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어디선가 언급하는 것을 마음에 챙겨두었다 내 것으로 만들고도 한 참. ..
독서가 이리저리 지지부진해 진 한 여름에 읽기에 적합하겠다고 생각하고 고쳐잡기는 하였으나 휴가의 뒤끝과 함께
곧 닥쳐 온 추석명절의 바쁜 마음으로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딘 속도감으로. . . 이제서야. . .
이 책이 발표된 것이 1993년이고 당시 아주 젊은 작가로서 카롤린 봉그랑은 촉망받는 신예작가였음이 분명하다. . .
책표지의 저자소개를 넘어 궁금해져 검색을 해보았지만 그녀는 젊은 날 이후로는 뚜렷한 작품을 내어놓지 않아서인지
별다른 근황이 포착되지 않아 더욱 궁금함만이 남는(아마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감성이라면 뭔가. . . .). . .
93년도에 발표된 이 책은 말 그대로 시대적 감성을 듬뿍 안고서 동시대의 젊은 이들의 자유와 사랑을 사유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제는 아스라히 먼 이야기로만 기억되는 아날로그 감성이 아주 짙고 풍부하게 깔려있어 읽는 내내
이런 방식을 삶을 우리가 살았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드는. . .
아울러 책을 좋아하고 소유하고자 하고 저자들과 공감대를 만들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우리며
적극적인 독서를 하는 나에게도 주로 연필로 밑줄을 긋는 것은 물론
같은 생각에 대해서, 아님 그(저자)와는 다른 생각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 게다가 간혹 책을 펼친 동안 혼자만이 느낀 잔상을
간단하게 메모하거나 순간순간의 느낌을 기록하는 것 까지. . . .그래서겠지만. . .
내가 가진 책들은 헌책방에 내어 놓을 수 없다. . . . .너무 많은 것들이 내재되어 있어 나의 깊은 부분을 다 보여줄 수 있다는
위험성에서. . . . 그것도 아니면 지저분해서 내 책은 아주 헐값에 폐지용이 아니고서는 값어치가 없기에. . .
만약, 세상과 마지막을 고하게 될 때는 이것들은 다 정리대상이 될 것이다. . . 나와 별다르지 않는 방법으로. . .
어찌되었던. . . .
누군가 책에 밑줄을 긋는다. . . . 그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 .그어본 사람들은 알기만. . .
이게 꼭 내마음같다거나. . . .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이라거나. . .완전 새로운 정보라거나. . . .등등 . .해서인 것이다. . .
그렇게 그는 밑줄을 그어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이고 보이다 자신의 연락처와 이름까지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적어넣는다.
그리고 그것이 발각되어 그는 회원자격을 박탈당하고 그 책들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잃게되는. . . . 십 수년전에 일이다. .
그런데 이십대중반의 미혼이며 약간의 글을 쓰고 대부분 할일을 잃은 채 놀고 먹으며 자유를 사랑하는 나는
한 작가(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에 몰입해 그의 책을 모두 읽고 모으고 그에 관한 것이라면 다 알고 싶어하는. . .
그러니까 독서편식증에 빠진 여자다. . . .
어느날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넘기다 누군가가 밑줄을 그어놓을 것을 발견하게 되고
마치 그 시그널이 자신에게 보내어지는 것 같은. . . .아니 같아지기 시작해 밑줄을 따라 가게 된다. . . 그가 보내는 신호에 따라
책을 빌려오고. . . 그러다 보니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밑줄을 친 문장과 그 의미를 해독해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지지부진해 지고. . . . .그러다 용기를 내어 밑줄을 친 사람 또는 그와 관련 있을 것 같은 이에게
과감하게 편지를 보내보기도 하는. . . .
그렇게 나타나기를 기다리는데 지쳐가는 중 자신이 밑줄을 그은 남자라는 이로부터 전화를 받게되고
그를 만나지만 왠지 알 수없는 어색함에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만남이 정리되나 했는데
그는 자신이 그녀가 찾는 그 남자가 아님을 고백하고 그러나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 그리고 그녀가 밑줄긋는 남자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진심을 보이면서 그들의 관계는 또 다른 장으로 넘어가게 된다. .
그리고 서로는 그, 그러니까 밑줄긋는 남자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는. . . .뭐. . .그런 얘기다. .
읽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프랑스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과 만나게 되는 기쁨이 있었고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작품 중 자기 앞의 생이나 츠바이크의 체스이야기, 낮선 여인의 편지(한국의 작가 김연수가 번역한 책으로 아주 멋진 책이다) 등의 단편은 이미 읽고 이전에 독후까지 올린 상태라 반갑고 기쁜 마음이 충만한 했다. . .
아울러 새로이 알게 된 책들을 검새하고 주문하는 독후 작업도 진행했다. .
아쉬운 것은 까롤린의 작품은 국내 발행된 책이 모두 품절이라 알라딘의 중고서적에서나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 . .
그리고 니미에 같은 작가의 책은 그나마 찾아볼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 . .
한 권의 책이 한 개인, 또는 책을 읽는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난 것이다. . .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 이미 읽었던 책들을 다시 소환해 오는 것을 넘어 프랑스근현대작가들의 계보를. .
알아가게 되는 이 마술같은 일이 이어지는 이 현상을 . . . . 독서의 경이로움이란. .. .
부침으로 역자 이세욱이 번역한 책들을 알고보니 좀 읽은 듯 한데. . . .이 책은 약 30년 전의 번역이어서 인지
읽다보면 '엉. . 이게 뭐지?' 하는 생뚱맞은 단어들이 아주 고답스럽게 자리하고 있다는. . .
역자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책읽기'와 '꿈꾸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 작가를 사랑하다는 것과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오로지 그의 책들만을 가지고 있다는. . . .p7
누군가가 뭔가를 말하려하고 있었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밑줄에 담긴 메세지가 나를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최선을 다해 해독하려고 노력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무시해 버릴 것인가.. . .p32
다른 건 몰라도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동감이었다. 환상적이라고 하기까지는 뭣하지만, 괴상한 것임엔 틀림없었다.
분명히, 나는 한 남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건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 . p37
언뜻 보기에 어리석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라도 그것이 마음 속에 너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면,
마침내 그것을 현실적인 일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더욱이 그런 생각이 강렬한 욕망과 결부되어 있을 때는, 그것을 결국 숙명적이고 불가피하고 미리 정해진 것,
존재하지 않을 수 없고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마도 욕망 이사의 어떤 것, 즉 몇몇 예감의 결함, 비상한 의지력, 상상 때문에 생긴
자기 도취 따위도 한 몫을 할 것이다. . . p44
하지만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긴 했다.
밑줄 긋는 남자의 모든 메시지는 나 아닌 다른 여자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p49
둘이 사는 삶에 행복한 게 있다면 그건 메아리가 있다는 것이리라.
메아리를 찾아 산으로 가는 게 하나의 해결책이 될수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 .
두 개의 고독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은 너무 비장하다. . .p50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 주고 웃겨주고 껴안아 주는 일이었다.
사랑이 없으면 난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사랑을 통해 스스로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햐. . .p51
맑은 시선과 솔직한 태도. . . . p60
존재하지 않는 것일수록 더 크게만 느껴지고 온 공간을 차지하는 법이다. . .p65
그가 가고나면 설겆이는 내 몫이었고 그렇게 접시들을 더럽혀 설겆이 거리를 남기고 가는 그가 은근히 원망스러워졌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법이다. . .p72
모든 것이 최선의 세계에서 최선의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 p83
[여자의 학교]를 읽고 나서 나는 이성을 되찾았다. 고통스럽지만 건전한 독서였다(결혼을 앞둔 처녀들은 모름지기 그 책을 일독해야 하리라). . .. . . 사랑하는 일이 다른 뭔가를 가져다 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사랑의 고전적인 오류는 거기에서 싹트는 것이다.
사랑은 지속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사랑은 한 줄기 바람일 뿐이다. . . p85
사람들은 용케 마음의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어떤 삶의 방식을 놓고 자신과 타협하고,
그것의 나쁜 면을 인정하되 좋은 면만을 보려고 애쓰면서, 아침마다 스스로를 달랜다.
다시 그것이 허사가 되면서 마음의 곡예는 계속된다. . .p95
자신이 모르는 어떤 사람을 잊기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 . . . . . .서점 안에는 뭐든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 탐탁치 않기로서니, 그게 무슨 상관이랴. 서점에 가면 다른 삶들이 지전으로 널려 있지 않은가. . . .p96
솔직히 말해서 나는 혼자몸으로 자족하며 살지는 못할 것 같아요. 말하자면 불완전한 사람이지요.
그래서 나를 채우고 완전하게 하기 위해, 진정으로 살기 위해, 나는 다른 사람을 원해요.
내가 전혀 할 줄 모르는 것을 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흔히 하는 말로 나를 사랑해 줄 어떤 사람이 내겐 필요해요. . .p99
밑줄 긋는 남자가 밑줄을 그은 진짜 이유가 무엇니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감동적인 글, 아름다운 글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거창한 말일수록 실속은 없는 법이다. . .p109
두 개의 고독을 합친다고 해서 하나의 행복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 . . .
사내란 모름지기 처음엔 차갑고 신비스럽게 보여야 미더운 느낌을 주는 법이다. 처음부터 꿀 같고 캐러멜 같아서는 안된다. . . .p120~121
우리가 서로를 잃었다는 것, 아니 우리가 서로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 그 사실을 말 해주는 것이겠지요. . . p126
그때의 내 느낌은 도저히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나는 듣고 보고 있었지만 아무런 번뇌도 아무런 슬픔도 느끼지 않았고 단지 묘한 공허감을 느꼈을 뿐이다. . . . p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