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질 무렵인 5월 4일 오후 4시, 연희동의 한 2층짜리 일본식 선술집. 가게 문을 열기 위해 10여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이 "예! 셰프"라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는 이는 없었습니다. 특별한 말없이도 손님맞이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고, 그 가운데 조용히 종업원을 지휘하는 정호영 셰프(40)가 보였습니다.

그가 셰프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일보다 견딜 만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사현장에서 3개월 정도 소위 '노가다' 일을 뛰었어요. 당시 무척 힘들었는데, 군대를 다녀오면 시급을 더 쳐준다는 현장 선배들의 말에 군대를 갔어요. 그리고 제대를 할 무렵 식당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기술을 사용하는 일이면 좋겠는데, 마침 어머니가 동네에서 오랫동안 조그만 식당을 해 오셨기 때문에 저도 할 수 있다고 가볍게 넘겨짚은 거죠."
그는 바로 요리학원에 등록해서 한식·양식자격증을 땄습니다. 그리고는 홍대입구에 있는 작은 선술집에 취직을 해 3년 동안 일을 했습니다.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건 즐거웠지만 워낙 규모가 작다보니 자신 말고는 요리를 만들고 관리·감독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일산에 있는 큰 일식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진짜 일'이 시작됐습니다.
"일산 가게는 워낙 바빠서 조금만 실수를 해도 큰일이 날 정도로 일의 양이 엄청났어요. 주방 식구들에게 '손이 느리다'는 핀잔도 많이 들었죠. 눈코 뜰 새 없이 일했더니 석달 동안 25kg이 빠졌어요. 그래도 재밌었어요.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요. 그래서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죠."
일식이 좋아서 일본 유학도 다녀왔습니다. 유학을 결심할 당시 나이는 29세. 어린 나이가 아닌 데다 요리로 유학을 가는 게 어색한 시절이었습니다. 대부분은 "가봐야 별 것 없다"며 그를 말렸습니다. 유학 초기 6개월 동안 요리학교 근처에도 못가고 어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울 때만 해도 '선배들의 말이 맞나' 헷갈렸습니다. 그래도 꾹 참고 밀고 나갔습니다. 모자란 유학비용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탰습니다. 결국 그는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츠지조리사전문학교'에 들어갔고 학창 시절 한 번도 받지 못했던 성적우등상을 받으며 졸업했습니다.
정호영 셰프는 "이런 훈훈한 얘기만 듣고 셰프를 하겠다면 말리고 싶다"며 고된 주방 일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일산 일식당에 있을 땐 무조건 14시간 이상은 일했어요. 12시간 이상 서 있어야 하니까 무척 고된데 월급은 적어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친구도 자주 못 만나요. 유니폼 입고 칼질하는 셰프의 모습은 정말 수많은 주방 일 중 하나일 뿐이에요. 셰프도 손이 모자라면 설거지에 음식물쓰레기 버리기까지 다 같이 분담해요."
요리할 때 가장 많이 쓰는 '손'과 '팔'이 고생하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정 셰프는 팔에 거뭇거뭇한 부분들을 가리키며 "전부 기름에 튄 부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급할 때는 칼에 베인 상처에 접착제를 발라 피를 굳히고 일하기도 합니다. "오픈 키친이라 조리과정이 손님들에게 훤히 보이는데 지혈하겠다고 붕대감고 있으면 불안해하실 수 있다"며 "하도 칼에 베이다보니 이젠 아픈게 아니라 귀찮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요리가 이처럼 힘든 일이다보니 정 셰프는 중요한 셰프의 자질 중 하나로 인성을 꼽았습니다.
"제 가게 이름인 '카덴'은 제가 나온 츠지조리사전문학교의 실습실 이름이에요. 실습실에선 세 명이 한 조가 되는데요, 셋이 돌아가면서 요리사-손님-서빙 역할을 합니다. 각자의 입장을 알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죠. 주방에서는 팀워크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쓸 때도 손님이 몰리거나 일이 힘들 때 불쑥불쑥 나오는 인성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죠."
그래도 요리사가 되고 싶은 청소년이 있다면 먼저 엄마를 도와 주방 일을 함께 해보거나 식재료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를 추천했습니다. 정 셰프는 "다양한 음식을 먹고 음식 맛을 아는 것뿐 아니라 어떤 계절에 어느 재료가 맛이 좋은 지 외우고 공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며 "엄마와 함께 장을 보거나 쉬운 요리를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제가 처음 한 요리가 생각나요. 친구들이랑 놀러가서 계란말이를 했는데, 제가 간을 잘못해서 무척 짠 요리가 나왔어요. 친구들끼리 내기를 해서 진 사람이 한 입씩 계란말이를 먹었죠. 더 어렸을 땐 어머니 가게에 놀러온 친구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며 식당에서 재료로 쓰는 돼지고기를 라면에 넣어주기도 했어요. 가끔이었지만, 그렇게 음식 대접하는 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셰프의 자질은 음식 맛을 내는 기술보단, 음식으로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
■ 정호영 셰프는…
카덴, 우동카덴, 로바다야 카덴 오너셰프. 세계 3대 조리사학교인 츠지조리사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현재 요리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JTBC)에 출연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