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름 찾아 떠나는 여행 25>
삼겹살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문화 자체는 고구려 때부터 있었지만 당시의 돼지고기는 양념구이로 해먹었고 삼겹살처럼 생고기를 굽는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고기는 보통 삶거나 찌거나 국으로 끓이거나 만두처럼 다른 음식에 첨가해서 먹었지 구워서 먹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돼지고기는 인기가 없었는데 태종실록을 보면 명나라 황제가 '조선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즐기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돼지는 다른 가축에 비해 생산성이 매우 높은데도 우리 조상들이 돼지고기를 기피한 까닭을 유추한 학설이 있습니다.
“소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을 먹고 살지만 돼지는 감자나 콩, 곡물 등을 먹는다. 농경국가였지만 농지가 부족했던 우리나라에서 작물의 생산성은 그리 높은 편이 됐지 못했고 식량이 부족한 판에 사료가 많이 드는 돼지를 사육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유애령 · ‘식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한국에서 고기구이 문화가 보급된 것은 1차적으로는 구한말 서양 요리가 들어오면서, 2차적으로는 식육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1970~80년대부터였습니다. 삼겹살은 돼지의 갈비를 떼어낸 부분에서 복부까지 넓고 납작한 모양의 부위입니다. 붉은 살코기와 지방이 3번 겹쳐져 있는 이 부위의 이름은 원래 세겹살이었으나, 1980~1990년대에 유행이 되면서 '삼겹살'이라는 이름이 보편화하였고, 국어사전에 등재된 것은 1994년이라고 합니다.
삼겹살이라는 음식이 언론에서 처음 언급된 것은 동아일보 1934년 11월 3일자 4면입니다. 이때는 '세겹살'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삼겹살은 살과 지방 부분이 3번 겹친 고기를 의미하니 삼겹살보다는 '세겹살' 이라고 부르는 게 맞습니다. 우리말은 ‘두 겹’ ‘세 겹’이란 말을 쓰지 ‘이겹’ ‘삼겹’이란 말은 잘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겹살이란 말이 사용되곤 했습니다. ‘삼겹살’이라는 어휘는 경향신문 1959년 1월 20일자 4면에 처음 언급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술과 안주는 소주와 삼겹살입니다. 삼겹살 100g에는 단백질 13g과 많은 양의 지방(40g)이 들어 있다고 하는데, 삼겹살 지방은 쇠고기 지방에 비해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많으며 필수지방산인 리놀산도 8배 정도 들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지방이 녹는 온도도 쇠고기에 비해서 5-6도 정도 낮아서 혀에 닿는 촉감도 부드럽고 맛도 좋습니다. 그러나 돼지기름 냄새와 계속해서 먹을 때 느끼한 맛을 느끼게 되는데, 소주의 담백한 맛이 그걸 없애주고 삼겹살은 영양소를 공급해 주는 좋은 안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둘 다 값이 싸기 때문에 최고의 파트너가 된 것인데, 1960년대 소주 가격이 내렸을 때 서민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돼지고기를 찾게 되었고 나중에는 그 중에서 고소한 삼겹살을 안주로 삼아 대중화 되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이렇게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돼지고기가 유행되기 시작한 이면에는 일본의 돼지고기 소비 증가가 영향을 미쳤다는 설이 있습니다. 원래 일본은 막부의 육식 금지령 때문에 닭고기를 제외한 육식문화가 거의 없었고 2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고기를 구워 먹기보다는 전골이나 나베용으로 사용되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돈가스 등의 요리가 퍼지면서 일본의 돼지고기 수요가 증가하자 일본은 돼지 사육처를 찾았습니다. 돼지 사육은 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일본의 육류업자들이 눈을 돌린 곳이 한국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일본 측의 발주로 군산과 같은 한국의 항구도시 근처에 많은 돼지사육장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필요한 돼지고기 부위는 돈가스용으로 사용되는 안심이나 등심이었고, 비계는 한국에서 소비처를 찾아야 했는데, 한국에서는 삼겹살로 활로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유행은 삼겹살에 앞선 1960년~1970년대의 돼지갈비였는데, 그 유행이 시들해지면서 삼겹살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 유행에 한 몫을 한 것이 가스렌지의 보급입니다. 연탄불 중심에서 가스불 중심으로 바뀌고 산업화로 인한 육류소비의 증가, 소고기보다 저렴한 돼지고기의 가격, 양돈 장려정책으로 인한 돼지고기 공급 증가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100g 600원선이었던 서민음식 삼겹살은 IMF영향으로 지갑이 얇아진 서민들에게 더욱 더 사랑받게 되고 완벽한 국민음식이 되었습니다.(윤덕노 ·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 ··· 함태탄광의 사택촌이었던 상장동마을에 가면 옛 탄광마을의 모습을 부활시킨 벽화를 볼 수 있다. 갱도에서 탄을 캐는 광부,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전설의 강아지 만복이도 있다. 당시 탄광촌은 이상향이라 할 만큼 풍요로웠다. 탄광에서는 허파 속 먼지 씻어내라고 쌀 전표와 함께 돼지고기 전표를 나눠 주었다. 하루 3교대로 일하다가 퇴근하면 사내들은 삼겹살과 술로 속을 훑어 내렸다. 쉬는 날이면 골지천변과 계곡과 골목은 돌판에 삼겹살 구워 먹는 가족들이 가득했다. 태백 사람들은 삼겹살 또한 태백이 기원이라고 믿고 있다.”(박종인의 사람과 길)
삼겹살 유행의 다른 유래설로는 강원도 탄광촌 광부들이 목의 먼지를 씻어내기 위해 기름기 있는 삼겹살을 먹었다는 설이 있고, 가장 재미있는 것은 원래 삼겹살이 지금처럼 살과 비계가 적절히 섞여 있지 않았는데 장사 수완이 뛰어난 개성상인들이 값싼 돼지고기를 비싸게 팔기 위해 비계 끝에 살, 그 살 끝에 다시 비계가 붙는 식으로 육질을 개량해 비싼 값에 팔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 해방 이후 건설 노동자들이 슬레이트에 삼겹살을 구워 먹다 퍼졌다는 설, 1970년대 말 우래옥이라는 식당이 삼겹살을 메뉴에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는 설 등 삼겹살 대중화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후에 더 찬사를 많이 받는 돼지는 성인(성인)과 비슷하다고 해서, 미국에는 1972년부터 3월 1일을 ‘돼지의 날(Pig Day)’로 정해 기념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인류에게 지대한 기여를 해온 돼지를 기리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비해 우리나라엔 ‘삼겹살 데이’가 있습니다. 축협이 3이 겹치는 3월 3일을 삼겹살 먹는 날로 정했습니다. ‘쌈쌈 데이’라고도 합니다. ‘삼겹살을 쌈 싸 먹는 날’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