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대한민국정부 지정 태극기 * 현재의 태극기는? 태극기의 제작법을 통일할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1949년 1월「국 기시정위원회」 (國旗是正委員會)를 구성하여 그 해 10월 15일에 오늘날의「국기제작법」을 확정ㆍ발표하였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가운데의 태극 문양은 음(陰 : 파랑)과 양 (陽 : 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한미연합군은 9월 27일 수도탈환작전을 성공시키고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한다.
1950년 학도병 무력남침하므로써 한반도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된지 불과 5년만에 동포끼리 전쟁을 해야만 하는 비극을 남겼다. 이때 3차 학도병을 지원한 병사들이 부산주둔 육군부대에서 김일성 정권을 기필코 응징하고 조국의 통일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치겠다는 맹세의 글귀를 태극기에 빽빽하게 남겼다.
1950년 김구 친필 태극기이다.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과 인력과 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광복을 완성하자"라는 글귀를 썼는데 이 말을 어디에서나 한국인을 만나는데로 전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1945년 광복군 대한민국이 해방되었다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지역에서 활동을 했던 광복군들은 함성을 높이 외치며 그동안 항일운동의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던 태극기 위에다 서명하거나 글귀를 남겼다. 희열, 희노애락의 모든것을 단편적으로 나마 느낄수 있다.
1923년 임시정부 상하이 임시정부가 보관하던 태극기
1920년 독립진군기
1920년대 독립군이 시용하던 독립진군기로써 독립군들은 이 태극기를 앞세우며 우렁찬 나팔을 불면서 피나는 훈련을 받았다. 자주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1919년 한인자유대회(미) 3월 1일 독립운동 소식을 듣고 필라델피아 독립관에서 "한인자유대회"를 열고 하루속히 일본을 한국땅에서 몰아내자는 독립결의 시위를 벌렸다.
1919년 평양숭실학교
1919년 3월 1일 정오에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시간을 맞추어 평양의 숭실학교 학생 김건은 동료 학생들과 이 태극기를 만들어 학교 게양대에 높이 게양하므로써 독립선언문이 낭독되고 있음을 알렸다.
1919년 3.1운동 목판
1919년 3월 1일 항일운동 시위 때 대량으로 태극기를 나누어주기 위해 만든 목판
1906년 고광순 의병장 1906년 전라남도 구례일대에서 활약한 고광순 의병장이 일본군과 싸울때 사용한 태극기이다 글자를 이 태극기에 써 넣었다. 1900∼1905년 박기준 박기준이 소장하고 있던 태극기이다. 박기준은 고종황제 광무 9년에 통정대부(정삼품) 벼슬을 지낸 종로구 홍지동 박영인의 조부이다. 정사각형 80㎝
1900년 항일 독립운동 1900년 무렵의 태극기로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이를 단호히 저항하면서 굳건히 항일운동을 펴자는 글을 태극기 양쪽에 새겨진 항일독립운동태극기. 일본은 이 태극기를 빼앗아갔다가 1967년에 반환하였다.
1900년 파리박람회 1900년 프랑스에서 열렸던 파리박람회장 한국관에 게양되었던 태극기 모습이다. 파리박람회특파대사는 민영환의 동생 민영찬이었다.
1898년 독립신문 제호 최초의 의사였던 서재필 박사에 의해 1898년 7월 1일부터 발간된 독립신문 제호에 실린 태극기 의 모습. 제호 태극기는 발행될 때마다 그 모양이 달랐는데 아마도 태극기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886-1890년 O.M.Denny 고종 황제가 조선정부의 외교고문으로 일하던 미국인 데니(O.M.Denny) 에게 하사한 태극기로 우리나라보관 가장 오래된 실물 태극기이다.
1884년 스미드소니언박물관(미) 실물크기(53×36cm) 중 가장 오래된 국기로써 현재 미국의 국립박물관(스미드소니언)이 소장하고 있다.
1882년 태극기_시사신보(일) 태극기의 도안, 재질, 도형의 설명, 그리는 방법까지도 직접 언급하고 지시하였고,
1874년 고려국기_통상약장유찬(청) '통상조약장정성안휘편' 이라는 책 표지에 그려진 태극문양으로 1991년 해군사관학교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조선시대 태극문양과 괘의 도형
1392년 고려말 범종의 태극기
공양왕 때 제작된 것으로써 일본 신나천현 소전 원시 최의현군을 통해 일본인 임모씨가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1365년 노국공주의 정릉과 고려 공민왕릉의 태극 노국공주의 정릉과 개성에 소재한 고려 공민왕릉
1328년 회암사지 석계 고형석의 태극
회암사지 석계 고형석에 우리전통 ‘회돌이 태극’이 정교하고 생동하는 형체로 양각되어 잘 보존 되고 있다.
신문왕(신라 31대)때 태극기 모음-2
(1) 애국가의 예절과 악보
(2)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 작사자 미상의 우리나라 국가인 애국가의 가사는 윤치호.안창호.민영환 등이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어느 것도 공인되지 않았고, 곡은 1936년에 만들어져 1948년 8윌 15일 정부수립과 함께 대한민국 국가로 불리게 되었다. 안익태 (安益泰)<1906.12.5∼1965.9.16> 작곡가·지휘자. 평양(平壤) 출생. (3) 애국가의 역사
애국가(愛國歌)는 말 그대로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 를 뜻한다. 1 절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동
...............................................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 ............................록하느님이 보우 ..................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 ...........궁화삼천리화려강산대한 .........사람대한으로 길이보전 ....하세남산위에저소나무철 ......갑을두른듯바람서리불 ..........변함은 우리기상 .........일세 무궁화삼 ........천리화려강산대 ...한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 가을하늘공활 ...........한데높고구름없이밝은 ...............달은 우리가슴 일편 .................심일세 무궁화 삼천 ** ^ ................리 화려강산 대한 사 ................람대한으로 길*이보전 ................하세이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 .............나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무궁화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대한으로* 길이 .............로 길이 보전 하*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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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愛國歌)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노래말과 곡조가 붙여져 나타난 것은 조선 말 개화기 이후부터이다. 1896년 '독립신문' 창간을 계기로 여러 가지의 애국가 가사가 신문에 게재되기 시작했는데, 이 노래들을 어떤 곡조로 불렀는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서구식 군악대를 조직해 1902년 '대한제국 애국가'라는 이름의 국가를 만들어 나라의 주요 행사에 사용했다는 기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오늘날 불리고 있는 애국가의 노래말은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던 1907년을 전후하여 조국애와 충성심 그리고 자주 의식을 북돋우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여러 선각자의 손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내용을 담게 되었는데, 이 노래말에 붙여진 곡조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었다.
해외에서 활동중이던 안익태(安益泰)는 애국가에 남의 나라 곡을 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935년에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애국가를 작곡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 곡을 애국가로 채택해 사용했으나 이는 해외에서만 퍼져 나갔을 뿐, 국내에서는 광복 이후 정부 수립 무렵까지 여전히 스코틀랜드 민요에 맞춰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재의 노래말과 함께 안익태가 작곡한 곡조의 애국가가 정부의 공식 행사에 사용되고 각급 학교의 교과서에도 실리면서 전국적으로 애창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해외에서도 이 애국가가 널리 전파되어 실질적인 국가(國歌)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 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우리 겨레와 운명을 같이해 온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우리는 선조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새롭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애국가 제창 및 연주 애국가를 부를 때에는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애국가의 곡조에 다른 가사를 붙여 부르거나 곡조를 변경하여 불러서는 안된다. 주요 행사 등에서 애국가를 제창하는 경우에는 애국심과 국민적 단결심을 고취하는 의미에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4절까지 제창하여야 한다. 애국가는 모두 함께 부르는 경우에는 전주곡을 연주하지만, 약식 절차로 국민의례를 행할 때 국기에 대한 경례시 연주되는 애국가와 같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연주만 하는 의전행사(외국에서 하는 경우 포함)나 시상식·공연 등에서는 전주곡을 연주해서는 안된다.
애국가가 연주될 때에는 일어서서 경청하는 것이 예의이다.
태극기의 유래
흰 바탕의 깃 위에 태극 문양을 가운데에 두고 검은색의 건·곤·감·리 4괘가 네 귀에 둘러싸고 있다.
박영효가 처음 사용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박영효 이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도 쓰였으며, 이미 군주를 상징하는 어기로서 “태극팔괘도”가 규장각에 있었다. 국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조선책략》에 “조선이 독립국이면 국기를 가져야 한다”라는 글과 함께 4개의 발을 가진 용 모양을 제시해 놓은 데에서 비롯된다.
고종이 임금을 뜻하는 붉은 바탕에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과 백성을 뜻하는 흰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그려넣게 하여 군민일체를 나타내려 하였으나
[1] 일본의 국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김홍집은 “반홍반청의 태극 무늬로 하고 그 둘레에 조선 8도를 뜻하는 팔괘를 그리면 일본 국기와 구분이 될 것”이라 하여 이후, 1883년 3월 6일 (고종 20년) ‘조선국기’가 국기로 제정되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져 태극기의 제작, 게양, 취급의 지침이 되고 있다. 2007년 1월 대한민국국기법이 제정되어 국기의 게양·관리법이 나왔고
태극기의 설명 태극기는 《주역》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나와 있는 태극→양의(兩儀)→사상(四象)→팔괘(八卦)라는 우주 생성론을 나타내는 태극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조선의 태극팔괘도는 복희 선천 팔괘(伏羲先天八卦)가 아닌 문왕 후천 팔괘(文王後天八卦)이다. 원이 나타나는 태극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을 의미하며 도교에서는 태소(太素), 탄드라밀지에서는 카르마무드라라고 하며 사고의 개입이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위를 의미하는 무아전위(無我全爲)의 우주일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징한다. 원 안의 모양은 음양 양의를 나타나고 4괘는 팔괘(八卦)를 대표하는 사정괘(四正卦)를 나타내는 것과 동시에 그 하효(下爻)와 중효(中爻)로 태양(太陽)·소음(少陰)·소양(少陽)·태음(太陰)이라는 사상(四象)도 나타낸다.
네 괘가 지닌 뜻
사괘는 본래 팔괘 중에서 넷을 선택한 것인데, 팔괘는 중국에서 삼황으로 떠받들고 있는 태호 복희가 만든 것이다. 그는 동이족이라고 사마천의 《사기》에서 서술되고 있으며, 그가 팔괘를 처음 만든 사람이라고 밝힌 것은 《주역》 계사전이 최초이다. 다만 조선에 복희 선천 팔괘가 아닌 그것을 고쳐서 만든 문왕 후천 팔괘를 따르는 까닭은 복희가 팔괘를 만든 까닭이 우주 생성 원리를 설명하려 함인 반면 문왕은 우주 생성 원리를 인간의 치세 원리에 반영 (“선천 변위 후천도”에서 이르는 〈“자연조화의 체”를 “인사의 용”에 적용〉한다는 사상) 하려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종래 주장에서는 팔괘에서 “넷을 제하여” 만들었다고 하였으나, 근래에는 “선천 변위 후천도”에서 선천 팔괘와 후천 팔괘의 관계를 밝히어 팔괘 가운데 “넷을 선택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게양하는 날
국경일과 그밖의 지정하는 날에 게양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의 청사, 학교, 공항·호텔 등의 국제적인 교류 장소 등에는 연중 국기를 게양하도록 되어 있다
국기의 게양하고 내리는 시간
국기는 24 시간 게양할 수 있으며, 야간 게양시에는 적절한 조명을 해야 한다.
국기를 낮에만 게양하는 경우, 다음 시간에 따른다.
07:00 18:00 07:00 17:00
태극기의 제작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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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샘물래기 원문보기 글쓴이: 소쿠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