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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먹인 연실에 내 마음 띄워 보내 저 멀리 외쳐본다. 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 라이너스 연(79년 대학가요제 금상곡)”
군사용도로 탄생한 연
“노반(魯般)과 묵자(墨子)의 솜씨가 교묘하여 나무를 깎아서 매를 만드니 사흘을 날아다니며 내려앉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무로 날아다니는 새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사흘간 내려앉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과장이다.” 노반은 곧 공수반(公輸般)으로, 묵자(B.C 480~390)와 경쟁 관계에 있었던 고대 중국의 대표적인 과학자다. [한비자(韓非子)]에는 묵자가 직접 나무 연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대체로 중국 연의 기원은 약 2,400년 전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나무로 새 모양의 연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서양 연의 기원은 그리스의 장군이자 기술자인 아르키타스(Archytas, B.C 430~365)가 나무로 새 모양을 깎아 공중에 띄우기를 시도한 것에서 비롯된다. 공수반, 묵자, 아르키타스 모두 전쟁 관련 무기 개발자이기도 하다. 송나라 고승(高承)이 펴낸 [사물기원(事物紀原)]에는 연에 관한 다음의 기록이 있다. “한 고조(高祖)가 진희(陳豨)를 공격할 때 한신(韓信, ?〜BC 196)이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연을 만들어 띄워서 미앙궁(未央宮)의 멀고 가까운 거리를 측정한 뒤 땅을 뚫고 궁중으로 들어가자고 하였다. 혹은 양(梁)나라 태청(양 무제의 연호, 547~549)시기에 후경(候景)이란 자가 대성(臺城)을 공격해 포위하자, 양간(羊侃)이 어린아이를 가르쳐 종이 연을 만들게 하여 연에 문서를 매달아 바람에 날려 연락을 취함으로써 구원병을 부를 수 있었다.” 이처럼 연은 처음부터 전쟁에 사용되기 위해서 발명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유신 장군이 날린 연
별똥별이 떨어진 사건은 민심을 동요하게 하였고, 심지어 선덕여왕까지 불안에 떨게 했다. 이때 김유신(595〜673)이 여왕을 뵙고, “길하고 흉한 것은 정한 것이 없으며, 오직 사람이 하기에 따르는 것입니다.”고 말하며 계책을 내었다. 그는 곧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안기고 풍연(風鳶)에 실어 날려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이 하였다. 그리고는 소문을 퍼뜨리기를 어제 저녁에 떨어졌던 별이 간밤에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적군으로 하여금 의혹을 품게 만들었다. 결국 연을 날려 군인들의 사기를 드높여서 비담의 반란군을 패배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연은 군사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
사람을 태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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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즐긴 연날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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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막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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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연의 장점
연의 제작 과정. 전통 공예기술로,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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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장천 1호분에서 연 날리기 그림을 발견한 것은 카페지기 님이 처음인듯. 대단하십시다.
제가 처음 주장한 것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릴 때 연 날리기를 많이 했었어요. 그때가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