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대비 상처 봉합술 -4 (실전 봉합술)
여러분이 코난족(한국형 프레퍼)이라면 상처 봉합술을 왜 익혀야 하는지 바로 앞 글(3편)에서 이해하셨을 것이라 믿고, 이제 더 이상 필요성을 강조하지는 않겠습니다.
봉합재의 비교
임상에서 의료인들은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과 재료 및 도구를 사용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전통적 수단인 실과 바늘로 꿰매는 것(봉합, suture)입니다.
<위의 사진에서 우측 끝의 사진은 모 한의원에서 글러브도 끼지 않고 시술하는 장면인데,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요즈음 의료계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문구용 스테이플러 비슷하게 생긴 의료용 스테이플러로 봉합하기도 합니다만, 실과 바늘로 꿰매는 것에 비해 넓은 부위를 더 빠르게 봉합할 수 있다는 점 이외에는 별로 이점이 없으며, 최근 논문에 따르면 상처의 감염빈도 등에서 실로 봉합하는 경우에 비해 약간 불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적용할 수 있는 부위가 두피나 복부 같이 피부층이 두껍고 움직임이 많지 않은 부위에 한정될 수 밖에 없으므로, 봉합사와 봉합침을 이용해 꿰매는 전통적인 방법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우측 끝 사진이 의료용 스테이플러로 봉합하는 장면입니다. 술자의 손과 크기를 비교해보세요.>
작업 중에 흔히 베이거나 찢기는 부상을 입어서 꿰매야 할 부위는 손가락 끝, 손가락 마디, 무릎, 얼굴, 팔꿈치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 폭 1cm에 두께 1~ 1.5mm 정도 되는 스테이플러 침이 박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움직일 때마다 아프고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스테이플 침은 전용 리무버가 없으면 제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리하게 다른 도구로 억지로 제거하려면 한 땀 한 땀이 모두 통증을 유발하기 십상이고, 자칫하면 겨우 아물고 있는 상처를 다시 터지게 할 수도 있지요. 상처가 아문 후의 흉터도 작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손가락 마디와 같이 움직임이 많은 부위의 상처>
의료용 스테이플러는 부피가 작지 않으며 가격도 싸지는 않습니다. 보통 의료용 스테이플러 하나에 침 35개가 들어 있는데 가격은 2~3만원 정도이며, 전체가 일회용입니다. 즉 스테이플 침 한 개를 썼건 두 개를 썼건 나머지는 다시 멸균포장 할 수단이 없다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스테이플 리무버는 대략 1만원쯤 합니다만, 이건 1회용은 아닙니다.
<왼쪽이 의료용 스테이플러, 오른쪽이 전용 리무버>
한편 봉합사는 그렇지 않지요. 한 박스에 24개 팩이 개별포장으로 들어 있는데, 박스 당 싼 것은 대략 3만5천원쯤 하니, 한 팩(바늘+실)당 1,500원 정도 하는 것이지요. 얼마나 조밀하게 봉합하느냐와 술자의 스킬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50cm 봉합사 1 팩으로 대략 10 바늘(stitch) 이상 꿰맬 수 있으며, 필요한 만큼만 꺼내 쓰고 나머지 팩은 장기 보관이 가능합니다.
<봉합사>
결론은, 찢어진 상처에 폼나게 '파파박~' 호치키스 박을 생각하지 말고, 실과 바늘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꿰맬 수 있도록 기본적 상처 봉합술을 익히시라는 겁니다. 하지만 “나는 평생 실과 바늘로 바느질은커녕 단추 하나 달아본 적이 없으니, 호치키스가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의료용 스테이플러 몇 개와 리무버를 구비하십시오.
일반인 프레퍼가 알아야 할 상처 봉합법
서두가 길었습니다만,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상처를 봉합하는 방법에 대해 논하겠습니다. 사실, 임상에서 의료인들은 상처의 종류와 부위 및 크기에 따라 아래 그림과 같이 아주 다양한 봉합법을 씁니다. 하지만 의대생들도 몇 가지 기본적 봉합법만 익혀서 졸업한 후 특정 진료과를 전공할 때 비로소 특성에 맞는 봉합법을 따로 숙달하게 되니, 일반인 프레퍼들이 모든 봉합법을 익힐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의료인이 알아야 할 다양한 상처 봉합법>
하지만, 이 중에서 일반인 프레퍼가 익혀야 할 봉합법은 아래 그림과 같은 '단순 단속적 봉합법 (Simple interrupted suture)' 한 가지면 충분하며, 누구나 쉽게 배우고 쉽게 익혀 널리 쓸 수 있습니다.
<프레퍼가 알아야 할 '단순 단속적 봉합법 (Simple interrupted suture)'>
이 봉합법은 연속적 봉합법(continuous suture)과는 달리, 한 군데가 끊어지거나 매듭이 풀어져도 다른 곳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감염이 일어나도 봉합사를 따라 번져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 상처 치유에 실패할 확률이 작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꼼꼼히 매번 매듭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상처부위가 클 때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봉합사 매듭 짓기
일전에 우리 카페의 회원분의 "상처 봉합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는 요청에 또 다른 회원분이 "매듭은 어쩔 거냐. 쓸 데 없는 궁리 말고 반창고와 약솜이나 많이 준비해놔라"하는 댓글을 다신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무엇이든 배울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뭐든 배우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고백하자면 저는 그 댓글에 열받아 이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상처 봉합에서 쓰는 매듭법은 풀리지 않도록 묶는 매듭법으로서, Surgeon's knot(외과의사의 매듭법)이라고 부릅니다. 산악 등반용 자일의 매듭법은 대개 쉽게 풀 수 있도록 묶는 매듭법인 반면에 낚시줄을 묶는 매듭법은 풀리지 않도록 묶는다는 점에서 낚시줄 매듭법의 친척이라고나 할까요...
아래 사진과 같은 매듭을 지으면 됩니다. 참 쉽죠!
오른쪽으로 두 번 꼬아 조이고, 왼쪽으로 한 번 꼬아 묶으면, 이게 바로 그 잘난 매듭(Surgeon's knot)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왼쪽은 제가 파라코드로 만든 매듭을 사진 찍은 것이고, 오른쪽 그림은 인터넷 상에서 찾은 모식도입니다. 오른쪽 모식도는 '기본 knot'이고, 왼편은 매듭이 풀리는 확률을 줄이기 위해 숙련된 외과의들이 흔히 한 두번 더 묶어주는 방식입니다.
<Surgeon's knot>
이 매듭은 아래 그림과 같이 두 손만으로 묶을 수도 있고, 도구(니들홀더, Needle holder)를 이용해서 묶을 수도 있습니다만, 손으로 묶는 방법은 의과대학에 다닐 때나 잠깐 소개받을 뿐, 임상에서는 거의 대부분 도구를 이용한 결찰법을 씁니다.
니들 홀더를 이용해서 Surgeon's not로 매듭 짓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이 매듭법을 위에 있던 붉은색 테두리의 그림 같은 'Simple interrupted suture'에 적용하면, 재난 시에 다쳐서 고통받는 내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상처 감염으로 죽을 목숨을 살려줄 수도 있는 겁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 가기까지, 죽을 수도 있는 누군가의 목숨을 살려준다...
멋지고 보람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음 편에서는 비상시에 이런 봉합술을 실제로 할 수 있는 의료기구와 봉합사 등의 재료에 대해 연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