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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한하운
고향(故鄕)&
원한이 하늘을 찢고 우는 노고지리도
험살이 돋친 쑥대밭이 제 고향인데
인목(人木)도 등 넘으면
알아보는 제 고향 인정이래도
나는 산 넘어 산 넘어 봐도
고향도 인정도 아니더라
이제부터 준령(峻嶺)을 넘어넘어
고향 없는 마을을 볼지
마을 없는 인정을 볼지
보리피리, 인간사, 1955
귀향 한하운
귀향(歸鄕)&
고향으로 가는 길은
자꾸만 뜨거워지는 것은
달랠 길 없어
한때의 잘못된 죄는
꽃도 없는 깜깜한 감옥 속에
벌을 몸으로 치르고
이제 법조문보다
자유로운 고향길을 가는데
산천을 소리쳐 불러보고 싶구나
고향을 소리쳐 불러보고 싶구나
산에서 들에서
뻐꾸기가
누구를 부르는가
누구를 찾는가
내 마음같이 흔건히 울고 있는데
산천은 전과 같이 나를 반기네
고향도 전과 같이 나를 반기네
정말
법조문이 무엇인가
자유가 무엇인가
인생도 알 듯하는데
산천초목은 엽록소 싱싱하게 푸르러
하늘과 바닷빛
아스라한 하늘 끝간 데
영원에서
영원으로
생명이 넘쳐흐르고……
도가도 황토길, 지문사, 1983
나 한하운
나&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정말로 아니올시다.
사람이 아니올시다
짐승이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잘못 돋아난
버섯이올시다 버섯이올시다.
다만
버섯처럼 어쩔 수 없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목숨이올시다.
억겁(億劫)을 두고 나눠도 나눠도
그래도 많이 남을 벌(罰)이올시다 벌이올시다.
보리피리, 인간사, 1955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한하운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
한하운 시초, 정음사, 1949
답화귀 한하운
답화귀(踏花歸)
벚꽃이 피고
벚꽃이 지네
함박눈인 양 날리네 깔리네.
꽃 속에
꽃길로
꽃을 밟고 나는 돌아가네.
꽃이 달빛에 졸고
봄달이 꽃 속에 졸고
꿈결 같은데
별은 꽃과 더불어
아슬한 은하수 만리(萬里) 꽃 사이로 흐르네.
꽃잎이 날려서
문둥이에 부닥치네
시악시처럼 서럽지도 않게
가슴에 안기네.
꽃이 지네
꽃이 지네
뉘 사랑의 이별인가
이 밤에 남몰래 떠나가는가.
꽃지는 밤
꽃을 밟고
옛날을 다시 걸어
꽃길로
꽃을 밟고
나는 돌아가네.
한하운 시초, 정음사, 1949
데모 한하운
데모
뛰어들고 싶어라
뛰어들고 싶어라.
풍덩실 저 강물 속으로
물구비 파도 소리와 함께
만세 소리와 함께 흐르고 싶어라.
모두들 성한 사람들 저이끼리만
아우성 소리 바다 소리.
아 바다 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싶어라
죽고 싶어라 죽고 싶어라
문둥이는 서서 울고 데모는 가고.
아 문둥이는 죽고 싶어라.
보리피리, 인간사, 1955
막다른 길 한하운
막다른 길
저 길도 아닌
이 길이다 하고 가는 길.
골목 골목
낯선 문패와
서투른 번지수를 우정 기웃거리며.
이 골목
저 골목
뒷골목으로 가는 길.
저 길이 이 길이 아닌
저 길이 되니
개가 사람을 업수여기고 덤벼든다.
보리피리, 인간사, 1955
목숨 한하운
목숨&
쓰레기통과
쓰레기통과 나란히 앉아서
밤을 새운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죽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아직도 살아 있는 목숨이 꿈틀 만져진다.
배꼽 아래 손을 넣으면
37도의 체온이
한 마리의 썩어가는 생선처럼 뭉클 쥐어진다.
이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 나의 목숨은
아직도 하늘에 별처럼 또렷한 것이냐.
보리피리, 인간사, 1955
벌 한하운
벌(罰)&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罰)이올시다.
아무 법문(法文)의 어느 조항에도 없는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
옛날부터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했다.
그러나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보리피리, 인간사, 1955
보리피리 한하운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닐리리
한하운 시초, 정음사, 1949
봄 한하운
봄&
제일 먼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좁은 지역에도 한 포기의 꽃을 피웠더냐.
하늘이 부끄러워
민들레꽃 이른 봄이 부끄러워.
새로는 돋을 수 없는 빨간 모가지
땅속에서 움돋듯 치미는 모가지가 부끄러워.
버들가지 철철 늘어진 초록빛 계절 앞에서
겨웁도록 울다 가는 청춘이요 눈물이요.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자살을 아끼는 것이요.
보리피리, 인간사, 1955
부엉이 한하운
부엉이
미움과 욕으로 일삼는 대낮에는
정녕 조상을 끄려서 차라리 눈을 감는 것이
약보다는 좋은 효험(效驗)이라 생각하였다.
부엉이는 또한
싸움으로 일삼는 낮에사
푸른 나무그늘 바위틈에서
착하디 착하게 명상하는 기쁨이
복이 되곤 했었다.
모든 영혼이 쉬는 밤
또 하나의 생명과 영혼이 태어나는 밤
이 밤이 좋아서 신화는
부엉이를 눈을 뜨게끔 하였다
어둠 속에서
별이 반짝이며 이슬을 보낸다
나무가 숨쉬며 바람을 보낸다
꽃이 피려고 향을 훈긴다.
한하운 시초, 정음사, 1949
비 오는 길 한하운
비 오는 길
주막(酒幕)도 비를 맞네
가는 나그네
빗길을 갈까
쉬어서 갈까
무슨 길 바삐 바삐
가는 나그네
쉬어갈 줄 모르랴
한잔 술을 모르랴
보리피리, 인간사, 1955
삶 한하운
삶&
지나가버린 것은
모두가 다 아름다웠다.
여기 있는 것 남은 것은
욕(辱)이다 벌이다 문둥이다.
옛날에 서서
우러러보던 하늘은
아직도 푸르기만 하다마는.
아 꽃과 같던 삶과
꽃일 수 없는 삶과의
갈등(葛藤) 사잇길에 쩔룩거리며 섰다.
잠깐이라도 이 낯선 집
추녀밑에 서서 우는 것은
욕이다 벌이다 문둥이다.
보리피리, 인간사, 1955
삼방에서 한하운
삼방(三防)에서
사람도 올 수 없이 막았다
구름도 올 수 없이 막았다
바람도 올 수 없이 막았다
그래서 삼방이라 하였는가
하늘을 찌르는 칠전팔도(七顚八倒)의 험산이
모조리 올 것을 막아버린 천험비경(天險秘境)에
구비구비 곡수(曲水)는 바위에 부딪혀 지옥이 운다.
죽음을 찾아가는 마지막 나의 울음은
고산(高山) 삼방 유명을 통곡한다.
죽음을 막는가
바람도 없어라
부엉이는 슬피 우는가
하늘이 쪼각난 천막에
십오야 달무리는
내 등뒤에 원을 그린다.
한하운 시초, 정음사, 1949
생명의 노래 한하운
생명(生命)의 노래
지나간 것도 아름답다
이제 문둥이 삶도 아름답다
또 오히려 문드러짐도 아름답다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
…… 꽃같이 서러워라
한세상
한세월
살고 살면서
난 보람
아라리
꿈이라 하오리
한하운 시초, 정음사, 1949
손가락 한 마디 한하운
손가락 한 마디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보리피리, 인간사, 1955
어머니 한하운
어머니&
어머니
나를 낳으실 때
배가 아파서 울으셨다.
어머니
나를 낳으신 뒤
아들 뒀다고 기뻐하셨다.
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
날 두고 가신 길을 슬퍼하셨다.
어머니
흙으로 돌아가신
말이 없는 어머니.
보리피리, 인간사, 1955
업계 한하운
업계(業界)
소년아
네 무엇을 찾으려고
또 하나 그 위태한 눈을 떴니.
하늘 한가 둥둥 구름 떠가는
높고 푸른 지엄을 우러러
어리디어린 보람을 조약돌로 팔매쳐보는 것.
아서라
네 아무리 하늘 끝간 델 보았다 하자……
눈물로 걸음걸음 이르런 곳
그래 여기가 바로 어느 동서남북이란 말이냐.
아득히 하늘 아득히 바라보던
너의 망원경 렌즈에 아련한 부끄러움을
어찌할 테냐.
보리피리, 인간사, 1955
인골적 한하운
인골적(人骨笛)
아득히 아득히 몇 억겁을 두고 두고
울고 온 소리냐, 인골적(人骨笛) 소리냐
엉 엉 못살고 죽은 생령(生靈)이 운다
아 천한절통(千恨切痛)의 울음이 운다
몽고라 하늘끝 아시아의 북벽
유수(幽愁)와 사막이 맞서는 통고사(通古斯) 죽음의 밤에
라마승은 오늘밤도 금색 묘당에
신에 접한다고 인골적을 불며
상형문자 같은 주부(呪符)의 경전을
회색에 낡은 때묻은 얼굴로 악마를 중얼거린다.
라마는 몽고의 신
천상천하 다시 또 없는 제왕의 제왕
이 절대자는
생살여탈권도
심지어 나어린 처녀의 첫날밤 마수걸이로
교권의 절대 앞에 지상에도 천국에도 없는
오, 오소리티여
신성과 은총과 구원이
인골적 울음 없이는 금구무결이 있을 수 없다고
선남선녀의 부정(不淨) 없는 생령(生靈)을
생사람 산 채로 죽여 제물로
도색(桃色)이 풍기는 뼈다귀를 골라 피리감으로
다듬어 다듬어서 구멍 뚫어서 피리로 분다
강동*이라 인골적
몽고의 오소리티여
인골의 피리가락은
낮이나 밤이나 삭북(朔北)의 유수(幽愁)와 몽매한 암흑에
교권 정치의 우미(愚迷)한 고집의 절대 앞에
생과 환희를 모르는 채
영영 쓰러진 사랑의 삼라만상의 시혼(屍魂)이
사막의 풍우로 버려진 풍장(風葬)의 시혼이
사막에 떠돌아 위령 없는 처절한 원차(怨嗟)로
그 몹쓸 자 바이칼 살풍에 산산이 부서진 사령(死靈)이
단장 터지는 곡소리가, 무수한 곡소리가
한가닥 인골의 피리에 맺혀 우는 호원(呼寃)
천한절통의 울음으로 흐흐 느낀다
교권의 독성의 자행과 착취
그 악순환은
옥토 몽고 대평원을 고비 사막으로 황폐시킨다
성길사한(成吉思汗) 세계정패의 대제국이
암흑으로
성병으로
완전히 멸망에 잠겨버렸다
천지창조의 신은
한 떨기 꽃에
한 마리 새에
한 가람 강물에
평화와 행복의 계시와 은총을 주셨으니
신을 매복(賣卜)한 라마의 악의 업보는
천지창조의 신의 분노를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삼라만상의 태반(胎盤)인 산천마저 사막으로
한 떨기 꽃도 피어날 가지 없이
한 마리 새도 쉴 나무숲도 없이
별이 쉬어갈 샘물도 없이
천애지애(天涯地涯) 평사만리(平砂萬里)로 황폐시켰고
인간의 존귀성마저 유린한 채
나라를 망해먹고
민족마저 망해먹었다
라마승은
Z기가 날아가는 원자(原子)의 이 찰나에도
사랑의 뼈다귀 인골의 피리를 불며
악마의 경전을 중얼거리며
아직도
절대지상이라는 교권으로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
나어린 처녀의 첫날밤 마수걸이를
오, 오소리티여
인골의 피리는 엉 엉
못살고 죽은 선남선녀의 생령이
한 떨기 꽃을
한 마리 새를
한 가람 강물을 찾으며 운다.
인골적(人骨笛),
인연(人煙)이 끝인 황사만리(荒砂萬里) 절역(絶域)에
엉 엉
천한절통(千恨切痛)의 울음으로 흐흐 느낀다.
* 강동: 인골(人骨) 피리의 몽고어.
한하운 시초, 정음사, 1949
자벌레의 밤 한하운
자벌레의 밤
나의 상류(上流)에서
이 얼마나 멀리 떠내려온 밤이냐.
물결 닿는 대로 바람에 띄워보낸 작은 나의 배가
파도에 밀려난 그 어느 기슭이기에.
삽살개도 한 마리 짖지 않고……
아―여기서
나는 누구의 이름을 불러보아야 하나.
첩첩한 어둠 속에 부표처럼 떠서
가릴 수 없는 동서남북에 지친 사람아.
아무리 불러보아야
답 없는 밤이었다.
보리피리, 인간사, 1955
자화상 한하운
자화상(自畵像)&
한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
한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
그러한 슬픔에 굳어버린 나의 얼굴.
도대체 웃음이란 얼마나
가볍게 스쳐가는 시장끼냐.
도대체 웃음이란 얼마나
짓궂게 왔다가는 포만증(飽滿症)이냐.
한때 나의 푸른 이마 밑
검은 눈썹 언저리에 매워본 덧없음을 이어
오늘 꼭 가야 할 아무데도 없는 낯선 이 길머리에
쩔룸 쩔룸 다섯 자보다 좀더 큰 키로 나는 섰다.
어쩌면 나의 키가 끄으는 나의 그림자는
이렇게도 우득히 웬 땅을 덮는 것이냐.
지나는 거리마다 쇼윈도 유리창마다
얼른 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
보리피리, 인간사, 1955
창경원 한하운
창경원(昌慶苑)&
꽃 보러 꽃이 가지요
꽃 볼려고 단 한 분 삶을 봤지요
꽃이 꽃을 기다리지요
피고 질 삶이 기다리지요
꽃이 꽃을 보지요
사람이 꽃이지요
꽃이 사람이지요
꽃을 밟고 사람이 오지요
꽃이 사람을 밟고 돌아가지요
보리피리, 인간사, 1955
추석달 한하운
추석(秋夕)달
추석달은 밝은데
갈대꽃 위에
돌아가신 어머님 환영(幻影)이 쓰러지고 쓰러지곤 한다.
추석달은 밝은데
내 조상에
문둥이 장손은 다례도 없다.
추석달
추석달
어처구니없는 8월 한가위
밝은 달이다.
한하운 시초, 정음사, 1949
추야원한 한하운
추야원한(秋夜怨恨)
밤을 새워 귀또리 도란도란 눈물을 감아 넘기자.
잉아 빚는 물레 소리에 밤은 적적 깊어만 가고,
청상스리 한숨 쉬며 어이는 듯한 그리움에 앞을 흐리는 밤.
눈물은 속될진저 오리오리 슬픈 사연을 감아 넘기자.
바람에 부질없어 문풍지도 우는가
무삼일 속절없는 가을밤이여.
보리피리, 인간사, 1955
추억 2 한하운
추억(追憶) 2
일곱해 맞이 해해 맞이
기울어진 지구가 되어
쩔뚝이며 빗길로 찾아와보니
모난 하늘이 동쪽으로 삐뚤어졌네
어느새 동쪽으로 삐뚤어졌네.
오늘도 붉은 꽃 파리는
머언 해중(海中)으로 흘렀나본데
기다렸던 해변은
그 여인의 넋인 양 슬픔인 양
추루룩 추루룩 울고만 있네.
보리피리, 인간사, 1955
추우일기 한하운
추우일기(秋雨日記)
아치라운 일이다
네 싸늘히 서글픔을 눈으로는 노려보지 말아라.
모두다 모두가 다 이름있는 모든 것이다.
가느다란히 정맥에 살아서 숨쉬는
나무며 풀이며 잎잎 떨어지는데.
싹 다린 옥색 모시치마 사뿐히 꽂아지른 옷맵시.
참다못하여 부서질 듯이 돌아서면서
흐느껴 눈물로 옷깃을 적시는가.
보리피리, 인간사, 1955
춘곤 한하운
춘곤(春困)
꽃샘바람은
꽃이 시새워서 분다지만.
초근목피에 주린 배를 채우면
메슥메슥 생목만 올라
부황증(浮黃症)에 한속(寒粟)이 춥다.
노고지리는
포만증(飽滿症)을 새기느라
진종일 울어야 하지만
아예 배고픔을 내색 않는 문둥이는
얼마나 울어야 하는 이야기인가.
굶주림은
죽음보다도 더 무서워.
아지랭이는
아지랭이는
비실비실 어질병만 키운다.
한하운 시초, 정음사, 1949
파랑새 한하운
파랑새&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보리피리, 인간사, 1955
하운 한하운
하운(何雲)
나 하나 어쩔 줄 몰라 서두르네
산도 언덕도 나뭇가지도.
여기라 뜬 세상
죽음에 주인이 없어 허락이 없어
이처럼 어쩔 줄 몰라 서두르는가.
매양 벌려둔 저 바다인들
풍덩실 내 자무러지면
수 많은 어족(魚族)들의 원망이 넘칠 것 같다.
썩은 육체 언저리에
네 헒과 균과 비(悲)와 애(哀)와 애(愛)를 엮어
뗏목처럼 창공으로 흘러 보고파진다.
아 구름 되고파
바람이 되고파
어이없는 창공에
섬이 되고파.
보리피리, 인간사,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