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心悳 언니!
하늘은 높고 달빛은 맑아 찬바람이
나무잎을 날이니 옛 사람 생각이 소사 오롬니다.
나는 당신더러 농담 삼아 언니라고 불넜읍니다. 그럼으로 오늘
이 글에도 당신을 언니라고 불느랴고 합니다. 「언니」를 물느지 않고
그대로 세상을 떠나갔으니 이의는 없으실 줄 압니다. 남자가 여자보고
「언니」라는 말이 몹시, 동에 닷지 않고 더욱히 나가 어린 당신
나 많은 내가 「언니」라 부르는 게 당치도 않은 소리
같었으나 어쨋든 당신과 나 사히에는.
「언니」 「동생」 으로 극히 자연스럽게
지내왔으니 무엇이 「언니」안일 바가 있겠읍니까.
언니 나는 언니가 동경서 도라와 연극을 하신다고 할 때는
신문 기자로써 언니와 자조 맛났고 언니가 土月會에 출연할 때는
土月會 동인의 한 사람으로 또한 자조 맛났으며 언니가 마즈막 「日東」
레코 - 드에 취입을 갈 때는 문예부의 한 사람으로 같이 일을 봣는지라,
언니의 쩔분 반 생 중에 가장 파란 맡은 京城 생활에는 거의 다
내가 거림같이 따라 다녔든 것입니다!
언니!
언니는 日東 레코 - 드에 취입할 곡목을 나와
정할 때 언니는 꿈에도 「死의 讚美」를 취입하자는
말슴은 하신 일이 없었지요. 시침을 딱 떼고 大阪까지 건너가서
急作히 조선말을 모르는 본사 문예 부원을 속이고 슬그머니 「死의 讚美」를
취입하섰지요. 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얼마 있다가 언니가 취입하신 레코 - 드의
試聽盤이 나왔을 때 비로소 우리는 「死의 讚美」를 듯고 다시 한 번 우렀었읍니다.
역시 게획적으로 情死를 한 게로구나. 「東京을 떠날 제부터 情死할 프란은 있었구나」
이같은 이약이가 있읍니다. 이 「死의 讚美」를 듯고 운 사람은 나 하나뿐이
<87> 아니었읍니다. 李基世씨도 울고 그 부인도 우시고 나도 울고
우리의 크릅의 한 사람이든 張英涥씨도 우렀읍니다.
언니!
지금 생각해도 눈에 선 - 합니다.
授恩町 奧田 사진관 3층 일실에 金우鎭군과
공허한 세상사리를 꾸미고 지내며 가끔 남창을 열고 두 분이
나란히 앉어 길거리를 내다보든 형용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아마 지금은 천국의 창을 열고 두 분이 나란히 苦海를
나려다 보고 게실지도 모르지요.
언니!
土月會 무대에서 「東道」의
주인공 노릇하든 생각을 하십니가.
거즛 사당에 속아서 신명에게 용납되지 못할
가짜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모른다는 죄악의 씨를 밴
주인공 그는 마츰내 세상에서 쫏긴 몸이 되야 流氷이 목슴을
깨저가는 大河도 뛰어나아가든 「안나」의 비운을 언니는 자기의
그것이나 다름없이 무대에서 우지 않으었읍니가.
언니는 너모 세상을 단순히 보섰읍니다.
여학교를 갓 맛치고 세상에 나슨 선모슴 같은 아가씨!
세상은 언니의 행동에 흥미는 가지고 보왔을망정 귀엽게 보든
않었읍니다. 뿐만 아니라. 「밋치괭이」 「난봉패」 라는 악평을
던젔스며 여성을 존경할 줄 모르는 자, 돈만 가지면 무슨 일이든지 뜻대로
할 줄 아는 자에게 맛츰내 순정은 짓발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上野 음악 학교를 관비로 졸업한 언니로 금의환향을 하자
여학교 선생이 된 언니, 그 언니를
노리는 검은 그림자.
언니!
언니에게는 임의 죽음까지
갓치 하랴는 애인 金우鎭군이 동경에 있거니
무엇이 부족해서 또, 제 2의 애인을 구하랴, 하섰겠읍니가.
언니! 나는 언니의 이 제2의 애인의 쓰라린 사건을 잘 알고 있읍니다.
언니는 「꿈」을 가젔섰읍니다. 음악 학원을 세우고 많은 才操軍을 모화
음악 조선의 기세를 올너 보자는 큰 포부! 언니는 검은 칠판 그늘에 제복의
처녀들을 대하야 도레미파... 를 가르킬 녹녹한 여자는 아니었읍니다.
요컨대 사무적 정적 인물이 아니라 정치적, 동적 인물이었읍니다.
그럼으로 언제든지 압날에 큰 목표를<88> 세고
「빛나는 꿈」을 품고 있든 것입니다.
언니!
언니는 이 꿈을 실현하기에 너모 급하섰소.
그래서 언니는 세상에 익숙지 못한 발길노 「파토돈」을
찾어 다니든 것이었소. 꽃피는 절문 음악가 더욱 즐겨서 화려한
몸치장을 하고 다니는 언니를 대하는 세상의 자본가들은 언니의 품은
이상보다도 그 이상을 품고있는 언니의 홋홋한 가슴을 더 慾求했섰든 것이었소.
학교를 뛰어나온 언니의 인생은 둑 터진 보물 같기도 했었소. 黃金町에
살님을 차렸으나 마음에 없는 새 살님이 언니를 만족케 하였겠소.
털 외투도 떨드려 보왔으나... 그것이 과연 언니의 상처받은
가슴을 달냈겠으릿가. 견듸다 못하야 언니는
할빈으로 뛰어가섰지요.
언니!
교단에서 뛰어난 시대의 아가씨가
「칵렡」과 「짜쓰」로 세월을 보내는 「할빈」의
등불 밑에서 얼마나 부지를 할 수 있섰겠소. 마시어도 마시어도
술은 취하지 않고 우서도 우서도 안 슲은 인생은 깃불 길이 없으니
언니는 이 때에 반다시 「死」를 직면했섰을 것이요. 그럼으로 언니가
玄海의 德壽丸에서 愛* 金우鎭군과 情死를 한 것은 두 번째 기회라고
볼 수가 있었소. 죽으랴 했으나 金우鎭군을 맛나보지 못하고는
차마 죽으랴야 죽을 수도 없었든 것이 아니었을가요.
언니!
언니는 무었보다도 때를 잘못 맛나섰읍넨다.
요사히 같으면 다홍 양장을 하든, 단발을 하든, 정갱이를
내 놓고 다니든 만성이 된 세상은 거들떠보지는 않으렸만 그 때만
해도 한 옛날이라. 뒤축 높은 구쓰만 신고 다녀도 말성 거리가 되였지요.
그럴 판에 울굿 불긋이 채리고 왈가닥 달가닥 도라다녔으니 언니의
소문이 어떻게 좋게 났으릿가. 여기에 언니는 세상에
마음 없는 무리들 사히에 한 구경거리가
되고 만 것이 안일가요.
언니!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언니가 가장
불행한 시기에 태어났음을 몹시 원통히 생각합니다.
속은 부였어도 천근의 무게가 있는 체 뒤구녁으로는 별별
주책없는 짓을 할지라도 겉으로는 많은 도사리고 다녀야 할 숙녀의 틈에서
언니만 흔자 보긴 그대로 뛰고 노랐으니 위장을 일삼는 사회에서 어찌 용납이
될 수가 있었으리까. 마음먹은 바와 세상의 일과 너모나 사히가 먼 줄을
께다랐을 대 만사는 다 - 그릇된 뒤이니 얼마나<89>
아까운 일이며 얼마나 원통하섰으릿가.
언니!
언니가 「死의 讚美」를 울면서 취입하였다는
말을 나종 드렀읍니다. 세상에 슲은 노래를 취입한
가수는 하고 만켓으나 장차 죽기를 작정하고 「死의 讚美」
를 불러 레코 - 드에 취입해 논 이는 아마 이 세계에 언니가 처음이실
것입니다. 죽기를 작정하고 부른 노래 「나 죽으면 고만이라」 고 부른
구절 같은 데는 울며 부른 느낌이 듯는 이의 가슴을 울니는 이 레코 - 드를
나는 지금도 가지고 있읍니다. 오늘밤에도 이 원고를 쓰기 위해서
일부러 한 곡을 걸고서 둥클한 가슴을 주여 짜듯아
집필을 하는 것입니다.
언니!
언니가 경성역을 떠나가실 때
나는 역두에서 나 「선물은 넥타이가 소원이요」
언니 「넥타이는 어렵지 안치만 오다가 죽으면 못 가저오지」
나 「죽으랴거든 이리 사서 붙이고 죽어요」 언니 「그야 어렵지 안치」
이 같은 농담이었지 않었어요. 나종에 알고 보니 이 말슴에도 결의의
일단이 암시되였섰구료. 그나 그 뿐입니까. 말슴대로 넥타이는
사서 붙이고 세상을 떠나시었지요.
언니가 金우鎭군과 玄海에 투신 情死를
했다는 비보를 드른 지 2, 3일 후에 비로소 언니가
大阪서 사서 붙인 넥타이가 도착해서 日東 조선 문예원 일동은
두 번 거듭 눈물을 지었읍니다. 명랑하고 다감하든 언니 언니가 세상을
떠가신 지 벌서 10년이 너멋것만 언니의 이약이는 아즉도 세상에
끈이지를 않읍니다. 부대 천국에서나 몸조심해서 두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