 가장자리에 있는 통발 등은 뿌리가 없다. 각도를 약간 달리해 보자. 며칠전 필자가 중덕지를 찾았을 때는 낚시꾼들이 군데군데 너무 많이 앉아있었다. 한 낚시꾼은 물고기가 많이 모여드는 포인트를 찾기 위해 연꽃과 달뿌리풀 등을 마구 헤쳐놓고 있었다. 그들은 수생식물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오로지 물고기를 잡는 데만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생각생각하다가 필자는 연꽃을 뜯어내는 한 낚시꾼더러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낯선사람이라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대신에 그 식물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낚시꾼은 아주 쉽게 지금 물풀을 제거하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수생식물의 중요성은 물론 갈대, 연꽃, 달뿌리풀마저 모두 물풀이라 통칭할 정도로 수생식물을 모르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수생식물의 중요성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덕지 연못의 관찰로는 사방을 둘러 확 트여 있었다. 그 길을 따라가면서 수생식물을 관찰했다. 우선 눈에 띄는 수생식물은 연꽃, 갈대, 줄, 달뿌리풀 등이었다. 다음으로 창포가 보였다. 옛날에 창포탕을 만들어 머리를 감고 뿌리를 곱게 깎아 수복자를 새겨 비녀를 만들어 머리에 꽂았던 창포. 잠시나마 선인들의 삶을 조명해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순간뿐이었다. 두세 포기 외에는 더 이상의 창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창포는 지금에야 터전을 잡고 번성의 기회를 엿보는 것 같았다. 연못 주위에는 고마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으며 어리연꽃, 여뀌, 알방동사니, 고랭이, 하늘지기, 물잔디, 물달개비, 벗풀, 사마귀풀, 푸른하늘지기, 서울방동사니, 파대가리 등이 흩어져 있었다. 주위를 돌면서 물 속을 들여다보니 붕어마름, 검정말, 통발, 말즘, 나자스말 등의 침수식물이 생육하고 있었다. 이들 식물의 꽃은 볼 수 없었으나 번식이 왕성함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수면상에서 꽃이 피고 결실한다. 물론 붕어마름과 같이 꽃이 수중에서 피고 수중에서 수정하는 것도 있고, 나사말처럼 꽃이 수면으로 나와서 피고 수면에서 수분하는 것도 있다. 붕어마름과 같은 침수식물은 몸이 갈라지기 쉽고 잘린 조각이 그대로 생장해서 영양번식을 한다. 또한 침수식물과 부수식물은 보통 꼭지눈이 월동아로 돼 겨울엔 땅 밑에 가라앉아서 월동하고 다음해 봄에 발아해 새로운 개체가 된다. 게다가 중덕지에서는 탐스러운 꽃을 단 수생식물도 관찰할 수 있었다. 사마귀풀, 벗풀, 물달개비, 애기부들 등이 그것이다. 도랑가에 핀 꽃. 얼마나 은은하고 탐스러운 모습의 꽃인가. 흰색, 자주색의 조그만 꽃잎을 마음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평온한가 말이다. 애기부들의 꽃이삭도 피어 있었다. 옛 선인들이 부들의 이삭을 말려서 불을 붙여 양초나 횃불 대용으로 쓰거나 둘둘 뭉쳐서 침구 속에 넣어 솜처럼 이용했던 부들. 그런 부들의 꽃이삭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단감의 고장, 상주. 상주하면 단감이 생각난다. 그만큼 상주의 단감은 유명하다. 상주는 선사시대부터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한 곳이다. 삼국시대에는 경북 서북방의 군사기지로 중요시됐고, 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에는 행정·교통·군사적 요충지역으로 큰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 바로 상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현대문명의 혜택에서 소외된 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아무튼 제주가 고향인 필자가 상주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상주의 이미지는 오래 남을 것이다. 특히, 중덕지의 수생식물은 보고 또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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