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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론 10
마태복음 4:18-25
어부를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심으로 본격적으로 십자가를 향해 가신다. 그리고 곧장 성령께 이끌려 그리스도로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심으로 하나님 왕국이 임하여 세상을 자신의 나라로 다스리는 사탄을 결박함으로 앞으로 지실 십자가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다. 이런 점에서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17절)라고 말씀한다. 예수님의 천국 선포는 구약에서 예언된 말씀의 성취로 하신 선포이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 2:44)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을 때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을 가르쳐주면서 전한 것이 2장의 말씀이고 그 후 벨사살 왕의 꿈을 해석하면서 전한 것이 7장 말씀이다. 이 두 예언에서 확실한 것은 망하지 않는 영원한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전한 계시는 “손대지 아니한 돌”(단 2:34, 45)이 나라를 멸망시킨다는 것이었고, 벨사살 왕에게 전한 계시는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나라를 멸망시킨다는 것이었다. 즉 땅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사람의 손에 의해서가 아닌 하늘의 인자가 오셔서 영원하며 멸망하지 않는 나라를 세우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천국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이 선포를 문자적으로만 이해하여 회개하면 천국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회개하라”라는 표현은 단순히 죄를 뉘우치고 돌아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죽은 자에게 찾아오심을 의미하는 말씀이다(눅 15:7, 10, 24, 32).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인간이 회개하여 천국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은 찾아오시는 것임을 어부를 부르시는 것을 통해 보여주신다.
왜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야 하는가? 그것을 보여주신 말씀이 바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15-16절)라는 말씀이다. 즉 모든 인간은 흑암 가운데 있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 중에 왜 어부들을 부르셨는가? 본문을 보면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18절)라고 말씀하여 “어부”를 부르셨음을 강조한다. 예레미야 선지서에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15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그 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과 모든 언덕과 바위 틈에서 사냥하게 하리니 17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살펴보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기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숨겨지지 못함이라 18 내가 우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 그들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 그들의 가증한 것으로 내 기업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렘 16:14-18)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할 것이나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언약에 의한 심판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기를 원하셨다. 그것을 “어부를 불러 그들을 낚게 하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낚는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디그’는 ‘물고기를 잡다’라는 뜻이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내가 많은 어부를 보내서, 이 백성을 고기 잡듯 잡아내겠다”라고 번역하였다. 아무튼 예레미야 선지자는 “어부”(히, ‘다우와그’)라는 단어를 심판의 상징적 언어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13장에서 천국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세상은 천국의 그물이 쳐진 상태라고 말씀하셨다.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마 13:47-50)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왕국이 임하였기에 세상은 이미 천국이라는 그물이 내려진 상태라는 것이다. 모두가 다 그물에 걸린 상태이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 중에서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부르셨다는 것은 바로 십자가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임하였음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래서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라는 말씀을 통해 심판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즉 어부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상징 언어로 사용하고자 어부들을 부르셨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라는 표현에서 헬라어 ‘페리파테오’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거니시는”(창 3:8)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할라크’의 역어로 자기 백성들과 함께 교제하며 동행하시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찾아오셔서 심판을 통해 함께 하시겠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19-20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는 말씀에서 “낚는”이라는 표현을 넣어서 의역을 하였기에 낚시로 사람을 낚는다는 의미를 연상하게 되는데 직역하면 ‘사람의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그림 언어로 심판을 보여주신다. “따르니라”라는 말의 ‘아콜루데오’라는 말도 ‘함께 가다, 동반하다, 동행하다, 뒤 따르다’라는 뜻이다.
흔히 이 본문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부르시니 그들이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으니 우리도 이런 순종으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 말씀을 그런 의미가 아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베드로를 부르신 일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권위에 굴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안드레 역시 요한복음 1:35-42에 보면 어부였으나 세례자 요한을 좇는 제자였으며 요한의 소개로 예수님을 만나 알게 된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은 앞에 “말씀하시되”를 강조하고 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이르시되”(히, ‘아마르’)라고 표현된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인간이 무조건 순종한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으로 있게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말씀이 시몬과 안드레가 따르게 하신 것이다. 계속 말씀의 교제, 예수 그리스도와의 동행 가운데서 말씀에 의해 이끌려 나오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21-22절). 예수님은 “세배데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부르셨는데 그들이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라고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 12:1)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이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왔을 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19:21)라고 하시니 청년을 예수님을 떠났다. 그때 베드로가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19:27)라고 물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8-29)
“세상이 새롭게 되어”라는 말씀의 헬라어 ‘팔링게네시아’는 ‘중생, 거듭나다, 새롭게 되다’라는 뜻으로 디도서 3:5에서는 “중생”으로 번역하였다. 즉 세상과 세상의 것을 버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누리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환언하자면 하늘의 영생을 주어졌기에 땅의 것을 버리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늘 왕국의 임함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일이 어떤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 23절 이하이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23-24절). “천국 복음”이란 이미 앞의 강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천국이 복음이고 그 복음은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심으로 회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참고 막 1:15).
그래서 마태는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하여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과 선포하시는 것,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는 것을 동일시하여 표현하였다. “약한 것”이란 인간의 나약함, 죄인의 한계를 지칭한다.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것, 귀신 들린 것 등은 죄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죄의 증상들이다. 즉 죄가 없다면 나타날 수 없는 현상들이다.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이 사망의 상태이다(롬 5:12, 6:23). 그래서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이란 스스로 예수님께 찾아 나올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곧 죽은 자들이다.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을 살리시는 것이 천국 복음이다.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6-17)
천국은 이렇게 저주 가운데 죽은 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은혜가 베풀어지는 하나님 왕국이다. 이 은혜의 복음은 자신이 이방인이요 소외된 자요 흑암에 앉은 자임을 고백하는 자에게 빛은 비추인다. 아니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찾아오셨기 때문에 내가 이방인이요 소외된 자이며 흑암에 앉은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서 살아났기에 말씀이 들리는 상태가 된 것이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4-25)
(20240306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