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베란다에는 시체가 뒹굴고 있습니다
최광희 목사
제가 어릴 적에 우리 집 마당에는 감나무가 세 그루 있었습니다. 외딴 집에 살다가 마을 안으로 이사를 왔는데 전에 살던 주인이 심어놓은 감나무가 저절로 우리 차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해마다 5월이면 감나무에 꽃이 핍니다. 그리고 감꽃이 지면서 작은 애기 감이 열리죠. 마당에 떨어진 감꽃은 간식거리가 절대로 부족하던 우리에게 좋은 간식거리였습니다. 감꽃을 주우면 볏짚에 끼워가지고 다니면서 먹었습니다. 감꽃은 약간 떫으면서 단 맛도 났습니다. 어머니는 물에 씻어서 먹으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입으로 흙먼지만 불어버리고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무슨 맛이 있다고 그랬나 싶습니다.
감꽃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면 어린 감이 빠져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감나무에는 감이 너무 많이 열리는데 그게 다 자라면 아마 감이 도토리만해집니다. 그러니까 감나무는 알아서 감을 솎아내고 개수 조절을 했습니다. 처음에 떨어진 감은 먹을 수 없습니다. 어른들은 초복(初伏)이 지나야 감을 먹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초복이 되기만 손꼽아 기다리다가 드디어 감을 주워 간식거리로 삼았습니다. 떫어서 먹을 수 없는 감을 주워서 물에 담가 놓으면 떫은맛이 빠져나가서 먹을 수 있게 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떫은맛을 일으키는 탄닌 성분은 수용성이라 물에 잘 녹습니다.
떫은맛은 없어졌지만 그 어린 감이 무슨 맛이 있겠습니까? 때로 으슥한 곳에 떨어진 감을 미쳐 발견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홍시로 변해 있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홍시 상태를 지나 감식초로 변해있는 것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찜질방에 가면 저는 꼭 감식초 음료를 주문합니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아버지가 감나무에 올라가서 대나무 장대로 감을 땄습니다. 감나무는 잘 부러지는 성질이 있는데 대나무 끝을 V자로 만들어 나뭇가지에 끼우고 비틀면 감이 따집니다. 감나무는 내년에 새로 난 가지에서 열리기 때문에 가지를 부러뜨려서 따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감나무의 잘 부러지는 성질 때문에 자칫 가느다란 나무에 올라갔다가는 나무가 부러져서 추락하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 온 가족은 아버지가 나무에서 내려주는 장대에서 감을 받아 독에 모았습니다. 그렇게 딴 감은 일부는 곶감으로 만들고 일부는 홍시로 만들어 먹었는데 여기서부터 우리에게 자유가 없었습니다. 떨어진 감꽃과 어린 감은 줍는 사람이 임자이지만 가을에 아버지가 딴 감은 애들 몫이 아니었으니까요. 그건 겨울 내내 온 가족이 골고루 나눠 먹어야 하는 귀중한 양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꼭대기에 남겨 놓은 감은 자연 상태에서 홍시가 되어 까치밥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대부분 떫은 감이었고 단감이 귀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다닐 때 학교 길에 단감나무 과수원이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다가 그 과수원에서 한 두 개 슬쩍 해서 먹은 단감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맛입니다. 그 옛날에는 남의 농작물을 따 먹는 것을 애교로 봐주었는데 요즘은 절도죄로 엄하게 취급하지요.
어릴 적에 감을 많이 먹고 자라서 그런지 저는 지금도 감을 좋아합니다. 감은 단감이든 홍시든 곶감이든 다 좋아합니다. 이런 저를 위해 가을이면 아내가 대봉감 한 박스를 사 놓습니다. 대봉감은 한꺼번에 물러지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홍시로 변해서 먹는 속도와 잘 맞습니다. 저에게는 환상적으로 맛있는 그 홍시 감을 우리 가족들은 먹기는 해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게 저에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가족들 눈치 보지 않고 한 개씩 야금야금 먹을 수 있으니까요.
대봉시를 먹을 때 먼저 감꼭지를 당겨서 뽑아냅니다. 그리고 칼로 사등분해서 껍질까지 다 먹습니다. 그 환상적인 맛은 어떤 과자에서도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과일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게다가 요즘 우리나라가 모든 것이 풍성해서 대봉시 한 상자를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으니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감을 한자말로 ‘시(柹)’라고 합니다. 그리고 감의 꼭지를 ‘시체(柹蔕)’라고 합니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시체를 말려두었다가 약으로 달여 먹었다고 합니다. 시체탕 즉 감꼭지 탕은 딸꾹질을 멈추게 하고 기침이나 천식, 만성기관지염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감꼭지는 감 과육에 비해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이 15배 이상, 폴라보노이드와 같은 성분은 2.5배 이상 함유하고 있어 감꼭지 하나를 먹는 것이 감 서 너개를 먹는 효과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 집 베란다에는 이렇게 좋은 약재료인 시체(柹蔕)가 뒹굴고 있습니다. 그 시체는 바로 제가 홍시 감을 먹은 숫자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2017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풍성한 과일, 특히 맛있는 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이 글을 봉헌합니다.
첫댓글 최목사님께서 감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요즈음 매일 홍시를 먹고 있습니다.이웃집에 감나무가 두그루 있는데 하나는 단감나무,하나는 후지라고하는 떫은 감나무입니다.올 해는 많이 열었는데 그 분들은 감을 안 좋아 하신다고 감이 많이 익은 것 부터 따서 주시네요.
우리 집에는 감나무가 없지만 좋은 이웃이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샬롬!
네 선교사님. 감을 거저 먹을 수 있으니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