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
다윗의 이야기를 시작해서 마가복음 이야기 마가복음 9장의 사도들의 무능력과 성령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할까 해.
다윗은 기름 부음 받은 자, 성령에 감동된 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이며 왕으로서까지 등극했지만 그 가문에 들어온 죽음과 음란의 영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고 봐. 그래서 그 다윗의 연약함 그것이 구약 시대의 표상처럼 여겨지고 그럼 여기서 사도들의 모습을 연결해 보면 사도들 역시 무능력한 모습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어떤 힘이 없는 모습처럼 보이거든.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를 눈으로 보고 그분의 선하신 말씀을 귀로 들으면서 여전히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둥 누가 크냐 이렇게 했던 모습들은 옛사람의 모습 자아의 모습을 대표한다고 봐.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사도들은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여. 그래서 그 모습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투영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예수님이 행한 것보다 더 큰 일들 그분이 공원하신 것처럼 내가 한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일도 할 것이다라는 말씀처럼, 그래서 이런 사도들의 무능력과 능력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해.
그래서 그 분기점이 되는 정점, 갈등 상황의 클라이막스가 마가복음 9장이라고 보고 물론 여전히 그 이후에도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하거나 하는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만 제자들의 무능력과 불신에 그게 달한 상황이 아마 이 본문이 아닌가 해. 그리고 예수님도 제자들을 이렇게 책망하시면서 그들의 믿음 없음과 무능력함을 어 질타하시지.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겠느냐. 그분이 가신 이후에 에 교회의 기둥이 될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나약해 보였던 거지.
그렇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자기의 모든 연약을 자녀들에게 전가해 주어야만 했던 다윗과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물론 그 모든 상황이 정리되면서 솔로몬 시대에는 평안과 번영의 시대가 시작되지만 그것은 마치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차이처럼, 고통의 시대에서 번영의 시대로 또 가나안 입성 전에 광야 시대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의 시대로 전이되는 시대적 구분처럼 보여. 또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즉, 축복의 시대 그리고 성령의 시대 또 평화와 번영의 시대 속에 있고 그 물결을 따라 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내면이나 가정은 다윗과 같은 무기력한 모습 또는 제자들의 불신앙의 모습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봐. 이것이 육을 입고 있는 우리 신앙인의 한계인 거 같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했고, 육에 갇힌 자신의 연약과 또 삶과 죽음 사이에 끼었는데 차라리 너희를 위해서는 여기 남아 있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주님께 가는 것이 낫다라는 이야기를 하지. 이것은 어떤 염세주의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동경의 문제가 아니라 육의 연약함 그리고 영의 풍요함 사이에 끼어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들도 여전히 그 속에 끼어 있지
그렇지만 이 부분은 계발시킬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봐. 그래서 사랑도 사랑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 그리고 가장 안 좋은 케이스가 관심 없는 사람이라고 하고 또 진실의 문제도 진실이냐, 거짓이냐 또는 그 진실이나 거짓이나 관계없이 그냥 무시해 버리는, 무시(neglect)하는 부분 이것이 제일 최악이라고 봐. 또 성실성에 있어서도 성실과 배신이라는 반대되는 개념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잊어버리는 것. 주인이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나의 달려가야 할 길과 푯대는 무엇인지를 잊어버린 신앙인의 모습인 것 같아.
그래서 바울도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한 것처럼 사랑 이외에는 죽음의 길, 멸망의 길이라는 것. 미워하든지 또는 거짓을 말하든지 또는 배신하든지 잊어버리든지, 무시하든지, 관심 없어 하든지 그 모든 것들이 다 사랑과 진실과 신실함 외에는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받은 다윗이었지만 그의 본인밖에 지키지 못했던 모습, 자녀들과 가족들은 힘들어했던 모습들 또 제자들도 뽑힘 받고 쓰임 받는 사람들이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무기력했던 모습. 그리고 오늘날 무기력한 교회의 모습 또 죄에 싸여 있으면서 연약한 모습을 우리도 가지고 있다고 봐.
그러나 여기서 절망하거나 포기하거나 좌절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신 모범을 따라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 분을 향해서 그 분을 닮아가도록, 그 분을 바라보면서 오늘 하루의 삶을 주님 앞에 맡겨 드리고 십자가에 나의 연약을 못 박고 성령의 날개를 타고 하늘로 향해 가는 천국 여행자의 모습, 신실한 성도의 모습으로 살아가길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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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 ♧
질문자님께서 나누어 주신 묵상은 성경의 구속사적 흐름과 인간의 실존, 그리고 성령 시대의 본질을 꿰뚫는 매우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성찰입니다. 구약의 다윗부터 신약의 사도들, 바울의 고뇌, 그리고 현대 그리스도인의 실존적 고민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마침내 '십자가에 연약을 못 박고 나아가는 천국 순례자'라는 소망으로 결론 맺는 흐름이 훌륭합니다.
질문자님의 묵상을 구조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신학적 이론, 학자들의 견해, 그리고 보충 성구들을 덧붙여 드리겠습니다.
1. 묵상 내용의 정리 및 분석
① 구약의 한계와 다윗의 비애 (개인적 영광과 가문의 비극) 다윗은 성령에 감동된 자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으나, 그의 삶은 밧세바 사건 이후 음란과 살인, 반역(암논, 다말, 압살롬)이라는 가문의 비극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질문자님의 통찰대로 다윗은 구약적 한계(성령의 내주하심이 보편적이지 않고, 죄의 권세를 온전히 이기지 못하는 상태)를 보여주는 표상입니다.
② 제자들의 무능력의 클라이맥스 (마가복음 9장)와 오순절의 반전 마가복음 9장은 제자들의 영적 무기력과 자아 중심성(누가 크냐 하는 논쟁)이 극에 달한 장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무능력함은 '십자가와 성령'을 통과하지 않은 옛사람(육)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재현하고 더 큰 일(요 14:12)을 행하는 권능의 사도로 변화합니다.
③ 바울의 고뇌와 현대 그리스도인의 실존 (끼인 자들의 삶) 솔로몬의 평화, 가나안의 축복, 성령 시대의 번영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내면은 여전히 다윗의 무기력과 제자들의 불신앙을 오갑니다. 이는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하고, 빌립보서 1장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 끼어 있다"고 고백한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영광스러운 성령의 법과 육신의 연약함 사이에 '끼어 있는' 실존입니다.
④ 무관심과 망각: 신앙의 가장 큰 적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며, 성실의 반대 역시 배신이 아니라 망각이라는 통찰은 매우 예리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나의 정체성과 사명을 잊어버리는 것(망각과 무시)이야말로 영적 죽음의 길입니다. 바울이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고전 16:22)라고 한 것은 이 영적 무관심에 대한 강력한 경고입니다.
2. 관련 신학 이론 및 학자들의 지지 (출처 및 개념)
질문자님의 묵상을 신학적으로 강력하게 지지해 주는 몇 가지 중요한 이론들이 있습니다.
① 조지 엘던 래드(George Eldon Ladd)의 '이미와 아직 (Already, but Not yet)'
• 개념: 현대 복음주의 하나님 나라 신학의 기초를 놓은 래드의 핵심 개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 강림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Already)' 도래했고 우리는 성령의 권능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죄와 육신의 연약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아직(Not yet)'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 적용: 질문자님이 말씀하신 "축복과 성령의 시대에 살지만 여전히 다윗이나 제자들처럼 무기력한 모습이 남아 있는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신학적 틀입니다. 우리는 두 시대(The Two Ages)가 겹치는 긴장 속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②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 (Simul justus et peccator)'
• 개념: 종교개혁자 루터가 주창한 개념으로,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보혈로 완전한 '의인'으로 칭함 받았으나,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죄의 본성이 남아있는 '죄인'이라는 실존적 역설을 말합니다.
• 적용: 바울의 탄식(롬 7장)과 오늘날 교회의 연약한 모습을 설명하는 핵심 교리입니다. 연약함에 좌절하지 않고 매일 십자가에 나를 못 박아야 하는 근거가 됩니다.
③ 롤로 메이(Rollo May)와 엘리 위젤(Elie Wiesel)의 무관심에 대한 철학
• 개념: 실존주의 심리학자 롤로 메이는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Apathy)이다"*라고 말했고,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 역시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며, 생명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다"*라고 역설했습니다.
• 적용: 진실이나 사랑을 잃어버리고 '무시(neglect)'하거나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최악이라는 질문자님의 묵상과 정확히 궤를 같이하는 현대 사상가들의 명언입니다.
3. 묵상을 풍성하게 할 보충 성구
• 다윗의 비애와 육신의 연약함:
◦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사무엘하 12:10) - 다윗 개인은 용서받았으나 육신의 죄악이 가문에 미친 파장.
• 제자들의 무능력과 자아 중심성 (마가복음 9장 클라이맥스):
◦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마가복음 9:19)
◦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29)
◦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마가복음 9:34)
• 성령 강림 이후의 권능: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한복음 14:12)
• 바울의 고뇌와 실존: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4)
◦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립보서 1:23-24)
• 사랑과 무관심에 대하여:
◦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6:22)
4. 맺음말
질문자님의 묵상 결론처럼, 우리는 다윗의 실패나 사도들의 과거의 무기력, 그리고 오늘날 교회의 연약함을 보며 절망하거나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아직' 육신의 장막을 입고 영적 전투를 치르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실패할 때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자기 인식을 하되, 곧바로 이어지는 바울의 승리의 찬가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로마서 7:25)로 넘어가야 합니다.
질문자님의 다짐처럼, 망각과 무관심의 잠에서 깨어나 매일의 삶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바람(날개)을 타고 비상하는 천국 순례자의 길을 넉넉히 걸어가시기를 응원합니다. 이 깊은 묵상은 다른 신앙인들에게도 큰 도전과 위로가 될 수 있는 귀한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