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한밤의 소동
그들이 가고 난 뒤, 오후부터는 친가를 비롯한 외가 그리고 형과 누나의 지인, 나의 어린 시절 친구부터 옛 직장동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으로 조문객이 왔다. 나는 그들을 일일이 맞이하면서 주는 족족 술을 마시는 바람에 자정이 되지 않아 만취 상태에 이르렀다.
술을 깰 요량으로 장례식장 밖, 흡연실에 있을 때 나와 같이 H 읍에 다녀온 그를 만났다. 그는 잠시 뒤, 먼 지방에 출장을 간다고 했다. 그는 날 보자 대뜸, 내가 자신을 속였다고 화를 내었다. 물론 진짜로 화를 낸 것은 아니었고 그는 싱긋이 웃고 있었다.
“농부라면서요? 행님은 어찌 그리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하십니까?”
“네?”
나는 술이 덜 깨어 그가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작년에 정규 앨범도 냈더니만요. 노래 들어보니까 정말 좋던데요? 이제 뜰 일만 남았네요.”
나는 그의 재치 있는 말솜씨에 그만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그러자 주위에서 상복을 입은 상주가 저렇게 해도 되는지 수군거렸다.
“그게, 뭐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오전에 제가 한 말이 실수란 것을 인정합니다. 행님이야말로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네요. 최고!”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어디로 갑니까?”
“경기도 쪽입니다. 여기서 시신을 모시고 그쪽 상주가 있는 쪽으로 가는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뭔데요?”
그러자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담배 못 핍니다. 나랑 같이 가는 분이 여자입니다.”
그는 죽을상을 하며 내게 악수를 권하더니 차 쪽으로 뛰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다, 나는 문득 작년에 음반이 나왔다는 말을 어머니에게 하지 않은 게 떠올랐다. 그가 말한 ‘껄, 껄, 껄’이 생각났다. 왜 하지 않았던가? 마음이 급했다. 나는 술김에 지금이라도 어머니에게 말하려고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다, 그만 입구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희미하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주가 술에 너무 취했어. 빨리 안으로 데리고 가.”
“이 친구! 이런 날까지 이리 술을 먹어야겠어? 한심한 놈 같으니.”
다음 날 새벽, 난 목이 말라서 눈을 떴다.
실내는 무척 더웠고 방바닥은 뜨거웠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곳이 집이라 생각했다. 우선 아내와 딸아이를 찾았다. 거실로 나가면 입구에 냉온수기가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물론 나를 제외하고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얼른 빈소 옆방에 있는 세면대로 가서 세수부터 하였다.
어느 정도 정신이 들자 나는 빈소 위에 놓인 어머니 사진을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편안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오늘이 출상인데 빈소에 아무도 없었다. 당황한 나는 한동안 내가 있는 5호실을 배회하다, 일단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러다 흡연실에 올라가 보니 낯에 익은 얼굴이 몇 있었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니라 긴 의자에 모두 자고 있었다. 그중에 아들 녀석이 있어 나는 녀석을 먼저 깨웠다.
“어제 아빠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몰라요?”
“무슨?”
아들은 기가 차는지 하품을 하면서 날 노려보았다.
“모두 밤을 새우려고 각자의 자리에서 술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빠가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보일러를 켜고 에어컨을 껐잖아요. 그 무더운 날에.”
녀석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왜?”
“할머니가 평소에 에어컨 바람을 싫어한다며 고래고래 고함질렀잖아요! 게다가 이리 더운 날에 보일러는 왜 켜는지? 보다 못한 손님들은 나가버리고 나머지는 모두 고모 집에 자러 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