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검(劍)은 세계 검들의 조형(祖形)
한반도에서 고인돌이 만들어지던 상고시대(上古時代)에는 진흙을 빚어 토기를 만들었으며, 돌을 곱게 다듬어 돌단검을 만들었다.
이러한 돌단검은 세석기(細石器)의 좀돌날을 끼웠던 뼈칼집에서 비롯하여, 돌활촉과 돌창촉과 함께 짐승의 정강이 뼈를 갈아만든 골검(骨劍)으로 발전하였는데, 두만강(豆滿江) 유역의 연길(延吉, Yenji) 지방과 그 근처의 연해주(沿海州) 지방의 구덩널(土壙墓)에서는 이같은 골검들이 자루가 있는 것(有柄式)과 없는 것(有莖式) 등 다양한 모양으로 출토된다.
이 때를 전후하여 고인돌에서 돌단검이 출토되기 시작하는데, 자루달린 돌단검은 대체로 황주 일대에서 시작되어 남한 지역에서 확산된 것으로 여겨진다.
단군조선의 비파 청동검
청동검(靑銅劍)의 조립식(組立式) 구조(構造).
대구(大邱) 평리동(坪 里 洞)에서 출토(出土)된 검집 딸린 청 동 검
돌단검은 이제까지 일본 학자가 주장한 대로 '마제석검(磨製石劍)'으로 불리웠는데, 돌화살촉에서는 돌을 쪼개서 만든 깬돌화살촉(打製石鏃)과 다듬어만든 간돌화살촉(磨製石鏃)의 구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돌검에서는 북한 지방에서만 극소수 깬돌창검(打製石槍劍)이 출토되고 나머지는 모두 간돌검(磨製石劍)으로, 사실 돌검의 대부분이 간돌검이라 깬돌검과 간돌검이라는 구분이 적합치않다. 그래서 필자는 간돌검(磨製石劍)이라는 용어 대신에 '돌검(石劍)'이나 '돌단검(石短劍)'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제까지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 출토된 모든 돌단검들을 종합하여 보면, 그 대부분이 한반도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또한 고인돌 시대에 국한되어 있고, 중기 이후에는 청동검과 같이 출토되거나 청동검만 출토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리고 고인돌 이후 커다랗게 뫼(封土墳)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돌검과 청동검은 사라지고 그 대신 쇠검(鐵劍)이 등장하게 된다.
칠검집동검
창원(昌原) 다호리(茶戶里) 1호분(號墳) 출토(出土)
청동자루쇠검(靑銅劍把鐵劍)
김해(金海) 양동리(良洞里) 55호분 출토
세잎 고리자루 큰칼(金銅 三葉文環頭大刀.
대구(大邱) 내당동(內唐銅) 55호분 출토
고리자루 큰칼(三環頭大刀)
경주(慶州) 황남대총(皇南大塚) 출토
장식보검(裝飾寶劍)
경주(慶州) 계림로(鷄 林 路) 14호분 출토
한반도와 요동반도에서 출토되는 모든 돌검을 종합하여 보면 한강 유역을 경계로 하여 크게 남북으로 구분되는데, 북쪽에는 거의 전부 검(劍)과 창(槍)이 복합되어 있는 것으로(有莖式) 돌창검이며, 남쪽에서는 거의 대부분 손잡이(柄部, 劍把)가 달려있는 자루달, 검뿌리라고도 말하는 슴베(莖部)만 달려있는 슴베달린린(有柄式) 돌단검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루달린 돌단검도 남한의 각 지역에서 매우 다양한 모양들이 출토되고 있어 그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인데, 주로 한강(漢江) 하류에서 상류로, 그리고 낙동강(洛東江) 상류에서 하류로, 남한을 관통하여 대각선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거창(居昌) 무릉리(武陵里) 산포(山浦)에서 출토된 돌검은 아예 검마디(劍節, 칼날멈추개)가 부드럽게 다듬어지면서 검몸(劍身, 검날)과 검자루(劍把)가 이어져 검몸의 중간부분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비파형 검몸을 모여주게 된다. 여기에서 비롯하여 비파형동검의 모양이 나온 것으로 보여지는데, 남해안 지방과 요동지방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은 중국 오르도스(Ordos, 鄂爾多斯, 河套, 옛 綏遠省) 지방과 러시아의 카라숙(Karasuk) 지방의 청동검들의 모양에 비하여 앞선 시기의 모양을 보여준다. 이렇듯이 고대 한반도의 돌단검과 청동검들은 전 세계의 모든 검들의 조형을 보여주고 있어, 이런 점에서 전 세계 처음으로 검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곳이 한반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리자루 큰칼(環頭大刀)의 머리장식(頭飾).
1, 9, 17, 18. 국은(菊隱) 이양선(李養璿) 소장품 2, 3, 10. 경주(慶州) 금관총(金冠塚) 출토 4,5. 대구(大邱) 내당동(內唐洞) 55호분 출토 6, 7.경주(慶州) 천마총(天馬塚) 출토 8.경주(慶州) 교동(校 洞) 출토 11. 포항(浦項) 냉수리(冷水里) 출토 12, 13. 합천(陜川) 옥전(玉田) 3호분 출토 14, 16.출토지 불명(不明) 15. 호암 미술관(湖巖 美術館) 소장품 19. 공주(公州) 무령왕릉(武 寧 王 陵) 출토
수많은 청동검들이 출토되는 중국 황하(黃河) 중상류의 오르도스(鄂爾多斯) 지방, 그리고 요서(遼西)의 내몽골(內蒙古) 지방에서는 요동과 남해안 지방의 것에 비하여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에다 좀더 정교한 청동검들이 출토되는데, 그 모두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청동검과 돌검에서 변한 것이다. 특히 비파형동검에서 비롯한 좁은놋단검(細形銅劍)은 검몸(劍身)과 검자루(劍把), 그리고 마구리(劍把頭飾) 장식의 조립식(組立式) 구조를 갖추고있는데, 이러한 조립식 청동검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국의 요녕성(遼寧省) 지역과 한반도(韓半島), 그리고 일본의 쿠슈(九州) 섬에서만 볼 수 있다.
전 세계 청동검의 모든 모양들은 대부분 하나로 이어진 구조(一鑄式)로서, 이러한 조립식 구조이거나 비파형동검에서 변화한 모습들이어서, 전 세계 모든 검들의 조형(祖形)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이족(東夷族) 지역에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과거 일본과 영국 학자들은 한반도의 검들이 모두 러시아 남부의 카라숙(Karasuk)과 오스트리아 중부의 할슈타트(Hallstatt) 지역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였으며, 그러한 가설(假說)에 맞추어 청동검을 모방하여 한반도의 돌검들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제까지 발표된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방법을 통한 절대연대는 그 진위여부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유명한 보검인 월왕(越王) 구천(鳩淺)의 검과 진시황의 병마용갱(兵馬俑坑)에서 출토한 진시황(秦始皇) 보검(寶劍)은 일명 '도씨검(桃氏劍)'이라는 청동검과 같은 모양으로, 한반도 남북 여러 곳에서 이같은 도씨검들이 말기형 비파형동검과 함께 출토되어, 비파형동검에서 좁은놋단검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도씨검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명 '안테나식(觸角式)'으로 말하는 쌍조형(雙鳥形) 마구리장식의 청동검은 돌검의 'T'자형과 누에고치형 마구리장식에서 변화한 것으로, 카라숙에서는 한반도의 조립식 구조를 하나로 연결하여 만들었다.
검자루의 마구리 장식(劍把頭飾).
1, 2. 남한 출토 석제장식(石製裝飾) 3 ~ 9. 청동제장식(靑 銅 製 裝 飾) 3. 대구(大邱) 평리동(坪 里 洞) 출토4.호림박물관(湖 林 博 物 館) 소장품 5. 황주(黃 州) 흑교리(黑 橋 里) 출토 6.장수(長 水) 남양리 (南 陽 里) 출토 7.김해(金海) 양동리(良 洞 里) 출토 8.국립중앙박물관(國 立 中 央 博 物 館) 소장품 9. 대구(大邱) 지산동(池 山 洞) 출토
검(劍)은 가운데 등줄기(脊部)를 중심으로 하여 그 양쪽에 날(刃部)이 있는 것을 말하며, 칼(刀)은 한쪽에 날이 있는 것을 말하는데, 전투와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것은 칼이었으며, 검은 오로지 제의용(祭儀用)으로 사용되었다.
고대 인도의 무굴(Mugul) 제국에서는 반달 모양의 언월도(偃月刀)가 사용되었으며, 고대 유럽에서는 양날 직검(兩刃直劍)이 실제로 사용되어 한반도의 경우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특히 '검(劍)'이라는 명칭은 단군(檀君) 왕검(王儉)이라는 명칭에서와 같이 신적(神的)인 군장(君長)을 뜻하고 있는데, 원래의 돌검은 이러한 신성(神聖)한 상징물(象徵物)로 의인화(擬人化)되어 검몸(劍身)에 검눈(劍眼)이 새겨져 있다. 이 검눈은 검몸에 길다랗게 두줄의 홈이 파여져 있는 것으로, 과거 일본 학자들은 이 두줄의 홈이 살상하면서 피가 쉽사리 빠질 수 있게끔 혈로(血路) 역활을 한다고 여겨서 피홈(血溝)으로 불러 왔었지만, 고인돌에서 출토되는 두개의 구멍이 새겨진 '눈돌(雙穴石器)'에서 볼 수 있듯이 매장자의 신분을 표시한 지석(誌石)의 일종으로 이러한 돌검이 껴묻거리로 들어 갔다고 할 수 있다.
'방상시(方相氏, 또는 방상씨)' 장승(長生)에서 볼 수 있는 4개의 눈은 바로 이러한 검의 양쪽 면에 새겨진 4개의 검눈을 모아놓은 것으로서, 방상시 신(神)은 검(劍)의 또 다른 형태로 여길 수 있다. 주대(周代)에 방상시(方相氏)는 벼슬 관직으로서, 주검을 매장할 때에 곰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황금으로 만든 4개의 눈을 달고, 무덤에서 꺾창(戈)으로 널과 구덩이의 네 귀퉁이를 찌르면서, 무덤 구덩이로 들어오는 염병(染病)이나 악귀(惡鬼)를 쫓는 일을 맡아보았다.
영국이 만든 공상과학 영화 '에이리언(Aliens)'을 보면 영화 속 외계인은 길죽한 짐승 머리에 날카로운 앞이빨이 달려있으며, 그 안에서 다시 또 다른 머리가 들어있다. 그런데 이 외계의 짐승 머리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달린 곰의 두개골 상부와 그 모습이 대강 일치하고 있으며, 두개골 안에 또 다른 머리가 들어있다는 점에서 곰의 머리를 뒤집어쓴 방상시의 모습과 일치한다. 시베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근대까지도 사제장이 이같은 곰의 머리 또는 두개골을 뒤집어쓰고 제의를 하였다고 알려지는데, 미국 인디언들도 이처럼 추장이 곰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제의를 하였던 종족이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륙에서 매우 흔한 이름인 뱅상(Vincent, 빈센트)은 무덤을 지키는 토지신인 '방상'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