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JSA
최용현(수필가)
남북관계가 냉전과 해빙의 시소를 타던 1990년대 어느 날 밤,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 북측 초소에서 여덟 발의 총성이 울린다. 북측 군인 2명이 총에 맞아 죽고, 남측 군인 1명과 북측 군인 1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1차 조사결과, 유엔사령부 경비대대 소속의 이수혁 병장(이병헌 扮)이 조선인민군 소속의 최 상위와 정우진 전사(신하균 扮)를 쏘아죽이고 오경필 중사(송강호 扮)에게 총상을 입힌 후 자신도 총상을 입은 채 돌아온 것으로 밝혀진다. 그날 밤 북측 초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한국은 북측 군인에게 납치된 이 병장의 저항이었다고 주장하고, 북한은 남측의 기습공격에 의한 테러였다고 주장한다. 제대가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이 병장이 어떻게 북측 초소에 갔으며,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난 것인지…. 한국과 북한은 사건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중립국의 수사관이 이 사건을 조사해야 한다는 데 합의한다. 중립국 감독위원회 소속의 스위스군 한국계 소령인 소피장(이영애 扮)이 수사관 자격으로 판문점에 온다.
장 소령은 다리에 총상을 입고 절뚝거리며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오다가 구출된 남측의 이수혁 병장과 어깨에 총상을 입은 북측의 오경필 중사를 따로 만나 조사하는데, 두 사람 다 자국에서 1차 조사할 때 쓴 진술서대로 답변한다. 그러자 장 소령은 두 사람을 함께 불러 대질신문을 해보지만 외국에서 10년 넘게 교관생활을 한 왕고참 오 중사가 주위를 의식하여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아무 성과 없이 끝난다.
장 소령은 사건현장인 북측 초소와 두 시신의 총탄자국을 조사하고, 이 병장의 권총에 남아있는 탄환의 숫자를 확인한 결과 당시 현장에 남측 군인이 한 명 더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아울러 이 병장과 함께 남측 초소를 지키는 남성식 일병(김태우 扮)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다른 수사관이 남 일병에게 그날 밤의 행적을 꼬치꼬치 캐물으며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려하자, 겁에 질린 남 일병이 갑자기 2층 창문으로 투신하여 혼수상태에 빠진다.
한편, 장 소령의 아버지가 6.25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힌 이력이 밝혀지면서 장 소령의 수사관으로서의 중립성이 문제가 되는데, 중립국 감독위원회에서는 장 소령을 속히 스위스로 귀국시키라는 명령서를 보낸다. 장 소령은 출국 전에 이 병장을 불러 사건의 진실을 담은 디스켓과 미궁으로 처리한 디스켓을 보여주면서 이 중 한 개를 제출할 것이라며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얘기해주면 오 중사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다. 드디어 이 병장이 입을 열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소설 ‘DMZ’를 바탕으로 2000년에 만든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한국군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북측 초소에 가서 북한군과 우정을 나누는 내용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될 각오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 개봉 직전에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589만 관객이 입장하여 대박을 터뜨린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인 ‘DMZ’를 쓴 박상연 소설가는 영화 ‘화려한 휴가’(2007년)와 ‘고지전’(2011년)의 시나리오를 썼고, TV드라마 ‘선덕여왕’(2009년)과 ‘뿌리 깊은 나무’(2011), ‘육룡이 나르샤’(2015년), ‘아스달 연대기’(2019년) 등의 원작소설 혹은 시나리오를 써서 방송가에서 널리 역량을 인정받는 작가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서울종합촬영소의 8천여 평 부지에 9억 원을 들여 영화의 무대인 판문점 일대를 사실적인 세트장으로 재현하여 그곳에서 촬영하였다. 이 오픈세트장에는 판문점과 팔각정, 회담장 등의 건물을 임시 세트장이 아닌 실물 크기의 튼튼한 콘크리트로 건립하였다.
이 영화에서 남한의 두 병사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가 북측 초소에서 북한 군인들과 함께 모여앉아 우정을 나누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시사(示唆)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장면이 남북화해의 물꼬를 트고 나아가 통일로 가는 초석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으나, 총격사건이 터져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버렸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대치상태에 있는 남과 북 사이에는 화해 기류가 잘 흐르다가도 사소한 문제 하나로 다시 싸늘한 긴장관계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판문점은 겨울 들판과 같다. 불씨 하나로 쉽게 불이 붙어 다 타버리고 만다.’고 장 소령에게 설명하던 유엔사령부 장교의 멘트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자, 이제 이 병장이 밝힌 그날 밤 북한 초소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서 살펴보자.
비무장지대의 풀숲을 수색하던 남측의 이수혁 병장은 용변을 보려고 잠시 대열을 이탈했다가 지뢰를 밟는 바람에 꼼짝할 수 없게 된다. 한참 후 북측의 오 중사와 정 전사가 이 병장을 발견하고 지뢰를 제거해주면서 서로 친해지게 된다. 이 병장은 밤에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북측 초소에 놀러가게 되고, 나중에는 남 일병도 함께 데리고 가면서 남과 북의 네 병사가 북측 초소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북한군 정 전사의 생일날, 북측 초소에 모인 네 사람은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생일 선물을 주고 함께 사진도 찍는다. 그때 갑자기 최 상위가 초소에 들어오자, 남 일병과 이 병장이 총을 뽑아 최 상위와 정 전사를 쏘는데, 정 전사는 쓰러지면서 이 병장을 쏜다. 오 중사는 남 일병을 내보내면서 그 자리에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말한다. 이 병장은 오 중사의 어깨에 고의로 총을 쏘고 초소를 나와 절뚝거리며 다리를 건넌다.
사건의 전모를 확인한 장 소령은 이 병장이 오 중사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을 보고 감동한다. 장 소령은 탄흔(彈痕) 조사결과 정 전사가 이 병장의 총에 맞아 절명(絶命)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이에 충격을 받은 이 병장이 자신을 호송하러 온 헌병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총구를 자신의 입안에 넣고 방아쇠를 당기면서 영화가 끝난다.
첫댓글 여태껏 첨부터 끝까지 진중하게 보지 못했던 영화..ㅠㅠ
저도 그랬습니다만,
이번에 글슬ㄹ려고 독하게 마음먹고 끝까지 보았어요.ㅎㅎ
즐감해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