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김경준
이제 곧 계절의 서표(書標) 달력을 넘기려는 2월의 끝
이별의 경계에는 한 점 부는 바람도 없는데도 봄눈은
자음과 모음 따로따로 읽을 수도 없는 하얀 글자들을
하얗게 서린 눈물로 소복이 세상에, 마음에 쏟아놓아
차마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우리 이별과 재회의 약속
산들과 벌판과 내 마음에 차곡히 새겨놓는 하루입니다.
이미 봄을 품은 연둣빛 새순의 버드나무 잔가지 위로
겹겹이 쌓이는 이 눈은 마지막 미련의 몸부림인 걸까
아니면 지금 돌아서면 서로의 이름조차 흐릿해질까봐
가장 눈부시게 하얀 인사로 다가와 내 어깨 감싸 안는
지나쳐 가야 하는 인연을 슬퍼하는 겨울의 끝인사일까요.
봄눈으로 겨울의 지문을 이 계절에 하얗게 새기는 것은
헤어지고 지나간 어느 날 서로의 이름이 지워져버릴까
가장 선명한 흰색으로 기억하고 있었음을 새기고 가는
내가 살아가는 여정에 새겨지는 발자국과도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살며 함께 마주하는 숱한 만남과 이별이
먹먹한 드라마 속 이별 장면과 오늘의 봄눈이 닮았네요.
숱한 사람들과 가는 길이 서로 달라서 손을 흔들지만
헤어져야 할 길에서는 젖은 눈으로 마주 손을 흔들듯
가슴 한구석에 이런 눈송이를 하나 품고 사나 봅니다.
가장 차가운 맑은 진심으로 꾹꾹 눌러 쓴 하얀 글자들
부디 우리 시간을 잊지 말기를 바라는 당부 말입니다.
나도 오늘 내리는 늦은 봄눈에 담긴 서너 문장으로
나지막이 잊었던 당신의 이름에 안부를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