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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의 본질/김관식
1. 문제제기
현대 서정시는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표현한다. 시인이 생활경험에서 체득한 정서이다. 서정시는 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가사로 출발했다.
그러다가 노래와 가사가 분리되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발전해왔다.
서사시가 객관적인 것이라면 서정시는 주관적인 개인의 정서를 중심으로 음악성을 중시하는 주정적인 시다.
노래가사에서 분리된 서정시가 문자로 정착되면서 음악적인 요소보다는 언어표현적인 요소로 변화하여
정착되었고, 오늘날에 와서는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시로 회회적인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여 언어적
리듬을 형성하는 정형성에서 벗어나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시각화하는 시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인들이 서정시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주관적인 감정토로하거나 시를 도구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슬픔, 기쁨, 고독, 허무, 공포, 분노 등의 기본 정서를 간접적으로 우회하여 표현하기 위해 시적 대상과 동일화하거나 투사하여 주관적인 정서를 객관화하여 보여주게 된다.
그러함에도 많은 시인들이 주관적인 개인의 정서에서 벗어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서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많은 시인들이 서정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시적인 표현 기능이 미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서정시의 본질에 입각하여 순수 서정을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객관적으로 보여주는가의 여부에 초점을 맞추어 발표된 시를 탐색하고자 한다.
2. 서정시의 본질
서정시의 대표적인 특징은 자아의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가 결합하거 충돌함으로써 자아와 세계의 동일화, 세계의 자아화 한다. 이는 인간과 자연, 자아와 세계, 주관과 객관, 주체와 객체 사이 서로 대응하여 상호작용을 통해 시인의 내면적인 세계를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내면 정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서사시나 극시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행동을 통해 사건을 전개해나가지만, 서정시에서는 서정적 자아, 시적 자아, 시적 주체에 혼자말로 화자와 청자를 내세워 묻기도 하고 대답하며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게 된다. 따라서 서정적 자아는 주관성을 고수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서정적 자아의 주관성은 세계를 도외시하고 자아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자아와 대상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서정시의 기본 구조는 자아와 세계의 대응 구조이다. 사람과 사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 속에서 자아의 발견, 자기동일성의 발견을 의미하며, 따라서 시인이 순간의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지만,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상정하여 영원한 현재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20세기 초까지는 정서를 감정과 동일한 것으로 혼용하여 사용했으나 감정은 불안, 분노, 사랑 등으로 사용하고 있어 일정한 범주로 분류하고 통합할 필요성에 제기 되어 오늘날에는 정서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모두 포괄하는 상위 개념으로 감정보다는 구체적이고 육체적인 심리적 작용으로 보고 있다.
서정시는 시인의 주관적인 자기도취로 정서를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주로 관념적인 세계, 추상적인 세계를 장식적인 수사를 동원하여 직접적으로 토로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념이나 추상적인 정신세계를 객관적인 상관물을 통해 독자들에게 형상화하여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와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감상주의적인 감정토로라는 직접적인 정서의 진술은 시인이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언어적인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관념적인 정서를 직접적으로 진술하는 미적 체험 상태로 시적인 형상화가 안된 지극히 주관적인 정서일 뿐이다. 이러한 정서를 시적 대상과 일체화시키는 형상화 작업을 거쳐야 시적인 미감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시각 되지 못한 관념적인 정서를 언어로 진술한다고 하여 시가 되는 것이다. 사물로 변용하고, 구체적으로 시각화시켜 이미지로 제시하여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러한 정서와 동일한 감흥을 일으키도록 환기시켜야 유기체적인 시가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형상화 작업을 완벽하게 거쳐 창작된 서정시는 독자들의 공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좋은 시를 쓰려면 먼저 시인이 정서체험을 미적 체험으로 자기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자아를 시적 대상물과 일체시키기 위해 투사하거나 대상물을 자기 내부로 끌여 들여 동일화하며, 자아의 개체성을 부정하고 집단성으로 가상하여 집단정서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형상화하기도 한다.
이때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진술하지 않고 우회하여 이미지로 제시하며, 그때의 순간 정서를 환기시킬 수 있도록 가장 적합한 언어를 선택하고 배열한다.
언어의 선택과 적절한 배열은 시적인 미감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언어감각을 체득하지 못하고 일상어나 한자 투의 낱말, 관념어, 추상어 등 뜻이 넓은 낱말을 선택하면 시의 느낌을 살려내지 못하게 된다. 관념적인 추상어는 실제적인 구체어로 표현되어야 하고 신체의 감각기관으로 감각화 시켜 묘사할 때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정서체험을 창조적으로 형상화하여 구체적인 사물 이미지로 변용하고 감각적으로 시각화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랑, 행복, 그리움 등 관념적인 정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진사가 사진 속의 피사체의 범위를 넓게 잡는 것과 같다. 너무 많은 배경속의 사물을 한 폭의 사진에 담아 넣으려는 지나친 욕심으로 중심 대상이 배경 속에 묻혀 버리고 마는 이치와 흡사하다. 이러한 관념 상태는 자신 자신의 머릿속에만 그려지는 빽빽한 그림으로 많은 의미를 포함하는 관념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관념의 세계를 구체적인 사물의 세계로 시각화시켜 명징하게 보여주기 위한 작업이 바로 형상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시인들이 정서를 직접 표출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한다. 만약 모처럼 시골에 가서 논밭에서 일을 했던 즐거운 경험을 재현적 이미지로 표현한다고 가정했을 때 실제로 그곳에서 자기가 보았던 소쩍새나 뻐꾸기를 정직하게 등장시켰다면, 이는 역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서정시가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에 기쁘고 들떠 있는 정서를 전달하는데 소쩍새와 뻐꾸기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새들은 슬픈 감정을 전달하기에 좋은 새들이다. 기쁘고 즐거운 느낌을 전달하려면 이의 정서를 환기시킬 수 있는 종달새. 꾀꼬리, 방울새 등으로 바꿔서 등장시켜야 독자에게 생생한 느낌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각기 다른 분위기와 정서를 표현하는데 알맞은 그들 각각의 독특한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에 가장 적합한 사물을 등장시켜야 하는 것이지 실제로 경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은 오히려 그 정서를 반감시키기도 한다. 모든 문학은 허구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삶을 표현한다. 시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험을 원료로 하여 재창조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비록 허구이지만 자기가 느낀 정서를 다른 사람에게 환기시킬 수 있도록 적절한 정서에 알맞은 사물을 배치시켜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서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사물과 경험상황을 유사성과 인접성에 의해 끌어와 배치시키고, 정서전달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언어의 선택하는데 이러한 유사적인 표현을 찾는 방법이 은유에 해당한다.
따라서 동식물이나 무생물의 사물들까지도 인간의 순간적인 정서를 표현하기 적합한 것들이 반드시 존재하고 시어에도 정서적인 느낌을 전달하기에 적합한 낱말이 있기 때문에 시어에 대한 감각을 기르지 않고서는 좋은 시를 쓸 수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서정시의 소재는 대부분 자연 소재의 시들이다. 자연을 노래하는 것으로 영원한 심미의 세계를 찾았으나 오늘날은 자연보다는 실존적인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현대적인 복잡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인간의 가치관이 변화하면 모든 예술은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한다. 시도 예술인만큼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화한다. 오늘날 정신적인 가치 추구보다는 물질주의적 가치 추구가 지배적인 시대 흐름 속에서 현대인들은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따라서 오늘날 서정시는 정서를 통하여 혼탁한 정신세계의 폭력적 경쟁 대응하고, 인간의 품격과 고결한 정신적 성취감을 맛보게 해주어야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명리적인 가치실현을 위해 도구로 이용하는 시인들의 행태는 서정시의 본질에서 벗어난 극히 형이하학적인 속물적인 행태로의 퇴행이라고 할 것이다. “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말은 현 존재의 실존은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사실이며, 본질은 신이나 절대적 존재의 이유라고 볼 때 이상보다는 현실이 앞선다는 의미로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짐으로써 자신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갈 뿐이다. 사람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존재이다.
오늘날 시단에 부는 부조리한 상황은 참다운 시를 쓰며 본질을 추구하는 시인보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적당히 감정토로의 시 아닌 시를 써가며 시인 행세나 시인답지 않는 추태를 보이는 속물적인 거짓시인의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부조리한 상황은 우리 시인들이 스스로 만들 낸 도그마이며, 정신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시인들이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시인들이 말이 많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터리 작품 발표에 급급하고 감투노름과 각종 이해관계의 개입 등 속물적인 행동을 일삼는 비인간적인 세태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오염된 부조리한 실존 상황으로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시사한 바와 같은 본질보다는 실존이 앞선다는 논리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묵묵히 좋은 시를 쓰는 것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참다운 시인이 대접받는 사회가 아름다운 시인의 사회일 것이다.
3. 『자유문학』 2019년 봄 호 계평
이번 호에서는 2019년 일간 신춘문예 당선시를 신인맞이 특집으로 꾸며
한 눈에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좋았다.
신춘문예 당선의 영광은 신년의 선물일 뿐, 시인을 배출한 신문사까지도 이들이 계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애정 어린 관심이 필요함에도 무책임하게 일회용 행사로 끝나고 다른 문예지에서도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의 시단 현실이다. 해마다 수많은 시인이 신년 맞이 전시용으로 화려하게 신문을 장식하고, 등단과 함께 실종되는 사례가 많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자유문학』에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자 일목요연하게 전국의 신문지상을 통해 등단한 시를 실었다.
그리고 제6회 “民調詩學賞 ” 수상자 특집으로 민조시인 徐鄕 시5편, 윤지현의 시4편을 실었고, 80년대 시인 “통일 시선” 특집으로 김순일, 박종해, 이복웅, 이창년, 채희문, 구순희, 김상환, 故김인섭, 백우선, 변재열, 이광석, 이극래, 이준기, 李惠仙 , 임지현, 정무수, 故 김용오, 羅赫採, 金松培, 도한호, 유자효, 오재동 등의 시, 그리고 제10회 “未堂詩脈賞” 수상자 특집으로 심사평과 수상작 「아내의 눈물, 그 餘情의 꽃」 외4편, 이성교의 수상자 작품론을 실어 풍성했다.
이번 호부터서는 연재물에 대해서는 평을 제외하고 나머지 작품에 대해 계평을 하기로 하겠다.
〈시 열 편의 특선〉으로 김석규의 「조춘」 외9편의 시를 게재했다. 「조춘」은 부산의 이른 봄 풍경을 “아까부터 비둘기들 땅따먹기 하고 논다”라고 역동적으로 그려 냈으나 “으스스한”을 “오시시한”으로 느낌을 살린 신조시어를 구사했으며, 「천 년 학이 울다간 하늘에」는 시제를 주관적인 특정한 공간으로 설정하여 가을이 오는 모습을 그려냈고, “한나절”과 “밤이면”의 시간 표현과 “벽오동”, “높은산”, “소나기”, “달빛” 등으로 너무 여러 날과 넓은 범위의 사물과 풍경을 한 폭의 그림으로 무리하게 담아냈다.
「虛 」는 박남수의 「새」에서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이 시에서는 “포수가 겨냥하는 것은 할딱이는 가슴이다./새는 가지 끝에 앉아있다.”라고 방아쇠를 당겨 새들이 날아 가버린 상황을 「虛」로 보고, 깃털 하나가 내려오는 순간을 포착하여 역동적인 이미지로 「虛」의 실체를 시각화시켰으며, 「살충제 이후」는 사회적 이슈가 된 안심 먹거리를 위해 닭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진술했다. 「근황」은 시인으로써 살아가는 노년기의 쓸쓸한 심정을 진술하고 있고, 「익심」은 형상화 과정을 거치지 않는 자신의 생각을 한자 투의 마음을 감추는 것을 뜻하는 관념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어물전 걷어치우고” “꼴뚜기 장사를 한다”로 진술하고 있으나 이미지가 혼란스러웠고, 「하늘아래서」, 「천남성」은 관념적인 마음의 상태를 진술하였다. 「골목 풍경」은 “쪽박달도 체중이 늘었다.” “담장아래 치마끈 풀려 늘어진 능소화”, “바람난 고양이” 등으로 물활론적인 사유와 역동적인 이미지로 시적인 정서를 표현한 수작이었으며,
「어머니의 겨울」은 “울타리 밑에 마른 꽃대궁 앙상히 떨고 있다”로 쓸쓸하고 허무한 이미지로 배경을 설정하고 겨울밤의 정서를 어머니의 삶과 일체화시켜 형상화한 시였다.
최룡관의 「악마의 꿈」은 우주론적인 상상력으로 노아의 방주와 같은 상황을 설정하여 지구별의 모습을 상상한 시이다. 자연을 지배하며 주인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 존재란 대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공룡들이 모두 사라지듯이 시공을 초월한 상상력으로 “태양 대신과 지구 대신 마주 앉아” “지구를 열반시킬 계약서에” 서명한 뒤 “북 구라파 갓난아기 열 쌍이 한날한시에 사라”지고, “계약서 제정된 이튿날부터 초원에 홍수터진다”는 환상적인 상황을 설정하여 지구의 종말이 진행되는 상황을 이야기로 꾸민 환상적인 장시로 “2천 년 후열 쌍의 청소년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동굴 속에서 새로운 설계도를 그린다.”는 스토리로 마지막에 “아아! 꼬리물고들려오는아기들울음소리!”로 끝을 맺는 시이다.
정진석의 「韓國文林 3대 美男詩人」은 신세훈 시인의 인물에 대한 찬양시이며, 「최호림의 「철길」은 “마주 보면서/만날 수 없는/벌을 받았다//그리움의 거리다”라고 철길의 이미지를 화자의 인간관계의 거리와 동일화하여 표현한 단시이며, 「석양」은 서쪽으로 지는 해의 이미지를 감나무의 홍시 한 알로 비유하여 표현했다. 그리고 「눈썹」은 초승달의 이미지를 눈썹으로 비유한 시이고, 「달빛 기타」는 달빛의 이미지를 기타의 탱탱한 줄을 튕기고 달이 지켜보는 상황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빈 산」은 물활론적인 사유로 뻐꾸기와 새들, 바람을 배치시켜 놓았으며, 「내 시는」은 밥과 비유하여 쌀밥, 오곡밥, 꽁보리밥인가 스스로 자문하는 형식을 취하는 등 정서를 간결하게 스키치한 점이 돋보였다.
김지철의 「수레」는 사람의 늙음을 수레와 비유하여 표현한 시이며, 「순간을 비겨가는」은 자연의 변화와 수많은 인연을 스치고 지나친 자기 존재에 대한 소외감을 노래했다. 그리고 「마음의 언어」는 운명을 점치는 장님 앞에서 운세를 듣고, 귀머거리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을 듣고 춤추고, 농인의 손 대화를 보면서 이야기하듯 보고 듣고 말할 수 없어도 마음으로 느낌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마음의 언어에 대한 사유를 펼쳤으며,
「내통」은 숲과 산 강과 바다가 서로 소통하는 기에 대한 진술이며,
「숲떠난 나무」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위주의 생태의식을 비판적인 진술을 담았으나
형상화 작업을 거치지 않아 화자의 주관적인 견해가 산만하게 진술되었다.
류우림의 「4월 벚꽃지다」는 4월에 내라는 비를 맞고 벚꽃이 지는 안타까움을 산문형식으로 그려냈으며, 「‘경복궁 자경전’ 꽃담」은 4월 꽃담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시이다. “아름다운”이라는 관념적인 형용사를 세 번이나 반복하고 “내 삶의 하부”, “불로초”, “지혜” 등의 관념어로 직접적으로 화자의 심정을 토로하는 것보다는 사물과 일체화시키거나 꽃담의 이미지를 형상화하
여 주관적이 정서를 객관화시켜 전달하였다면 더 효과적인 시적인 미감을 획득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앞선다.
진진욱의 「옛 생각」은 비파 하나가 전 재산인 방랑 노인에 대한 추억담이며, 「맥문동」은 맥문동을 보고 깨달은 생각을 불교적 상상력으로 진술한 시이다. “교만”, “욕심없는”, “세월”, “후회”, “표상”, “참회” 등 시어로 사용이 불가한 死語와 “얻었나니”, “심으련다” 등의 고어체 표현으로 형상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감정이입하여 진술한 시였다.
전성재의 「김천 장날」은 김천 장날의 풍경을 자상하게 피상적으로 진술했고, 자신의 소감을 “그런 김천장날이 좋다”, “그립다”로 직접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김천 장날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형상화하여 그렸더라면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투박하고 정겨운 시골장”이라고 김천 장날에 대한 피상적인 수사에 의존하는 표현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경상도 사투리를 대화체로 끌어와 생생하게 김천 장날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任律呂의 「수유하다」는 수유시장의 모습을 스케치한 시이다. 수유시장의 수유라는 낱말을 언어 유희하여 수유하다로 표현하고 있으나 낱말만 피상적으로 언어 유희했을 뿐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수유의 의미를 재대로 살려내지 못했으며, 「외출」은 자연 연상법에 의한 의식의 흐름대로 파리 저층 아파트, 뉴욕 구겐하임 등을 무의식의 흐름으로 화자만 아는 주관적인 상황을 그려내고 있으나 도대체 “1주일 전 동생과 3봉/아제도 2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주관을 객관화하여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구체적으로 시각화하여 진술하여야 할 것이다.
任性照의 「솔」은 소나무의 솔의 접두어를 붙인 “솔뿌리”, “솔부엉이”, “솔바람” 등의 낱말로 소나무의 이미지를 끌어와 자연의 풍광을 진술하고 있으나 “아, 뉘”, “가랴” 등 감탄사와 고어체, “산색얼굴”, “정토” 등 생경한 시어가 시적인 미감을 살려내지 못한 점이 아쉽다.
김진중의 「하느님 아버지께·1」은 “왜 밤만 되면 해를 숨기나요?”하는 동심적인 발상이 참신했으며, 「하느님 아버지께·2」는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하느님께 호소하는 생생한 동심을 잘 표현해냈다. 「하느님 아버지께·3」은 하느님의 위대한 힘에 대해 칭찬하고 “예쁜 제가 감기 걸리면/뭐가 좋은가요?”라고 은근히 자신의 감기를 낳게 해달라는 부탁을 간접화의 표현이 돋보였으며, 「하느님 아버지께·4」는 하느님께 묻고 싶은 질문으로 돈이 많으신 분이신가요?, 그냥 유명한 것뿐인가요?라고 묻고 마지막으로 왜 텔레비전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오늘의 문화세태를 동심으로 표현했으며, 「하느님 아버지께·5」는 하느님께 보낸 편지 내용으로 마술 램프를 요구하고, “하느님 할아버지가 갖고 싶은 건 다 드릴 게요./장난감이랑 제 돈을 빼고요,”라고 이기적인 동심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다. 하느님 할아버지께 자신이 가지고 싶고 의문 난 사항을 넌지시 묻는 동심의 특성을 생생하게 살려 표현한 童民調詩이다.
徐鄕의 「미세가 뭔지」는 미세먼지를 “모질고 사나운 귀신의 하나”를 지칭하는 순수한 우리말 두억시니를 시어로 활용한 점, 「立春」을 “속 타는 에미맘”으로 물활론적인 사유로 간결하게 표현한 재치, 「봄 입술」에서 영춘화를 봄 입술로, 「봄 왔다」를 통해 봄이 오는 기쁨을 민조시의 특성을 살려 간결하게 이미지로 표현해내는 재치와 독특한 발상이 돋보였다.
조영실의 「제비, 제비꽃」은 제비와 제비꽃은 전혀 다른 사물임에도 꽃에 제비라는 낱말과 합성하여 제비꽃이라 했을 뿐인데 봄이 오는 상황을 이질적인 두 사물로 무리하게 일체화시키려했으며, 사물의 외형을 본 생각에 대해 “봄에는 모든 노래가 꽃피는 걸까”라는 무리한 비문의 표현이 시적인 미감을 감소시켰다. 「흉내지빠귀」, 「햇사과」는 사물을 본 주관적인 느낌을 형상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진술했다. 「초대」는 디아스포라의 감정을 노래했으며, 「생일」은 생일날의 소감을 피력한 시였다.
최지영의 「넌 괜찮아」는 화자와 친밀한 관계에 대한 진술이며, 「별꿈」은 “밤하늘 별을 보고 싶어/초저녁 내 눈 앞에 켜진 등불을 끈다.”라는 상황 설정이 너무 작의적이고 상투적이다. 별은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눈앞에 있는 등불을 끈다고 하여 밝다는 논리로 관념적인 별꿈을 시제로 잡았으나 시의 내용과 관련성이 희박한 시제를 잡았으며, 「헛물」 또한 이와 같이 시의 내용과 관련성이 적은 시제로 주관적인 관념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진술이며, 「빠져나오기」는 친구와 싸운 후의 지하철의 환승역을 지나쳐버린 경험을 진술했으나 “여러분!/빠져나오세요/있는 것만 보세요.”라는 모르는 사람이 지하철역에서 말했다고 제3의 인물로 화자에게 명령하는 이중구조의 산만한 짜임을 드러냈으며, 「낮은 자리」는 산과 바다의 높낮이 위치의식을 드러낸 시이나 이미지로 형상화하지 않고 시인의 관념적이고 주관적인 생각만을 진술했다. 시적 대상이 되는 사물을 유사성과 인접성에 의해 유사경험이나 사물로 형상화하여 이미지로 구체화시키는 묘사적인 표현과 신중한 시어의 선택과 배열이 선결되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신현배의 「아줌마·1」은 프랑스 화가 모딜리아니의 그림에 대한 느낌을 어린이 화자를 통해 진술한 동시조이며, 「아줌마·2」는 모나리자 그림을 본 느낌을 동심으로 표현한 화제동시이다. 동시에서 화제시는 어린이들에게 명화들에 대한 감상능력을 신장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의의 있는 작업이라고 본다
김바다의 「빨간 달」은 개기월식을 본 광경을 진술했으며, 「지구야 고마워」는 지구와 대화를 나눈다는 발상으로 시를 전개했으나 진부한 발상과 진술로 일관된 시였다. 「발자국 통장」은 발자국과 통장을 합성어로 휴대폰의 통화내역 기록을 발자국으로 연상했으나 저축이라는 경제적인 낱말과 결합함으로써 시적인 미감을 깨뜨려놓았다. 흔적을 기록하는 의미와 유사성을 갖는 낱말은 일기장일 것이다. 통화내역의 기록은 저축보다는 통화를 함으로써 휴대폰의 요금이 나오게 됨으로 소비의 이미지가 더 적합할 것이다. 「철원 디엠지(DNZ) 트레인」은 시어의 외래어가 거부감을 준다. 남북분단의 상징처럼 남아있는 평화열차를 통해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바램을 진술하고 있고, 「냉면이 먹고 싶어」는 시사성 있는 남북 정상회담 후의 사회의 변화상에 대한 진술을 동시로 썼으나 시사성 있는 소재의 동시는 시적인 미감을 반감시키므로 압축과 상징으로 시사성에서 벗어나는 세심한 형상화 작업이 요구되는 것이다.
김규학의 「우리 집 벽시계」는 고장 난 벽시계에 대한 언어유희다. 시계의 초침 소리를 “지각 지각 지각하면서”로 언어의 유사성에 의해 의성어로 치환하는 재치와 「삶은 달걀」에서 부활절의 달걀에 대한 언어유희 기법을 적용하여 부활절과 병아리의 부화를 말놀이로 재치 있게 표현하였다. 부활과 부화의 두 낱말을 발음과 어감이 유사한 점에 착안하여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4. 나오며
현대 서정시가 희로애락 칠정의 정서를 전달하기 위해 정서경험의 상황을 유사사물이나 인접한 상황을 설정하여 무대 위에 배치하여 그러한 정서를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이미지로 제시하는 작업이 시의 형상화 작업이다. 이러한 형상화 작업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정서나 감정을 토로하는 것은 시적인 미감을 주지 못한 경험의 재현일 뿐이다. 서정시는 시인이 경험한 정서를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와 세계의 대응방식을 통해 자아와 세계의 동일화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려면 간접적으로 우회하여 다른 유사한 사물로 대체하여 시각화하여 보여주게 되는데 이러한 일련 과정이 형상화이다. 생각그물을 작성하여 보다 치밀한 작업을 통해 형상화했을 때 시적인 미감이 증폭되는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형상화 과정을 거치지 않는 정서경험의 재현이나 생각들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시라고 여기고 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감정토로를 하거나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무질서하게 진술한다. 머릿속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이 마치 이미지로 착각하고, 머릿속의 관념 상태의 그림을 설명하려고 하면, 아무리 장황한 미사여구를 구사하더라도 그 정서를 객관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머릿속의 그림을 완전하게 몸 밖으로 완전히 끌어내어 연극의 무대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시인은 무대감독의 입장에서 자신이 표현할 시상을 무대 위에 올려놓는 작업이 형상화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것은 무대 감독의 역할을 포기하고 자신이 직접 연극무대 위로 올라가 배우의 역할을 해버리는 것과 같다. 모든 예술 장르에서 직접 무대 위로 올라가는 장르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나 웅변가들뿐이다. 시인이 연극 감독의 역할만 해야지 자신이 무대 위로 올라가 연극배우의 역할까지 하는 것이 바로 직접적인 감정 토로다.
따라서 절대로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무대 위로 올라가 토로하지 말고 꼭 필요한 정서를 무대 위에 올려야 주관적인 정서가 객관적인 정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시인이 슬픈 정서를 무대 위에 올리려면 장례식 풍경이나 병원에서 등장인물이 죽어가는 장면을 배치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공간적인 배경과 시간적인 배경을 설정하여 슬픈 정서가 잘 드러나도록 예를 들어 비오는 날 밤으로 배치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등장인물, 소도구, 조명, 음향 등을 배치하여 무대를 꾸미듯이 시도 이러한 정서 전달에 가장 적합한 무대 배치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이미지 배치 작업이 바로 형상화 작업에 해당한다. 이렇게 무대 배치가 끝나면 무대 위에 있는 이미지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와 진술로 표현하게 된다. 이때 가장 적합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시어를 선택하고 적절하게 배열하여 한편의 시를 완성한다. 그러나 많은 시인들이 이러한 무대 배경 설치를 무시하고, 자기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일은 마치 취객의 술주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취객은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고 직접 무대 위로 올라가 자기감정을 횡설수설 늘어놓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시를 보는 안목을 기르고, 꾸준히 정서를 이미지로 바꾸고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그럴 때에서야 비로소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된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대시의 원리와 서정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좋은 시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시류에 편승하여 서정시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경구나 잠언이나 교훈적인 메시지를 넣는 것을 시로 오인한다. 그런 결과, 형상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관념어나 미사여구로 자신의 관념상태의 그림을 직접적으로 진술하려고 한다. 특히 많은 동시인들 가운데에는 현대시의 원리 자체를 모르고 동시를 쓰는 시인들이 많다. 이런 시에 대한 기초공부가 안 된 시인들은 서정시의 본질은 물론 시적인 형상화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오직 동심만을 표출하면 시가 되는 줄 안다.
따라서 동심에만 집착한 나머지 문학성이 없는, 그야말로 어린이의 경험을 재생하는 생활시를 창작하게 된다. 이러한 시적인 기초 표현이 안 된 동시들이 어린이들의 정서에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냉철한 자기반성으로 부단한 시창작의 연수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