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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선운사에는 수줍은 처녀의 머리카락처럼 가녀린 듯 피어난 붉은 꽃무릇(상사화)이 한창이다. 숲 속 오솔길을 따라 붉은 융탄자를 깔아놓은 듯 황홀한 꽃세상으로 든다. 꽃과 함께 청정 갯벌에서 열리는 수산물 축제에 들러 입 안 가득 별미를 품고 한바탕 웃어본다.
▒ 1, 3 선운사 입구에 만발한 꽃무릇. 빨간 융단을 깔아놓은 듯 온통 붉은 색 천지다. 2 소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학원농장의 메밀꽃이 한창이다.
어느 여행작가가 말했다. "쉼표 없는 일상은 대팻밥이나 톱밥처럼 우리들 본래의 삶에서 시나브로 깎여 나가는 부스러기가 되고 말 것이다"라고. 정말로 우리 인생에 쉼표가 없다면 그야말로 무미건조한 삶이 될 것이다.
더위도 한풀 꺾이고 바람도 살랑살랑 부는 게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여행이야말로 삶의 쉼표를 찍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동행은 애인이어도 좋고, 친구여도 상관없으며, 가족이라면 더 행복하다. 내 삶의 휴식 시간을 아름다운 사람과 멋진 세상에서 소중한 시간을 만들 수 있다면.
9월 초, 전북 고창의 선운사는 최고의 여행지로 꼽힌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절.
봄이면 핏빛처럼 빨간 동백이 유명세를 떨치지만, 초가을 절 주변을 수놓는 꽃무릇(상사화)의 장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초파일에 매달아 놓은 등처럼 숲길 따라 빨갛게 불을 밝히는 꽃의 행렬. 너무나 눈이 부셔 이 길이 천국으로 가는 관문인 듯하다.
산 입구에서 절로, 절에서 더 깊은 산 속으로 향하는 길에는 붉은 꽃이 바람에 나부끼며 소리 없이 아우성친다. 아직 여름의 녹음이 사라지지 않은 산야, 그렇다고 단풍을 기다리기에는 아직 이른 계절.
가냘픈 꽃무릇은 단연 눈에 띄는 존재이며, 자연에 쉼표를 찍어주는 상징이다. 그런 까닭에 선운사에 가면 절로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꽃과 함께 반가운 자연은 바다와 땅이 만나 품어낸 갯벌이다. 잿빛이라 칙칙하게만 보이는 갯벌이지만 그 품에는 무수한 생명이 꿈틀거린다.
풍천장어가 이 품에서 성장을 했고, 바닷가 주민의 주머니 사정을 넉넉하게 해주는 조개도 이 속에서 말없이 컸다. 여행객은 그곳에서 조개 캐기란 낯선 일에 도전한다. 전국에서 가장 비옥하다는 고창 갯벌은 지루할 새도 없이 연신 조개를 풀어놓는다.
하나 둘 담아낸 조개는 맛있는 음식이 되어 식탁을 풍족하게 만들어준다. 보기만 해도 감동이 울컥 쏟아지는 갯벌, 수확의 기쁨만이 아니라 뛰고 뒹굴며 건강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그곳의 하루엔 행복이 가득 담겨 있다.
▒ 4 실타래에 붙어 있는 실처럼 가늘게 피어난 꽃무릇의 꽃. 5 선운사를 오가는 계곡을 따라 꽃무릇과 메밀꽃이 곱게 피었다.
[선운사] 붉은 꽃잎의 소리 없는 아우성
아직 여름이 남아 있는 산야는 진초록의 숲 그늘이 색을 지배하지만, 선운사 입구에는 붉은 꽃무릇이 서서히 달아오른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꽃대 위에 수줍은 처녀의 머리카락처럼 피어난 꽃무릇. 꽃무릇은 꽃이 피었다 지고 난 다음에 잎이 나와 평생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는 꽃이다.
속세의 여인을 몹시도 사랑했던 한 스님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후에 피어났다는 애틋한 전설이 서린 꽃. 그래서 선운사의 스님은 '상사화'라 부른다.
애틋한 그리움을 품고 피는 꽃이라 여행작가 이시목 씨는 "그리움으로 힘겹거든 숲 그늘에 '그리움'으로 맺힌 꽃무릇이 지천으로 널린 고창 선운사로 가보라"고 권한다.
꽃무릇은 주차장 앞 개울가에서 눈에 띄기 시작한다. 처음엔 한무리 흩어져 피다가 매표소 들머리부터는 무더기로 핀다.
특히 부도밭은 꽃무릇 천지다. 푸른 전나무 숲 한가운데에 자리해 색의 조화도 뛰어나려니와 고승의 향기가 더해져 분위기마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선운사 경내까지 계곡을 따라 석가탄신일에 등불이 길을 밝히듯 고운 빛의 꽃이 마치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피어 있다. 그 길을 걷노라면 사람도 꽃도 물 속에 선명하게 반영돼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오랜 사찰을 찾아 둘러보는 기분도 좋으련만, 꽃 속에 묻혀 가벼운 산책까지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선운사 담벼락에서 도솔암까지 3.2km 구간은 붉은 기운이 약해지긴 해도 꽃길을 따라 산행을 할 수 있다. 산이 떠나가라 울어 대는 산새와 매미 소리는 덤이다. 시인 정찬주 씨는 "이 길을 걷고 있으면 인간 세상에서 하늘로 가는 기분"이라 말했다.
숲길을 30분쯤 걸으면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이 보인다. 깊이가 10m인 이 자연 굴은 TV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의 어머니 묘가 있는 동굴로 나와 요즘 유명세를 떨친다.
도솔암은 기도 효험이 높아 집안의 대소사를 소원하는 신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암자 앞의 거대한 암벽인 칠송대에는 높이 17m의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마애불의 가슴께에 눈에 띄는 감실이 있는데, 여기에 관한 재미난 전설이 전해진다. 검단선사란 스님이 이곳에 비결록을 써서 넣었다고 한다.
조선 말에 전라도 관찰사이던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도솔암에서 마주보이는 천마봉을 향해 한 시간 정도의 산행 코스를 선택해 올라가면 영광 칠산 앞바다와 곰소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녁 무렵 서해로 사라지며 붉은빛을 토해내는 낙조를 본다면 선운산이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바다는 온갖 시름을 어루만지듯 온통 붉은 비단의 물결로 뒤덮인다.
Travel Point - 선운사 도솔암
도솔암을 찾아야 선운사를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중이 높은 암자다.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이란 뜻. 깎아지른 기암절벽 사이에 들어선 암자는 보기만 해도 영험이 많은 곳임을 짐작하게 한다.
도솔암 옆 바위 계단을 오르면 내원궁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선운산 골짜기가 백미다. 바위산이 연출하는 거친 산세와 돌 틈에서 자라난 나무들의 푸른빛이 일품이다.
특히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장관을 펼쳐낸다. 암자 주변에는 등불암 마애불, 용문굴, 낙조대 등 명소가 있고, 등산로는 드라마 <상도>가 촬영된 장소여서 한 시간 정도로 산행을 하면 많은 볼거리를 감상할 수 있다.
▶ 맛집
[우리수산]
고창 하면 떠오르는 별미는 뭐니 뭐니 해도 풍천장어다. 선운사 앞에도 풍천장어를 내놓는 식당이 많지만, 갯벌체험장 옆의 우리수산은 장어의 질과 맛에서 단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여느 식당과 다름없이 양식 장어를 쓰지만, 일정 기간 동안 맑은 물만 먹여서 보관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육질을 좋게 한다. 덕분에 기름기가 적어 담백하고 씹히는 맛이 쫄깃하다.
장어를 구울 때도 양념을 하지 않고 참숯에 소금을 뿌려서 굽는다.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해 저녁 무렵 창을 통해 바라보이는 노을이 장관이다. 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타 지역 손님을 위해 택배 서비스도 한다.
● 063-564-9848 | 10:00~22:00 | 장어 (1kg) 2만5000원, 택배 (1kg) 2만1000원, 신용카드 가능
[인천장가든]
고창읍에서 선운사 가는 길 중간 운곡댐 근처에 있는 별밋집. 운곡호에서 잡은 민물새우로 탕을 끓여 내는데 국물 맛이 일품이다. 새우 특유의 시원한 맛에 애호박, 양파를 담뿍 넣어 달짝지근한 맛을 곁들였다.
여기에 고창 고춧가루를 써서 얼큰함을 낸다. 일가 친척이 주위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재료의 70%는 직접 기른 것을 사용한다. 여름에는 매일 새우를 잡아다 쓸 정도로 손님이 많다.
● 063-564-8643 | 11:00~20:00 | 민물새우매운탕 (4인분) 2만4000원, 송사리매운탕 (4인분) 2만4000원, 신용카드 가능
▶ 숙박 [아리랑모텔]
고창읍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여관이다. 지은 지 두 달이 조금 넘어서 깨끗함은 물론 시설도 관광호텔보다 뛰어나다. 객실에 공기청정기는 기본으로 갖추었고,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도 준비했다.
욕실에는 비데를 설치하고, 월풀 욕조나 안마 샤워기를 준비해 투숙객의 기호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도로 옆이라 초저녁에는 다소 소음이 있는 것이 흠이지만, 길가 객실 창을 통해 고창읍성의 전경이 조망된다.
● 일반실 3만5000원, 특실 4만5000원, VIP룸 5만원
[선운산유스호스텔]
선운사 시설 지구에 위치. 고창군에서 직접 운영해 믿을 수 있다. 2000년에 개관해 비교적 시설이 깨끗하고 부대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특히 주변 호텔에 비해 가격이나 객실의 크기가 월등히 좋아 여행객이 선호하는 곳이다.
가족 단위 여행객은 자가 취사장을 연료비만 지불하고 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기도 하다. 유스호스텔에서는 전통 놀이, 하이킹, 유적 답사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투숙객에게 다양한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 063-561-3333
Travel Point
** 고창읍성 조선시대 읍성으로 '모양성'이라 불린다. 매년 음력 9월 9일이면 성 밟기 풍습이 행해진다. 여자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성을 밟으면 한 해의 재앙과 질병을 없애고 죽어서 극락에 간다는 전설이 있다. 성을 다 밟은 후에는 머리에 인 돌을 성 입구에 쌓아두었는데, 이 풍습은 겨울 동안 얼어서 팽창해 있던 성을 다지고 비상시를 대비하려는 조상의 지혜가 배어 있는 것이다.
● 문화관광과 063-560-2227 | 연중무휴 | 입장료 (어른) 1000원, (어린이) 400원, 주차료 1500원
**고인돌공원 고창군은 눈에 보이는 커다란 돌은 다 고인돌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고인돌이 많이 밀집한 곳이다. 죽림리, 상갑리 일대를 중심으로 2000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돼 있다. 청동기시대의 사회, 문화, 묘제 등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학원관광농원 봄철 보리밭으로 유명해진 곳. 가을이면 10여만 평의 농원에 하얀 메밀꽃이 피어 마치 너른 평원에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공원 내에는 숙박 시설이 마련되어 저렴한 비용(3만~5만원)에 머물다 갈 수 있다. ● 063-564-9896
호남의 금강으로 불리는 선운산 등산 코스 1코스 관리소→자연의 집→낙조대→천마봉 (4km) 2코스 중촌마을→경수산→석상암 (3km) 3코스 석상암→수리봉→참당암→도솔암→낙조대→천마봉 (6km) 4코스 자연의 집→봉두암→사자암→배맨바위→천마봉→낙조대→도솔암 (7km) 5코스 구암→삼천굴→비학산→희어재→도솔재→선운사 (7km) 6코스 구암→안장바위→선바위→탕건바위→매표소 (6km)
▶ 교통정보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정읍에서 나와 고창, 흥덕으로 빠져 선운사로 갔다. 지금은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선운사 IC에서 빠지면 된다.
22번 국도를 따라 고창 방면으로 15km 정도 간 다음, 선운사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선운사 입구에 풍천장어 음식점이 즐비해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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