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_2026 ● 4월 19일
<전도서 6장> “해 아래서 사는 인생의 폐단”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폐단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 이름이 어두움에 덮이니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이가 저보다 평안함이라.....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전6:1-12)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12:1)
『전도서는 다섯 편의 설교로 이루어져 있는데, 6장부터는 세 번째 설교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번째 설교에서도 전도자는 ‘해 아래서’ 살아가는 인생들의 수고의 허망함과 모순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해 아래 살아가는 인생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또 한 가지 폐단을 보았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폐단이란 말은 원래 ‘악한 일’, 또는 ‘질병’이라는 뜻으로서, 어떤 일의 결과가 무의미하며 통탄스럽기만 한 것을 말합니다(5:13도 마찬가지).
전도자는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재물이나 명예나 많은 자녀들, 그리고 세상적인 지혜와 같은 것들을 귀중히 여기며 추구하지만, 그것들이 결코 영원한 것도 아니며 인간에게 참된 안식과 만족을 줄 수 없음에 대해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일생에 많은 수고를 해서 재물과 부유함, 그리고 존귀를 얻었다고 할지라도 정작 자신은 그것을 다 누리지 못하고 죽으며 그 열매는 다른 사람들이 누리게 되는 것이 인생의 모습이니, 그것이 폐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전도자는 그처럼 해 아래서 수고하고 애쓰며 살다가 영원한 만족과 낙을 누리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 인생이라면 차라리 낙태된 아이가 그들보다 더 낫지 않겠느냐고 반문을 합니다.
이어서 전도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가 아닌 인본주의적인 지혜의 허무함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인간의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얻고자 힘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본주의적 지혜들은 궁극적으로 무엇이 인생에게 참된 낙이 되는지, 또 사람의 사후에 무슨 일이 있는지에 대해서 답변할 수가 없기에 그런 지혜를 구하거나 쌓는 노력은 헛된 것을 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 설교에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일생동안 분주하게 살아가지만 결국은 허무함 가운데 끝나는 것이 ‘해 아래서 살아가는 인생’의 실상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처럼 ‘해 아래서’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헛된 것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인간들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돌아가 참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음을 역설하고자 한 것입니다.』
● 오늘의 기도 ● “하나님을 떠나서 행하는 모든 것들이 헛되고 헛됨을 깨닫고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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