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물러가서 어떻게 예수를 없애버릴까 하고 모의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일을 알아채시고 거기를 떠나셨다. 그런데 또 많은 사람들이 뒤따라왔으므로 예수께서는 모든 병자를 고쳐주시고 당신을 남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보아라, 내가 택한 나의 종 내 사랑하는 사람, 내 마음에 드는 사람, 그에게 내 성령을 부어주리니 그는 이방인들에게 정의를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큰소리도 내지 않으리니 거리에서 그의 소리를 들을 자 없으리라.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리라. 드디어 그는 정의를 승리로 이끌어가리니 이방인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 오늘의 말씀
그는 정의를 승리로 이끌어가리니 이방인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 오늘의 묵상 : 예수님의 정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선포하신 정의, 승리로 이끄시는 정의를 묵상합니다. 예수님의 정의는 큰소리 내지 않으며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대부분 정의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집단적, 조직적 이해와 이익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정의의 문제를 협소하게 배분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단지 불의한 상황을 제거하는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2010년에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정의란 무엇인가’는 책의 판매 부수가 130만 부를 훌쩍 넘어서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물론 너무나도 정의롭지 못한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반증한 것이지요. 여기에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저자의 정의에 대한 해석입니다. 저자는 ‘개인의 자유를 넘어서서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과정’이 정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저자의 정의는 불의를 넘어 공동선과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것으로 정의의 개념을 한층 확장시켰습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이들이 공감하였습니다.
다시 예수님의 정의를 묵상합니다. 예수님의 정의는 냉정하고, 경직되고 메말라서 또다시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사랑 없는 정의’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정의는 보잘 것 없고, 미천하고, 부족하더라도 이를 내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치유하시고, 배려와 사랑으로 품어냄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큰 사랑을 널리 드러내시는 ‘하늘 나라의 사랑’을 품은 정의입니다. 결국 이러한 예수님의 정의는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희망을 보여주시고, 나아가 오늘날 모든 인류에게도 새로운 삶과 희망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드러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