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억 전설적인 '스트라디바리우스' 제작자 사후에야 가치를 인정받은
바이올린
현존하는 바이올린 중 가장 비싼 것은 전설적 바이올린 제작자 스트라디바리(1644~1737)가 1716년 만든 '메시아'<사진>로 224억원이라고 합니다. 최근 발레리 트루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나이테연구소 교수는 1999년 메시아가 진품 논란에 휩싸였다가 2016년 나이테를 이용해 누명을 벗고 진품으로 확인된 일화를 책을 통해 들려주기도 했어요. 바이올린은 어떤 역사를 가졌기에 이렇게 진위 논란까지 벌어지는 것일까요?
바이올린의 시조는 1400년대 사용된 '피들'과 '레벡'이라는 현악기예요. 바이올린은 줄이 4개인데, 피들은 줄이 5개 이상, 레벡은 2~3개였어요. 하지만 바이올린과 연주법이 달랐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 악기들은 바이올린과 달리 브리지(현을 받쳐 올려주는 장치)가 없거나 브리지 윗부분이 평평하기 때문이에요. 같은 시기 바이올린과 비슷하게 활로 연주하는 비올(viol)이 있었어요. 비올은 15세기 후반까지 기악 합주의 중심이었어요. 그런데 십자군 전쟁으로 지중해 무역이 활발해지고 14~15세기 르네상스(문화·예술 부흥운동)가 전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그전까지 기악 합주는 왕족들이 살던 궁정에서 주로 이뤄졌는데, 이제 시민들도 극장 등에서 즐길 수 있게 된 거예요. 많은 시민을 대상으로 넓은 장소에서 공연을 하려다 보니 음량이 작은 비올은 적합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런 환경에 맞게 현악기가 점점 개량됐고 16세기 말~17세기 초에 지금 바이올린 모습과 비슷한 악기가 됐다고 합니다.
바이올린은 17세기 들어 혼자 연주하는 솔로 악기로 발전했어요. 이때부터 바이올린 제조 명가들도 등장했죠. 당시 이탈리아의 브레시아와 크레모나라는 두 브랜드가 인정받고 있었어요. 그중 크레모나 바이올린을 만들던 아마티 가문의 기술을 전수받은 제자 중 한 명이 바로 전설적인 바이올린 제작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입니다. 그가 만든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불려요.
하지만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스트라디바리 생전엔 지금만큼 걸작으로 인정받진 못했어요. 18세기 후반 바이올린으로 화려한 기교를 부리도록 음악 사조가 바뀌었고, 명연주자들이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이 화려한 기교를 연주할 때 편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 점점 가치가 올라가 지금에 이르렀어요. 스트라디바리우스엔 에피소드도 많아요.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로만 토텐버그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잃어버리고 필립 존슨이라는 젊은 음악가를 의심했지만 물증이 없어 포기했어요. 하지만 필립 존슨이 죽으면서 자기가 훔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아내에게 유품으로 남겼고 아내가 바이올린 감정을 의뢰했다가 미 연방수사국(FBI)에 덜미를 잡혔어요. 하지만 이미 토텐버그는 사망해 바이올린은 그의 딸들에게 돌아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