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순간 말채찍을 놓쳐버릴 뻔했다. 무릎을 탁 치려했기 때문이다. 유지은의 말을 듣는 찰나 이순신은 더할 나위 없이 명쾌한 정답을 찾아내었구나 싶었다.
정걸은 이순신보다 31세나 연장인 퇴역 장군이다. 아무리 전쟁이 벌어질 듯한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국면이라 해도 칼을 들고 적과 맞서기에는 너무나 연로하다. 그러나 국가적 위기를 앞둔 이때 백전노장으로부터 산전수전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얻는 기회는 병자가 신의神醫로부터 처방을 받는 듯한 특효의 처방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왜 전라 좌수영 관할에 길두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못했을까! 정읍을 떠나 여수로 출발할 때 진작 떠올렸어야 마땅한 마을 이름 아닌가!’
유지은이 소개를 해서가 아니라, 원래 이순신은 정걸과 아는 사이였다. 뿐만 아니라 이순신은 정걸의 고향이 길두마을이라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었다.
이순신이 그야말로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낯빛으로 유지은에게 말한다.
“당장 찾아뵙고 말씀을 드리리다. 좋은 길을 가르쳐준 유 부인께는 내 반드시 답례를 하겠소.”
유지은이 말한다.
“별말씀이십니다. 저의 짧은 생각이 장군께 도움이 되기만 바랄 뿐입니다.”
그 길로 이순신은 정걸을 찾아갔다. 발포성에는 가지 않고 그냥 발길을 길두마을로 돌렸다.
그 날 이후에도 이순신은 정걸을 두 번 더 찾아갔다. 앞선 두 차례 방문에서 정걸을 못 만나서가 아니었다. 유비는 두 번 헛걸음하고 세 번째 방문에서 간신히 제갈량과 해후했지만, 이순신은 세 차례 모두 정걸과 대면했다. 물론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방문 때 정걸이 이순신의 청을 수락했더라면 두 사람이 길두마을에서 세 차례 만나는 일은 없었을 터이다.
세 번째와 두 번째는 말할 것도 없고, 첫 만남 때부터 이순신은 정걸을 “영공”으로 불렀었다.
“영공께서는 그 동안 옥체만강하시었는지요? 소생이 비례한 탓에 불현듯 찾아뵙고 삼가 인사를 올립니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정걸의 등 뒤에서 이순신이 읍을 올렸다. 누군고 하는 마음으로 낚싯대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이켜 일어서던 정걸이,
“어허, 이게 누군가? 아주 오랜만이로군! 그렇지만 영공은 아니지.”
하며 껄껄 웃었다. 소탈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파안대소 끝에 정걸이 반문했다.
“여해야말로 영감이지∼! 현직 수사 아닌가, 허허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공자께서 정명正名을 말씀하셨는데,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너무나 걱정입니다.”
“무슨 겸양인가! 영의정(이산해)과 우의정(정언신)이 임금께 천거한 인재로 이미 온 강산에 다 소문이 났는데! 나도 그 말을 들었어. 여해는 충분히 수사라는 이름名에 걸맞는正 역할을 감당할 인재야!”
이순신의 전라 좌수사 임명에 반대하는 대신들에게 선조가 ‘그 사람(이순신)이면 충분히 좌수사의 임무를 감당할 것이야此人足以可堪矣’라고 말한 사실은 알지 못하면서도 정걸은 판에 박은 듯이 같은 평언을 하고 있다. 이순신이 겸연쩍게 얼굴을 붉히자 정걸이 빙그레 웃으며 묻는다.
“여해가 좌수사로 왔다는 말은 내가 열흘쯤 전에 들었지. 임무가 크고 무거우니 마음도 몸도 편안하지가 못할 터인데, 그래 어떤가 …?”
이순신이 재차 읍한 뒤,
“그래서 오늘 좌수사 부임 인사도 드릴 겸해서 영공을 찾아뵈었습니다.”
라고 말하자, 정걸이 정중히 반문한다.
“허허, 영공이 아니라니까 또 그러네! 어쨌든 반갑군그래. 아무튼 공사다망한 수사 영감께서 이 늙은이는 어찌 찾아오셨는고? 그저 부임 인사만은 아니겠지?”
“예, 송구합니다.”
“허허, 괜찮네. 말해 보게.”
“일본 통신사(미주)가 왜적의 침입을 예고한 사실은 영공께서도 익히 아실 것입니다. 전쟁에 대비를 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지략이 부족합니다. 영공 같은 분들께서 도와 주셔야 나라와 백성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감히 청하오니 경륜을 다시 펼쳐 주십시오.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올리면, 전라 좌수영 조방장 자리가 현재 공석입니다. 영공께서 좀 맡아주십시오.”
유지은과 대화를 나눌 때에는 백전노장으로부터 전쟁 발발을 앞두고 대비책을 듣는다고 했었다. 그런데 길두마을로 말을 달리는 도중 이순신의 생각이 바뀌었다. 기가 막히는 멋진 궁리가 떠올랐던 것이다. 아예 ‘조방장을 맡아주십시오!’ 하고 청을 드려보면 어떨까? 그렇게만 된다면 만사형통 아닌가!
이순신의 말을 듣고 정걸이 손사래를 쳤다.
“늙은이에게 무슨 경륜이 있다고 …? 그저 호구지책으로 벼슬살이를 했고, 나이를 먹으니 저절로 관직이 높아졌을 뿐 …. 지혜라니 더 더욱 가당치 않아. 나라와 백성을 구할 재목이 아님을 스스로 아는데 어찌 수사의 청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
두 번째 찾아갔을 때에도 대화는 마찬가지를 맴돌았다.
“우리나라는 큰 전쟁 없이 태평한 지 오래 되어 군대가 너무나 해이에 빠졌습니다昇天日久軍政解弛. 장졸들의 무예도 녹슨 칼처럼 무뎌졌습니다. 만약 왜적이 쳐들어온다면 맞서서 대적할 만한 수준이 못 됩니다. 누군가가 장수들을 가르치고, 장수들이 다시 휘하 병사들의 전투력을 길러주는 체계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한성에 있는 훈련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영공께서 이 번거로움을 맡아주신다면 전라 좌수영은 물론 나라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걸이 대답했다.
“이보게, 좌수사. 이 늙은이에게 그런 힘이 있다면 어찌 가만히 있겠나? 왜적이 전쟁을 일으키면 무찔러야 하고, 그러려면 장수와 군사들이 제몫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일세. 하지만 나는 장검 하나 휘두를 힘도 없는 늙은이에 지나지 않네. 무슨 여력으로 장졸들을 훈련시킬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정걸은 이순신에게,
“앞으로 좌수영을 어떻게 이끌 요량인지 말해보게.”
같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순신은 꾸준히 생각하고 공부해온 바를 근거로 충실히 답변했다. 정걸은 들으면서 연신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이런저런 내용을 보태기도 했다. 조방장을 맡겠다는 허락은 않았지만 이순신을 맞아 정걸은 많은 말을 했다.
그런데 이순신이 다음 질문을 하자 어쩐 까닭인지 정걸은 문득 묵묵부답으로 말을 잃었다.
“감히 영공께 외람되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전라 좌수영 예하 5관 5포에 열 명의 지휘관이 있습니다. 수사인 소생을 포함하면 전쟁 책임자가 열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관 출신이든 무관 출신이든, 나이가 몇 살 많든 아래든, 그런 사항들과 아무 상관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가 막히는 공통점이 있사온데 … 그 열한 사람 가운데 바다에서 전선을 이끌고 적과 싸워본 경험이 있는 수령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정졸들도 물론입니다.
이는 유독 전라 좌수영만이 아니라 전라 우수영, 경상 좌수영, 경상 우수영, 충청 수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곧 왜노들이 전쟁을 일으켜 대대적으로 달려들 텐데, 바다를 지키는 수령과 장졸들이 이 지경이면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도륙당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일을 어찌 대비하면 좋을는지요?” (계속)
(미주) 흔히 ‘조선 통신사’라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그렇게 부르지 않고 ‘일본 통신사’라 불렀다.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라는 뜻이었는데 ‘통신사’와 ‘신사’를 약칭으로 쓰기도 했다. ‘조선 통신사’는 조선에서 온 통신사, 즉 일본 측이 사용한 용어였다. 일본이 보내온 사절을 조선은 ‘일본 국왕사國王使’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