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논현동, 새벽 3시 11분.
강민준은 택시 안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았다. 그는 핫스팟을 켜고 파일을 열었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일곱 시간. 오전 10시 기자회견 전까지.
그 안에 이성규를 법정에 세울 직접 증거를 만들어야 했다.
그는 지금까지 모은 것들을 다시 나열했다.
하나. 퍼시픽 엣지 에너지와 홍콩 역외 계좌의 연결. 간접적이지만 추적 가능하다.
둘. 최도훈의 스프레드시트 — 「금 베이징 경로」. 의뢰인 이름은 삭제되었지만 파일 메타데이터에 작성자 정보가 남아 있을 수 있다.
셋. 손재원의 제보. 최도훈이 특정 에너지 섹터 편입을 권유했고, 그 종목이 퍼시픽 엣지 에너지와 연결된다.
넷. 다나카의 명함. 비공식 정보이므로 단독으로는 증거 능력이 없다.
강민준은 노트북 화면을 응시했다.
약한 고리는 최도훈 파일의 메타데이터였다. 거기서 이성규의 이름이 나오면 모든 것이 연결된다. 나오지 않는다면 — 그는 생각을 멈췄다.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택시가 국정원 청사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새벽 4시 30분. 국정원 디지털포렌식실.
수석 분석관 오지현은 눈을 비비며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강민준이 옆에 서 있었다.
"파일 원본 메타데이터입니다." 오지현이 화면을 가리켰다. "최초 작성자 필드가 비어 있어요. 삭제됐습니다."
"복구 가능합니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 " 오지현이 다른 창을 열었다. "이 파일, 클라우드 서버에 자동 백업이 되어 있었어요. 문서 수정 이력이 버전별로 저장되어 있는데, 최초 생성 버전을 보면…"
그녀가 마우스를 클릭했다.
화면에 숫자와 문자열이 쏟아졌다. 그 안에서 그녀가 한 줄을 드래그했다.
**Author: sglee_PEE_consulting**
강민준은 그 문자열을 소리 없이 읽었다.
sglee. 이성규. PEE — 퍼시픽 엣지 에너지.
"이 메타데이터의 증거 능력은요?"
"법원 제출 가능한 수준으로 추출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 필요해요."
"해주십시오."
강민준은 복도로 나왔다.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실 하나가 당겨졌다. 매듭이 풀리기 시작했다.
오전 6시 20분. 국정원 청사 1층 로비.
박 팀장이 종이컵 두 개를 들고 내려왔다. 강민준에게 하나를 건넸다.
"출국 금지 신청했어요. 검사실에서 오전 8시에 영장 심사 예정입니다."
"기자회견 전에 집행 가능합니까."
"타이트하지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민준 씨 — " 박 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성규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요. 그의 인맥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영장이 나오더라도 집행하는 순간 우리 쪽으로 압력이 들어올 겁니다."
"압력이 들어오면 증거가 더 빨리 공개되어야 한다는 뜻 아닙니까."
박 팀장이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웃었다.
"자네 이 일 시작한 이후로 밥은 먹었어?"
강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박 팀장이 자판기 방향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샌드위치라도 사올게."
오전 7시 45분. 강민준의 전화가 울렸다.
손재원이었다.
"수사관님, 저 결심했습니다."
목소리가 전날보다 차분했다. 무언가를 이미 정리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무슨 결심입니까."
"공식 진술하겠습니다. 최도훈 씨에게 연락받은 것, 퍼시픽 엣지 에너지 편입 권유받은 것, 제 개인 계좌 거래 내역 전부. 다 제출하겠습니다."
강민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
"손 씨, 그렇게 되면 본인도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수사관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 저는 그날 밤 숫자만 봤어요. 유가가 오른다, 포지션을 잡는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 숫자 뒤에 뭐가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란에서 누가 죽었는지, 그 기름이 어떻게 타고 있는지."*
강민준은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이 아직 어스름 속에 잠겨 있었다.
"진술서 오전 9시까지 팩스로 보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강민준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재원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너무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숫자를 따라가다 보면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을 — 그것이 어쩌면 이 사건의 가장 오래된 진실이었다.
오전 8시 52분. 서울중앙지검 2층 영장심사실.
판사는 서류를 한 장씩 넘겼다. 강민준은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검사가 옆에서 보충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파일 메타데이터. 홍콩 역외 계좌 추적 보고서. 손재원의 공식 진술서. 그리고 다나카가 비공식으로 넘긴 일본 측 자료 — 이것은 직접 제출하지 않고 정황 설명에만 활용했다.
판사가 마지막 장을 덮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피의자 이성규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합니다."
강민준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시계를 봤다. 오전 9시 1분.
기자회견까지 59분이 남아 있었다.
오전 9시 44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앞.
취재진이 몰려 있었다. 카메라가 입구를 향해 줄지어 서 있었다. 강민준은 차에서 내려 정문 쪽으로 걸었다. 집행팀 두 명이 옆에 있었다.
로비로 들어서는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이성규가 나왔다.
그는 기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회의실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감청색 정장. 단정하게 빗은 머리. 70대 초반의 나이에도 자세가 곧았다. 수십 년간 권력의 복도를 걸어온 사람의 걸음이었다.
강민준이 그의 앞에 섰다.
이성규가 멈췄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이성규의 눈에는 놀람이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이런 순간을 오래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것 같은 눈빛이었다.
강민준이 영장을 내밀었다.
"이성규 씨, 자본시장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합니다."
기자들이 술렁였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집행팀이 좌우로 포지션을 잡았다.
이성규는 영장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강민준을 다시 봤다.
"수사관." 그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조용했다. "자네가 밝혀낸 건 사건의 일부야. 그 뒤에 더 큰 그림이 있다는 건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강민준이 대답했다. "그래서 체포합니다."
이성규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 천천히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오후 2시. 서울중앙지검 심문실 3호.
이성규는 변호인과 잠시 눈을 맞춘 뒤 강민준을 바라봤다.
"어디서부터 시작하겠나."
"퍼시픽 엣지 에너지 설립 목적부터."
이성규가 손을 테이블 위에 얹었다. 천천히, 낮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란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끝나든, 그 이후 동북아 에너지 공급망은 재편될 수밖에 없었어. 미국은 자국 에너지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 할 것이고, 중국은 수입 루트를 다변화하려 할 것이며, 한국과 일본은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지."
"그 사실을 이용해 돈을 벌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야." 이성규의 눈이 강민준을 향해 고정됐다. "내가 퍼시픽 엣지를 만든 건 그 재편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미국이나 일본, 중국 기업에 공급망을 내어주는 게 아니라."
"그래서 최도훈을 이용했습니까. 그래서 그가 죽었습니까."
처음으로 이성규의 표정이 흔들렸다.
"도훈이는 — " 그가 말을 멈췄다. "내가 그 아이에게 위험한 일을 시킨 게 아니야. 그 아이가 혼자서 너무 깊이 들어갔어. 내가 멈추라고 했는데."
"누가 죽였습니까."
긴 침묵이 흘렀다.
이성규가 변호인을 봤다. 변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베이징."
강민준은 심문실을 나와 복도 창가에 섰다.
베이징.
왕리. 중국 국영 에너지 기업 산하 투자법인. 홍콩 계좌.
이성규는 한국의 이익을 위한다고 믿으며 판을 짰다. 그러나 그 판의 일부는 이미 베이징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최도훈은 그것을 알아버렸고 — 그래서 죽었다.
이성규는 설계자이면서 동시에 이용당한 자였다.
강민준은 창밖을 봤다. 서울이 오후의 햇빛 속에 평온하게 펼쳐져 있었다. 자동차들이 달리고, 사람들이 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그는 전화를 꺼냈다. 다나카에게 문자를 보냈다.
*「최도훈 사건 — 베이징 개입. 공식 협조 요청 가능합니까.」*
답장이 왔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번엔 공식 경로로.」*
강민준은 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이성규 사건은 검찰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진짜 수사는 이제 시작이었다. 국경을 넘어, 금융과 정치와 에너지가 뒤엉킨 그 더 깊은 곳을 향해.
저녁 6시. 강민준은 한강 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강이 흘렀다. 노을이 물 위에 번졌다. 붉고 조용했다.
그는 나바로의 문장을 다시 떠올렸다. *이란이라는 지정학적 악재가 사라진다면 유가는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60달러.
그 숫자는 예측이었다. 동시에 신호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설계도였다.
전쟁은 먼 곳에서 일어났지만 그 파장은 여기까지 왔다. 이란의 불길이 서울의 한 사무원을 밤새 잠 못 들게 하고, 베이징의 관료를 계산기 앞에 세우고, 도쿄의 외교관을 골목 이자카야로 불러냈다.
그리고 최도훈이라는 한 사람이 그 파장 속에서 사라졌다.
강민준은 오래 앉아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강 건너 불빛들이 하나씩 켜졌다.
그는 생각했다. 이 사건이 끝난다 해도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란 다음에는 동중국해가 올 것이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이름의 긴장이 올 것이다. 자본과 권력은 언제나 그 긴장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것이 그가 이 일을 하는 이유였다.
세 달 후.
이성규는 1심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및 배임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이 진행 중이었다. 그의 진술을 토대로 베이징 관련 수사가 한일 공조로 시작되었다. 왕리는 중국 당국에 의해 조용히 직위해제되었다는 소식이 비공식 경로로 전해졌다.
손재원은 과징금 처분을 받고 회사를 떠났다. 그는 이후 중소기업 재무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나카는 내각정보조사실에서 한일 에너지 안보 협력 태스크포스 책임자로 임명됐다.
그리고 강민준은 —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새로운 파일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표지에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동중국해 2」**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여전히 식어 있었다.
파일을 열었다.
**작가 노트**: 3권에서는 이성규의 체포와 심문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드러내면서, 그가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더 큰 지정학적 구조 속에서 이용당한 설계자임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최도훈의 죽음 배후로 베이징을 지목함으로써 이 사건이 단순한 내부자 거래를 넘어 국가 간 에너지 패권 다툼임을 드러냈습니다. 강민준은 사건을 닫지만 세상은 닫히지 않습니다. 다음 파일은 이미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