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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진주(晉州) 운석 이야기
운석(隕石)이 진주에 반복해서 떨어지는 현상은 우연일까?
2014년3월9일오후8시경, 진주(晉州)로 떨어진 운석이 '진주(眞珠) 보석' 되어
한동안 온 국민들의 이목을 홀렸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진주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되었구요
요즘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아서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를 뒤지다가 우연히 성종실록 편에서,
시대는 달라도 내고향 진주에 있었던 역사기록을 발견하고
그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서 여기 저기 자료를 보내기도 했었죠
지금으로부터 525년전에 경상도 관찰사가 성종(成宗) 임금에게
“진주에 떨어진 운석 처리 문제”를 놓고 여쭈어 보는 내용인데
그 답변인 즉, 돌도끼 보다 못한 한갓 동멩이를 창덕궁으로 올려 보낼까봐 귀찮은 듯이...
오늘에서 바라 본 성종 임금은 돌을 돌같이 제대로 보긴 하였지만, 격세지감이라 재밌네요.
운석을 발견한 사람이 강모 씨라, 역시 진주 강씨(姜氏) 본관인 진주에서는 돌 던지면 십중팔구는
강씨 머리에 맞는다고 하는데... 이 또한 사실로 입증된 셈이죠. . . ㅎ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265권, 성종 23년 5월 16일 을유 4번째기사 1492년 명 홍치(弘治) 5년]
경상도 관찰사 이극돈이 진주에 떨어진 운석에 관해 치계하다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이극돈(李克墩)이 치계(馳啓)하기를, "지난 4월 초1일에 벼락이 치고 큰 비가 내릴 적에 진주(晉州)에 운석(隕石)이 떨어져 1척(尺)이나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정병(正兵) 강계손(姜繼孫)이 땅을 파고 찾아내니, 빛깔은 뇌설(雷稧)403) 과 같고 모양은 복령(茯苓)404) 과 같았는데, 손톱으로 긁으니, 손톱에 따라 가로가 떨어졌습니다."하였는데,
하서(下書)하기를, "뇌부(雷斧)405) 에 비할 것이 아니니, 올려 보내지 말라."하였다.
• [註 403] 뇌설(雷稧) : 대뿌리에서 나는 버섯 종류의 한 가지. 겉은 검고 속은 희며, 모양은 밤 모양과 비슷함.
• [註 404] 복령(茯苓) :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버섯 종류. 겉은 흑갈색으로 주름이 많고, 공 모양 또는 길둥근
모양의 큰 덩이로 되어 있음.
• [註 405] 뇌부(雷斧) : 석기시대(石器時代)의 유물인 돌도끼.
원문 ○慶尙道觀察使李克墩馳啓曰: "去四月初一日, 雷雨有石, 隕于晋州, 陷入地一尺, 正兵姜繼孫掘地得之, 色如雷禊, 狀如茯苓, 以爪刮之, 隨爪落屑。" 下書曰: "非雷斧之比, 其勿上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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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종실록 22권, 세종 5년 10월 1일 무신 2번째기사 / 황해도 강음현 운석에 해괴제를 행하다. 황해도 강음현(江陰縣)에 운석(隕石)이 있었는데,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하므로, 관원을 보내어 해괴제(解怪祭)을 행하였다. 운석(隕石) 운성(隕星)과 같음.
2. 성종실록 265권, 성종 23년 5월 16일 을유 4번째기사 / 경상도 관찰사 이극돈이 진주에 떨어진 운석에 관해 치계하다.“(隕石)이 떨어져 1척(尺)이나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정병(正兵) 강계손(姜繼孫)이 땅을 파고 찾아내니, 빛깔은 뇌설(雷稧)과 같고 모양은 복령(茯苓)과 같았는데, 손톱으로 긁으니, 손톱에 따라 가로가 떨어졌습니다."
뇌설(雷稧) 대뿌리에서 나는 버섯 종류의 한 가지. 겉은 검고 속은 희며, 모양은 밤 모양과 비슷함. 복령(茯苓)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버섯 종류. 겉은...
3. 연산군일기 3권, 연산 1년 2월 21일 을해 2번째기사 / 충청도 영춘현에 유성 같은 것이 떨어져 조사하게 하다. 돌이 되었는데, 지금 이 물건을 보니, 진실로 운석(隕石)의 유는 아니옵고, 생각건대, 주운 자가 괴탄(怪誕)한 말로 떠벌린 것일 것입니다. 결코 상서로운 물건은 아니나, 재이(災異)에 관계되는 것은 아니니, 쪼개어 봄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명하여 쪼개 보게 하였는데, 쪼개 보니 여러 겹으로 거죽이 싸이고, 그 안에 상실(橡實) 같은 물건이 있어, 빛이 검고 구린내가 풍겼다.
4. 중종실록 7권, 중종 3년 11월 27일 신유 1번째기사 / 복의에게 ‘종친이 각자 마음먹는다’ 함의 출처를 캐니 동청례에게 들었다 하다. 중국으로 간 자만을 말했을 뿐이니, 그가 수금(囚禁)당한 월일과 사연을 아울러 심문하여 아뢰라." 원정(原情) 사정을 진정(陳情)함. 하였다. 복의가 공초하기를, "날짜를 기억할 수는 없으나, 을축년에 지평(持平)으로 있을 때 백악산(白岳山)운석(隕石)의 일을 말하다가 수금되어, 무릇 14개월 만에 정국하는 날 석방되었습니다." 운석(隕石) 유성이 지상에 떨어진 것. 하였다.
5. 중종실록 25권, 중종 11년 7월 29일 무신 4번째기사 / 재변을 당하여 예악을 명시하고, 형벌을 엄히 할 것을 아뢰는 대사간 김굉 등의 상소 운석(隕石)·대흉(大凶), 구욕(鸜鵒)이 와서 둥우리를 지은 일 따위까지 놀랍고 괴상한 모든 재이(災異)를 특서(特書)하여 후세의 임금이 경계할 참된 자료로 삼았고, 또 《한서(漢書)》·《송사(宋史)》·《고려사(高麗史)》의 오행지(五行志)를 상고하건대, 계화(鷄禍)·양화(羊禍)·우화(牛禍)가 있고 적생(赤眚)·흑생(黑眚)·백생(白眚)과 하늘에서 털[毛]이 내리고 피[血]가 내리고 흙이...
6. 중종실록 76권, 중종 28년 10월 7일 병자 4번째기사 / 유성과 비성이 사방에서 비오듯 하다 되었으며 흰 빛깔이었다. 유성이 삼성(參星) 아래에서 나와 구유성(九遊星) 자리로 사라졌다. 모양은 분과 같고 꼬리의 길이는 4∼5척쯤 되었으며 붉은 빛깔이었는데, 그 광적이 한참 동안 없어지지 않다가 변해서 구름이 되었다. 유성과 비성(飛星)이 사방에 비오듯 했으며, 나왔다가 사라지는 길을 다 측후(測候)할 수 없었다. 운석(隕石)도 비처럼 쏟아졌고 번개가 쳤다.
7. 명종실록 29권, 명종 18년 2월 18일 정묘 3번째기사 / 경상도 산음현 북리에 운석이 떨어지다隕石)이 떨어진 것은 예사롭지 않은 재변이다. 고서를 상고해 보면, 노 희공(魯僖公) 16년에 송(宋)에 운석이 떨어졌고, 한 원제(漢元帝) 건소(建昭) 원년에 양원(梁園)에 운석이 떨어졌으니, 역대로 운석이 떨어진 변고가 많이 있었다. 비록 무슨 일에 대한 보응이라고 정확히 지적할 수는 없으나, 혹은 정사(政事)가 해이하고 쇠퇴하던 날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국가가 쇠잔하고...
8. 효종실록 19권, 효종 8년 9월 5일 갑진 3번째기사 / 주강에서 찬선 송준길이 임금이 삼가하여 재변을 그치게 하도록 아뢰다[隕石]」라고 하고 진(震)자를 반드시 백이의 사당이란 글자 위에다 쓴 것은, 그것을 인사(人事)의 잘못으로 돌린 것이다.’고 했습니다. 대체로 재변이 생기는 것은 인사로 말미암지마는 이미 생긴 뒤에 그 재변을 그치게 하는 도리 또한 인사에 달려 있습니다. ‘만일 인사를 닦으면 재변은 재앙이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역시 정자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신의 어리석은...
9. 효종실록 20권, 효종 9년 10월 20일 계미 1번째기사 / 이조 참판 송준길을 인견하여 시사에 대해 의논하다.(隕石)’이란 것이 있는데 정자가 해석하기를 ‘마땅히 돌이 떨어졌다[石隕]고 써야 하는데 돌을 떨어지게 하였다[隕石]라고 쓴 것은 재이를 인사(人事)에 결부시켰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노유(老儒)가 보통 하는 이야기이지만 지극한 이치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양호(兩湖)의 연해에 흉년이 가장 심하게 들었다 하는데 영남도...
10. 현종실록 20권, 현종 13년 2월 9일 을유 1번째기사 / 영천군에 운석이 떨어지다(隕石)이 떨어졌다. 정월 29일 오시에 하늘에 얇은 구름이 끼어 햇빛이 보이지 않더니 갑자기 하늘에서 소리가 났는데 처음에는 대포소리 같다가 나중에는 우레소리 같았다. 서북방에서 시작하여 서남쪽으로 가더니, 얼마 뒤에 그쳤다. 본군의 촌 백성들이 그때 마침 본군의 남쪽에 있는 자인현(慈仁縣) 경계에서 돌덩어리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소리가 우레와...
진주에서 발견된 운석
2014년, ‘진주 운석’ 열풍이 뜨거웠다. 당시 네 개의 운석이 발견됐는데 마지막에 발견된 20kg짜리는 한반도에 떨어진 운석 기록 중 가장 큰 것이었다. 운석 값이 수억 원에 달한다며 ‘로또 운석’이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이제 차분하게 과학적인 질문에 답해 보자. 진주 운석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걸까.
진주 운석 사건의 전모
2014년 3월 9일 오후 8시가 조금 지난 시각, 한반도 상공에 밝은 유성이 출현했다. 전국 각지에서 커다란 불덩어리가 하늘을 가로질러 떨어지는 것이 목격됐다. 이튿날 경남 진주의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이상한 돌이 발견됐다. 약 10kg 무게의 이 돌은 표면이 검었고, 비닐 천장을 뚫고 들어온 것이 틀림없었다. 진주에서는 연이어 검은 돌들이 발견됐다.
두 번째로 발견한 돌은 약 4kg이었으며, 세 번째는 420g, 그리고 네 번째는 20kg으로 가장 컸다. 극지연구소와 서울대 운석연구실의 조사로 모두 운석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943년 전라남도에서 두원운석이 발견된 지 71년 만에 한반도에서 운석이 다시 발견된 것이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필자가 있는 연세대 탐사천문학연구실은 진주 유성에 대한 수십 개의 제보영상들을 함께 분석하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운석 발견. 1943년 전남에서 두원운석이 발견된 지 71년 만에 한반도에서 운석이 다시 발견되었다. <출처: 연합뉴스>
운석 : 태양계 타임캡슐 진주 운석은 운석 중에서도 분화되지 않은 시원운석으로 밝혀졌다. 운석은 분화운석과 미분화운석(시원운석)으로 나뉜다. 규모가 큰 소행성은 높은 압력과 밀도로 내부가 완전히 녹게 되고 무거운 철질 원소가 가라앉아 중심부에 핵을 만든다. 그리고 마치 지구의 축소판처럼 가벼운 원소가 맨틀과 지각을 만든다. 이러한 소행성이 충돌을 일으켜 작은 조각들로 나누어지면 철질운석을 포함한 분화운석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시원운석은 이처럼 중력에 의한 분화현상을 겪지 않은 운석을 가리킨다. 대개 작은 소행성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시원운석이 되는데 태양계 행성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 진주운석은 초기 태양계의 비밀을 담고 있는 타임캡슐인 셈이다.
그날 밤 유성은 정말 하나였나
당시의 유성현상은 수도권뿐 아니라 강원, 충청, 호남, 영남 모든 곳에서 관측됐다. 처음에는 ‘유성우’라는 표현이 나왔다. 그래서 진주에서 발견된 돌이 운석으로 판명되었을 때, 유성을 목격한 장소마다 운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오해가 생겨났다. 실제로 전국 각지에서 운석으로 의심되는 암석에 대한 신고가 잇달았다. 그러나 운석은 오직 진주에만 떨어졌을 뿐이다.
밝은 유성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은 그 유성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흔히 일어나는 착각이다. 보름달이 뜨거나 질 때도, 바로 앞산이나 뒷산 곁에서 올라오고 내려가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유성체 현상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전문적인 영상관측장비나 유성레이더가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천문학자조차 유성이 정말 하나였는지 아니면 여러 개가 동시에 떨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촬영된 위치와 방향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일부 블랙박스 영상에 대해 3차원 분석을 하자 마자, 유성 현상은 하나였으며 한반도 상공에서 유성체의 궤적이 진주지역을 향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유성이 하나였다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당시 유성의 출현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과학장비가 있었다. 2013년~2014년 겨울 연세대 탐사천문학연구실이 국내 몇 군데에 설치한 ‘천문조도측정기’다. 밤낮으로 하늘의 밝기를 측정해 기상현상과 대기상태에 따라 한반도의 하늘 밝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내기 위한 장비다. 3월 9일 저녁 8시 4분 34초, 보현산천문대에 설치된 천문조도계는 갑자기 하늘 전체가 순간적으로 밝아진 현상을 기록했다. 낙하하던 유성이 일으킨 폭발을 검출한 것이다. 같은 현상이 멀리 떨어진 강원도 양구 국토정중앙천문대에 설치된 천문조도계에서도 감지됐다. 그날 해는 저녁 6시 26분에 졌으며, 하늘은 오직 서쪽하늘에 걸친 상현달의 빛에 의존하던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순간적인 대기발광은 오직 그 시각에 1회 검출됐다.
부산과 대전의 제보영상을 이용해 도출한 유성의 3차원 궤적. 진주를 향해 진행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출처:연세대 탐사천문학연구실>
운석은 진주에만 떨어졌을까
운석을 찾는 사람들은 진주 외에 다른 곳에도 운석이 떨어졌을지 궁금할 것이다. 진주 유성은 수도권 남부에서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해서 남남동 방향으로 날아가며 떨어졌다. 유성체의 지구 진입속도는 보통 초속 11~72km다. 이번처럼 저녁 시간에 발견되는 유성은, 초속 30km의 속도로 이동하는 지구의 뒤 쪽으로 부딪히는 것이므로 속도가 느린 편에 속한다. 반대로 새벽 시간에 나타나는 유성은 지구의 진행방향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는 셈이므로 속도가 빠르다. 아주 빠른 속도로 진입하는 유성은 대부분 상층대기에서 다 증발해버리고 운석을 남기지 않는다.
블랙박스 영상으로 찍혔을 때는 유성체가 대전 이남으로 이동해서 비교적 낮은 고도로 내려오며 아주 밝아진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유성은 아주 잠깐 빛을 발하고 소멸하는데, 이 유성은 5~6초 동안 빛을 내며 아주 먼 거리를 비행했다. 유성은 경남 함양-산청 구간을 지나다 몇 번 폭발하며 작은 조각으로 분리됐고, 1~2초 후 불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유성이 빛을 내는 것은 지구 대기에 빠른 속도로 진입하면서 높은 열을 내며 몸체의 일부가 증발하게 되고, 그 열을 전달받은 주변 공기가 이온화되면서 긴 꼬리를 그리며 밝아지기 때문이다.
공기저항으로 유성체가 많이 느려지면, 더 이상 빛을 내지 못하고 암흑비행을 하며 지상에 도달한다. 실제로 암흑비행 구간에서 유성체는 더욱 느려졌고, 지상에 닿을 때는 속도가 불과 초속 수십m였다. 유성체가 느려지면 운석 조각들은 바람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3월 9일 밤 9시에 포항에서 측정된 연직기상자료를 보면, 고도 5~15km 구간에서는 거의 초속 46m에 달하는 강한 서풍이 불고 있었다. 추락하는 운석 조각 중 무거운 것들은 유성 진행방향인 남쪽으로 더 멀리 날아가 떨어지고, 가벼운 조각들은 북쪽에 떨어지게 된다. 그 위치는 바람 때문에 유성 경로의 동편이 된다. 물론 운석 조각의 낙하 위치는 유성이 어느 고도에서 폭발할 때 분리 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모든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운석의 분포는 10~20km의 범위를 넘지 않을 것이다. 그림으로 본다면 진행방향을 축으로 하는 긴 타원에 가까운 분포이다. 즉, 당시의 유성으로 발생한 운석들은 오직 진주 지역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다른 지역에서 운석을 찾는 수고를 하지 마시길….
진주 유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진주 운석의 고향은 어디였을까? 천문연-연세대 공동연구팀이 알아내려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다. 태양계의 소행성 대부분은 화성과 목성 사이에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원궤도를 그리고 있어 지구에 접근하지 않는다. 이들과는 달리 지구 주변을 총알처럼 지나는 작은 소천체들이 다수 존재한다. ‘지구근접천체’라고 불리는 이들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이미 1만여 개의 지구근접천체가 발견됐지만 모두 발견하기 쉬운 큰 것들이고, 수 미터 혹은 수십 미터 크기의 천체들은 개수나 분포, 특성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진주운석도 이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지구근접천체 대부분은 소행성대에서 벌어진 자기들끼리의 충돌로 궤도가 변경돼 지구가 있는 안쪽으로 들어온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부는 멀리 태양계 외곽에서 여행을 시작한 혜성의 잔재다. 그러나 혜성 부스러기는 지구에 충돌할 때 상층대기에서 모두 증발해버려 운석을 남기지 않는다. 태양계 외곽에서 형성된 혜성들은 매우 성긴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주 유성체는 소행성대에서 파생된 지구근접천체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로로 태양계 공간을 운동해 왔는지, 고향이 과연 어디였는지 알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는 우선 진주유성체가 어떤 궤도 종족의 지구근접천체인지부터 밝혀내야 한다.
지구근접천체는 궤도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눈다. 아폴로, 아텐, 그리고 아모르다. 아폴로는 근일점(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이 1AU보다 작고 장반경(타원에서 장축 길이의 절반을 의미)이 1AU보다 큰 소천체들이다. 1AU는 지구와 태양 사이 평균거리에 해당한다. 아모르는 장반경이 1AU보다 크고, 근일점이 1.3AU보다 작다. 그리고 아텐은 장반경이 1AU보다 작고, 원일점(태양에서 가장 먼 위치)이 0.983AU보다 크다. 천문연과 연세대가 진행하는 분석작업이 조만간 완료되면 태양계에서 진주 유성체가 지구에 충돌하기 전 가장 최근에 지나왔던 경로가 밝혀질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진주 유성체의 과거를 더듬어가는 일이다. 과거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동안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 안쪽의 행성들에 접근하면서 진주 유성체의 궤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지구근접천체들과 혹시 가족관계에 있는 것은 아닌지 파악하는 일도 진행될 것이다.
지구근접천체 궤도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아모르는 장반경이 1AU 이상 근일점이 1.3AU 이하, 아폴로는 장반경이 1AU 이상 근일점이 1AU 이하, 아텐은 장반경이 1AU 이하 원일점이 0.983AU 이상인 소행성을 말한다. <출처: 동아사이언스>
운석은 얼마나 자주 떨어질까
진주 운석은 71년 만에 한반도에서 다시 발견된 운석이다. 그동안 유성현상과 운석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밝은 유성이 발견됐을 때도 운석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었다. 설사 운석이 떨어졌다고 해도 이번 경우처럼 민가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전혀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제운석목록에 등재된 한반도 운석은 모두 4개이며, 1924~1943년까지 일제강점기 때 발견된 것이다. 두원운석을 포함한 3개는 유성현상이 보인 후에 찾은 ‘낙하운석’이다. 모두 일본인이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반도 운석은 이보다 훨씬 많다. 선조들의 천문기록을 보면 유성과 운석 기록이 풍부하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된 밝은 유성의 관측기록은 무려 4,000건에 달한다. ‘운석이 발견됐다’는 기사도 50건이 넘는다. 우리 현대천문학의 역량이 수백 년 전 선조들에게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운석 충돌은 대재앙을 일으킬까
진주 운석은 두 가지 면에서 행운이었다. 민가 근처에 떨어져 운석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다친 사람이나 재산 피해가 없다는 점이다. 항상 이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2013년 2월 러시아 첼랴빈스크 지역에 떨어진 유성체는 수천 채의 건물피해와 1,500명에 달하는 부상자를 낳았다. 1908년 시베리아 퉁그스카에 떨어진 소행성체는 무려 2,200 km2에 달하는 넓은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공룡을 멸종시켰을 정도의 커다란 소행성의 지구 충돌은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
그러나 수십m 크기의 작은 소천체 충돌은 과학자들이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자주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 첼랴빈스크의 운석은 불과 600kg에 지나지 않았지만, 유성체가 전달한 에너지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20배에 달했다.
운석 질량으로만 판단해도 이번 규모의 충돌은 비일비재하다. 투르크메니스탄에 1998년 1.1t짜리 운석이 낙하했으며, 미국에서도 1948년 같은 질량의 운석이 떨어졌다. 1969년 멕시코에는 2t짜리 운석이, 1976년 중국에는 4t짜리 운석이 떨어졌다. 1947년 러시아 식호테 알린에 떨어진 운석의 총량은 23t이었다. 중국 사서에 따르면 1490년 섬서성 경양이라는 곳에 크고 작은 운석이 우박처럼 쏟아지며 1만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태양계를 떠도는 소천체를 탐색하고 추적하는 일은 우주에 대한 과학적 탐구뿐 아니라 지구인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운석 인포그래픽. 유사 이래 떨어진 운석 중에서 사람 눈에 관측된 1107개 운석을 한 눈에 보고 싶다면? ‘bolid.es’ 를 검색해보자. <출처: boli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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