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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더운 여름을 지냈습니다. 제가 나서 최악의 더위로 기억하고 있는 1994년 이래 가장 더운 여름이라죠. 그러나 어느덧 입추(立秋)가 지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아직 한창 무덥고, 이 더위가 당분간은 지속되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래도 마음만은 이미 가을에 깊이 들어섰습니다. 이런 가을에 대한 설레발 기대 때문일까요? 지금의 남은 더위가 더 덥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가을은 위 입추에서 나왔듯이 한자로 추(秋)라고 합니다. 그러나 문자상으로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모양이 조금 다릅니다. 마음만은 벌써 가을인만큼 먼저 "가을 추(秋)"자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아마 "수확"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요? 가을이 되면 오곡백과가 마지막 남은 여름의 땡볕까지 최대한 받아들여 색색이 영근 열매를 자랑하듯 내보입니다. 그러나 병충해 방제가 잘 이루어지는 지금과는 달리 옛날에는 가을이 되면 곤충들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천지를 새카맣게 뒤덮으며 벼(禾)를 갉아먹는 메뚜기는 농민들에게는 큰 골칫거리였죠. 『좌전』 같은 책에도 기사에 "황(蝗)"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풍년은 대체로 "년(年)"이라고만 표시를 했지만 흉년에는 그 원인까지 적어놓았던 것이지요. 황(蝗)은 우리말로 "누리"라고 하는데 아마 메뚜기를 나타낼 것입니다. 『좌전』의 "황(蝗)"이라는 기사는 "비교적 농사가 잘 되었는데 수확철에 메뚜기떼가 나타나 곡식을 모두 갉아먹어 그 결과 흉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가뭄이 든 해에는 더 많은 메뚜기 같은 곤충이 창궐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장마 같은 큰 비가 내리지 않아 유충의 부화율을 높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노벨상을 받은 펄 벅의 소설 『대지』 같은 데도 메뚜기 때문에 울며 벼를 불태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 메뚜기를 나타낸 한자가 원래 "가을 추(秋)"자의 본자였습니다. 아래에 특별히 "가을 추(秋)"자의 갑골문자형만 따로 모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갑골문의 자형은 모두 메뚜기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을 추(秋) 그리고 다음 그림은 메뚜기를 그린 것인데 세워놓고 비교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갑골문 추(秋)자를 보면 아주 간략한 형태로부터 시작하여 반대로 앉은 모습, 불에 타는 모습까지 모두 메뚜기를 묘사하고 있는 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메뚜기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위의 자형은 현재 웹상에서 검색할 수 있는 자형을 모두 찾아서 예를 든 경우이며, 대만의 문자학자로 캐나다 온타리오 국립박물관에서 갑골편을 정리한 바 있는 쉬진슝(許進雄)의 『중국문자학강의』(108쪽)에는 위의 자형을 포함하여 모두 20자나 수록하여놓고 있습니다. 갑골문에 기록된 추(秋)자의 이체자만 가지고도 당시에 이미 수십 종류(?)의 메뚜기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메뚜기는 가을에만 볼 수 있는 곤충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메뚜기는 다른 농작물에도 해를 더러 끼치지만 특히 벼를 좋아합니다. 아래 사진처럼 말이지요. 그래서인지 후대의 한자인 금문에는 "벼 화(禾)"자가 추가된 모습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가을 추(秋) 금문-소전-해서 그런데 금문에서부터 보면 벼를 나타내는 요소는 추가되었는데 메뚜기를 나타내는 형체소는 오히려 없어지고 대신에 "불 화(火)"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글자가 전변(轉變)되어가는 과정에서 화(禾)자와 화(火)자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글자의 모양이 바뀌게 된 것은 옛날에는 글자의 좌우를 갑골의 중앙을 축으로 하여 좌우로 대칭이 되도록 하던 습관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 화(火)"자가 메뚜기를 대치하게 된 것은 아마 메뚜기가 해충이었으므로 모두 잡아서 불태웠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위 갑골문의 마지막 자형에서 이미 메뚜기를 태우는 모습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요즘 양식까지 하며 볶여져 고급 맥주 안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메뚜기는 옛날에는 그저 다른 이유로 불태워져 퇴치해야 할 해충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즘은 가을 들녘에 나가도 보기 힘든 메뚜기가 옛날에는 가을을 나타내는 상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을이 되면 수확을 하게 되고, 수확을 한 후 먹고 남는 곡식은 수매를 하겠죠. 요즘이야 어딜 가나 전자 저울에 대세지만 옛날에는 손으로 조작하는 저울밖에 없었습니다. 잴 양이 많으면 커다란 막대저울을 썼고, 잴 양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경우에는 천칭(天秤) 곧 접시저울을 쓰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천칭은 곧 양팔저울이라고도 합니다. 한쪽에는 잴 대상이 되는 물건을 얹고 한쪽에는 사진의 아래쪽에 있는 표준 무게를 얹어 양쪽의 무게가 균형을 이루어 평형이 되면 그 무게값이 나오는 것입니다. 양팔저울은 위와 같은 형식의 것도 있고 손으로 들어서 재는 것도 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말입니다. 사진은 법원 같은 볍률기관 앞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동상인데 법의 여신, 혹은 정의의 여신이라고도 하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케라는 여신입니다.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양팔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눈을 가렸는데 대상에 상관없이 법은 만인 앞에 평등(平等)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양팔 접시저울을 나타낸 한자가 바로 평등(平等)의 "평평할 평(平)"자입니다. 평평할 평(平) 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금문과 금문 대전에는 저울의 모습이 그런대로 잘 나타나다가 소전에서는 모양이 약간 원래의 뜻과는 알아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해서에 오면 다시 양팔저울 모양을 회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비교적 무거운 물건은 막대저울을 써서 값을 잰다고 하였죠? 막대저울은 옛날에는 양팔저울과는 달리 집집마다 최소한 하나씩은 갖추고 있었던 필수품이었습니다. 막대저울은 재는 대상에 따라 그 크기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어릴 때 집에서 아버지가 한약방을 경영했는데 한약을 재는 저울은 막대의 길이가 약 30cm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반면에 가마니 째로 무게를 다는 큰 막대저울은 막대의 길이가 2m 남짓은 되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양팔저울과 모양은 다른데 원리는 같습니다. 그 원리는 막대가 평형(平衡)을 유지해야 물건값을 정확히 알아본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시장에 가면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된 도구입니다만 중국에서는 아직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작년 중국에 갔을 때 일행 가운데 한 분이 사과 등 과일을 사서 모두에게 돌린 일이 있는데, 바로 사진과 같이 막대저울을 써서 물건의 무게를 재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찾아볼 수 없는 참 정겨운 광경입니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중국도 예외가 없는 숨가쁘게 빠른 시대 변화에 밀려 아마 중국에서도 앞으로 몇 년 내에 저런 모습은 더이상 보기 힘들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막대저울은 말 그대로 막대, 그리고 저울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리에 달 물건을 달고 막대가 평형이 되도록 옮기어 평형을 이룬 곳의 눈금을 읽으면 그것이 물건의 무게가 됩니다. 저울추가 막대보다 더 중요한데 이를 권(權)이라 하고, 눈금이 새겨져 있는 막대는 가로로 평형해야 하기 때문에 형(衡)이라 합니다. 추와 막대를 합하면 뭐가 될까요? 권형(權衡)입니다. 권력(權力)이란 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요는 저울추를 움직이는 사람이 말 그대로 권(權)을 조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형(衡: héng)은 횡(橫: héng)과 중국어 발음이 같습니다. 가로로 놓인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전국시대에 장의(張儀)가 주장했던 외교술 가운데 진(秦)나라와 횡으로 놓인 육국(六國)이 1대 1로 관계를 갖는 연횡(連橫)을 달리 연형(連衡)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아참, 위에서 양팔저울을 천칭(天秤)이라고 한댔죠? 가만히 보면 칭(秤)자에도 평평할 평(平)자가 들어가죠? 칭(秤)자는 달리 칭(稱) 또는 칭(称)과도 뜻이 통합니다. 훈은 "일컫다"라고 하지요. 저울의 "칭"과 "일컫다"라고 하는 것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사람마다 혹은 물건마다 다 그 위치에 걸맞는 가치를 가지고 있겠죠? 저울처럼 정확하게 달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 이름에 걸맞는, 그 무게값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괜시리 오늘따라 나는 나의 가치에 걸맞는 행동을 하는지 궁금해지네요. 호칭에 맞는지 말입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 무사히 나셨습니까?
건강하시길 빕니다.
요즘 좀 뜸하신 것 같네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이틀 날씨 보니 무더운 여름도 무사히 잘 지난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